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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Jun 25. 2019

<120호> 이모, 여기 국밥 한 그릇?

기고자 불.여.우


 “이모, 여기 반찬 좀 더 주세요!”


 다수의 한국인에게는 셀 수 없는 ‘이모’가 있다. 주로 식당에서 요리나 서빙을 하시는 분들이나 건물의 환경 미화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이모’다. 나는 해외여행을 가면 한인 민박을 애용하는데,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을 때 민박집 사장님이 본인을 이모로 칭하시기도 했다. ‘민박집 이모예요. 파리에는 도착했나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시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이 아니어도 한국인 사회 안에서는 이모가 이러한 의미로 쓰인다. 한국에 살건 안 살건 한국인들은 수많은 중장년 여성 노동자를 ‘이모’라고 부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다.

 

사회 전반에서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는 호칭임에도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러한 ‘이모’의 용례를 올바른 용례로 인정하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을 기반으로 한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이모의 사전적 의미에 ‘어머니의 여자 형제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말고 다른 서술은 없다. 호칭어, 경어법 등과 관련한 언어 예절을 연구하여 내놓은 「표준 언어 예절」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자매가 아닌 여성 노동자를 ‘이모’라고 부르는 것이 언어 예절에 어긋난다고 꾸준히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국립국어원의 단호한 입장은 언어생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구인·구직 포털 사이트에서 ‘이모’만 검색해도 주방 이모, 식당 이모 등 여성 노동자를 찾는 구인 광고가 셀 수 없이 뜬다.


5월 2일 정오 기준 구인/구직 포털 5월 2일 정오 기준 구인·구직 포털 「알바몬」에서 ‘이모’를 검색한 결과

  

유모, 참모, 찬모, 식모, 주모 등 수많은 ‘어머니’(母) 들이 의식주 노동을 책임져 온 한반도의 역사 위에서 ‘이모’가 그 맥을 잇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모가 여성 노동자를 이르는 말로 너무 대중적으로 쓰이는 말이어서일까. 이 호칭에 대한 연구는 논문은커녕 기사도 찾기 어려울 만큼 매우 빈약했다. 고찰을 해보는 사람도 드문 이 ‘이모’라는 호칭은 어디서 왔을까. 왜 고모도, 숙모도 아니고 이모일까. 이모라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근무하고 있을까. 정말 문제가 없는 호칭일까. 자료가 드문 것을 확인할수록 궁금증은 커졌다. 그래서 이어지는 내용에 지인들과의 깊은 대화를 중심으로 온라인의 댓글, 얼핏 보기엔 ‘이모’라는 호칭과 관련 없어 보이는 기사 등을 참고하며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리고 ‘의식주 노동’은 본디 없는 단어이지만, 이 글에서는 예로부터 여성이 주로 종사해온 가사노동과 형태가 비슷한 모든 노동을 간결히 의식주 노동이라고 칭할 것이다. 


왜 ‘이모’인가? 호칭의 가부장적 근원


다수의 한국인에게 어머니의 자매인 ‘이모’는 아버지의 자매인 ‘고모’보다 훨씬 친근한 존재인 듯하다. 북한에는 ‘이모는 품속 아주머니’라는 속담이 있다는데, 이 속담은 이모가 어머니 다음가는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모에 대한 친근함은 비단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만의 속성이 아닌 셈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모’랑 놀러 간다, ‘이모’가 용돈을 줬다, ‘이모’가 사줬다 등등, 이모는 친구들과의 대화에 고모보다 등장 횟수가 월등히 높았다. 특히 여성인 친구들의 경우에는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더욱더 이런 현상이 심화하였다. 대학생이 되니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셔서 이제 고모 얼굴은 안 본다’는 친구들까지 속속들이 생겨났다.


‘외가’에 더 친근함을 보이는 한국인들


고모보다 이모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친조부모가 돌아가셨다는데 고모를 볼 일이 없어졌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근본적으로 친가보다 외가를 더 가깝게 여기는 한국인이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단적인 예로 ‘우리 할머니 같다’는 호평을 받으며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의 PD 김유라 씨는 채널의 주인공 박막례 할머니의 손녀다. 그런데 꽤 많은 시청자가 놀란 대목이 바로 김유라 씨가 ‘친’손녀라는 대목이다. 박막례 할머니의 아들이 김유라 씨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영상에서 밝혀질 때쯤 댓글과 여초 커뮤니티에 보였던 공통반응이 있었다. ‘두 분 사이가 워낙 좋아서 외할머니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채널의 팬층이 주로 여성이기도 하지만, ‘친할머니보다 나와 사이가 좋은 외할머니’가 많은 여성으로부터 공감을 샀다는 점 자체가 흥미롭다.


