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우물 밖 물정을 알아가다

수습편집위원 바게트

by 문우편집위원회
청년학생이 빈민과 연대해 빈곤을 알리고 홈리스, 철거민, 노점상 등 빈민들과 함께 연대하는 빈민학생연대활동(빈활)에 참여하게 됐다. 빈활(빈민학생연대활동)에 가게 된 계기는 편집장님의 권유 덕분이었다. 처음 제목이 '빈곤STOP프로젝트'인 것을 보게 되었을 그때, ‘빈곤? 독거노인이나 노숙자를 만나게 되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지만 마침 방학이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내가 빈곤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실제 현실의 차이를 알아보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다.


1.jpg 2017년 여름에 이루어졌던 반빈곤연대활동 "빈곤스탑프로젝트 그리고 총파업" 포스터. 행사의 일시와 장소, 일정 등이 적혀있다.

6월 26일 (월요일) 사전 오리엔테이션 날


우선 오티 때부터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우리가 연대할 사람들은 홈리스, 철거민뿐만이 아니라, 노점상인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들이 왜 빈민에 속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길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장사하는 노점상이 생계를 유지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말을 듣고 그들도 빈민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노점행위 그 자체가 불법적 행위인 것이 아니라, 도로법 등의 법규로 인해 간접적으로 단속된다는 것이었다. 즉, 도로교통법 상 주차금지 등의 사항에 의해 간선도로변, 재래시장 주변, 지역축제장 주변, 민원발생지 등에 자리 잡은 노점이 불법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TV에서 항상 불법 노점상의 실태와 같은 이름의 방송을 보다 보니, 노점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놀랐다. 오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일정에 직접 참여하면 더 자세한 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6월 27일 첫째 날 (화요일)



서울역 근처 쪽방촌의 모습. "뒤의 큰 건물과 상반되는 쪽방"

대망의 첫날, 9시 반까지 면목동 홈플러스로 가야 했다. 그러나 늦잠을 자서 허겁지겁 달려가니 발대식이 진행 중이었다. 간단한 발대식 이후 연대를 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과 주민들은 행진을 시작했다. 줄지어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우리가 앞으로 3박 4일 동안 묵을 곳인 면목3동 철거 예정 지역이었다. 건물 안에 짐을 풀러 들어가서 내부를 확인해봤는데, 말 그대로 휑했다. 여기서 돗자리를 펴고 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탈주하고 싶었다. 그러나 철거민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서울역으로 이동해 홈리스(노숙자)를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홈리스들이 일자리와 집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다시 일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질병 및 장애 때문에 홈리스가 된 경우가 있었다. 또한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의한 소득의 양극화와 빈곤화, 고용의 불안정성과 실업률 증가 등 사회적 요인 때문에 거리로 나오게 된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하철역 또는 기차역 내에서 지하철 내에서 자다가 추워서 동사하거나 역 방화벽에 깔려 죽는 홈리스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걸 듣고 사람들이 정말 쉽게 죽어나간다는 것을 실감했다. 홈리스 분들과의 간담회를 마치고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쪽방촌을 보러 갔다. 서울역 근처에 있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큰 건물이 많이 서있는 중구에 그런 동네가 어디 있는 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 몇 개를 지나자 거짓말처럼 쪽방촌이 나왔다. 번화가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쪽방촌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동네에 들어가 거주자들의 생활상을 봤는데, 정말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 일상생활을 한다는 것에서 충격을 받았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용산으로 이동해 세운상가 뒤쪽의 노점상인들을 만났다. 호텔을 세우는데 그 앞에 노점이 있으면 미관에 좋지 않다고 철거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자진 철거하지 않자, 용역들을 불러 강제 철거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피켓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건설 대기업만 배 불리는 개발 반대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점 할 권리 보장하라!’였다. 피켓을 만들면서 뭔가 해나가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그러면서도 호텔 입장에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면목동 숙소로 돌아가 조별 평가시간을 가졌는데, 첫날 본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세 가지 의제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 철거민의 집이 철거가 되면 거리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홈리스가 될 것이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은 노점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노점상들은 생계유지가 어렵고,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자료가 있다. 이들 모두 거리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힘들지만 뿌듯한 첫날이 끝났다.



