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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Jun 22. 2019

<120호> 내 피를 팔고 싶소

수습 편집위원 nope


   어느 날인가, ‘매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곧 ‘아, 나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창 최저시급을 받으며 알바를 하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사실 이런 생각을 처음 한 건 매혈 이야기 때문은 아니었다. 예전에 한국 애니메이션 <검정 고무신>에서 머리카락을 잘라서 파는 걸 본 후에는 내가 머리만 길다면 꼭 한 번쯤 팔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게 머리카락을 파는 여성의 절박함은 보이지 않았나 보다. 나는 생각해 본다. 과연 피를 파는 것 자체가 문제일까? 머리카락을 파는 것 자체가 문제일까?           


어찌 사람의 몸을...!?

   한국에서 매혈에 대해 직접 논의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매혈은 위처럼 헌혈의 마케팅을 비판할 때에 수사로 사용된다. 이를테면 헌혈의 대가로 영화 티켓 등을 주는 일에 대해 “그것은 매혈과 다를 바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홈페이지에도 “생명을 사고 팔 수 없다는 인류 공통의 윤리에 기반하여, 세계 각국은 혈액의 상업적 유통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피와 생명이 곧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매혈은 나쁘다는 것, 피에 대해서 대가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은 정말 당연할까?

   이와 같은 논의는 장기매매, 성매매에서 두드러진다. 장기매매와 성매매가 불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 중에서 가장 큰 호소력을 지니는 건 “어떻게 사람의 몸을 팔 수 있느냐?”, “어떻게 사람의 성을 팔 수 있느냐?”이다. 여기서 나는 묻고 싶다. 사람의 몸, 사람의 성은 그렇게 유별나게 중요한가? 사람의 몸이 그렇게나 소중하다면 타투나 피어싱, 심지어는 아예 뼈와 피부를 깎고 다른 모양으로 바꿔 버리거나 피부 아래에 보형물을 넣기까지 하는 성형수술은 왜 불법이 아닌가? 한국에서 타투는 의료인이 하면 불법이 아니므로, 이 경우 핵심은 ‘안전’이지 몸의 훼손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지만 일본은 타투이스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으므로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미용이 「고귀한」 몸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성매매는 성차별의 산물이고, 경제적 요인과 결합하여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적 기제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런데 이를 반대하는 논리 중 ‘고귀한 성’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성 엄숙주의나 여성에 대한 정조 관념과 맞닿아 있다. 성매매 금지법은 원래 ‘윤락행위 금지법’이었다. 성매매는 곧 ‘도덕적 타락’으로 여겨진 것이었다. 

   ‘고귀한 성’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걸 근거로 성매매를 반대하면 여성의 성은 소중하기 때문에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정조 관념은 옳은 것으로 전제하게 되고, 성매매의 책임을 성 판매 여성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나 불행으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성매매 비범죄화가 논의되고 있다. 이는 성매매가 사회 구조적 문제이고 성 판매 여성이 피해자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성매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등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성 판매 여성을 보호하고자 한다. 장기매매의 경우에는 판매자가 피해자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있다. 그러나 그 인식은 결코 불쌍함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장기까지 팔게 되었다니, 쯧.”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불법이므로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함께. 아, 불법과 합법의 이분법은 얼마나 간편한가! 

   불법과 합법의 이분법, ‘인간의 몸은 소중하다’라는 수사는 정말 간편하다. 장기매매나 성매매의 원인,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에 대한 논의는 모두 사라지고 단지 “그건 나빠! 인간 몸 소중해!”로 모든 논의를 납작하게 눌러 버린다. 성매매와 장기매매를 반대할 때 인간 신체의 일부나 성에는 인격권이 있어서, 그것을 거래하면 인간의 존엄성이 해쳐진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신체의 일부가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사용될 경우 인격이 침범당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주된 근거인데, 신체의 사용이 자기 의사와 일치하는 경우는 언급하지 않는다. 방금과 같은 주장은 오히려 인격권을 사실상 자기결정권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어서 신체 자체 혹은 성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는 주장을 강화해 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성매매 반대의 핵심을 성폭력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핵심은 그것이, 수전 브라운밀러의 책 제목처럼,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Against Our Will)”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매매가 성별화되어 있다는 것에서는 캐롤 페이트먼이 「What’s Wrong with Prostitution?」에서 제시한 “남성들은 왜 여성의 몸에 접근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혈의 역사


