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표준란을 깨자!

편집위원 타조

by 문우편집위원회

성교육 표준란을 깨자!

: 우리 사회를 곧게 세울 상상력


1 이성친구와단둘이.jpg
2 지하철지하철.jpg
2015년 정부가 공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위에 성폭력 대처 방안을 다룬 두 장의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SNS에서 꽤나 돌아다녔던 사진들이라 이미 본 분들도 있을 것 같네요. 내용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처음엔 별 생각이 안 들지도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좀 이상합니다.

먼저 첫 번째 사진의 대처방안은 말장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성친구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가 성폭력이 발생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사실 동의가 되지 않지만 그건 차치하더라도, 대처방안이 “단둘이 있을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라니요. 모기에게 피를 빨리지 않기 위해 모기를 피해 다니라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두 번째 사진의 대처방안도 문제가 많은데요. 분명히 범죄를 당하고 있는 상황인데 신고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제시된 세 가지의 대처방안이 모두 지나치게 소극적이며 근본적인 대처방안이 되질 못합니다.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성폭력을 저지르는 파렴치한이 과연 가방끈을 뒤로 메거나 자리를 뜬다고 꿈쩍이나 할까요? 설사 그렇다고 해도 위의 사진대로라면 바꿔 말해서, 만원 지하철을 타는 날인데 짧은 가방을 메고 나왔거나 단화를 신고 나왔다면 자리를 피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네요. 애초에 세 방법 모두 성폭력범이 범행을 저지르기 껄끄럽게는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성폭력범은 다른 피해자를 탐색하기만 하면 그만이고요.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잘못된 교육자료를 만든 것일까요? 놀랍게도, 위 두 사진은 2015년 교육부에서 만든 『학교 성교육 표준안』 교육자료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네, 여러분이 아는 그 정부부처 교육부 맞습니다. 그럼 교육부는 저 자료를 왜, 대체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을까요? 지금부터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란 녀석을 하나씩 톺아보도록[1] 하겠습니다.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5년 3월 처음 교육부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교육부는 원문[2]에서 표준안의 도입에 대해 “성교육에 대한 공교육의 책무성을 다하고, 체계적인 성교육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자 시도”된 것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표준안을 통해 성에 대한 문제해결 차원을 넘어 예방적 차원에 중점을 두고, 학생들의 발달시기마다 필요한 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여 올바른 성 가치관과 성 태도를 지니도록 해 올바른 성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고 목적을 설명하고 있지요. 여기까지 살펴봤을 때는 글쎄요,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금방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먼저 지나치게 내용이 이성애 중심적이고 기존의 가족형태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학교급별 성교육 표준안의 목표를 살펴보면, 초등학교에서는 “결혼으로 형성되는 가정과 가족의 관계, 동성 친구와 이성 친구 사귀는 방법 등을 이해하여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기초 능력을 지닌다”는 것이 목표 중 하나인데, 가정의 형성을 굳이 결혼을 통한 것으로 한정한 것, 동성 친구와 이성 친구 사귀는 법을 굳이 구분해 놓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다른 학습목표에서 언급하는 “집안에서의 역할분담, 성 차이와 성 역할의 이해, 성적 강요행동에 대한 대처, 성역할의 변화와 양성평등”과 같이 살펴봤을 때 다분히 생물학적(?)[3]으로 구분된 이성애 중심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학교로 넘어가도 분명 “생명존중과 성 정체성 등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한다는 목표를 밝히면서도 따라오는 내용에서는 “남녀의 성 인식의 차이 및 책무성 등을 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일상생활에 실현함으로써 올바른 성 예절을 생활화”할 것을 이야기하며 이성애로 교육 범위를 좁히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건전한 이성교제와 예절, 배우자의 선택과 이성관 등을 정립하고 이성과의 인간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관계능력을 지닌다”는 목표를 직접 언급하면서, 학교급이 올라가면서 무언가 달라지는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저의 일말의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립니다.