6월 28일 둘째 날 (수요일)


잠을 잤던 지하가 추워서 두 번이나 자다 깼다. 있는 옷 없는 옷 다 껴입고 잤는데도 추위를 이기지 못했다. 여름인데도 새벽의 위엄은 대단했다. 철거민 분들은 이런 열악한 곳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아닌가? 홈리스 분들은 이보다 더 심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아침밥을 먹고 두 번째 날 일정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예정되어 있던 일정이 약간 바뀌었다. 사당 쪽에서 급작스러운 강제철거가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쪽으로 이동해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플래카드와 피켓을 만들었다. 플래카드의 내용은 ‘동작구청 동작 그만’이었고 피켓은 ‘주민이 주인이다. 주거권 보장하라’, ‘집 뜯고 돈 뜯고 살림 뜯어간 구청은 당장 갈취를 중단하라.’였다. 나는 원래 국가가 시행하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일을 막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국가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많아질 것이고 그로 인해 수많은 빈민들이 생길 것이다. 이런 생각이 국가가 하는 일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 기회가 됐다.

반빈곤연대활동에서 만든 플랑. "동작구청 동작그만"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으며, '동작'은 푸른색으로, 나머지는 검정색으로 쓰여있다. "마포구청에서 쓴 플래카드"

사당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귀에 박힌 말이 있었다. “어휴, 학생들 덕분에 용역들이 물러난 것 같아.”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가 없었다면 철거가 진행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학생들이 떠나고 언제 철거당할지 모른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에서 투쟁을 이어나가는 것에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알려내면서 철거를 막아내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철거민들의 투쟁이 지속되고 학생들의 연대가 쌓이니 많은 것이 변했다. 1960년대, 70년대와 비교했을 때 많은 것을 얻어냈다.”라는 조원들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학생들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연세대학교로 움직였다. 여름날의 타오르는 백양로를 걸어 연희관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분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분들이 준비한 플래시 몹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을 한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마포구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집회도 참여하고, 진정서를 썼다. 빈활에 참여하면서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것 같다. 민원을 넣을 때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동지들이 연설을 했다. 그런데 행인들이 시끄럽다고 무력을 사용하며 집회를 방해했다. 그런데 멀리서 보던 경찰들은 멀뚱멀뚱 서있기만 했다. 지속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서 결국 오기는 했지만, 뭔가 시원찮았다.

우리를 귀찮은 존재로만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후에 진정서를 작성한 후에 마포구청에 제출을 하기 위해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 제출을 하려고 몇몇 동지들이 구청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구청 직원들이 받지 않으려는 행동을 보였다.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으면서 말이다. 멀리서 지켜보던 많은 동지들은 다 같이 야유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결국은 진정서를 받아 갔지만 찜찜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빈곤하다고 해서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을 왜 막으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공무원들에게 크게 실망을 한 날이었다.



6월 29일 셋째 날 (목요일)


