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우리는

편집위원 온

by 문우편집위원회

어쩌다가 우리는

: 2017 빈곤 STOP! 프로젝트 시즌 2 활동 후기_팩트로 가득 찬 이야기

#빈곤하지_않고_사람답게_살_권리 #강제철거_강제퇴거_부양의무제_반대


어쩌다가 우리는_1.jpg 2017년 반빈곤연대활동 현장 중 하나인 서울 중랑구 면목 3 구역의 모습.

김 씨는 걸었다. 차도로부터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올해 더위가 심상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계속 걸었다.


거친 목소리들이 김 씨의 걸음을 멈추었다. 김 씨는 J구청 앞에 서 있었다. 매일같이 지나는 J구청의 앞마당은 평소와 달랐다.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맨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마이크를 들고 J구청 건물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노란 바리케이드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것을 무표정한 경찰 몇이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개미떼처럼 빼곡히 서서 J구청의 입구를 막고 있었다.


김 씨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람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김 씨의 옆에는 그의 눈을 사로잡았던 빨간 조끼가 있었다. 그는 그 조끼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조끼에는 ‘전국철거민연합회’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스피커에서 간간히 ‘전철연 동지들’이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뭐 하러 오신 겁니까?”


김 씨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조끼의 주인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끼의 주인은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김 씨를 훑어보았다. 김 씨는 서둘러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왔다고 답했다. 그리고 김 씨는 그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조끼의 주인은 경계심을 조금 풀고 입을 열었다.


“J구청 규탄집회예요. J구청에서 이 근처에 재건축지역을 무력으로 강제집행 했거든요.”


그들의 앞으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조끼의 주인은 그를 ‘이 씨’라고 불렀고, 이 씨는 조끼의 주인을 ‘박 형’이라고 불렀다. 이 씨는 검은 봉투에서 음료수를 꺼냈다. 이 씨가 김 씨를 쳐다보자, 박 씨는 ‘이쪽 일이 궁금한 양반’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 씨와 박 씨 사이에 앉았다. 벤치가 비좁을 정도로 자리가 꽉 찼다. 이 씨는 자기 몫이었던 음료수 한 병을 김 씨에게 내밀었다. 김 씨는 머뭇거리다 음료수를 받아 들었다.


“그럼 두 분 다 집이 철거당한 건가요?”


김 씨가 물었다. 박 씨는 말없이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이 씨는 그런 박 씨를 흘끔 보곤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이 씨가 목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그때 이야기를 해줄까요. 내가 방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방에서 지낸 마지막 날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그날은 유달리 추웠어요. 무슨 특별한 절기도 아니었는데, 방에 앉아 있어도 몸이 오들오들 떨렸어요.


그때 내가 오른팔을 다쳤었어요. 그래서 앉고 일어나는 것도 엄청 불편했죠. 그 좁은 방에서 팔까지 다쳤으니 움직이기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이불이라도 몸에 두르고 앉아 있었는데, 얼마나 착잡하던지. 집세를 못 냈거든요. 앉아서 방안을 쭉 둘러봤죠. 챙겨야 할 게 있나. 사실 챙겨갈 수 있는 건 껴입을 옷 몇 가지밖에 없었지만. 나머지 것들은 옆집들에 나눠줬어요. 냄비나, 컵, 수저, 이런 것들. 이불도 줘버렸죠. 내 바로 옆에 사는 아저씨가 만날 기침했거든요. 이불이라도 두껍게 덮으라고 그 아저씨 줬어요.


그 쪽방에 산 건, 2년이 조금 못되었나? 그쯤 될 거예요. 작년 봄에 쪽방에 들어갔으니까. 그전에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거기 숙소에서 먹고 자고 했어요. 그때는 별 걱정 없이 살았어요. 또래들이 다들 취업하는 비슷한 시기에 공장에 들어갔으니까. 나도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산다고 생각했죠. 그 공장은, 전자제품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의 공장이었어요.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 세계적인 기업 S전자의 주력 업종과 관련된 하청 업체였어요. 일은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끽소리 안 하고 조용히 일만 했죠. 그리고 조용히 잘렸어요. 1년도 안 돼서. 한참 회사가 잘 안 된다는 소문이 돌 때였죠. 우리 부품을 쓰는 S전자 신제품이 잘 안 팔린다는 뉴스도 많이 나올 때였고. 정말 소리 없이 쫓겨났고, 갈 곳이 없었어요. 내밀 것도 별로 없었으니까 받아주는 곳도 없었죠. 보다시피 인상도 좀 험악하고 덩치가 커서 아르바이트 자리 얻기도 힘들었어요. 이런 몸으로 서빙하거나 계산하기는 좀 그렇잖아요. 겨우 돈 모아서 온 곳이 그 쪽방이었어요. 월세 20만 원. 거기서 박 형을 만났어요. 쪽방 촌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많은데, 거의 다 아프거나, 조금 몸이 성하면 돈 버느라 바빠요. 그런데 박 형은 되게 살갑게 챙겨주더라고요. 내가 자식, 동생처럼 느껴진다나. 반찬도 가끔 갖다 주고, 팔 다치기 전에 일하던 곳도 박 형이 알아봐 준 곳이에요. 하루는 제가 수급을 안 받는다고 하니까 저를 주민 센터에 데려가더라고요. 결론은 ‘부양의무자’가 있어서 지원이 안 된다는 것이었지만. 부모님이 있긴 한데, 몇 년째 연락이 안 되거든요. 아무튼. 박 형이 그 동네 떠나고 나서 한동안 못 만났어요.