   이제 본격적으로 매혈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매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수혈의 역사부터 밝혀야 한다. 1682년 하비(W.Harvey)가 혈액 순환설을 주장한 이래, 1665년 데니스(Denis)가 동물수혈에 성공함으로써 인간에게도 수혈의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1823년 블룬델(Blundell)이 빈사 상태의 산모에게 시도한 수혈이 성공을 거두어 근대 수혈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20세기 초에 본격적인 수혈의 시대가 열렸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수혈이 많은 부상병의 생명을 구하게 되자 혈액사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와 더불어 헌혈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1948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17차 적십자 국제회의에서 각국 적십자사가 정부와 협력하여 적십자 혈액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권고하였다. 그리고 헌혈은 무상을 원칙으로 한다고 결의되었다. 한국에서도 6.25 전쟁으로 인해 1952년에 해군혈액고가 처음 창설되었고, 1954년에 민간병원으로는 처음으로 백병원에 혈액고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1960년대에는 다수의 헌혈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매혈은 혈액을 구매하는 행위(買血)와 판매하는 행위(賣血)를 통칭하는 말이지만, 통상적으로는 판매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법적으로 혈액관리법의 영역이다. 혈액관리법은 원래 매혈 자체를 금지하는 목적이 아니었다. 이 법을 통해 비록 ‘매혈’은 금지되었으나, 국가는 헌혈의 대가로 돈을 주었다. 그러니 사실상 매혈은 금지되었다기보다는 국가가 관리하게 된 것이다. 어디서도 정확한 용어 정의를 내리고 있지 않아서 문헌들을 교차하며 비교해 보면, 문헌들에서 나오는 ‘매혈’은 사설혈액원에서 진행된 것을 의미하고 ‘헌혈’은 국가 혹은 대한적십자사가 관리하는 혈액원에서 진행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헌혈이라고 모두 금전적 보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혈의 금지 시기는 문헌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서 언제라고 딱 잘라 이야기할 수가 없다.  

   매혈금지법이 제정된 1957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논문에 따라 1974년, 1981년도 언급된다. 보도자료는 중앙일보의 1981년 기사 “매혈 일체금지”에 따르면 당시 사설혈액원의 혈액공급량은 전체공급량의 5%를 차지해 왔다. 그러나 대한의사관리협회에서 나온 “혈액안전관리정책: 안전한 혈액의 안정적 공급을 위하여”에 따르면 1997년 혈액관리법 개정을 통해 매혈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헌혈도 대가를 지급했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의 헌혈이 얼마나 되는지는 사실상 정확히 알 수 없다. 법의 개정을 통해 변화를 알아보기로 하자. 1970년에 입법·시행된 최초의 혈액관리법은 제7조에서 “채혈보상액”을 규정하고 있고, 1976년에 개정된 후에도 제7조에 “유상공혈자에 대한 보상액”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1990년에 개정될 때까지도 유지되었다. 실제로 1990년까지도 “의약품 제조용 혈액조달에 있어서는 비인도적인 매혈에 의존”했다는 자료가 있다. 법률안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970) “혈액원이 유상으로 공혈자로부터 채혈하는 혈액에 대한 보상액은 보건사회부령으로 정한다.”

(1976, 1990) “혈액원이 공혈자로부터 혈액을 채혈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유상공혈자에 대한 보상액 및 그 채혈한 혈액의 공급가액과 의료기관의 수혈자에 대한 공급가액은 보건사회부장관이 지정고시한다.”     


그러나 1981년부터 국가혈액사업을 대한적십자사가 위탁받고, 사설혈액원도 흡수하면서 법적으로는 사적인 매혈은 일체 중지되었고 완전 헌혈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혈액관리법은 1999년 전부개정 이후에야 매혈을 “혈액 매매행위”로 규정, 제3조에 따라 금지했다. 이 조항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데, 현재 혈액관리법 제3조(혈액 매매행위 등의 금지)의 1항은 다음과 같다.      


(2018) “누구든지 금전재산상의 이익 또는 그 밖의 대가적 급부를 받거나 받기로 하고 자신의 혈액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것을 약속하여서는 아니 된다.”     


법원에서 밝힌 1999년의 개정 이유는 다음과 같다.     


종전에는 혈액공급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대가를 받고 혈액을 제공하는 매혈을 인정하여 왔으나이제는 헌혈로도 필요한 혈액을 공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혈액의 매매행위 등을 금지하도록 함(법 제3).”     


