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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Apr 03. 2021

<127호> 주식공화국

수습편집위원 유자




개미는 오늘도 열심히 주식하네


2021년 1월, 겨울 날씨는 추웠지만 주식시장은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1월 7일 코스피 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3000을 돌파했다. 코로나로 하락세를 찍었던 2020년 3월의 코스피 지수와 비교해 2배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주가의 하락장은 개인들에게 주식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제공했다. 2020년 개인투자자들이 매수한 주식은 47.5조 원으로, 2012년부터 2019년까지 8년간 개인투자자들이 매도한 47.1조 원을 웃도는 금액이다[1]. 바야흐로 大개미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개미들이 쏘아 올린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동학개미운동’, ‘빚내서 투자’ 등 주식과 관련한 다양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예능에 투자 전문가들이 등장하고, 유튜브에는 주식에 관한 영상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온다. 누가 시드머니 얼마로 몇 프로의 수익을 냈다더라 하는 영웅담이 들려오고, 사람들은 자신이 산 종목의 수익률을 따져보며 경험을 공유한다. 투자 열기로 가득한 최근의 상황 속에서 주식은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인다. ‘주식은 늦게 시작할수록 손해’라는 조언이나 ‘주식 안 하면 바보’라는 말은 조급함까지 불러일으킨다.


2월 기준 빚을 내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 융자 규모는 20조 안팎을 넘나들고 있다.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존 리는 주식의 투자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말하며, 20대는 보유자산의 100%를 모두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 또한 그는 ‘한국의 노후 준비, 빈부격차 등이 심해지는 이유가 주식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3]. 그의 주장을 향한 많은 비판이 있음에도 그가 ‘동학개미의 수장’이라 불리며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은 주식투자를 둘러싼 현재 한국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주식 안 하면 바보”


사람들이 주식으로 몰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주식투자 외에 돈을 모을 수단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개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따뜻한 겨울을 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악으로 저작권료를 버는 베짱이 옆에는 핸드폰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개미가 있다. 불안한 일자리, 치솟는 집값, 빈약한 월급……. 노동시장에서는 그려지지 않는 안정적인 미래가 주식시장에는 존재한다. 제로에 가까운 금리도 주식투자를 부추긴다. 저축으로 돈을 모으려는 시도는 그야말로 티끌 모아 티끌이다. 비록 잠시 주가가 내려가더라도, 자본소득은 장기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란 믿음 아래 적금을 드는 대신 주식을 산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식을 개인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재테크 시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큰 자본과 막대한 정보력을 기반으로 한 기관투자자에게 밀려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2013년에 삼성증권이 발표한 ‘개인투자자들의 반복된 실패와 교훈’ 보고서에서 개인투자자 집단은 외국인 투자자 및 기관투자자와 달리 코스피가 성장세였던 2012년에 유일하게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했다. 조선일보가 2017년 금융 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실시한 주식시장 시뮬레이션에서도 개인투자자는 -74% 수익률을 보였다[4]. 개인투자자의 실패 원인으로는 짧은 기간에 주식을 사고파는 단타 매매, 저가주를 선호하는 경향, ‘한탕’을 노린 테마주 투자 등이 꼽혔다.


물론 현재의 개인투자자 집단의 양상과 주식시장의 분위기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투기적 단타 매매를 경계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하며, 안전한 우량주 위주로 투자하며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는 투자자들도 많다. 주식시장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에 주가가 승승장구하는 지금은 기업과 개인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즉, 지금까지 개인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손해를 보았던 이유는 주가가 하락하는 경제 상황 혹은 개인의 무리한 투자 등에 있으며, 주식시장의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논리이다.


투자자들은 누구라도 ‘잘’ 투자하기만 한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기회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다. 기회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졌기에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린 당사자에게 있다. 공매도[5] 금지 조처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민감한 반응은 공정한 투자의 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에서 기인한다. 비교적 적은 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할 수 있는 점도 주식이 가진 매력 중 하나이다. 이미 가진 자들이 돈을 굴리는 판인 부동산과 같은 재테크와 달리 주식은 ‘흙수저’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열린 장처럼 보인다. 천 원 미만의 동전주, 만원 안팎의 소형주의 존재는 그러한 믿음을 강화한다.


