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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Jan 01. 2021

<126호> 실패해도 반복할 뿐인 생산성 일기

편집위원 유랑


생산적인 인간이 되어야 했다

  나는 1년 만에 학교에 돌아왔다. 학교가 싫은 마음도 있었고, 오랜만의 수업이 기대가 되기도 하는 와중에 온라인 수업이라는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시간표는 18학점을 채워놨지만 개강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침대 위에 퍼질러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비생산적인 시간이 늘었고 자괴감이 들었다.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가는데 나만 질척거리는 아래로 끌려내려가고 있었다. 공부만 해서 끝나는 일이었다면 생산성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여느 대학생처럼 나는 대외활동을 진행해야 했고 연구보조, 자원활동 등 일에 치이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지겹고 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강과 함께 일이 늘어날 거라는 사실은 자명했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양을 늘릴 뿐만 아니라 건강을 되찾아야 했다. 일이 밀리면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운동을 하기는커녕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 하루를 지내니 신체의 흐름이 망가졌다. 나에겐 하루를 재구조화하는 것이 필수적이었고 그렇게 내가 떠올린 키워드는 ‘생산성 향상’이었다. 내 문제가 일을 어떻게 계획적으로 또 집중적으로 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제목으로 갖가지 팁들과 우수한 애플리케이션이 산을 쌓는 시대다. 번호를 붙여가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조언하는 글부터,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툴을 비교 분석하는 글까지. 정보는 찾으려면 끝도 없었다. 검색의 현장 속에서 나는 생산성 향상을 이야기하는 글들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을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업무시간과 일상의 시간을 배분하는 시간관리가 중요하다. 일을 할 때는 제대로 된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둘째, 단기, 중기, 장기 등 다양한 목표를 설정하고 실제로 실행한다.

셋째, 건강이 금이다. 일을 하는 와중에도 휴식시간을 필수적으로 넣고, 건강관리에 유의한다.

넷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집중할 수 없다면, 당신의 환경을 바꿔라.

다섯째, 피드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타인의 조언이 필요한 일이라면 타인에게 의견을 묻고, 매일의 일과를 자신이 피드백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쩌면 한 번쯤은 읽어봤을 자기 계발서에서, 부모님에게서, 혹은 힘들다고 투덜대자 조언을 건네오는 어떤 친구로부터 지겹도록 들었을 내용이다. 사실 이 리스트가 무엇과 가장 유사한가 생각하면 고3 때 가족보다도 더 오래 부대끼던 인강 속 1타 강사들이 밥 먹듯이 하는 말이었다. 조금 지루하고 뻔하긴 해도 유구한 역사가 자리하는 조언이다. 그럼에도 내가 직접 검색한 주제에 ‘생산성 향상’이라는 키워드에 기묘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던 까닭은 생산성이라는 단어가 주로 기업의 입장에서 활용되며 많은 경우에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와 같은 미래의 노동자 입장에서 ‘생산성 향상’ 글을 읽고 그 방법을 따라 해 보는 게 마치 악랄한 자본주의의 아가리에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꺼림칙한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의 나는 어쩐지 간절해서, 설령 꺼려지더라도 나를 개선해 내는 일이 뭐가 나쁘냐고 투정했다.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과연 어떤 기저에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과, 그렇지만 이대로 널브러진 채 살고 싶지는 않다는 자기발전의 욕망 사이에서 생산성을 확보하기 위한 나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부분은 건강이었다. 쉬는 동안 나는 살이 쪘고 만성 피로를 달고 살았다. 사실 내가 느끼는 피로감이 피로감인 줄도 모를 정도로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던 전적이다. 아침에 기상할 때마다 어지러움을 느끼며 살기 참 힘들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활력이 없으면 무엇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해내기 어려운 법이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 자세도 안 좋다. 환경을 바꾸라는 조언을 착실히 따를 필요가 있었다. 모니터와 시선이 일직선 상에 놓여 고개를 숙이거나 올리지 않도록 하고, 양반다리를 하거나 다리를 꼬는 등 좋지 않은 자세를 하지 않도록 발판을 활용했다. 책상에 앉아 허리를 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환경을 약간 바꾼 뒤 선택한 다음 순서는 운동이었다. 일전에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에 쉽게 방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게으른 내가 무슨 운동을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홈트레이닝을 시도했다. 운동은 죽도록 힘들었지만 의지가 있어서인지 때때로 내가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쾌감을 느끼게 했다.