   그러니 1999년까지는 매혈이 진행되었고이를 국가도 인지하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 의학 칼럼에 따르면, 1954년 부근까지는 거의 모든 혈액이 매혈을 통해 공급되었고, 1957년에 매혈금지법이 제정되었으나 실제적인 완전 무상 헌혈은 1983년부터 정착, 혈장만은 상당 기간 매혈을 허용하다가 1999년부터 헌혈로 전환했다. 그런데 현재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홈페이지에는 “우리나라는 수혈용혈액의 경우 자급자족하고 있지만, 의약품의 원재료가 되는 혈장성분의 경우 외국으로부터 수입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이는 ‘금전적 거래’가 아닌가? 자국민의 피만 소중하고 외국인의 피는 거래해도 된다는 것인가? 따라서 위에서 이야기하는 ‘혈액공급의 부족’은 혈장의 경우라고 추정할 수 있다. 1994년에는 국내수혈량의 대부분이 수입 혈장에 의존했고, 2000년대에도 혈장 수입량은 항상 수십만 리터 규모였다. 한국의 헌혈인구는 1981년 약 48만 명에서 17년에 걸쳐 1998년에는 약 240만 명으로 증가하였고, 어떤 논문에서는 이를 매혈 금지의 효과로 본다. 그러나 법원에서도 인정했듯이 당시에도 여전히 매혈은 인정되었기 때문에 이는 정확하지 않다.     

   각 자료에서 이야기하는 ‘매혈’과 ‘헌혈’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헌혈은 전혈/혈소판/혈장 중 어떤 것인지가 밝혀져 있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증가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들에 따라 분명한 것은, 매혈은 원래 나의 소중한 피를 남의 생명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숭고한 목적에서 이뤄지기보다는 금전적 이익을 목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이다.      


피와 젊음

   우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헌혈의 종류와 시간 등을 알아보자. 헌혈은 크게 전혈, 혈장, 혈소판 헌혈로 나뉜다. 여기서 혈장과 혈소판은 성별에 무관하게 1회당 채혈 용량이 똑같지만, 전혈은 남성이 400밀리리터, 여성이 320밀리리터다. 1회당 소요시간은 전혈이 15분 내외로 가장 짧고, 혈장이 40~50분, 혈소판이 60~90분으로 점점 길어진다. 다음 채혈까지 필요한 기간은 혈장과 혈소판은 2주, 전혈은 2달이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전혈은 연 최대 5회, 혈장과 혈소판은 연 최대 24회 채혈이 가능하다.

   매혈을 시장에 맡기면 혈액의 회당 가격은 매혈하는 비용 이상의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다. 다른 모든 사회적 맥락을 배제한 채 오로지 경제적으로만 분석해 본다면, 매혈과 매춘은 저소득층의 수입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는 내수 시장의 소비 진작 효과를 낳아서 국가 경제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19호에서 나는 이미 이처럼 하나의 변수만 따지는 방법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매혈과 매춘이 합법화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매혈이 합법화된다면 저소득층이 다시 매혈 가능 인구와 불가능 인구로 구획되고, 매혈 가능 인구 안에서는 몸의 회복 속도에 따라 다시 등급이 나뉠 것이다. 그리고 매혈을 위해 그에 맞는 몸을 만들려고 식단을 조절해야 하는 등, 매혈 소득은 곧 저소득층을 더욱 촘촘히 나누는 기제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매혈은 매춘과 유사하다. 성매매는 저소득층 혹은 신용 불량인 여성들이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내몰리는 곳이다. 그리고 그들의 신체는 매춘 가능 인구와 불가능 인구로 구획되고, 매춘 가능 인구 안에서도 여성의 외모에 대한 사회적 기준에 따라 다시 등급이 나뉜다. 이 과정에서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외모를 관리하는 ‘재여성화’ 전략이 채택되며, 이를 위한 성형 대출도 종종 이루어진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 중 빚의 볼모로 잡혀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데, 성형 대출은 이 현상의 심화에도 기여한다. 즉, 한번 시작하면 다른 일을 선택할 기회가 사라지고, 일을 지속하는 데에도 비용이 든다. 

   만약에 매혈과 매춘이 합법화된다면 이는 저소득층에게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급전이 필요할 때 신체 대상 임상시험에 뛰어드는 대학생들이 많은 것도 같은 이치다. 임상시험은 시험 참여자에게 적게는 30만 원부터 많게는 100만 원까지 지급하는데, 이 시험 참여자의 90%가 대학생이다. 시간을 뺏기지 않으면서 높은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에 따르면 대학생 1,187명 중 16%가 등록금 마련을 위해 ‘위험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는데, 그중 3위가 바로 소위 ‘마루타 아르바이트’인 임상시험이다. 그런데 임상시험은 매우 심각한 부작용이 수반되기도 한다. 여기서도, 급하게 돈이 필요하지만 시간은 없는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이 알바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다면 매혈과 매춘은 당연하게 불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일까? 그렇지는 않다. 불법행위는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를 따질 수 없이 불법이라는 낙인만 강조된다는 점이 문제다. 그러나 매춘과 달리 매혈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에 대한 자료는 찾기가 힘들다. 주로 병원에서 행해졌고, 혈액관리법 시행 이후부터는 국가가 관리하게 되어서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이때는 매혈이 합법이었기 때문에, 매혈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제도적으로는 이에 대해 고소/고발도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매매의 경우는 좀 다르다. 성매매는 국가가 관리했지만, 불법인 상태에서의 예외적 허용이었기 때문에 ‘성병 관리’ 중에 벌어지던 인권 침해는 호소할 곳도 없었다.