또한 ‘외할머니’, ‘이모’ 등 모계 여성 식구들의 호칭은 실생활 마케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검색엔진에 외할머니를 검색하고 지도를 켜면 전국에 49개 점포가 ‘외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고, 이 글의 주인공인 이모를 검색하면 무려 1844개 점포가 나온다. 이 중 가족 호칭인 ‘이모’가 아닌, 록 음악의 장르인 Emo 등 다른 뜻으로 이름을 붙인 점포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1500곳 이상은 가족인 ‘이모’를 이름으로 내걸고 영업 중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부계 여성식구들의 호칭은 성적이 초라하다. 지도에 ‘고모’를 검색하면 392건이 나오고, ‘친할머니’를 검색하면 무려 1건이 나온다. 한국인들이 모계 여성 식구들에게 더 친근함을 느끼기 때문에 두 호칭을 이름으로 내걸고 향수나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외가에 더 친근함을 느끼는가


대다수 한국인, 특히 2000년대 이전 출생 한국인의 성장 배경에는 전업주부 어머니와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가 있다. 지금도 경력 단절은 대다수 기혼 여성의 현실이지만 90년대까지는 여성들에게 출산 후 경력 단절은 필수를 넘어 미덕이었다. 90년대에 남아선호사상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최초의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도 이 ‘미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아들만을 끔찍이 생각하는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직장을 그만두도록 강요해 결국 경력 단절을 시킨다. 이렇게 직장을 그만둔 여성은 그 순간부터 아내 및 어머니로서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부인의 출산을 분기점으로 기혼 남성 역시 배우자를 대신해 경제적 책임을 전담하며, 점차 육아와 가사를 방관하는 입장이 된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어머니가 나와 직접적으로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존재인 데 비해 아버지는 나를 멀찍이서 지켜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기혼 남성이 가정의 방관자가 되는 현상은 비단 경제적인 책임을 전담하게 될 때만 일어나지 않는다. 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주중 가사시간은 남편이 17.4분, 아내는 129.5분으로 아내가 남편보다 무려 7.4배 길다고 한다. 가사를 전혀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행동을 답습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본인이 개인으로서 영위해온 생활에 ‘가정’이라는 책임을 끌어들이기가 귀찮아서일까. 경제적 책임을 반반에 가깝게 분담해도 많은 기혼 남성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정에 깊게 개입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남자아이들이 소꿉놀이할 때 가만히 앉아 TV 보는 시늉을 하며 ‘여보, 밥!’을 외친다고 할까.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7살 아들이 소꿉놀이하자더니, 컴퓨터 앞에서 ‘아빠가 이따 놀아줄게’를 연발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다. 따라서 어머니가 경제생활을 해도 자녀들에게는 더 가까운 존재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보다 더 편한 어머니라는 전제는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인들의 무의식에 자리 잡는다.


 어머니의 가족도 이 어머니-아버지의 참여자-방관자 관계의 연장선에 있다. 이미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편안한 존재라는 것이 수많은 아이의 뇌리에 각인된다. 따라서 어머니의 식구인 외가 식구들은 어머니와 같이 가까운 존재로 인식된다. 또한 양육 및 가사노동 상의 문제로 어머니가 힘들어할 때 쉽게 도움을 주는 것은 외가 식구들이다. 실제로 손주 양육에 참여하는 비중은 친조부모보다 외조부모가 높으며 2010년대 들어서 그 비중은 차이가 더 벌어졌다. 2016년 통계청 자료 기준,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을 남성의 부모가 지원하는 비율은 7.9%, 여성의 부모가 지원하는 비율은 17.9%로 2배 이상 높다. 이 때문에 아버지의 가족보다 자주 보게 되고 나를 더 어여삐 여겨주는 이모, 외삼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된다. 심지어 외가를 더 가깝게 느끼는 것이 주류 정서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다니다가 ‘어머니와 더 심리적으로 가까워서인지 살아계신 친할머니보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대답까지 들었다. 그 친구는 심지어 남성이었다.


근본적인 위계질서 : 외가? 친가?

