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싱두
‘하같없’을 아는가? ‘하늘 아래 같은 색조가 없다’는 의미를 가진, 코스메틱 덕후들 사이에서 쓰는 은어이다. 같은 색처럼 보이는 색조 화장품들도 매우 비슷할 뿐이고, 심지어 같은 제품 같은 색이어도 어떤 피부 위에서 발색되느냐에 따라 다른 색처럼 보인다. 몇몇 사람들은 이 단어가 화장품을 사 모으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비를 정당화(?) 하기 위해 쓰는 단어라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참 좋아한다.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다. ‘하같없’은 이 세상 모든 색의 고유함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다채로운 색들이 모두 다른 이름으로 하나의 피부 위에서 만날 때 조화로운 화장은 완성될 수 있다.
하같없 예찬론자로서, 올해 처음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한 나는 그날 아침 내 파우치 속 온갖 색조들을 골고루 써서 화장을 완성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민트색 마스카라를 칠하고 입술엔 엄청 진한 보라색을 발라보았다. 라벤더색과 버건디 아이 섀도는 그날 화장의 주인공 컬러였다. 볼에는 자주 쓰는 연분홍과 코랄 색이 적절히 섞인 블러셔를 얹었다. 색 조합만 들으면 굉장히 부자연스러울 것 같은 화장이지만, 의외로 어느 한 군데 모나지 않고 잘 어울렸다. 각각 색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묘하게 분위기가 맞아 들어간 것이다.
나름 공들인 퀴어 축제용 화장을 하고 기분을 한껏 내기 위해 새빨간 구두를 신은 채 시청 광장에 도착했더니, 이미 그곳에선 셀 수도 없는 고유한 색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화장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통 거리에서라면 사람들로부터 낯선 시선과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모습들이었겠지만, 퀴어 축제의 장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톡톡 튀는 무지갯빛 사람들이 광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얽혀들었다. 마치 여러 색을 써서 완성한 화장이 찰떡같이 내 얼굴에 맞아 들어가는 짜릿한 순간을 맞이한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참여한 부스들도 ‘퀴어’라는 큰 타이틀 아래에서 다양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특히 광장 곳곳에는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부스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부스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불교인 분들의 부스였다. 퀴어 관련 이슈를 접하면서 기독교 분들의 이야기는 여러 부분에서(!) 자주 접했지만, 거의 처음 마주친 불교인들의 퀴어 담론은 낯설고 신기했다. 게다가 한 스님이 EDM 음악에 맞춰 수준급의 춤 실력을 선보이셨다. 세상 둘도 없는 몸치인 나는 스님의 범접할 수 없는 힙함에 압도되었다. 퀴어 축제가 아니었다면 일렉트릭 뮤직에 몸을 맡기고, 퀴어를 이야기하는 스님을 쉽게 볼 수 있었을까?
이외에도 여러 국가의 대사관, 국가인권위원회, 행성인(행동하는 성소수자들의 모임), 성소수자 전환치료 근절 운동 네트워크 등 여러 단체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부스들을 구경하면서 느낀 건 새삼 내가 이해하고 있던 ‘퀴어’와 그 범위가 굉장히 편협했다는 점이다. 개인의 성적 지향성, 로맨스 지향성, 혹은 자신을 어떻게 정체화하느냐에 따라 성소수자의 가지는 셀 수 없이 뻗어가고, 이는 사회가 설정한 젠더이분법 범주를 진즉에 뛰어넘은 것이었다. 오히려 퀴어가 아닌 이들을 찾기 힘들 정도로 퀴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다양했다.