   앞선 논의에서 매혈과 매춘이 대등한 개념처럼 등장하기는 했지만, 사실 매혈과 매춘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매혈에 대해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학술 자료의 주제는 건강이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직업적 매혈 인구와 일반인의 혈액 건강은 상당한(significant) 차이가 있었다. 만성 실혈성 빈혈자, 즉 직업적 매혈인의 적혈구는 정상인보다 현저히 취약했다는 게 요지였다. 남성이 매혈을 더 많이 했기 때문에 표본집단은 20~30대의 한국인 남자로 한정되어 있다. 만성 실혈성 빈혈자는 “지난 5~6년간 주 2회에서 월 1회씩 비교적 빈번히 매혈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이후의 문헌들에 따르면 헌혈은 10대, 20대의 남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 논문이 나온 시기가 혈액관리법이 처음 제정된 지 1년 되었을 때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혈과 헌혈 논의에서 건강도 하나의 중요한 축이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매혈에서의 건강 논의는 혈액 공급자의 건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성 판매 여성의 ‘성병 관리’는 미군에게 성병을 옮기면 안 된다는 목적에서 이루어졌다.즉, 한국에서 매혈과 매춘은 명백히 다르게 인식된다. 매혈은 경제력을 책임지는 남성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최후의 수단, 매춘은 ‘경제적으로 자립해선 안 되는 여성이 고귀한 성을 팔아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여성성을 버리게 되는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마저 성과 결부될 경우 감추어져야 하는 것으로 변한다. 헌혈 증서는 자랑스럽지만, 생리대는 여전히 검은 봉투에 담아서 숨겨야 한다는 부담이 강하다. 영화 <피의 연대기>(2017)의 김보람 감독은 여태 감춰져 온 월경혈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매혈하는 사람은 불쌍하게 여겨지지만, 성 판매 여성은 피해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서, 공혈과 매춘은 명백히 성별화되어 있다. 여기서 공혈은 매혈과 헌혈을 포함하는 단어다. 매춘이 여성화되어 있다면, 공혈은 남성화되어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가장 최신 통계인 2017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이 전체 헌혈의 72.8%를 차지, 연령별로는 16~29세가 71%. 그리고 해당 연령대에서 남성이 70.1%를 차지했다. 직업별로는 대학생이 25.2%로 가장 높았고, 고등학생, 회사원, 군인이 뒤를 이었다. 이들이 전체의 84.8%를 차지한다. 이 비중은 다른 해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중에서 군인이 나에게 유독 눈에 들어왔다. 바로 군 단체헌혈 때문이다. 

   올 1월에 육군 제7765부대, 울산공군포대, 방공대대2중대 등 울산혈액원 관할 군 장병들은 헌혈 릴레이를 실시했는데 윗선에서 ‘모범을 보이면’ 병사들은 그걸 따를 수밖에 없는 게 군 조직의 특징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적십자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방부와 협의를 거쳐 혈액사고방지 정보조회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바로 적십자사가 군 장병들에 대한 약물 처방 기록을 (비록 현재로서는 충분하지 않지만) 전송받는 시스템이다. 이는 군 단체헌혈이 혈액 수급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대한적십자사와 한마음혈액원은 군 장병의 혈액의 소유권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 이 또한 군 장병의 혈액이 아주 핵심적인 혈액원임을 보여준다. 이를 보며 나는 국가가 남성의 피를 적극적으로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채혈량이 평균적인 남성 신체를 기준으로 정해져 있다는 점도 문제시된다. 철분 수치도 평균적으로 여성이 낮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으로부터 골고루 피를 얻기 위해서는 채혈량을 조절해야 하지만 기준은 여전히 매우 경직적이다. 이는 헌혈 용량을 선택하는 권력의 문제다. 헌혈은 ‘숭고한, 인본주의적 봉사 정신’으로 인식되는데, 국가는 이를 남성화한 것이다. 그러면서 여성의 헌혈률을 높이고자 기획한 광고에서는 여성들이 외모를 치장하느라 헌혈을 안 한다는 식으로 포스터를 만들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군부대에 있을 때 반강제적으로 하게 되는 단체헌혈 외에도, 본인이 원하는 군부대에 가기 위해 봉사점수를 채우느라 헌혈을 하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대한적십자사의 ‘헌혈의집’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례로 신촌에 있는 대한적십자사  헌혈의집 서울중앙혈액원의 홍보물. 적혀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헌혈, 생명을 살리는 기적 / 혈액부족, 헌혈은 생명을 살립니다!! 헌혈 참여부탁드립니다 / 군입대 가산점 추가, 헌혈 1회당 봉사 4시간 인정!! / 모든 헌혈시 영화관람권” 신촌역 근처 공사장 벽에는 "헌혈시 군입대 가산점 인정 4번출구 직진50m"라고 적힌 게 두 개나 붙어 있다.