  몸을 만드는 것과 별개로 어떻게 일과를 효율적으로 해낼 것인가는 다른 문제였다. KMN작업법은 내가 가장 애용하는 시간관리법이다. 번역가 김명남 씨가 트위터에 방법을 공유해 무척 유명해진 이 기법은 이후 김명남 씨의 이름을 따 KMN작업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KMN작업법은 40분+20분의 한 시간을 1KMN으로 친다. 40분은 일을 하고, 20분은 잠시 휴식한다. 이 20분 동안 집안일을 처리하고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며, 추리 소설을 몇 페이지 정도 읽을 수도 있다. 듣기에는 별것 아닌 방식이지만, 온전히 집중하는 40분은 정말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부와 일을 KMN작업법을 통해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된 이후 일과와 일정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추천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노션Notion이다. 에버노트, 원노트 등 다양한 노트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처럼, 노션 역시 최근 유행하는 노트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다른 노트 프로그램과는 조금 다르다. 단순히 글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치 개인 홈페이지처럼 나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구조화하고, 강력한 하이퍼링크 기능을 통해 모든 기록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Study Reference 카테고리에 내가 읽은 모든 논문과 기사들을 정리한다. Class Notes 카테고리에는 수업 노트를 정리하는데, 마침 내가 읽은 기사가 수업 내용과 연관 있을 경우 기사를 정리한 페이지의 하이퍼링크를 수업 노트에 삽입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한 내용을 구조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종이 다이어리 대신 노션에 월별 일정, 주간 일정을 정리하기도 한다. 다이어리 활용을 매우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다이어리를 사 모으는 것은 좋아했지만 한 번도 한 권을 가득 채워본 적이 없다. 성실한 기록에는 재능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쓰기보다는 내 일정과 해야 할 일을 체크리스트로 관리하는 것에 그친다. 리스트 수가 늘어나고 꽉 채워진 주간 리스트를 주말에 확인할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 기록이 개인적인 피드백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내 노션의 첫 페이지. 공부와 일상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다.

[사진설명] 노션의 첫페이지로 목차가 한꺼번에 나와 있는 페이지다. ‘Studying Life’ 카테고리에는 ‘Class Notes’, ‘Study References’, ‘Notes & Drafts’가 포함되어 있고, ‘Personal Life’ 카테고리에는 ‘Simple Notebook’, ‘Life Wiki’, ‘Money’가 포함되어 있다. 사진설명 끝.


매주 일정과 일과를 체크리스트를 통해 정리하고, 몇 KMN을 활용했는지 적어둔다.

[사진설명] 2020년 10월 13일과 14일에 작성한 노션 체크리스트다. 각각 2~3KMN과 4KMN을 했다고 적혀 있으며 수업 복습, 과제, 논문읽기, 운동하기 등 끝낸 일과에 취소선이 쳐져 있다. 사진설명 끝.


  더욱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나는 나름 열정적인 방법들을 활용했다. 노션처럼 유용한 툴을 활용하기도 하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루틴을 바꾼 이후에 그전보다 공부나 일을 더 하게 되진 않았다. 그야말로 아이러니였다. 생산성 향상, 즉 투입 대비 산출의 비중을 높이는 방식을 사용하면 더 많은 업무를 끝낼 수 있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를 되찾는다는 것