 

굳이 이모라는 명칭이 채택된 배경에는 단순히 친근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어에서 모계 식구를 이르는 말은 ‘외가’, 부계 식구를 이르는 말은 ‘친가’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참고하자면 외가의 ‘외’는 바깥 외(外)자이며, 외가의 정의는 ‘어머니의 친정’이다. 반면 친가의 ‘친’은 친할 친(親)자이며 ‘아버지의 일가’라는 정의를 갖고 있다. 바깥 집과 친한 집, 어머니의 친정과 아버지의 일가. 한국어의 가족 개념 안에서 외가는 언어상 한 가정의 울타리 밖에 있는 개념인 데다 어머니는 ‘친정’이 있으면서 아버지의 일가로 편입이 된 식구로 신분이 제한되는 구성원임을 명시한다. 나에게 근본적 문제의식을 제공한 어머니는 당신의 식구가 딸에게 ‘바깥 집’ 사람들이 되는 것 같다며 ‘외’자가 붙은 단어들을 늘 서운해하신다.


더불어 기혼 여성이 시가 식구들을 부르는 명칭은 절대적으로 높임말이다. 남편과 서류로 묶였을 뿐 사실은 남인데 남편의 부모는 ‘어머님’, ‘아버님’으로 내 부모의 위치를 빼앗는다. 남편의 자매는 ‘아가씨’, 형제는 ‘도련님’이 된다. 남편의 형제가 결혼하게 되면 내 남편도 아닌데 ‘서방님’이 되어버린다. 영화 <B급 며느리>에서는 기혼 여성 김진영 씨가 혼전부터 알고 친하게 지내던 남편의 동생을 “호원아”하고 이름만 반말로 불렀다가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시어머니와 크게 갈등을 빚는다. 사실 ‘시가’라는 호칭보다 ‘시댁’이라는 호칭이 더 일반적인 호칭인 것부터가 이 비대칭적 호칭 설정의 증거다. 반면 기혼 남성이 빙가 식구들을 부르는 명칭들은 허물없이 편하다. 아내의 부모를 ‘장모님’, ’장인어른‘으로 부르며 우선 내 부모의 입지를 지킬 수 있다. 아내의 언니는 처형, 여동생은 처제, 오빠는 형님, 남동생은 처남이 된다. 형님이라는 관용적인 단어 이외에는 어디 한 곳 ’님‘자 제대로 붙는 단어가 없으며 심지어 아내의 오빠라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면 ’처남‘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가부장제와 이모의 연결고리

 

첫 번째 근거에 비추어 이모는 고모보다 친근하고 가까운 이미지이기 때문에 중년 여성을 ‘이모’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모’랑 놀러 간다, ‘이모’가 용돈을 줬다, ‘이모’가 사줬다 등등 아이 때부터 해온 말은 고모보다 이모는 나와 친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이뿐 아니라 이모는 곧 어머니의 자매로서 어머니에게 전담된 가사노동을 아버지나 아버지의 식구들 대신 분담해준 존재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버지의 자매인 고모가 한 가정에 가사 분담자로서 개입하게 되는 경우는 주변 친구들 10명에게만 물어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드물다. 이모와 엄마가 같이 있을 때는 둘이 같이 가사를 하는데 고모와 엄마가 있을 때는 엄마가 가사를 전담한다는 증언도 있었다. 가부장제 위계질서에서는 공통 지인 남성과의 관계에 의해 여성의 위치가 결정된다. 따라서 고모는 어머니보다 우위를 점하고 이모는 어머니와 같은 위치에 남는다. 그래서 이모는 우리 엄마처럼 포근한 존재다. 이와 같은 위계질서 맥락에서 자주 보는 어머니의 친구들도 ‘이모’라고 더러 부르게 된다.


이것은 한국의 가부장제가 빚어내는 구조적인 문제다. 한 여성이 형제의 자식을 대할 때와 자매의 자식을 대할 때 인격이 돌변하여 다른 사람이 되겠는가. 형제의 식구들과 같이 있으면 손윗사람의 태도를 취하고 자매의 식구들과 같이 있으면 동등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 흔할 뿐이다.