   대학생의 헌혈 동기를 조사한 연구들에 따르면, 헌혈의 핵심 동기는 헌혈에 대한 태도, 이타심, 보상이었다. 연구에 따라 순위가 바뀌기도 했다. 어느 연구에서는 ‘단체헌혈’이 11.1%, ‘인도주의적 생각(보람과 긍지)’도 11.1%, ‘기념품을 받기 위해’는 9.4%였다. 단체헌혈은 고등학교와 군대가 특히 많은데, 전자에서는 봉사 시간을 인정해 주면서 보상을 주고, 후자에서도 작은 보상이 주어진다. 따라서 인도주의적 생각, 즉 이타심보다는 반강제적으로 하거나 보상에 반응하는 수준이 더 높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방금의 연구보다 표본 집단이 큰 연구에서는 보상이 이타심보다 강한 동기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왔다. 얼마 전 연세대학교 대강당 앞에 세워져 있던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대한산업보건협회 부설 한마음 혈액원의 헌혈 버스에서도 보상이 유독 강조되어 있었다. "헌혈 기념품 /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념품을 드립니다 (기념품 중 택 1)"이라고 적힌 것 아래에 롯데시네마 영화관람권, CGV 영화관람권, 파리바게트 상품권(5000원), CJ상품권(5000원), 스타벅스 상품권(5000원), 불우이웃돕기 '기부권', 목쿠션, 여행용 세트, 미장센에센스(남성용), 해피바스 바디&훼이셜케어 세트, 면도기 세트, 비타민D, 레모나 휴릴렉스가 적혀 있었다.

   헌혈은 여러모로 효율적인 ‘봉사’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전혈 헌혈은 1회당 15분 내외 정도가 걸리지만, 봉사 시간은 4시간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연 5회까지 가능하니 총 20시간의 봉사 시간을 투자 대비 약 16배라는 가공할 만한 가성비로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입대를 앞둔 이들과 고등학생들 모두에게 아주 매력적인 보상 요인이다. 이렇게 볼 때도 단체헌혈 인구 중 많은 수는 이런 보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여전히 공적인 헌혈 캠페인은 이타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것의 한계는 이미 1990년에 지적되었다. 앞서 인용한 논문에서는 “종래의 헌혈운동은 단순한 의협심이나 동정심에 호소하여 선행을 촉구하는데 불과하였다. 따라서 이런 운동은 효과가 일시적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다”라고 하며 물질적 보상과 혈액예치제도가 더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혈액 수급은 언제나 문제고,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는 방안이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 더 효과적이라면, 그리고 어차피 피가 시대 상황에 따라 통제되는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요소일 뿐이라면, 거래해서는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여러 면에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헌혈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헌혈을 많이 한 사람을 예우하는 의미로 대한적십자사가 주는 헌혈 유공장이 “인테리어 소품 또는 과시용”으로 중고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대체 “순수한 헌혈”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아까와 같은 공사장 벽에는 다음의 문구도 적혀 있다. “혈액 부족 심각 / 4번출구 직진50m / 모든 혈액 급구! / 4번출구 직진50m”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앞에 걸려 있던 현수막에는 "헌혈하는 당신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적혀 있다. 옆에는 세 가지 혜택이 적혀 있다. "헌혈기념품 증정 / 봉사활동 4시간 인정 / 군입대 가산점 부여"     