이렇게 서울 광장 안에서 제각기 무지갯빛 ‘나다움’을 발산하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왜 우리는 이 풍경을 평소엔 쉽게 마주할 수 없는가?’를 생각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여 그에 어울리는 치장을 하고,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자유롭게 표현하며 내 몸 그 자체를 당당하게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퀴어 축제에서 보게 되었을 때, 반가움과 동시에 놀라움과 신기함을 느낀 이유는 뭘까? 이는 아마도 우리 사회에 이들을 자연스럽게 배제하고 혐오하는 공기 같은 문화가 뿌리 박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퀴어 문화 축제가 한창인 광장에서 아주 조금 눈을 돌렸을 때 나는 아주 쉽게 혐오 하나를 발견했다. 광장 펜스 너머 보수 기독교 집단 소속 분들이 “Homosexuality is sin. Return to Jesus”라는 현수막을 걸고 퀴어 축제 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다. 말로만 들어봤던 ‘퀴퍼 혐오 세력(!!)’을 드디어 목격했지만 사실 아쉬움이 컸다. 듣기론 이전 퀴어 축제에서는 북 치고 장구치고 부채춤도 추셨다는데 올해는 조용하셔서…. 퀴어 축제 본무대보다 어떨 때는 더 재밌는 구경을 혐오 세력 쪽에서 할 수 있다고 해서 매우 기대했었지만 뭐, 좀 안타까웠다. (농담임) 사실 정말 아쉽고 안타까웠던 지점은 그분들이 혐오를 보내는 행위 그 자체와 자신들이 외치는 반대를 이해하는 정도였다. 그들은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 규범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성애자 성소수자를 혐오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반대하는 퀴어 축제가 오직 동성애자 성소수자의 축제라는 큰 오해와 배제 논리를 품고 있었다. 퀴어에 대한 편협한 이해가, 이성애와 남녀성별 이분법이 정상 규범으로 인식되는 사회를 만나 혐오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혐오 때문에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18년 동안 매년 열렸지만 매년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다. 올해만 봐도 반대 혐오 세력이 퀴어 축제가 서울 광장의 사용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거기에 퀴어 퍼레이드 시간대에 동시에 동성애 반대 집회에 참여하신 분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일부 기독교 세력이 한창 서울 도심을 행진하고 있는 퀴어 퍼레이드 행렬에 난입하거나 차량에 올라타 행사를 방해했다고 한다. 퀴어 문화 축제와 혐오 세력은 마치 한 쌍처럼 18년을 함께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사회 전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헤아리기 힘든 오랜 시간 동안 퀴어 혐오와 함께해오고 있다.
혐오와 배제는 이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성기의 모양으로 나의 성별이 여자와 남자 둘 중 하나로 지정되고, 그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자라도록 강요받는다. 자라면서 보고 배우는 사랑은 오직 여성과 남성 간 이성애뿐이다. 동성애를 포함한 다른 사랑들은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다양성 교육을 강조하는 교육부에선 동성애 관련 내용을 성교육에서 언급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이러하니 우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존재를 인지하거나 목격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존재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사람들,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들, 육체적 성애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 등 셀 수 없이 많은 퀴어의 존재는 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게다가 고정된 성 역할과 성별에 따른 억압이 존재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퀴어함’까지 통제되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참 ‘재미없는 화장대’ 같다. 립스틱은 빨간색뿐이고, 섀도는 핑크 아니면 브라운이다. 색이 몇 개 없다 보니 매일 똑같은 화장을 하고 나선다. 변화 없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핑크와 브라운의 조합이 어느 순간 괴기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세상은 오조 오억 개를 훨씬 넘는 다양한 색들로 채워져 있는데, 그것들을 알아가려는 노력 없이 화장대에 고작 세 가지 색만 고수한다면 진정 나다운, 나에게 잘 맞는 화장은 평생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재미없고, 혐오와 배제를 기반으로 한 억압이 만연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축제가 바로 퀴어 문화 축제라는 것을 느꼈다. 파격적이고 과감한 복장을 한 사람들, LGBTAIQ로 자주 표현되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부스들, 이외에 대문자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존재하는 많은 다른 퀴어들이 꾸민 부스들, 성소수자 조항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제정/군형법 92조의 6항 폐지/동성혼 법제화 및 동반자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체들, 여성의 몸을 둘러싼 억압에 맞서는 사람들의 힙한 퍼포먼스까지. 이 모든 것들이 광장이라는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신나는 춤과 음악과 함께. (더하자면 장대비도 함께)