그러나 자본시장에서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한다. 테러, 전염병과 같이 상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경영진의 갑질 사건과 같이 기업 실적과는 관계없는 요인이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단합이 주가를 폭등시키는 경우도 발생한다. 주식시장의 변화를 개인이 모두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주식시장의 특성상 ‘잘’ 투자했다는 평가는 결과론에서 비롯한 판단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노력하면 누구나 투자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신화에 가깝다.


또한 주식은 예적금과 달리 원금손실위험이 있는 위험자산이다. 주가가 전반적으로 오를지라도 떨어지는 개별 종목은 존재할 수 있다. 이는 돈을 잃었을 때의 타격이 클수록 주식을 쉽게 시작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원금 손실이 가장 치명적인 집단은 단연 저소득층이다. 실제로 경향신문과 여론조사기관 피앰아이(PMI)의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속한 계층을 높게 인식할수록, 소득이 높을수록 투자에 열린 태도를 보였다. 소득이 높을수록 ‘주식투자는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는 일이다’, ‘투자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라는 말에 동의하는 비율도 높았다. 신용도가 높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대출을 받을 개연성이 크기에, 빚을 내 투자를 시작하는 청년의 대다수도 이에 해당한다. 돈이 없는 사람이 빚을 내 투자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계층이 낮을수록 투자자금에서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6].




코로나가 가져온 선물?


현재의 주가 상승에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주식시장과 실물경제 사이의 괴리에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퍼져가던 2020년 3월, 각국의 주가는 가파르게 하락했다. 코로나로 인해 실물경제가 마비되기 시작하며 비관적인 경제 전망이 나오던 시기였다. 코로나의 여파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은 빠르게 시중에 돈을 풀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제로금리 수준으로 낮췄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인하하여 사상 처음으로 국내 금리가 0% 영역에 들어섰다. 그러나 풀린 돈은 사람이 아닌 자본으로 흘러갔다. 붐비는 주식시장과는 달리 거리의 시장은 텅 비었다.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고용률은 무섭게 하락했다.


작년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2020년 12월의 취업자는 2652.6만 명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62.8만 명이 감소하였다. 특히 임시직 노동자와 서비스업 종사자 등 고용 약자들은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았다. 임시직 노동자는 31.3만 명 감소하였는데, 이는 IMF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보다 더 큰 감소폭이다. 고용률에 집계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이라고 응답한 인구는 31.4만 명 증가하였고, 구직단념자[7]는 19.1만 명 증가하였다.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율까지 고려한다면 실제 고용 상황은 앞서 말한 수치보다 더욱 악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소비가 줄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2020년 4분기 사업소득은 200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연중 중소기업 대출은 87.9조 원이 늘었고, 이 중 47.5조 원이 개인사업자 대출이었다[8]. 비법인기업 대출은 올 387.9억 원으로 집계되었으며, 이는 관련 통계작성 이래 작년 2분기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증가 폭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직원을 고용하는 자영업자는 16.5만 명 감소하였고, 고용원 없이 혼자 일하는 자영업자는 7.5만 명 증가하였다. 인건비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은 가장 먼저 직원을 해고하고, 빚을 내어 암울한 상황을 버티거나, 결국 폐업을 택한다.


코로나 이후의 경제 회복이 양극화를 심화하는 K자형을 따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도 이어진다. K자형 회복이란 알파벳 ‘K’자와 같이 한쪽 집단은 빠르게 상승하며 회복하지만, 다른 집단은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곧 지역/산업/사회계층별로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신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분기에 저소득층인 1분위는 소득이 1.1% 감소했지만 5분위의 소득은 2.9% 증가하였다[9]. 특히 노동 소득의 감소가 소득 하위 가구로 갈수록 두드러졌다. 소득 하위 20%는 4분기 기준 노동 소득이 13% 이상 줄며 3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10]. 이를 통해 불안한 일자리를 가진 저소득층이 코로나로 인한 고용 충격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현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양하다. 지나치게 과열되었다는 의견과 현재의 기준금리로는 적정 수준이라는 의견, 부풀려진 거품이 곧 꺼질 것이라는 예측과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엇갈린다. 그러나 198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 2000년대 IT 버블의 붕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실물경제와 자산소득 간의 괴리가 계속해서 커진다면 주식시장 또한 위험하다는 교훈이다. IT 붐이 일었던 2000년대 초반에도 많은 개인투자자가 몰렸지만, 결국 버블이 붕괴하고 신용카드 대란이 일며 많은 사람이 신용불량 상태에 빠졌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식시장과 실물경제 사이의 괴리가 나타나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또 다른 경제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회 전체적으로 주식을 맹신하고 투기적 분위기가 팽배할수록 사회 이면의 문제를 간과하기 쉽다. 투자가치에 지나치게 매몰된다면 공동체의 관점에서 사고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진다. 모든 사회 이슈가 투자를 위한 신호가 되고,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투자 대상으로 변한다. 문제는 사익과 공익이 충돌하고 수익과 윤리가 대립할 때 발생한다.