 약 2개월 정도 나만의 ‘생산성 루틴’을 시행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짧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많이 변했고,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분석해보기 시작했다. 우선 ‘생산성’이 향상된 것은 맞다. 투입 대비 산출의 비중이 높아졌다. 노션을 활용한 기록은 내가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생산적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줬다. 그 수치를 인식하는 감각은 내 성취감에 깨나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아닌 추가적인 공부를 더 하게 되지는 않았다. 평소보다 일찍 해야 하는 일을 끝마치고 여유시간이 많아졌을 때 난 그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다. 노래를 듣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했고, 드라마를 볼 때도 있었다. 과제를 미루다 울며 겨자 먹기로 헐레벌떡 끝냈던 때와는 다른 엄청난 여유였다. 어차피 일을 끝내도 내일 해야 할 일이 또 있긴 했지만, 매일 매분 매초를 압박감에 못 이기는 것보다 약간의 시간만큼은 정신적으로 평안해질 수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몸의 변화였다. 운동과 바른 자세로 앉기, 스트레칭 등을 꾸준히 병행한 탓인지 만성적인 어깨결림이 많이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날 때 죽을 것처럼 신음하는 일도 없어졌다. 아침은 여전히 두렵지만 그래도 알람을 듣는 동시에 이불 속에서 비척대지 않고 바로 일어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잘 되고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문득 내가 건강해졌음을 깨달았다. 살면서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적어도 내 주변인들은 제각각의 건강 이상을 호소했다. 그것은 신체의 문제일 때도 있었고, 피로일 때도 있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일 때도 있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건강이 신체의 건강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함부로 자신이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일을 빨리 마무리 짓는 것과 몸이 피로하지 않은 것 모두 건강함의 징조였지만 내가 스스로 건강하다 여기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관계에 있다. 나와 부모님의 관계는 결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굳이 관계가 나쁘다는 쪽에서 설명하면 나와 부모님은 양립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만으로 골치가 아팠기에, 종종 부모님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기면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우리는 애초에 깊은 대화를 잘 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간혹 드러나는 정치적 입장에서도, 내 진로에 관한 생각에서도 사사건건 부딪혔다. 어린아이처럼 신경질을 내고 속으로 정말 못 살겠다 여길 때에는 부모님을 원망함과 동시에 어째서 나이를 먹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모님과 성숙한 관계를 가질 수 없을까 화가 나기도 했다. 밖에서만큼은 나름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집안에선 부모님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천인공노할 자식일지도 몰랐다. 건강의 정의가 말하는 성숙함이란 자신의 욕망을 조정하고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방면에선 부끄럽게도 빵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별것 아닌 일에 말이 가시처럼 날 설 때 위축되는 당신을 보았다. 의도하지 않았다 자위했지만 결국 내 성격이 나쁜 건지 화가 날 만한 일이었던 건지 갈피도 잡지 못했다. 하루에 한 번 신경질을 내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근 두 달 동안 나는 분노가 피어오르지 않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나는 더욱 온화해졌고, 부모님과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는 말이 있지만, 생각보다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 투정하면서도 나의 건강하지 않은 상태, 나를 통제하지 못하고 또 그것을 죽도록 부끄러워하는 강박이 삶에서 어떤 여파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WHO에 따르면 건강이란 질병이나 손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를 의미한다. 정신건강의 정의는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독립적, 자주적으로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상태이자 정신적 성숙 상태이다. 1948년 규정된 이 정의는 100년도 되지 않은 정의이며, 매우 완벽주의적이고 모호하다. 신영전 교수는 건강의 이러한 정의를 두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 본질인 불완전성을 무시하고 있다.”라고 비판한다.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자주적, 건설적으로 생활을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성숙한 인격체를 갖추고 있는 상태란 대체 무엇이며, 완전한 안녕함이란 체감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느낀 건강함과 WHO의 정의는 일치하지 않았다. 나는 왜 ‘생산성 향상’ 루틴을 시도해보고 내가 ‘건강해졌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러나 나도 먼지 같은 존재이기에

  인간 행위 전반은 자신이 판단하지 못하는 정신적 신체적 상태에 의해 좌우되는 면이 있다. 그렇기에 당신에게 ‘변하길’ 요청하는 그 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우스운 것이다. 자기 계발서님이 말씀하신다. 그간의 너는 뭘 몰랐다. 너는 게을렀고, 너는 잘못하고 있었다. 물론 다 괜찮다. 너는 변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터닝포인트다. 나를 따라 바뀌거라. 그리고 그 앞에 무릎 꿇은 내가 말한다. 아, 저는 변할 수 없는 놈인가 봅니다. 자기 계발서님은 인간을 긍휼히도 신뢰하신다. 그는 인간에게 아주 커다란 자율성을 부여하곤 한다.


  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변하려 해도 세상만사가 가로막는다. 열심히 홈트레이닝에 매진하던 때였다. 평소에는 괜찮았는데, 그날의 프로그램엔 엎드려 양팔을 양쪽으로 곧게 뻗은 채 휘젓는 동작이 있었다. 다친 새처럼 힘겹게 펄럭이는 왼손은 동작을 할 때마다 침대 난간을 쳤다. 오른손은 책상다리를 연신 긁어댔다. 유튜브 속 트레이너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여러분 모두 하실 수 있어요!”라고 외쳤지만 그는 내 방 넓이를 과대평가한 경향이 있었다. 나는 결국 그 동작을 하는 시간을 휴식시간으로 만들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날이 루틴을 이어갈 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제야 나도 생산성 있는 인간이 된 걸까? 이런 물음이 가장 먼저 떨어진 것을 보면 일전의 내가 얼마나 자신의 나태함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1개월 정도 루틴이 지속되자 안심했다. 습관은 보통 2주 이상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다는데, 한 달을 채웠으니 작심삼일을 철두철미하게 지켜왔던 나로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런데 안심하던 때에 일이 터졌다. 지독한 월경 전 증후군(PMS)이었다. 때에 따라 증상은 다르지만 나는 대체로 극심한 피로와 우울감을 일주일 정도 느끼곤 한다. 그리고 모든 루틴이 무너졌다. 설상가상으로 중간고사가 다가오며 큰 불안이 찾아왔다. 그렇게 나는 또 패배했다.