그래서 그날, 옷이라도 잔뜩 챙겨 입고 나오긴 했는데, 딱히 갈 곳이 없었어요. 동네 주변을 돌다가 서울역으로 들어갔죠.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지하 길목으로 들어갔어요. 막차가 끊겼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어요. 벽 양쪽으로 자리 잡고 누워 있는 사람들이 이미 많이 있었죠. 한참 걷다가 빈자리를 찾긴 했는데, 광고판 아래에 있는 자리였어요. 그 광고판이 아직도 생각나요. 대출 광고였는데, 어떤 환하게 웃는 아저씨 사진 위로 ‘살 맛 납니다!’라고 크게 써져 있는 거 있죠. 그 광고 한참 보고 있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주저앉았어요. 그런데 팔 때문에 균형 잡기가 힘들었죠. 옆으로 잘못 넘어졌고. 옷가지 덮고 자던 옆 사람 다리 위로 쓰러졌어요.


“뭐야, 이 새……”


그 사람이 엄청 놀라서 벌떡 일어나더라고요. 덮고 있던 옷을 급하게 품 안으로 쓸어 담으면서. 도둑놈 보는 것처럼 노려보는 것 같아서, 고개 푹 숙이고 얼른 옆으로 비켜 앉았어요. 그분은 뭐라고 계속하려다가 제 팔을 보더니 그냥 조용히 저를 지켜보고만 있었어요.


“어려 보이는데, 왜 온 거야? 요새 젊은 애들도 그렇게 살기 힘든가?”


몇 분이나 지났을까, 잠이라도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그분이 말을 거셨어요. 그러게요, 살맛이 도통 안 나네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진 않았어요. 대답을 안 하고 있었더니, 그분이 잠시 부스럭거리다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벌써 20년이야. 97년도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98년도부터 거리에 나왔으니까. 한번 길에 나오니까 다시 돌아가기가 보통 쉬워야지. 만날 여기저기 아프고, 밥 한번 먹으려고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는데.”


얼굴도 자세히 못 보고 있었는데, 나이가 꽤 든 분이셨어요. 20년이라니. 나도 20년 넘게 이대로 살게 될까? 생각이 들었죠. 2037년, 2040년이 되어도 이렇게 매일 잠에 들고 있을까.


“틈나면 어디든지 들어가. 여기 힘들어. 쫓겨나고, 쫓겨나고…….”


그 분과의 대화는 거기까지였어요.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그분의 마지막 말을 그대로 겪었죠. 아침마다 누워있으면 누가 와서 등허리를 툭툭 차거든요. 몇 번 무시하다가도, 그 흔들림이 불쾌해서 일어나게 돼요. 그러면 제복 입은 사람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죠. 역사 직원일 때도 있고, 뭐, 구청 공무원일 때도 있고.


“아저씨, 해 떴으니까 얼른 나가. 무슨 파리 떼도 아니고, 아무리 쫓아내도 다시 들어와. 나가서 일이라도 하던가. 한심하게.”


보통은 이렇게 말해요. 그러면 일단 바깥으로 나가서 근처 벤치에 앉아 있죠. 그러다가 어느 날은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하고 있었어요. 팔도 거의 다 나아가고 있었고. 마침 그때 어떤 사람이 제 발치에 전단지를 뿌려놓고 달려가더라고요. ‘인력 공급’이라고 쓰여 있는 광고였어요. 철거용역, 건설 인력, 미장 인력. 일할 분을 구한다는 전화번호도 실려 있었어요. 팔이 다 나으면 힘쓰는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 전단지를 곱게 접어서 점퍼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죠.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는 몰랐지만요.


“저희가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구청에 세금을 내고 사는 주민으로서, 기본적인 생존권을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 경찰, 경찰 뭐 합니까. …… 경찰, 여기 안 막고 뭐 합니까?”


한 남성이 성큼성큼 걸어와 집회 마이크를 낚아채려고 손을 뻗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남성을 떼어내려 달려들었다. 남성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뭐 하는 거냐’며 날리는 욕설이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다. 경찰은 몸싸움을 지켜만 보다, 계속되는 부름에 달갑지 않다는 발걸음으로 다가와 남성을 집회장에서 끌어냈다.