이에 이어서 양가 식구의 호칭도 문제를 자아낸다. 어머니의 자매인 이모는 조카에게 친근하고 가까운 존재임과 동시에 한 마디로 ‘만만한’ 존재로 인식된다. 대다수 한국인은 친가에만 가면 아랫사람이 되는 어머니에 비해, 외가에서 백년손님인 아버지가 편히 처형, 처제 하는 것을 듣고 자랐다. 무의식 속에 이모에 대한 어려움이나 존중이 생겼겠는가. 종합하자면 이모는 나와 가깝고 나를 엄마처럼 돌봐주는 존재로, 가족의 위계질서 안에서도 나와의 장벽이 고모보다 낮은 존재다. 이로 인해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식당 종업원, 환경 관리원 등의 중년 여성 노동자를 편히 ‘이모’라고 부르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노동자로서의 ‘이모’들의 현주소


열악한 근무환경


한국인들이 그들을 편안하고 친근해서 ‘이모’라고 부르는 탓일까. 이모들이 주로 종사하는 의식주 노동 업계는 오랜 시간 여성의 노동으로 평가 절하되어온 분야다. 서론에서도 언급했듯 유모, 참모, 찬모 등 어머니 모(母)자가 붙는 호칭의 여성들이 종사했던 분야기도 하다. 어머니의 자매가 이모인 것처럼 예전에 ‘어머니’들이 하던 일을 ‘이모’들이 물려받은 형국이다. 이 의식주 노동 분야에서도 이모들은 일용직 노동자의 위치에 있는 중장년 여성들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조직 운영에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미미하거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즉 ‘이모’들은 대체재를 찾기 쉬운 단순 노동 업종에 낮은 임금을 받으며 종사한다.


대체재를 찾기 쉬워서인지, 노동의 가치가 그 자체로 평가절하를 받아온 영역이어서인지 이모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 처해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예로 ‘청소 이모’들이 있다. 그들은 제대로 된 휴게실을 보장받지 못해 혹서기, 혹한기에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당장 연세대학교의 환경 관리원 휴게실 역시 창문이 없거나 습기가 쉽게 차는 곳에 있는 등 시설이 상당히 열악하다. 비단 부실한 휴게시설만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로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수년째 끊이지 않고 있다.


이모가 아닌 이들은 어떤 이들인가


반면 중장년 여성 노동자 중에서도 엘리트 계층, 또는 전문직 여성들은 ‘이모’라고 잘 불리지 않는다. 남성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중장년 남성 노동자들이 ‘이모’들이 종사하는 의식주 노동업계에 같이 종사한다고 해서 그들은 이모부, 고모부, 삼촌이라고 불리는가. 아니다. 주로 사장님, 기껏해야 아저씨라고 불리고 혈연관계나 가족관계의 호칭이 이모만큼 대중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친분이 두터워야 삼촌이라고 부르는 정도에 그친다.

 남성이 더 위험하고 힘든 일에 종사하기 때문에 보다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은 늘 존재한다. 그러나 뜨거운 김을 쐬며 무거운 밥솥, 국솥을 나르던 학창시절 ‘급식실 이모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여성인 나 역시 인턴 근무 당시 여초 회사의 물류 업무를 담당하며 무거운 짐을 참 많이 날랐다. 택배 기사님들께 ‘이걸 아가씨 혼자서 어떻게 끌고 가!’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고학력 여성이어선지 또는 아직 청년이어선지 내가 ‘이모’는 아니었지만.


굳이 이모가 아니어도 여성의 노동이 평가절하당하는 것은 거의 상식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은 OECD 내에서 유리천장지수 최하위권을 굳게 지키고 있는 국가인데다, 성별임금격차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것으로도 여성 노동력 평가절하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2019년에는 유리천장지수에서 29개국 중 29위를 기록하였으며 여성임금은 남성임금과 비교하여 34.6%가 낮다고 한다. 특히나 경찰서, 소방서, 군대와 같은 절대적 남초 집단 안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는 급여는 똑같이 받지만 차별 상황이 훨씬 적나라하다. 소방서에서 방학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수요일에는 여성 근무자만 휴게실을 사용할 수 있다며 ‘ㅇㅇ소방서의 예쁜 꽃들이 몰려옵니다. 잠시 양보해주세요’라며 여직원 이용시간을 ‘꽃들 휴식시간’이라고 공지를 해둔 팻말을 보았다.

 

해당 소방서의 휴게실에 놓여있던 팻말


“꽃들”은 남성 소방관들과 똑같이 행정업무를 본다. 그리고 3교대를 서며 신고가 들어오면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무거운 짐을 들고 소방차, 구급차로 뛰어 들어가는 소방관들이다.