피의 경제, 피의 정치


   피와 돈의 연결고리에 쐐기를 박는 게 바로 국제적 피 산업이다. 특히 피의 성분 중에서 혈장은 국제적으로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혈장만이 거래되는 데에는 생각해 볼 이유가 있다. WHO의 2013년 발표에 따르면 자발적이고 무상으로 제공된 혈액이 수혈 시 감염될 수 있는 병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더 낮고, 혈장은 채혈 이후 여러 단계의 가공을 거치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이 훨씬 적다. 혈장 분획은 1940년대에 알부민으로 시작된 이래로 여러 의약품을 만드는 데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의약품 제조용 혈장 시장의 규모는 상당하다. 그리고 혈장으로 만든 의약품의 소비는 선진국에 매우 편중되어 있어서, 의약품 제조용 혈장 시장은 곧 선진국의 의약품 시장으로 이어진다. 혈장으로 만든 의약품, 즉 혈장 유래 의약품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미국으로 6억 달러 이상 어치를 소비하고 있으며, 그 뒤로 중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이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그라츠에서는 헌혈 1회에 20~25유로를 준다. 중국에서는 최근까지도 매혈이 아주 자연스럽다. 이 두 곳만이 아니다. 세계 100여 개국 중에서 60여 개국에서만 헌혈이 보편적일 뿐 나머지 40여 개국은 매혈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대가성 상품이 없는 곳도 있다. 미국 LA에서는 헌혈에 대한 상품이 없다. 이는 자발적인 헌혈 참여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혈에 관해 추상적으로 정해진 ‘인본주의’라는 원칙은 있지만, 이는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혈장 유래 의약품의 소비량은 그 나라의 GDP와 비례한다. 그리고 혈장 유래 의약품을 제조하는 회사는 북미와 유럽에 집중되어 분포한다. 혈장은 수입되고 사용될 뿐 아니라, 체계적으로 가공되고 유통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분포한 혈장 분획센터에서는 3,680만 톤의 혈장을 가공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영리 혈장 분획사업의 혈장가공가능량이 비영리 혈장 분획사업체의 2배이며, 실제 가공량은 3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혈장 분획사업의 이윤율도 국가에 따라 다르다. 북미나 유럽에서는 1리터당 400~700달러의 수익이 생기지만, 아시아에서는 127달러의 수익만 발생한다. 이처럼 혈장 유래 의약품은 생산, 수익 창출, 소비에서 모두 계급화되어 있어서 국가 간 불균형을 반영하는 동시에 재생산한다. 이를 막으려면 자체 생산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혈장 분획회사와의 계약을 통해 공급하는 체계를 선택하는 나라가 증가하는 추세다. 대한적십자사에서 발표하는 통계 중 이와 관련된 건 아래의 두 내용이다. 여기서 ‘혈장분획제제’는 간단히 말하면 혈장 안의 성분을 용도에 맞게 따로 추출하여 만든 것인데, 이는 다양한 질병의 치료제로 사용된다.

   혈장은 미국, 이스라엘, 스페인 등 매혈이 합법이고 잉여 혈장이 있는 국가로부터 수입되고 있다. 중국 또한 매혈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혈액이 감염되는 등 관리에 문제가 많아 중국의 잉여 혈장은 수입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에서도 혈장유래의약품용 헌혈 시 매혈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혈장의 70%가 채혈되고 있는 미국만이 혈장유래의약품의 자급자족을 달성하였다고 평가된다. 혈액은 청결도와 안전성을 기준으로 등급이 매겨지고, 이 기준을 통과한 혈장은 수입되어 수출용 의약품 제조에 사용된다. 아주 최근은 아니지만, 보도된 자료 중 최근 자료를 보면 수입한 혈장의 양은 상당하다. 이는 외국인 수십만 명분에 해당하며, 가격은 수백억에 달한다. 

   이외에도 혈장과 관련된 논란은 다양하다. 녹십자사의 수입 혈장이 저질이라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고, 적십자사의 혈장 공급 조절이 제약사들에 대한 갑질이라는 논란이 생기기도 했고, 제약사들이 사들이는 수입 혈장 가격과 자국민 혈장 가격의 차이가 커서 자국민의 피가 ‘싸구려 취급’ 당한다는 논란도 있었다. 만약에 이를 피와 관련된 논란으로 확장한다면 국민의 공분을 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의료 농단 사태가 있다. 이는 박근혜가 국회의원 시절에 입법한 제대혈 관련 법안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2009년 6월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안’이다. 제대혈 관련 법안의 시행으로 차병원은 제대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되었다. 제대혈은 분만 후에 아기의 탯줄에서 나온 혈액인데, 미용 및 의료 목적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유전 질환의 치료에 쓰여서 제대혈 은행도 운영되고 있고, 이식 거부반응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혈액형이 맞지 않아도 수술에 상대적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제대혈은 피 중에서 가장 ‘고급’으로 평가받는다. 제대혈과 관련된 내용은 차병원 출산 정보에서 찾았는데, 차병원은 꾸준히 국가로부터 제대혈 관리와 관련하여 보조금을 지원받아 왔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 청와대에 불법적으로 제대혈을 유통하여 논란이 됐다. 차병원의 회장과 그 가족들도 의료 및 미용을 목적으로 9차례 불법 제대혈 시술을 받았다. 혈장 또한 미용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PRP(자가혈치료술)가 대중적이라 시술 받는 당사자의 몸에서 추출한 것만을 이용한다. 만약에 거부반응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이와 관련된 쪽으로도 의약품 제조사들이 발을 넓히게 될 것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현재 미용 목적의 혈장은 피부에 생긴 뾰루지나 흉터를 제거하고, 얼굴에 볼륨과 콜라겐을 보충해 줌으로써 주름을 없애주는 피하 주사 등에 사용된다.     