박 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울 중랑구 면목 3 구역의 현장 사진. 기둥에 '생존권 쟁취'라는 팻말이 붙어있고, 뒤에 쌓인 집기 위로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문구가 쓰인 스티커가 붙었다

나는요, 원래는 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어요. 노점이요. 닭꼬치 같은 간단한 먹을거리를 만들어서 팔았어요. 나름 장사가 잘 되고 있어서, 가족들이랑 같이 살기에 힘겹지는 않았어요. 건너편 노점에는 오랫동안 양말장사 하고 있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가끔 양말 팔아서 두 딸 모두를 대학에 보냈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조금 희망을 가지기도 했죠. 그런데 며칠 동안 뉴스에 노점이 불법이라느니, 상가 상인들과 갈등이 많다느니 하는 소리가 자주 나오더니, 용역이랑 경찰들이 우리 거리에 들어왔어요.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이 된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면서요. 족히 50명은 돼 보이는 용역들이 몰려 서 있는데, 겁이 덜컥 났어요. 사람들이 나서서 항의하긴 했는데, 그 용역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노점들을 넘어뜨렸어요. 부숴 없애는 것도 아니고, 용역 서넛 이서 붙잡고 바닥에 쓰러뜨리면 끝이었죠. 제 가게도 순식간에 넘어갔어요. 음식들도 다 쏟아지고.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버티다가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가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 이후로 노점 장사는 접었고, 잠깐 큰 병원 청소 일을 했어요. 그것도 일이 너무 힘들고 위험해서 금방 그만두었죠.


원래 살던 곳 세를 못 내겠으니까, 최대한 세가 싼 곳으로 옮겨 갔어요. 거기가, 이 씨를 만난 20만 원짜리 쪽방이었죠. 작은 가게라도 얻어서 다시 장사를 해보려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어요. 그러던 중에도 이웃 사람들이 이것저것 챙겨 주니까, 저도 뭐가 생기면 열심히 나눴어요. 특히 이 씨가 정감이 가서 많이 챙겨줬죠. 자기는 잘 이야기 안 하지만, 이 씨는 팔 다치기 전에도 자주 아팠어요. 거기 쪽방이 아프기 쉽거든요. 병원도 잘 못 가니까. 가끔 죽는 사람도 많아요. 죽고 나서 며칠 지나서야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 일 갔다 오면 1층 큰 방에서 조그맣게 장례식이라도 치르는 날이 종종 있었어요.


거기서 한 4~5년은 살았어요. 대출까지 받아서 겨우 가게 하나 얻을 돈을 모았죠. 그래서 지금 여기, 이 동네로 이사 왔어요. 진짜 작은 상가 방 하나 구해서 치킨 가게를 열었어요. 가게 뒤에 조그만 살림방도 만들었고. 그걸 몇 달도 안 돼서 다 뺏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어요. 튀김 기계에 낡은 때도 들기 전에, 이 동네가 재건축지역이 되었거든요. H건설에서 아파트를 짓는다고요. 2000세대인가, 광고에도 자주 나오는 그 아파트요. 우리한테 뭘 해주겠다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어요. 나 같은 세입자는 다 손 놓고 나와야 했고. 예전에 노점 그만뒀던 것처럼.


안 나가겠다고 했죠. 몇 사람들은 조용히 동네를 떠나기도 했지만, 남은 사람들은 싸우기 시작했어요. 네, 저기 집회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우리 동네 사람들이에요. 다른 곳 사람들도 있고. 구청은 전국철거민연합회란 이름만 들으면 알레르기가 나는지, 우리랑 몇 번 상의도 안 해보고 강제집행 명령을 내렸어요. 용역들은 예고 없이 100명씩은 들어왔어요. 몸싸움이 나고, 다치고, 부서지고. 용역들은 우리가 물러나면, 그들 말로 ‘작업이 끝나면’ 건물에다 빨간 스프레이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사라졌어요. 정리를 다 했다는 의미였죠.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그들은 우리 가게에도 들어왔어요.