지하가 너무 추워서 2층으로 잠자리를 옮겨서 잤다. 전날보다 덜 춥고 편한 밤이었다. 셋째 날의 첫 번째 일정은 이화여대에서였다. 그곳에서 청소 노동자 분들을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그분들은 일하는 환경을 바꾸고 싶어서 노동조합을 하게 된 조합원 분들이다. 그래서 조합을 하면 무슨 부당한 대우를 받을지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다. 조합원분들이 해주신 이야기로는 노동자 분들이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 대부분이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신데 관리자에게 무시받으면서 일하고 있다는 것, 노동조합을 하고 있어서 관리자들의 괴롭힘이 더욱 심하다는 것 등이 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얘기는 남성 관리자들이 여성 조합원들에게 음란물을 보내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가 있을까. 아마도 이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노동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인 것 같다. 청소하는 사람이 없다면 학교는 유지될 수 없다. 청소노동자들을 하찮게 보고 무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노동자들끼리 서로 감시를 하게 해서 노조의 활동을 방해하는 관리자들의 교활함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면서 이런 일을 지시했다는데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청소 노동자는 간접적으로 고용된다고 말해주셨는데, 이는 한 때 이슈가 되었던 세브란스 병원 청소노동자들의 실태와 비슷한 것 같다. 사업장은 다른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고 많은 일자리들의 환경이 열악한 것도 비슷하다. 여기에는 간접고용의 문제가 무엇보다도 크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간담회를 마친 후 이화여대 본관 앞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집회에서 최저임금 이야기가 나왔는데, ‘최저임금 2017년 1만 원 보장!’이라는 구호가 있었다. 처음에 이 구호를 듣고 바로 1만 원으로 인상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첫째, 고용 축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저 시급 인상 이후 전국 각지 아파트에서 노년 남성 경비원 줄이기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둘째, 최저임금 과다 인상으로 연쇄적 임금 인상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을 조원들에게 공유하자 “1만 원은 일종의 상징성을 가진다. 즉, 1만 원이 가진 급진성은 ‘더 이상 우리 노동자들의 삶이 나중으로 밀려날 수 없다. 지금 당장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상징성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다른 나라와 같이 노동법의 힘이 강해지면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해도 노동자가 일한 만큼 받을 권리가 지켜질 수 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지들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전 최저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국내의 인건비가 비싸져 해외로 이전하는 게 낫다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최저임금이 증가함에 따라 국내 기업이 해외로 이전한다면 국내의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남은 고민들은 앞으로 문우 활동하면서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30일 넷째 날 (금요일)


길게만 느껴지던 3박 4일 일정이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이 날은 중랑구청에 갔다. 우리가 묵었던 면목동 철거 지역이 중랑구에 있기 때문이다. 중랑구청에서 철거 반대 시위를 했다. 동지들의 몸짓 공연, 그리고 편집장님의 노래자랑 그리고 나를 포함한 동지들의 발언 등이 있었다. 발언의 내용은 3박 4일 동안의 소감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느낀 것을 말하게 되어 떨리기도 했지만, 발언 후에는 뿌듯함을 느꼈다. 전철연 동지들의 힘찬 발언을 듣고 중랑구청에서 상봉역까지 행진을 했다. 중간에 어르신들이 데모 참여하지 말고 공부나 한 자 더 하라며 앞에 있는 동지들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그 동지들은 지지 않고 단체로 ‘투쟁’이라고 소리 질렀다. 아마 동지들은 지금 하고 있는 행진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책상 앞에 앉아 이론만 공부하는 것보다는 직접 경험해 보는 게 더 낫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어르신은 혀를 끌끌 차며 가셨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서 광화문으로 갔다. 거기에서 630 사회적 총파업에 참여했다. 이 파업은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철폐, 노조 할 권리 등을 내건 행사였는데, 구호들을 보니 일정에 포함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광화문에 가서 행진퍼레이드가 진행했다. 지난 3일 동안 만났던 투쟁 주체들의 얼굴이 보였다. 전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모이니 사람이 많았다. 수많은 깃발들을 보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광화문 앞에 이순신 장군 동상 주변에 앉아 함께 파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총파업에 참여한 것을 끝으로 일정이 끝났다.

'빈곤STOP프로젝트'가 시작하기 전에 배울 것이 많을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 배움에 3박 4일이면 충분할 것이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일정을 마치고 나니, 3박 4일이 짧다고 느껴져 아쉬웠다. 그리고 학생으로서 이 활동에 참여한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연대했던 분들이 하시는 집회나 행진에는 평소에 시민들이 눈길을 잘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생들이 함께 하면 다르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마포구청에서 시위를 할 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피켓과 플랑을 보고, 발언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연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조금 거창하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생겼다는 것이 즐겁기도 했다. 이번 빈활에서 느낀 것을 바탕으로 세상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새겼다.


3.jpg 마지막날, 630총파업에 참여하는 현장 사진.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들의 행진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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