작년 12월 19일, MBC 라디오의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에서 에너지 빈곤층의 난방 수단인 연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리포터가 연탄의 가격이 5년간 2배로 가파르게 올랐음을 설명하자, 진행자는 ‘연탄에 투자할걸!’이라고 말하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연탄의 가격이 크게 오르고 코로나로 인해 기부와 배달 봉사도 줄어들어 빈곤층이 이중적인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을 설명하던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에너지 빈곤층에겐 연탄이 필수재이기에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급격히 줄기는 어렵다. 그러나 연탄 회사에 투자한 사람은 연탄의 가격이 오를 때 에너지의 빈곤층이 처하는 어려움보다, 본인에게 돌아오는 이익에 기뻐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로 발생한 쓰레기 대란은 ‘폐기물 테마주’를 키웠다. 폐기물의 양이 늘어나고 쓰레기 처리 비용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투자 전문가는 재활용 조건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면서 매립과 소각 쓰레기의 양이 늘어나고 처리 비용도 커질 것이라고 예상하며, 관련 기업에 주목하라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폐기물 처리 관련 주식을 가진 사람은 늘어나는 쓰레기를 보며 환경오염 문제를 고민하는 대신 처리 비용의 증가가 가져올 주가의 상승에 더 관심을 가지기 쉽다. 홍수나 태풍이 온 후엔 처리해야 할 폐기물이 늘어나 관련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기에 자연재해가 발생하기를 기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펼쳐진다.


사회 전체에 투기 열풍이 강하게 불 때는 빈곤과 가난이 더욱더 개인의 문제로 축소될 위험도 있다. ‘주식 안 하면 바보’라는 말속에는 자본소득이 커지는 시점에 투자하지 않아 돈을 벌지 못한 것은 개인의 무능력이라는 인식이 담겨있다. 투자 열풍이 부는 사회의 분위기는 사람들을 주식시장으로 몰아간다. 불어나는 자본소득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건 아닌지 불안감까지 스민다. 일단 시작하라며 등을 떠미는 손은 많다. 그러나 투자 손실을 감당하는 이는 오로지 떠밀린 당사자뿐이다.


앞서 살펴봤듯 주식시장에 대한 태도는 소득과 계층에 따라 달라졌다. 빚을 내어 투자를 감행하려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안정적인 직장과 소득을 가져야만 한다. 만원 이내의 소형주의 존재를 부각하며 ‘커피값’만 있어도 주식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가격이 낮은 주식일수록 주가 등락의 변동성이 크다. 이는 곧 주가가 비교적 안정적인 대형주와 달리, 주가 변동이 큰 소형주는 원금 손실 위험이 크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누구나 손실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모두가 기꺼이 그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투자를 위해 대출을 받을 때 누군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빚을 낸다. 주식을 포함한 자산 시장은 사상 초유의 낮은 금리 덕분에 빠르게 팽창했지만,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은 기록적인 상승장에서 배제되었다. 동시에 고용불안으로 인한 노동 소득의 감소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앞으로의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진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주식을 공부하고 손실을 감수하며 돈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주식을 하지 않아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 이전에 주식을 시작하지 못하는 환경이 존재한다. ‘주식 안 하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일개미는 어디로 가는가


주식시장이 갑작스러운 호황을 맞게 된 배경에는 분명 코로나로 인한 주가의 일시적인 하락장과 전 세계적인 금리 인하의 영향이 있다. 그러나 갈수록 노동이 불안정해지고 자산소득은 불어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주식에 몰리는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사람들은 일개미보다는 주식 수익을 내는 슈퍼개미를, 노동자보다는 건물주를 꿈꾼다. 모두가 불로소득을 통한 경제적 자유를 바란다.