  수치와 불안이 문제였다. 나는 왜 그러한 감정을 느꼈는지 자신에게 질문해야 했다. 그리고 만사를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렸던 나를 돌아보았다.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데 활용되는 생물심리사회적모델Biopsycohsocial Model은 건강과 질병이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설명한다. 생물학적 사실만이 질병에 유의했던 생의학적모델Biomedical Model에서 생물심리사회적모델로 전환되며 더욱 발전된 진단과 재활이 가능해졌다. 이 모델이 의미하는 바처럼 우리의 건강은 많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유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생물학적 요인과 차별적 사회구조, 경쟁 문화와 같은 사회적 요인들은 개인이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심리적 요인마저 온전히 좌우할 수 없다. 내가 다룰 수 없는 것들이 내 건강을 휘두른단다. 억울하지만 생물심리사회적모델에 따르면 이는 정상적이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끝낼 수 있는 아쉬움이라면 강박이 생길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생산성 향상’을 검색하는 것에 꺼림칙함을 느꼈던 과거로 돌아간다.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생산성 향상을 재촉하는 것처럼 건강의 개념은 언제나 음습한 함의를 지녔다. 모든 개념들이 그러하듯 건강도 의도를 가지고 형성되고 동원된 역사를 거쳐온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식민지 조선의 건강 개념은 일본 제국의 통제 하에서 전쟁에 동원할 신체를 겨냥한 담론으로써 이용됐다. 소위 ‘체위향상’ 캠페인은 중일전쟁 전후로 각종 매체에 실리기 시작했고, 건강한 신체 유지 보존은 국민의 의무이자 보국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프로파간다였다. 식민지 시절의 잔재는 남아 1970, 80년대의 체력장 검사까지 이어진다. 지금도 우리는 아프면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개근과 근속은 포상 받지만 골골대는 즉시 약간의 안타까운 시선과, 골칫거리가 생겼다는 눈초리를 함께 받는다. 마치 건강한 신체를 지키지 못해, 일제식 표현에 따르면 보국하지 못하는 하찮은 몸이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 담론을 집어삼켰다. 이제 건강한 신체란 전쟁이 아닌 노동에 동원된다.


  보국이니 헌신이니 하는 거시적인 단어들과 단지 침대에서 구를뿐이었던 나의 게으른 상태를 연결 짓는 건 무리가 있다. 그러나 혈기왕성한 청년의 몸으로 어떤 성취물도 내지 못하는 것을 자책했던 내 태도는 분명 ‘생산성 향상’ 글을 잔뜩 써대고 퍼나르는 작금의 사조와 분명 맞닿아 있다. 그 와중에 내 몸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상태가 안 좋을 땐 평소에 할 수 있었던 일 하나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곤 그런 자신을 나무란다. 하지만 건강해졌을 때의 나는 욕심쟁이다. 4KMN 정도를 해내고선 6KMN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자신감 있게 생각한다. 이 간극은 유동적이다. 신체, 정신, 사회의 문제들은 연결되어 있기에 어떤 일들은 내가 원하는 그대로 흘러가지 않고, 내 몸은 그럴 때마다 내 상태를 조절해가며 과도한 집중을 막기도 했다.