'남녀의 정서반응 및 표현의 차이: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는 성교육 자료. "이것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교육 목표가 실현된 것이므로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교육자료의 수준은 더더욱 처참합니다. 맨 처음에 살펴봤듯 의미도 없고 근본적이지 못한 성폭력 대처방안을 소개하는가 하면, “여자는 무드,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면서 남녀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형성하도록 종용하죠. 내용대로라면 뭐 남자는 나체에 환장하도록 호르몬적인 설계라고 되어있다는 건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지정성별이 남성인데 갑자기 제 자신이 막 무서워지려고 하네요. 자료를 통해 교육을 받을 청소년들이 저처럼 혹시 자신의 성별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거나, 혹은 교육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못된 성 의식을 가지게 될까 두렵습니다. 늦은 밤 외진 골목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을 향해 “그러게 왜 여자가 밤늦게 혼자 돌아다니느냐”, “옷을 야하게 입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 등의 비난을 퍼붓는 현실은 우리 사회 전반이 잘못된 성 의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특히 심각한 것은 심지어 성교육 표준안의 교육 목표에도 포함되지 않는 퀴어 청소년들의 상황입니다. 2014년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가 실시한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4]결과에 따르면 18살 이하 응답자 623명의 45.7%가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을 정도로 10대 성소수자들은 기댈 곳이 없습니다. 올해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새로운 대통령에게 말한다” 성소수자 혐오반대 시민 필리버스킹“ 문화제>에서 FTM 청소년 새벽 씨는 트랜스젠더는 야만인이라는 반 아이들의 이야기에 문제제기를 했더니 진지충이라 비웃음을 받고, 가족들에게 아무리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있음을 말/해도 어차피 나중에 남성 밑에서 애를 키울 딸아이 취급을 받는,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현실을 토로하며 그럴 때면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하는 자기혐오와 함께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그 고통을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퀴어 청소년들의 생존마저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교육부는 17년 1월 성적자기결정권,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 성소수자(동성애) 등의 내용을 표준안에 포함할지에 대해서 ‘현재까지 다양한 의견이 대립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어서 중장기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넣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2017년 2월, 인권활동가들이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의 유보적 입장에 항의하는 사진. "숙제할 시간은 충분히 드렸으니 그만 미루고 제대로 대답해 주시길."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이렇게 문제적인 성교육표준안에 대해 그동안 많은 단체들이 반대와 폐지의 목소리를 내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약 100여 개의 청소년‧여성단체로 구성된 ‘교육부 국가 수준의 학교성교육표준안 철회를 위한 연대회의’가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기자간담회, 성명서 발표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지요. 작년 10월에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교사 대상 성교육 연수가 “교육부 성교육표준안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중단되어 해당 연수를 신청한 교사 700여 명 등이 이에 개입한 교육부를 강력하게 규탄하기도 했습니다.[5] 또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는 5월 17일부터 100일간 “국가 수준의 학교성교육표준안 폐지를 위한 1만 인 서명캠페인”을 진행했고요.

다행히 새 정부 들어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28일 교육부와 여성가족부는 8월 중에 성교육표준안 재검토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분명 희소식이고 이러한 결정에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다만 지난 7월 11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성교육이 보건교사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해 인권 가치보다는 실질 대응력만 강조하는 것’을 문제로 꼽아 말한 것은 현재 교육현장의 성교육과 성교육표준안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다소 적시하지 못한 발언이라 생각됩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대선토론회에서의 “동성애 좋아하지 않습니다” 발언과,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포럼 장에서 성소수자 정책에 관해서는 “나중에”를 외쳤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더 이상 어떤 국민의 생존도 나중으로 미루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실 성교육표준안의 수정 이전에, 성교육표준안이 존재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할 지점이 남아 있습니다. 2016년 (사)보건교육포럼에서 실시한 「교육부 성교육표준안에 대한 보건교사 인식조사 결과」[6]에 따르면, 학교 성교육에 성교육표준안을 일부, 혹은 전부 적용한다고 응답한 학교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6%였고, 성교육시간에 성교육표준안에 따른 성교육을 한 시간도 실시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34.6%로 1/3 가량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성교육표준안이 환영받지 못한 이유를 하나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교육현장의 판단 때문일 수도, 표준안에 맞춰 성교육을 진행하기에는 교육여건이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혹은 다른 모종의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다만 보육교사들의 절반가량이 학교에서 성교육을 실시하는데 장애요인으로 크게 꼽은 것이 ‘교육과정상 공식적인 보건교육으로서 성교육 시간 확보의 어려움’(48.0%), ‘보건교육과 보건업무 병행에 필요한 자원 부족’(37.3%) 임을 고려해 볼 때, 정규교육과정 내 충분한 성교육 시수 확보, 성교육 전문 인력 확충 등의 교육여건 개선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2015년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내며 교육부가 밝힌 것처럼, 지금의 교육부와 여성가족부가 “학교현장에서의 성교육의 내실화”를 기하고자 성교육표준안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는 것이라면 말이죠.