지금까지 생계유지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야기되었던 것은 노동이다.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자 빈곤을 탈출하기 위해 요구되었던 것도 노동이었다. 그러나 시장경제·기술발전의 낙관주의자는 인간의 노동 없이도 삶의 기본 조건이 충족되는 세상을 그려낸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법정보학센터 교수이자 인공지능학자인 제리 카플란은 자신의 저서 「인간은 필요없다」에서 금융시장의 부를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분배하는 방식을 고안했다[11]. 모두가 불어나는 부의 혜택을 얻는다면 먹고살기 위한 직업보다는 자아실현을 위한 일이나 공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낙관적인 예측도 함께였다. 거시경제학의 창시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결국 인류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그는 ‘경제적 자유’가 소수만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아닌 인류 전체가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고 보았다[12].


실제로 케인스가 예측한 방대한 자본축적과 기술혁신, 급속한 생활 수준의 향상은 실현되었다. 우리는 매분 매초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빅데이터를 축적하고 인공지능 학습에 기여한다. 이제 수많은 가치가 ‘노동’이라는 개념 바깥에서 생산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낸 가치로 쌓이는 부는 소수에게만 돌아가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은 생계의 수단인 일자리를 빼앗았다. 케인스가 일시적인 혼란에 불과하다고 말했던 “계급과 국가 사이의 경제적 투쟁과 결핍과 빈곤”은 여전히 남아 우리를 괴롭힌다.


양극화와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 사회는 위험요인을 떠안게 된다. 사회불안이 커지고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사회 통합이 어려워진다. 사람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는 힘이 점점 약해지는 문제도 존재한다.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다국적기업의 수장들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리 카플란이 말한 바와 같이 국가가 아닌 시장에서 부를 분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노동의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청소와 육아를 비롯한 돌봄 노동은 자동화가 되기 어려운 대표적인 노동 중 하나지만, 오랜 기간 가정에서 무급으로 수행되어 왔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노동 가치는 극히 낮게 책정되었다. 사용자의 데이터를 쌓는 일도 기술발전과 서비스 제공에 필수적인 요소임에도 지금까지는 너무 당연한 일상 속 행위로 여겨졌다. 수많은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되는 자동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노동을 경시해왔으며 무엇이 노동으로 다시 평가되어야 하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정녕 모두를 위한 경제적 자유가 존재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부의 분배를 국가가 직접 해야 한다는 주장과 시장에 자연스럽게 맡기라는 주장도 계속해서 대립해왔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가 시사하는 점은 사회가 급변하고 노동이 불안해지는 현실 속에서 생존의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살기 위해 주식으로 몰려가는 이 과한 열기에 감추어진 경제적 불안함과 생존의 두려움을 보아야 한다. 노동과 자본소득을 둘러싼 새로운 정의와 책임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왔다.



[1] “코스피 3000… 불안한 축포”, 조선일보, 2021.01.08.

[2] 존 리 “20대는 여윳돈 100%를 투자하라”, 주간동아, 2021.01.13

[3]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SBS, 2021.02.05

[4] “10년 주식투자 수익… 외국인 78%, 개인 -74%”, 조선일보, 2017.03.07.

[5] 공매도(空賣渡): 주가 하락에서 생기는 차익금을 노리고 실물 없이 주식을 빌려 파는 행위. 주식을 빌리기가 어려운 개인투자자들에게 불리한 제도로 인식된다.

[6] 계층·소득이 높을수록 “주식·부동산 투자, 부모가 권해요”, 경향신문, 2020.10.13.

[7] 구직단념자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을 희망하고 취업할 수 있었으나, 노동시장 사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않은 자 중 지난 1년 내 구직경험이 있었던 자를 의미한다.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된다.

[8] “2020년 3분기 중 예금취급기관 산업별 대출금”, 한국은행, 2020.12.02.

[9]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는 ‘소득 5분위별 가계수지’로, 소득분위를 5단계로 나눈 것이다. 1분위는 하위 20%, 5분위는 상위 20%를 뜻하며, 이는 한국장학재단의 10분위 지표와는 다르다.

[10] 통계청에서 2020년에 발표한 분기별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참고하였다.

[11] 제리 카플란, 「인간은 필요없다」, 신동숙 역, 한스미디어, 2016, 240~253쪽

[12] 존 M. 케인스, 「설득의 경제학」, 정명진 역, 부글북스, 2009





수습편집위원 유자

zyouz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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