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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Oct 16. 2020

<125호> 차별금지법이 뭐길래

수습편집위원 안즈

바야흐로 혐오와 차별의 시대다. 7월 31일 서울지하철 신촌역에 게시되었던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 캠페인 광고가 8월 2일 찢긴 채 발견되었다. 해당 광고는 ‘성 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을 뿐이다. 이 문구가 어떤 위협이 되었길래 광고가 갈기갈기 찢길 수밖에 없었던 걸까.


지난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와 논쟁들 때문이다. 이 법안과 관련된 안건이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 올라가기도 했다. 7월 6일 진행된 중앙운영위원회 제22차 정기회의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위한 대학가 서명운동 참여 및 홍보 요청 논의의 안’이 상정되었고 부결되었다. 차별금지법은 학생인 우리와 동떨어진 문제가 결코 아니다. 학생 사회 또한 하나의 작은 사회이며 대학생도 결국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렇기에 더욱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차별의 양상과 정의, 차별금지법안, 해외 사례 및 국내 심의의 특징을 살펴보고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제언하고자 한다.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룰 수 없다.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선량한 차별주의자‘다.[1]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미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킴멜이 TED 강의[2]에서 ‘특권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The privilege is invisible to those who have it)’고 말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차별은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피해자를 괴롭게 한다. 살면서 차별을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차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 또한없을 것이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당연히 차별하는 사람도 그만큼 있다는 뜻이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나중에’ 사건이 있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성 소수자 관련 질의에 ‘나중에 이야기하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문 후보자의 지지자들 역시 ‘나중에‘를 연호하며 질문자가 발언을 이어가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로부터 2년 전인 2015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취임 후 장애인, 성 소수자, 외국 출신자 등을 포함하여 내각을 구성하였고, ‘왜 남녀 동수로 내각을 구성했느냐‘는 질문에 ‘2015년이니까요’라고 대답하였다. 차별 해소에 대한 두 정부의 의지를 비교했을 때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 및 제정 시도는 2000년대 중반부터 있었다. 그러나 여러 집단의 반대로 번번이 그 시도가 좌절됐다. 2020년 21대 국회의 시작과 함께 차별금지법이 다시 한번 발의되었다. 더 이상 ‘나중에‘라는 말로 차별을 용인할 수 없다.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의원은 하루에도 수십 통의 항의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반대자들은 매일 국회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성실하게 시위를이어가고 있다. 학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제22차 정기회의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학가 서명운동 참여 및 홍보 요청 논의의 안’이 ‘기독교 내부의 합의가 부족하다’, ‘동성애 옹호법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로 결국 부결되었다.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같은 안건이 압도적인 찬성률로 가결된 것과 비교된다. 이런 상황들은 오히려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방증한다.


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에 배치된다고 생각하여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별금지법은 표현의 자유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자유에 배치된다기보단 이를 보장하기 위한 법안이다. 표현의 자유에서 핵심은 자유이다. 그러나 사회의 여러 구성원 중 특정 집단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상태가지속한다면 우리 사회를 더 이상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차별과 혐오발언은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표현의 자유 영역에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혐오 자체가 사회적 해악성을 갖기 때문이다.[3] 따라서 특정 집단의 차별을 막기 위해 다수의 권위에 제한을 두는 행위는 민주주의와모순되지 않는다. 모든 구성원은 동등하며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미룰 수 없다.



이런 것도 '차별'이야?


단순히 누군가의 특성을 이유로 다르게 대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 차별은 대상을 비하한다는 점에서 부당하다. 타인을 비하한다는 것은 타인을 가치보다 낮게 대우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하는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으로, 비하 여부는 맥락과 문화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4] 위의 시험 시간에 차이를 둔 사례는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차별로 볼 수 없다. 맥락에 따라 똑같은 문구도 차별이거나 차별이 아닐 수 있다. ‘남성 전용’이라는 팻말이 목욕탕 앞에 붙어있는 경우와 대학교 앞에 붙어있는 경우가 완전히 다르게 해석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연세대학교는 개교 시기를1885년으로 보고 있으나 여성의 입학이 허용된 건 1946년부터다. 두 경우 모두 성별을 근거로 구분 짓는 것이나 후자는 남성이 아닌 성별을 남성에 비해 하찮게 취급하는, 즉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차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경우에 ‘차별’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장애 학생에게 시험 시간을 길게 배정하는것이 차별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장애 학생의 시험 시간을 다르게 정함으로써 오히려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대우하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등은 산술적으로 평등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정에서의 다름을 고려하여 결과적으로 평등한 상태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 사이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시험 시간이 똑같이 주어진다면 오히려 장애 학생에 대한 차별이 발생했다고 볼 수있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겠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공무원 채용 과정에서 ‘사지의 완전성’이라는 신체 기준으로 응시 기회를 제한하지 않도록 개선방안마련을 권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공무원을 희망하지만, 왼손 약지 손가락이 하나 없어 경찰청과 해양경찰청 채용 신체조건 중 ‘사지가 완전한 자’라는 기준으로 인해 채용에서 배제된 민원인의 진정을 접수한 결과이다.[5] 경찰청과 해양경찰청은 손가락 등 사지가 완전하지 못하면 업무 수행에 위험을 초래할 수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약지는 총기나 장구 사용에 관련성이 적고 손가락이 10개인 사람이라도 파지력과 악력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보았다. 따라서 손가락 개수를 이유로 애초에 응시 기회조차 박탈한 것은 신체적 특성을 이유로 응시자를 비하한 차별이다.