절대적 여초 집단이라고 해서 이러한 평가절하에서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집단의 가치가 통째로 절하되거나 도덕적 비난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예로 근무자의 90퍼센트 이상이 여성인 간호사 집단은 의료인임에도 불구하고 처우가 의사와는 너무 다르다. 다행히도 최근에 간호사 집단에서 문제 제기와 개선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는 추세긴 하나 기존에 만연한 문제가 너무나 많았다. 전문직임에도 환자들에게 ‘이모’, ‘언니’, ‘아가씨’ 등으로 불리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기쁨조’로서 병원의 행사에 동원되기도 한다. 성심병원의 간호사 장기자랑 사례가 대표적인 고발 사례이며, 울산대병원 역시 UCC 경진대회로 노조에게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간호사 탈의실에 불법 촬영 카메라가 설치되는 등 병원 내 성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간호사가 얼마나 병원 내 성범죄에 빈번히 노출되어 왔는지는 검색엔진에 ‘간호사 탈의실’만 검색해도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불법촬영이 비로소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며 간호사 탈의실 불법촬영 사례도 많이 보도되었다.


 같은 의식주 노동을 해도 남성 노동자에 대해서는 편안하고 격식 없는 호칭이 기본값이 아니다. 정말로 친한 사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가족관계의 호칭이 쓰인다. 남성과 비슷한 강도의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해도 여성의 노동은 그 강도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모’라는 기호가 만들어내는 노동력의 평가 절하

 

중장년 여성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호칭이 이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사람들은 ‘여사님’, ‘사모님’을 사용하거나 드물게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물론 여사님, 사모님도 남성형 단어에 여성형이 덧붙은 종속적인 호칭이지만 비교적 존중이 들어가있다. 그러나 ‘이모’는 여전히 예의가 있든 없든 사람들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올 만큼 대중적이고 편한 호칭이다. 문제는 다소 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서 발생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이모 대신 ‘어머님’, ‘어머니’라고 부르는 손님들은 언급이 의미 없을 정도로 흔하다. 물론 그만큼 흔한 상황이라는 뜻일 뿐 ‘어머니’ 역시도 ‘이모’의 문제의식과 맥락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다. 가족의 호칭이 사회에 나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당 이모와 친해졌다 싶으면 갑자기 ‘언니’라는 호칭도 나온다. 정말 식당 이모와 비슷한 나이의 중년 여성이 언니라고 부르는 것까지는 크게 이상하지 않다. 요식업계에서 아르바이트해본 여성 친구들은 대체로 ‘아주머니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시는 건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연령을 불문하고 남성 소비자의 입에서 ‘언니’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확실히 부자연스럽다. 게다가 그 모든 남성 소비자가 ‘언니’라는 어휘가 성별 불문 손윗사람을 가리키는 데 쓰였다고 추정되는 20세기 초반 출생도 아니다.


‘언니’라는 호칭도 여성들끼리 손위 여성을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인 의미에서 이모 못지않게 많이 벗어나 한국 사회 이곳저곳에서 쓰인다. 특히 초면인 여성들 사이에서 서로를 편하게 이를 때 자주 쓰이고 있다. 그래도 가정에서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언니는 이모보다도 격을 차리지 않은 호칭이 분명하다. 언어는 사용자의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애초에 ‘사장님’이 아니라 ‘이모’인 중장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단숨에 이모에서 더 편하고 한 단계 예의가 덜 한 언니로 넘어가기에 보다 쉬운 위치에 있게 된다.


 중장년이 아닌 여성 노동자는 ‘아가씨’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가씨의 가장 넓은 사전적 의미는 ‘젊은 여자를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이다. 즉 청년 시기에 있는 여성을 이르는 말이니 사전적으로는 이 호칭이 틀린다고 할 수 없다. 정말 젊은 여성 종업원을 부르려고 이 호칭을 택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 단어를 둘러싼 사회적 함의가 그렇지 않다. 유흥업에 종사하는 젊은 여성을 ‘아가씨’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구인·구직 사이트에 아가씨를 검색하면 성인인증을 요구한다. 이에 박찬욱 감독은 뉴스인사이드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아가씨」의 제목에 대해 언급하며 “아가씨는 남성으로 인해 오염된 단어이기에, 그런 오염으로부터 되살리고 싶은 아름다운 말이었다”라고도 했다. 같은 맥락으로 ‘미스’는 문제 제기가 많아 거의 사장된 호칭이지만, 마찬가지로 20대 여성에게 이런 사회적 함의를 씌웠다. 아가씨는 ‘이모’, ‘언니’와 더불어 여성의 노동력이 언어와 함께 어떻게 평가가 격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시다.