그렇다면 왜 광장일까? 퀴어 문화 축제는 왜 광장이라는 공간을 선택하였을까? 단순히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서라면 큰 건물 내의 공간이어도 상관없고, 부스 행사만을 생각한다면 공터 운동장이어도 상관없다. 사실 서울 퀴어 문화 축제 개최 장소가 시청 광장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면 지금처럼 혐오세력과의 갈등이 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퀴어 축제를 준비하고 염원했던 이들이 광장을 선택한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대로 퀴어 축제의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었을까? 현재 퀴어 축제는 따로 입장료를 받지도 않고, 혐오세력과 같이 충돌이 예상되는 일부 집단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다. 그래서 매년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날은 누구나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퀴어 담론에 다가갈 수 있다. 이런 자유로운 교류가 가능한 것은 퀴어 축제가 ‘광장’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광장의 공간성은 시대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화해 왔다. 어느 순간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어느 땐 자유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외침이 가득한 공간으로, 지도자들이 군중 앞에서 자기 뜻을 밝히는 공간으로,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공간으로, 시민의 힘으로 부패한 권력을 끌어내리는 공간으로 말이다. 이 외에도 광장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모습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사회에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영향력 있는 변화를 끌어냈다는 점이다. 광장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일이 조국 독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2002년 광장응원은 당시 한일 월드컵을 국가적 신드롬으로 만들었다. 특히 지난가을 시작된 전국 광장에서의 촛불 시위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적인 사건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잠재력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는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퀴어 담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 혹은 모여야만 하는 것은 이곳에 모인 이들이 공통으로 원하는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성적 지향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차별금지법에 성소수자가 포함되길 원하고, 상호 하의 합의된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랑이 죄가 되지 않는 국가가 되길 원하며, 다양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합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사회로 바뀌길 원한다. 가장 나다운 모습이 ‘비정상’으로 낙인찍히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광장에 모인 이들은 그곳에 ‘있음’으로써 이러한 변화로 다가가는 데 강하게 동의한다는 걸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의 존재만으로 변화가 이어지고 있었음을 광장을 볼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렸다. 광장은 언제나 있었지만 쉽게 인식되지 못했던 이들이 모두를 위한 변화의 주역이었음을 증명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광장에 마련된 부스들과 공연팀을 어느 정도 구경하고 나니, 어느새 고대하던 도심 퍼레이드가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비는 내려서 땅은 축축하고, 내 신발은 10센티미터가 넘는 구두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퀴어 퍼레이드 차량을 따라 행진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신나는 유행가가 들려왔다. 몸으로 익히는 모든 일엔 재능이 없는 나지만, 흘러나오는 댄스 음악에 그저 몸을 흔드는 정도는 자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나처럼 멋대로 춤추고 있길래 더욱 당당하게 팔을 뻗고 머릴 흔들었다. 그러다 중간중간 도로 한편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다!’ 피켓을 들고 있는 이들에게 쿨한 손 인사 한 번 건네고, 퍼레이드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우리를 성원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눈인사 한 번 건넸다. 퍼레이드가 퀴어 축제의 핵심이라는 이야길 들었는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 것 같은 대유잼이었다. 퀴퍼 멋있어! 짜릿해! 최고야!
퀴어 축제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에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퀴어 축제는 목적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서 비가 내려도 사람들은 많이 모인다는 말을 들었다. 어차피 올 사람들은 온다는 의미였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퀴어 담론이나 관련 이슈에 낯선 사람들에게는 초장 진입 허들이 높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격려 아닌 격려의 말을 한마디 건네자면, 올해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처음 참여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저 축제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광장이라는 탁 트인 공간에서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변화의 실마리를 드러내는 움직임들이 모두 사랑스러웠다. 이번엔 코스메틱 덕후의 입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비유하자면, 마치 내 화장대 서랍이 빨주노초파남보 핑크 검정 민트 온갖 우주의 색들로 가득 차서, 어떤 화장을 해도 찰떡같이 어울리는 색 조합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혹시나 퀴어 축제에 아직 약간의 두려움과 낯섦이 있다면, 꼭 다음 해 축제에 참여해보길 권한다! 많은 생각과 감정이 어우러지는 퀴어 축제의 광장을 여러분들도 느껴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