차별금지법에서 차별금지사유를 어떻게 규정할지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다. 2007년 법무부가 발의한 법안에는 ‘성적지향, 학력,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병력, 출신 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의 차별금지사유가 삭제되어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자들이 문제 삼는 것도 성적 지향 등의 차별금지사유다.[6] 이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누군가의 고유한 특성을 근거로 고용하지 않거나해고하는 것은 합당한가? 어떤 사람의 특성을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건 공정하지 않다. 차별은 그 자체로 시민으로서의 삶을 해치고 성원권을박탈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성적 지향 등 특정 사유를 제거하자는 반발 또한 차별이다. 차별의 의미를 모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사유를 명확히 규정하여 알릴 필요가 있다.

 


차별금지법이 뭐길래


최근 논의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고용, 교육, 재화 및 용역, 행정 서비스의 4개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등 23개의 사유[7]에 따라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한다. 장혜영 법안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헌법 이념을실현하고, 실효적인 차별구제수단들을 도입하여 차별피해자의 다수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구제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양성평등기본법, 연령차별금지법, 비정규직차별금지법 등 기존의 개별적 차별금지법과 무관하게개별적 차별금지 사유, 영역을 통합적으로 규율하고 단일 차별시정기구를 만들어 차별구제의 실효성을 강화하며 궁극적으로 평등을 법제화한다. 즉, 포괄적차별금지법은 국민이 차별의 위험에 노출될 경우 차별로부터 국민을 구제하고 차별을 규제하는 ‘기본법‘ 역할을 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앞서언급한 바와 같이 2000년대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여러 차례 입법 시도가 좌절되었다. 발의만 10차례 넘게 되었으나 회기만료로 폐기되거나 철회되는 등통과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8]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앞서 말했듯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넘어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차별구제를 가능하게 한다. 이 법안에서는 직접차별뿐 아니라 간접차별도 금지의 대상에 포함한다. 간접차별이란 외견상 차별금지사유와 관련하여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했으나 결과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불리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 간접차별은 직접차별과 더불어 차별받는 당사자에게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법률에 명시하여 차별의 일종임을 명확히 할 필요성이 충분하다. 가해자에게 증명책임을 부담하도록 한 점도 눈길을 끈다. 즉,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가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하는 것이다. 차별행위의 피해자와 그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정보 및 정보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로 차별의 입증이 곤란함을 고려한 처사다. 이 부분은 역차별논란에 종종 휩싸이곤 하는데, 제조물 책임법[9] 등에서는 이미 같은 이유로 증명 책임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선례가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이 법안이 차별을 할 경우 ‘처벌’하는 법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차별을 할 경우 먼저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 또는 시정명령을 받게 되며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 시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처벌법이라는 이유로 제정을 반대하는 건 맞지 않다.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도 예외가 존재한다. 장혜영 법안에서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차별로 보지 않는데 다만 해당 사유가 차별이 된 모든 사유에 각각 존재하여야 한다.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있는 것에는 특정 직무나 사업수행의 성질을 고려한 경우(진정직업자격)와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하여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의 경우 종교적 특성 등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예외 조항을 둘 수 있다. 따라서 개별적 특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차별을 금지한다고 보아 이 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왜 차별금지법이어야 하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렇듯 ‘평등할 권리’, 즉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헌법을 제외한 실정법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은 부족하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존재하나 이를 모두 포괄하여 차별을 종합적으로 다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존재하지 않고, 강력한 권한을 가진 차별시정기구 또한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헌법에 명시된 평등의 이념을 법률 차원에서 구체화하기 위해서, 즉 ‘평등의 법제화’를 위해서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어야 한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이미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캐나다 인권법Canadian Human Rights Act, 1977, 독일의 일반평등대우법Allgemeines Gleichbehandlungsgesetz, 2006, 영국의 평등법Equality Act, 2010, 미국의 민권법 제7편Civil Rights Act, Title VII, 1964, 뉴질랜드의 인권법Human Rights Act, 1993 등이 예이다. 이 중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영국의 사례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차별금지법과 차별시정기구를 하나로 통합하였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에 대한 시정권고를 내릴 수 있으나 강제성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법을 집행하여 구속력 있는 조치를 취할 권한은 법무부에만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권고와 집행의 주체가 이원화되어 있으면 효율적인 차별구제가 힘들다. 영국 또한 원래 각각의 법률과 각각의차별시정기구가 있었다. 하지만 1998년 인권법(Human Rights Act, 1998)에 따라 유럽인권협약이 국내 효력을 갖고, 국내 사안들이 유럽재판소에 의해다뤄지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통합형 인권기구를 설립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고, 평등법(Equality Act, 2006)이 제정됨으로써 기존의위원회들을 통합한 ‘평등인권위원회‘가 설립되었다.[10] 평등인권위원회는 직접적인 시정 권한을 가진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에 비해 그 권위와 효용이 크다. 장혜영 법안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시정명령권을 부여함으로써 영국의 평등인권위원회와 비슷하게 작용할 수 있게 한다. 차별구제에 있어서 민·형사 소송절차가 중심인 사법구제절차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는 사법절차 이외에 다양한 비사법적 절차를 두고 있다.[11] 법안에서 볼수 있듯 차별시정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구제의 핵심 역할을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차별과 혐오발화가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에 대한 규제는 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과연 방심위가 ‘정보통신상에서의 건전한 문화 창달과 올바른 이용환경을 조성’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나이, 인종, 민족, 국가 등 다양한 범주의 혐오표현에 대해 심의 및 제재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제재 시행 대상의 분야가 지역혐오(26.0%), 여성혐오(20.1%), 남성혐오(15.5%) 등의 순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보았을 때 규제대상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방심위는 현재 구체적인 규제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의적인 규제를 하며 남성혐오와 여성혐오를 비슷하게 취급하고 있다. 사회적 맥락에서 봤을 때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는 권력의 크기로 보나 당사자가 영향받는 정도로 보나 동일하게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럴 경우 현실적으로 왜곡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심의안건은 실무자에 의해 상정되면 대부분 삭제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루 심의안건 수가 적게는 18건에서 많게는 180건까지 등장하는 등 규제기관의 의지에 따라 심의 건수의 차이가 나타난다고 판단된다.