 친근한 중장년 여성을 칭하기 위해 ‘이모’라는 호칭을 쓰는 것은 분명 한국인들이 고모보다 이모에게 친근함을 느끼고 있는 사실이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모계 식구가 부계 식구보다 확연히 한 가정의 가사 분담에 원하든 원치 않든 도움을 주게 된다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 비해 부계 식구들은 한 가정에 있어 거리를 두고 있고 모계 식구들보다 우위에 있는 태도도 보인다. 이는 한국인에게 내재한 가부장적 사고를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또한 한국 사회 내에서 ‘외가’와 ‘친가’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질서와 여전히 시가가 기혼 여성과 그들의 자녀에게 어떠한 위치를 점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모가 한국 사회의 따스한 일면인 정(情)을 보여주는 호칭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목소리도 사실은 적지 않다. 따라서 혹자는 이모가 그들의 노동력을 평가절하하는 부정적인 호칭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다고 가까운 친구 7명 남짓에게 이야기했을 때 당황했다. 하나같이 흥미로운 글이 될 것 같다고 반응한 여성 친구들과는 달리 남성 친구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거나 “문제가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라고 왕왕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연히 그들에게도 경력이 있고 사회에 필요한 노동력인데 단순히 친근하다고 해서, 또는 높은 교육 수준이 필요 없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이모’, 또는 ‘아줌마’라는 사적인 호칭으로 그들의 전문성을 덮는 것은 아닌지 고찰해봐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었다.


 더불어 한국 사회의 훈훈한 부분을 왜 굳이 중장년 여성 노동자의 노동력을 평가절하하며 보여주어야 하는가. 글을 열며 이야기했듯 ‘이모’라는 호칭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얼마나 중장년 여성 노동자를 낮게 바라봐왔고 그러한 시선이 얼마나 오랫동안 상식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인 사회를 따뜻한 곳으로 만들자고 그들을 계속 비전문의 영역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은 결국 지금까지 감수해온 희생을 앞으로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모’라는 호칭에 대해 다각도의 문제점을 먼저 인식한 한국 여성민우회는 2012년에 ‘차림사’라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현재와는 많이 다른,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크고 작은 문제 제기가 확연히 적었던 2012년 당시에 해당 제안은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했을뿐더러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2019년 현재 이모라는 호칭은 개선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예시로 오랜 시간 ‘야쿠르트 아줌마’라고 불리던 한국 야쿠르트의 파견 근무자들은 최근 ‘프레시 매니저’라는 전문성이 드러나는 직책을 명명 받았다. 단순히 야쿠르트를 판매하는 ‘아줌마’에서 한국 야쿠르트의 신선한 제품에 대해 알고 관리하며 소비자의 건강을 지키는 매니저가 된 것이다. 다른 ‘이모’들에게도 적어도 사장님과 같은 더 번듯한 호칭이 필요하다.


 자, 여기까지 오셨음에도 여전히 이모가 따뜻하기만 한 호칭이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의 언어생활에서 문제 지점을 확인해보자. 소담하고 포근한 식당에 가서 중장년 남성 종업원에게 목청껏 당당하게 외쳐보는 것이다. 절대 어색해하거나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


“고모부, 여기 국밥 한 그릇!”



기고자 불.여.우(jinseesist@yonsei.ac.kr)





<참고 문헌>

1. “'맞벌이 부부' 가사노동 여성이 남성의 7.4배”, MBC, 2019.04.10.

2. “'야쿠르트 아줌마' 48년 만에 '프레시 매니저'로 이름 변경”, 조선비즈, 2019.03.07.

3. “"외할머니는 힘들다"…맞벌이 19% 청소·육아 처가에 의존”, 뉴스1, 2017.12.12.

4. “韓, OECD 회원국 중 유리천장 최악”, 아주경제, 2019.05.05.

 5. “[SS인터뷰] ‘아가씨’ 박찬욱 감독 “망설임 없는 사랑, 철저한 억압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뉴스인사이드, 201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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