나는 그날, 전철연 동지들이랑 가게 안에서 몸을 떨고 있었어요. 우리 가게가 있던 건물 전체가 그날의 강제 집행 대상이었어요. 모든 출입구를 의자나 테이블 같은 것으로 막고, 바깥에는 다른 동지들이 스크럼을 짜고 건물을 막고 있었어요.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용역들은 우리 스크럼을 금세 무너뜨리고 건물로 달려들었어요. 안에 있던 우리는 문을 못 열게 하려고 온 힘을 다해서 막았죠. 그런데 그 사람들 힘이 워낙 세야지, 아니 그보다도, 워낙 숫자가 많아야지. 금방 문이 떨어지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위층으로 올라갔어요. 내 집인데, 내 가게인데, 왜 이렇게 도망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아래층에서 온갖 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들이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리도 들렸어요. 우리는 3층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버티고 있었는데, 바깥이 잠시 조용해지더니 용역들이 빠루를 끼워 넣어서 문틈을 벌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틈으로 소화기 노즐이 들어오더니, 우리 얼굴로 소화기 분말이 날아왔죠. 우리가 들어와 있던 방이 크지 않아서, 방안이 금세 소화기 가루로 가득 찼어요. 우리는 숨도 못 쉬고 허우적대고 있었고. 그 틈에 용역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우리를 잡아챘죠. 화장실로 달려간 사람을 쫓아서 화장실 안에까지 소화기를 뿌려댔어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검은 옷 입은 용역들은 반응이 없었어요. 남자 동지는 한 세 사람이, 여자 동지는 두 사람이나 아니면 혼자서 마구 붙잡아 아래로 끌고 내려갔어요. 멱살 잡혀 넘어진 채로 1층까지 끌려 내려간 사람도 있었죠. 누군가가 나를 밀쳐서 계단 앞으로 쓰러졌어요. 눈앞에 옆 가게에서 일하던 동지가 머리채를 잡아 뜯기고 있었어요. 나는 악을 지르며 머리채를 잡은 용역에게로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나는 뛰어들기만 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용역 얼굴을 봤거든요. 모자를 푹 눌러쓴 얼굴을 자세히 봤거든요.


“형님……동네예요, 여기? 형님 집 철거하는 거예요, 이거?”


이 씨였어요. 네, 제 옆에 있는 이 사람이요. 우리 둘 다 서로를 보자마자 얼어붙었죠.


어쩌다가…….


나는 어쩌다가,라고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 말보다 그때의 우리 둘에게 어울리는 말이 없었죠. 너는 어쩌다가 여기로 왔니. 나는 어쩌다가 여기로 왔을까. 아니, 어쩌다가 내가 온 동네가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


“구청이 철거 용역을 고용하는 데에 쓴 비용이 5000만 원이 넘습니다. 그래놓고 우리에게는 보상해 줄 돈이 없다고 합니다.”


김 씨는 집회장을 뒤로하고 걸었다. 김 씨의 손에는 이 씨가 주었던 음료수가 아직 들려 있었다. 김 씨는 이 씨의 마지막 이야기를 떠올렸다.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쓴 박 씨를 만난 그날 저녁, 그나마 말을 튼 다른 용역 한 명과 술을 마셨다고 했다. 이 씨가 박 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조용히 욕만 읊으며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고 했다. 그리고 휘청이는 걸음으로 포장마차를 나서던 그는 허공을 향해 외쳤다고 했다.


“나는 사람이 아니야.”


갑자기 그는 뒤를 돌아 이 씨를 향해 소리쳤다고 했다.


“야 인마, 너도 사람이 아니야.”

서울 중랑구 면목 3 구역의 현장 사진. '생존권 보장하라', '생존권 쟁취 끝까지 간다', '투쟁-전철연 철대위' 등의 문구가 쓰인 팻말과 플랑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그날로 이 씨는 용역을 그만두었고, 지금처럼 가끔씩 박 씨가 있는 현장에 찾아간다고 했다.


김 씨는 창문을 열고 난간에 발을 걸쳤다. 에어컨 실외기는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매달려 있었다. 사다리차를 불러서 실외기를 빼내야 했다. 하지만 사다리차를 부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비용도 고객이 직접 내야 할 것이었다. 서비스 평가를 좋게 받을 리가 없었다. 김 씨는 창문 밖으로 넘어와 아찔하게 난간에 매달렸다. 그를 보호할 안전장비 따위는 없었다. 날씨가 더워진 후 에어컨 수리 요청이 배로 늘었다. 이렇게 아파트 바깥 벽면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은 종종 벌어지는 일이었다.


김 씨는 난간을 꽉 움켜잡았다. 발을 헛디뎌 균형을 잃을 뻔했다. 그가 매달려 있는 곳은 아파트 5층이었다. 김 씨는 오른팔을 다치고 일을 하지 못했던 이 씨를 기억했다. 그런 이 씨를 비참하게 마주했던 박 씨를 기억했다.


김 씨는 창문 건너의 집 안을 보았다. 단란하고 평범해 보이는 가족이 거실에 모여 있었다. 김 씨는 생각했다. 난간에서 다리를 부들거리며 곡예를 하는 자신의 현재와, 이 씨와 박 씨의 과거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집 안의 화목한 가족들도, 한 때 교복을 입고 집에 돌아왔던 김 씨 자신과 다를 것이 없다고. 그리고 그런 자신과 집 안 가족의 미래는, 이 씨와 박 씨의 현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고. 어쩌다가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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