알록달록한 색연필 단면 사진. "예쁜 무지개를 그리게 하려면 알록달록한 색연필을 주어야겠죠?". 픽사베이

저는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게 자신의 성을 표현하고, 그로 인해 누구도 위협을 가하거나 당하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성교육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그 해답이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요. 보다 다양한 삶이나 관계의 방식을 그려볼 수 있게 하는 힘이라는 차원에서 말이죠. 그동안 우리 교육현장의 성교육은 이성애중심주의에 입각한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하면서, 결혼 제도로 공인된 가족 형태 속에 나를 위치시키고 그 안에서의 역할을 설파하기에 바빴어요. 이런 교육은 학생들이 스스로의 삶을 제시된 모형 안에 끼워 맞추도록 유도하고,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학생들이 스스로를 불량품으로 인식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지요.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더 다채로운 모형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따라 합의 하에 누구든 내 인생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하고, 그에 따라 파트너와 함께든, 반려동물과 함께든, 아니면 혼자든 간에 자신의 삶이 어떤 형태 안에 위치하더라도 긍정될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죠.

다들 날계란을 세로로 길게 세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밑바닥이 깨진 채 세워져 있는 모양이 썩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쨌든, 서 있는 건 서 있는 거잖아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서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시도들을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되길,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1] 톺다 :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 톺다01 「동사」 「2」, 표준국어대사전

[2] 『학교 성교육 표준안』, 2015.1, 교육부(학생건강정책과)

[3] 신체적인 특징에 따라 남성 혹은 여성을 구분하는 생물학적 성 구분도 사실 굉장히 모호하다. 단적인 예로 태어날 때부터, 혹은 성장하면서 신체적으로 남성 혹은 여성의 성별을 표현하는 기관을 모두 가지고 있거나, 어느 한쪽으로 분류되기 어려운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며 이를 간성(intersex)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생물학적 성 구분에서 벗어나 있는 간성인들이 겪는 고통 또한 상당하다. 이에 대해 더 궁금한 것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본고 참고문헌 중 장서연 변호사의 글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4]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2014.10

[5] 최민지, “성교육표준안에 맞지 않다”... 교사 700명 연수 중지한 교육부, 2016.10.05. 머니투데이

[6] 김민서, 「교육부 성교육표준안에 대한 보건교사 인식조사 결과」, 『한국보건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자료집』, 2016권 0호 p.86~96



참고문헌


교육부(학생건강정책과), 『학교 성교육 표준안』, 2015.1.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2014.10

김민서, 「교육부 성교육표준안에 대한 보건교사 인식조사 결과」, 『한국보건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자료집』, 2016권 0호 p.86~96

최민지, “성교육표준안에 맞지 않다”... 교사 700명 연수 중지한 교육부, 2016.10.05. 머니투데이, http://news.mt.co.kr/mtview.php?no=2016100412072632783&outlink=1&ref=https%3A%2F%2Fwww.google.co.kr

장서연 변호사, 모든 사람이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하여 - 간성(인터섹스) 성별정정 허가 결정, 2014.10.08. http://withgonggam.tistory.com/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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