갈 땐 가더라도 신장 하나쯤은 괜찮잖아?


   매혈과 성매매 외에 장기매매 또한 현행법상 불법이다. 이는 2000년에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하 장기이식법)이 제정되던 때부터 금지되어 있었는데, 제정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의학의 발달로 점차 증가하고 있는 장기등의 이식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고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장기등의 매매행위를 근절함으로써 인도적인 차원에서 합법적인 장기등의 이식을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하려는 것임.”     


즉, 장기매매 근절의 핵심은 “인도적인 차원”, “보호”, “국민보건 향상”이다. 앞선 논의를 통해 이 세 이유와 장기매매 불법화 사이의 필연성은 깨졌다. 처벌 조항에서는 장기매매를 이미 악으로 전제하지만, 나는 장기매매 또한 도덕적인 이유가 아닌 계급적인 이유에서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매매로 유입되는 인구도 직업적 성매매의 경우와 유사하게 은행권에서 대출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신용불량자나 저소득층이 대부분이다. 

   실제 사례들을 보자. 스마트폰을 살 돈이 없어서 장기매매를 시도했다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7년째 입원 중인 중국의 10대 소년, 고아/가출 청소년/신용불량자를 대상으로 한 납치 및 장기매매 알선 시도, 국가에 땅을 몰수당해 생활 수단을 잃은 북한 여성, 이집트 병원과 자국 외교관들의 유착으로 인해 장기매매로 내몰리고 있는 가난한 예멘인들 등 장기매매 또한 앞서 논한 매혈, 성매매, 임상시험처럼 큰 위험,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무릅쓰고서라도 급하게 큰돈이 필요한 사람만이 할 만한 일이다. 특히 장기매매는 사망과 인권 침해의 위험이 아주 큰 만큼 가격도 비싸다. 그러니 정말 절박한 사람은, 법에서도 신장 1개의 기증은 살아있을 때 할 수 있다고 나와 있으니 신장 1개쯤 팔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래 과정이 안전하여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인간의 신체가 도구화된다는 이야기, 값이 매겨지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근거 없는 낡은 윤리로 보일 뿐이다. 그럼 임금노동은 어떻게 하는가? ‘사람을 살리기 위함’은 수단이 아닌가? 피로 번 돈이나 재화가 나의 생활을 보장해 준다면 이는 왜 존엄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미 우리는 배설물($40), 난자($8,000~14,000), 정자($35~125)를 현금으로 거래하고 있으며, 70일 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는 실험의 참가자를 돈을 걸어 모집하기도 하고($18,000), 다른 사람의 아이를 대신 임신하는 대리모 계약도 이루어지고 있다($24,000~45,000). 다큐멘터리 <Google Baby>는 백인들과 계약하는 인도의 대리모들을 다루는데, 이는 국가와 인종 간의 계급 차이가 대리모 계약에서도 분명히 드러남을 보여준다. 나는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가 된 게 아니다. 다만 생명보다 생활을 중시할 뿐이다. 목숨만 부지하는 게 무슨 삶이겠는가. ‘인간다운 삶’이라는 아주 흔해 빠진 말의 의미를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잊는다. 생명이나 몸 그 자체가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피는 문제가 아니야