법안에 혐오표현과 관련된 조항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차별금지사유가 명시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에 대한 시정명령권을 가짐으로써 직접적인 구제 권한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모욕 및 명예훼손에 대한 문제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규제 한계를 극복할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법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2005년에 폐지된 호주제[12]도 폐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호주제가없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이에 대해 떠들썩하게 말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법이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며 사회가 변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한 걸음이다.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당장 모든 차별이 사라지거나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를 시작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간다면 단 한 명이라도 더 차별로부터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필자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퀴어, 여성, 청년 등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연세대학교 학생, 서울 거주자, 한국인으로 살며 기득권을 누리고 있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소수자인지 다수자인지는 이분법적으로 나눠질 수 없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특권을 인지하고 평등의 당위성을 되새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흔히 이야기하듯 누군가의 가족, 친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차별받으면 안 되는 게 아니다. 누구든 본인의 특성 혹은 신념으로 인해 차별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마스크’와 같다. 단순히 타인의 차별적 언행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타인 또한 나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차별의 상황에서 항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오늘의 피해자가 내일의 가해자일 수도, 내일의 가해자가 다시 모레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차별과 평등, 가해와 피해의 다양한 층위를 이해하고 경계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모두’를 지키기 위한 마스크와 같은 법이다. 차별 없는 세상은 아마 더디게 올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오고 있다. 그 걸음에 당신도 함께하지 않겠는가. 부디 이 글이 ‘차별’과 ‘평등’을 재고하는 공론장 형성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수습편집위원 안즈(chicchick97@naver.com)






[1]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 11쪽

[2] “성평등이 남자들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좋은 이유(Why gender equality is good for everyone – men included)”, TED, 2015.09.16.

[3] 이광진,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 『법과 정책연구』, 17(1), 2017

[4] 데버러 헬먼, 「차별이란 무엇인가」, 김대근, 서해문집, 2008, 32쪽

[5] “인권위 ‘경찰공무원 채용 시 지나친 신체기준 제한은 차별’”, 아시아경제, 2018.10.08

[6] “20여 개 차별금지사유, 숫자 너머의 문제”, 시사IN, 2020.08.20

[7]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 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 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 상태, 사회적신분

[8] 홍성수,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 『이화젠더법학』, 10(3), 1-38, 2018

[9] 제1조(목적) 이 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제조업자 등의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함으로써 피해자 보호를 도모하고 국민생활의 안전 향상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전문개정 2013. 5. 22.]

[10] 홍성수,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 『이화젠더법학』, 10(3), 1-38, 2018

[11] 정강자, 「현행 차별금지법제의 과제 : 차별금지법 제정논의를 중심으로」, 『이화젠더법학』, 1(1), 1-38, 2010

[12]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출생·혼인·사망 등의 신분 변동을 기록하는 제도로, 부계혈통을 바탕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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