  모델 한혜진 씨는 모 프로그램에서 세상의 어떤 것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건 몸밖에 없었다고 발언했다. 살을 빼고 몸을 바꾸는 것이 유일하게 그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을 두고 일부 시청자는 모두가 몸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 비판했다. 질병 때문에 체중관리를 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몸이 개인의 노력만으로도 바꿀 수 있는 것이라 천명하면, 비만인들에 대한 혐오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개인의 나태함을 지적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이 비판에는 동의했지만 한혜진 씨의 발언 중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 그것이 정확히 내 고민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관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이 몸이라고 결론 내렸을 것이다. 세상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고, 나는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건강해졌다는 사실 또한 인정했다. 나는 시간과 일과를 생산성 향상 프로그램이나 환경 변화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했고, 자세를 통제했고, 놀고자 하는 욕망을 통제해 일을 끝마쳤다. 하지만 그때의 나 역시 그 ‘근본’이 바뀌지는 않았었다. 나는 여전히 기록이 귀찮았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론 부모님을 대상으로 싸웠다. 해내야 하는 일은 끝마치고 더 하긴 힘들겠다 싶을 땐 그냥 놀았다. 나는 내가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을 돌아보건대 더 이상 수치와 불안은 느끼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야말로 고무줄일 뿐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는 좁았다. 건강의 정의처럼 ‘완전히’ 안녕하지도 못했고, 언제나 독립적이고 자주적이지도 못했다. 비록 갱생하지도 않았고 워커홀릭이 되지도 못했지만 그때의 나와 비교했을 때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는 사람이 되었다. 통제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무력함에 휩쓸려 무너지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휘어잡았기에 종종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스스로에게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느낀다. 나에겐 그것이 건강이었다. 그렇게 나는 고무줄 같은 자신이 때론 뒤처지더라도 때론 나아가며, 어쩌면 그 범위가 더 앞으로 이동할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을 보았다.


당신의 생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완전히 안녕한 상태라는 건강은 허깨비다. 애초에 달성할 수 없는 ‘완전함’을 요구하는 것과 별개로, 추상적이나마 스스로 건강하다 생각했더니 오래지 않아 스러졌다. 하지만 나는 그것의 형체가 존재함을 잠깐 동안 겪은 변화를 통해 확신했다. 생산적이지 않은 나를 인정할 수 없던 때의 나는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은 외줄 타기여서 홈트레이닝을 하다가 부족한 공간 때문에 손을 찧고 운동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생활비가 부족해 거리 한복판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도 위계에 짓눌려 입을 내리다무는 순간,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음으로 회귀하고 문득 멍해지는 순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개인의 의지를 시험한다.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생산성에 매몰되었다. 그러나 투입 대비 산출을 측정하는 것은 정작 내가 무너졌을 때 어떤 쓸모도 없었다. 통념상 소위 쓸모 있다 여겨지는 산출물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상태에 생산성이란 통하지 않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건강의 정의는 자꾸만 온전한, 쓸모 있는 나를 원했다. 그리고 이 구성된 담론은 생산성을 추구하는 강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고 내가 건강이나 생산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내가 왜 건강을 욕망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일이었다. 어떤 이는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건강을 추구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기 위해 건강을 지키고자 할 수 있다. 겪어보고 깨닫기론, 내가 건강을 욕망하는 까닭은 인간관계에 있다. 인간은 생존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부산물을 만든다. 마치 PMS에 짜증 난 내가 부모와의 관계에 실금을 내는 것과 같이 인간은 어떻게든 생산물, 즉 결과를 산출한다. 그렇기에 나는 부모와 내 관계, 주변 이들과 내 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부정적인 생산물을 조정해야 했고 인간관계가 내가 바랐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는 썩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생산성 향상’을 검색하며 자본주의 논리에 부역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부터 시작했던 것처럼, 태평히도 뻔뻔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온전함’ 따위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건강의 정의는 좁디좁다. 건강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아프지 않은 것을 유지하는 상태다. 아프지 않은 것은 여전히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을 표방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위협에 의한 아픔에까지 책임을 부여하진 않는다.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이라도 나는 괜찮게 살고 있다는 개인적인 감각에 가깝다. 나는 이 건강을 지키는 선에서 ‘생산성 향상’ 루틴을 활용하고자 한다. 나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일정한 방식을 통해 통제한다. 때때로 모든 것을 무력화하는 해일이 닥쳐온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모두 내 잘못은 아니라는 사실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무엇을 시도해야 하는지도 안다. 이런 협소한 정의와 개인적 노력이 바뀌지 않는 부정의한 사회 속 자기 위로의 하나로 읽힐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프고 아파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자책하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는 기반이야말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렇게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내가 애틋하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낸 당신도 사랑스럽다.




참고문헌

“40+20 작업법”, starlakim wordpress, 2019. 06. 19.

“[세상읽기] ‘건강’은 없다 / 신영전”, 한겨레, 2019. 10. 16.

Engel, G. L. (1978). The biopsychosocial model and the education of health professionals. 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310(1), 169-181.

이병례. (2019).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식민지 조선의 건강담론과 노동통제. 한국사연구, (185), 163-201.


편집위원 유랑 <cyoon040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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