   이렇게 성매매에서 공혈로, 공혈에서 장기매매로, ‘몸 팔기’의 문화경제를 살펴보았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성매매, 매혈, 장기매매, 대리모 계약 등 신체의 상품화를 합법화하자고 주장하거나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취약 계층만의 선택지로 주어지며, 위험을 취약 계층이 전담하고, 경제적 계급이 곧 건강과 신체의 등급에 비례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이를 단지 ‘인간의 고유한 일부’를 거래한다는 이유로 범죄화한다면 더욱 거시적인 문제를 놓치게 된다. 지금도 의약품 제조 목적의 혈장은 수입되고 있다. 피의 제약 산업으로 취하는 이익은 국제적 정치⋅경제 위계에 비례한다. 피의 가격, 피의 용도, 피의 질은 시장, 국가, 관계에 따라 다르다. 국가 안으로 들어가서도 피의 공급은 성별화⋅직업화되어 있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살펴봤을 때 우리는 피의 의미가 본질적인 게 아니라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성매매, 매혈, 장기매매는 그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할 소지가 매우 크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이에 참여한 이들을 바로 범죄자로 단정 지으면 안 된다. 그렇게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던 삶을 들여다 봐야 한다.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어떤 대상이 거래되어서는 안 되는 조건으로 불평등의 재생산과 내재적 가치의 저하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몸의 의미와 가치가 정치적, 문화적으로 구성된다면 애초에 ‘내재적 가치’라는 게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돈을 받는다고 해서 그게 곧 이타성의 부재로 여겨진다면 시장 안에서 이타성은 불가능해진다. 핵심은 경제적인 영역에서의 ‘자발성’을 사실상 박탈당한, 즉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잃은 취약 계층을 보호하고 불평등한 구조의 재생산을 막는 것이다. 우리는 ‘존엄성’이나 ‘고귀함’ 같은 단어를 통한 낭만화를 피하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요인들로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이 진정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남편의 노동시간이 삭감되어 어쩔 수 없이 피를 파는 미국의 21살 여성의 사례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한 달에 10번씩이나 피를 팔러 간다. 팔에는 반복적인 매혈로 인해 생긴 흉터가 있다. 극도로 가난한 이들은 이 흉터를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피를 흘릴 수밖에 없도록 내몰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그리고 나의 몸을 나의 뜻대로 할 권리가 있다



nope (writingnope@gmail.com)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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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및 칼럼

수습편집위원 nope, 「학부생 나부랭이의 미시경제학 불평」, 연세지편집위원회, 《연세지》, 119호, 2019년 봄

“[국감브리핑] "적십자사, '헌혈기념품' 연간 100억 사용…사실상 매혈"”, 뉴스1, 2018. 10. 22.

“국내수혈량 70% 수입혈장에 의존”, 중앙일보, 1994. 10. 19.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36.5도의 행복, 헌혈”

“‘허삼관’의 매혈, 정말 있었습니다.”, 한겨레, 2015. 2. 9.

“″고수익 알바 찾아요?″ 대학생 위협하는 ′위험알바′”, 캠퍼스 잡앤조이, 2018. 3. 21.

“울산지역 군 장병, 겨울철 핼액수급 위해 헌혈릴레이 실시”, 울산매일, 2019. 1. 16.

“[국감] "헌혈금지약물 복용자 혈액, 무방비로 유통"”, 뉴스핌, 2018. 10. 22.

“"군인 피(血)는 내 것"...독점권 유혈 전쟁 발발”, 뉴스워치, 2018. 10. 22.

 “‘여자의 빨간색은 헌혈할 때 제일 아름답다?’...대한적십자사 ‘여혐’ 광고 논란”, 중앙일보, 2016. 10. 6.

“[이슈톡] 돈벌이 수단 된 ‘헌혈 훈장’”, MBC NEWS, 2019. 4. 22.

“Why you get paid to donate plasma but not blood”, Statnews, 2016. 1. 22.

“5년간 혈장 수입, 외국인 약 35만명분”, 의학신문, 2013. 10. 22.

“혈장 수입 770억원…헌혈 둔화 탓(?)”, 연합뉴스, 2010. 10. 1.

“저질혈장은 쓸모없어 수입 안해”, 국정신문, 2000. 1. 24.

“혈장 충분한데도 알부민 대란 걱정…국민만 피해”, 데일리팜, 2017. 4. 19.

“[단독] 싸구려 취급 당하는 자국민 헌혈피”, 문화저널21, 2017. 10. 23.

Primeraorlando, “3 Ways PRP Treatment is Being Used in Cosmetic Facial Procedures” 

“최신 스마트폰 사려고 장기 팔았던 10대 소년의 비극적 근황”, SBS뉴스, 2018. 12. 27.

“"콩팥 팔 XX 없냐"…10대 고아들 장기 노린 장기매매알선조직 카톡 메시지 보니”, 조선일보, 2015. 11. 19. 

“양강도 장기매매 사건… 북한 사회 '발칵'”, 뉴데일리, 2018. 9. 10.

“이집트서 가난한 예멘인 상대 장기매매 성행”, 한국일보, 2019. 5. 8. 

“9 ways to make money by selling your body to science”, Business Insider, 2018.3.13. 

“Blood Plasma, Sweat, and Tears: When cobbling together a livable income, many of America’s poorest people rely on the stipends they receive for donating plasma.”, The Atlantic, 201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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