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다정
5월 17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5월 17일은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날로, 국제 성소수자 운동은 동성애를 정신병이나 전염병으로 보는 동성애혐오에 대항하기 위해 2004년부터 5월 17일을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로 지정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 130여 개 국가에서 아이다호 기념 활동이 벌어지고 있죠.
올해 5월 17일 저녁 6시, 문우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 있었습니다.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시민 필리버스킹 “새로운 대통령에게 말한다”> 문화제에 함께 하기 위해서요. 우리는 화가 났습니다. 전날 육군 동성애자 색출 사건으로 구속당한 A대위가 징역 2년을 구형받았고[1], 높은 지지율로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된 분은 후보 시절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발언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성소수자를 탄압하고 있음이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이번 문화제의 이름이 “새로운 대통령에게 말한다”인 이유입니다.
그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습니다. “차별을 해서는 안 되지만, 좋아하지 않습니다.” 네? “동성애 반대합니다.” 이게 무슨 어불성설인가요. 그런데 이 말이 후보 시절 현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것도 대선토론회 TV 방송에서 공식적으로 한 발언입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4월 25일 저녁 JTBC 대선토론회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군에서 동성애가 굉장히 심하다”며 “동성애는 국방 전력 약화로 이어지는데, 동성애를 반대하느냐?”라고 묻자 “반대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답변이었어요. 그는 이 답변을 세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마지막엔 “동성애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도 했습니다.(2) 대통령 후보가 TV방송에서 공식적으로 동성애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놀랍게도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이 최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다음날 성소수자인권단체에서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행사 연설을 마친 문재인 후보에게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며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문 후보는 사과하십시오!” “우리도 사람입니다!” “성소수자도 사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저 평온한 표정으로 이들을 응시했습니다. 곧바로 경호원과 당직자들이 이들을 끌어냄으로써 행사는 계속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온화한 미소로 기념사진도 남겼습니다. 그 특유의 온화한 미소가 또다시 성소수자들에게 상처를 주었어요. 우리의 항의의 목소리가 그를 조금도 흔들어놓지 못했구나, 하는 생채기요.
결국 사과하긴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성소수자분들이 아직 우리 사회의 많은 차별 때문에 고통을 많이 겪고 있다. 그분들이 성적 지향 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분들이 주장하는 가치와 (제 발언은) 정치인으로서 현실적인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JTBC 대선토론회에서의 발언은 동성애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 내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습니다. ‘동성혼 합법화’ 시기상조라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다고도 했습니다. “미국 같은 인권 선진국도 많은 논란을 거친 끝에 지난해 (동성혼) 합법화 판결이 나왔다”며 “그에 비하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동성혼은 하나의 적법한 결혼 형태로 허용할 만한 사회적 합의가 모아지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동성혼 합법화에는 반대한다”라고 말했죠.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는 이미 이전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 목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차별금지법[3] 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었습니다.
사실 알쏭달쏭하다는 말은 사안을 너무 귀엽게 표현한 것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언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고, 분노했으니까요. 사과발표조차도 결과적으로는 차별당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계속 차별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달라는 꼴이었어요. 제대로 된 사과라고 보기 어렵죠. 엄기호는 문재인 대통령의 동성애 반대 발언을 두고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고, 극우나 이성애 중심주의자들이 전략적으로 후퇴할 때 쓰는 말이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권장하지 않는다’이다. 전 지구적으로 나타났던 현상 중 하나다.”[4]라고 설명했어요. 그는 사과 발표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말을 많이 썼으나,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막은 것은 많은 국민들이 보고 있는 TV방송에서 “동성애 반대한다”라고 한 바로 그의 발언이었습니다. 대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죠. 실제로 그날 이후 관련 뉴스에는 수많은 동성애 혐오발언들이 댓글로 달렸습니다. 대통령 후보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말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겠죠.
이에 2017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 Biphobia, IDAHOT) 공동행동은 “새로운 나라에 성소수자 혐오가 설 자리는 없다!”를 슬로건으로 걸었습니다. 올해의 의제는 △성소수자 군인 색출, 처벌 중단, 군형법상 동성애 처벌 조항 폐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성소수자에게 평등한 결혼할 권리, 다양한 가족 구성권 보장, △성교육 표준안 폐기입니다.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시민 필리버스킹 “새로운 대통령에게 말한다”> 문화제에서 들은 소중한 발언들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가장 큰 호응을 얻은 발언 중 하나는 육군 성소수자 색출 수사당한 A대위의 징역 2년 구형에 대한 군인권센터 상담지원간사 김형남의 발언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A대위의 무고함을 토로했습니다. “A대위의 직속상관이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에 따르면 A대위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군 복무에 임했다. 그런 A대위가 동성 군인과 성관계를 맺었다. 자기 집에서, 업무상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다른 부대 사람과, 상대방과 합의에 따라서 한 성관계였다. 동영상 유포한 적도 없다. 모범적으로 근무하던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갑자기 군인의 자격을 잃고, 호시탐탐 자신의 부하들을 노리는 잠재적인 성범죄자라도 되는 것인가.”
그리고 덧붙여 강조했습니다. “사회였으면 상상도 못 할 일들이 군대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아무도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판사도, 검사도, 헌병도, 다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부하니까, ‘까라면 까야 하기’ 때문이다. 구타, 가혹 행위, 성범죄 등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군인이라는 이유로 군사법원 뒤에 숨어서 군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주범은 누구인가. 누구는 군인이니까 동성애 하면 안 되고, 누구는 군인이라서, 장군이라서, 참모총장이라서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개 빳빳이 쳐들고 다닐 수 있는 이런 군대, 이런 나라, 이런 부조리가 판치는 군대를 믿고 국민들이 이 밤 발 뻗고 잠잘 수 있겠는가. 이런 군대에 우리 안보를 맡길 수 있겠는가.” 그가 강력히 촉구하는 것은 △군형법 92조6의 폐지와 △군사법원의 폐지입니다.
자신을 ‘FTM 트랜스젠더 청소년'이라고 밝힌 개인 참가자 새벽은 “사람들은 내 외향만 보고 나를 ‘여학생’이라고 부르며, 나의 짧은 머리를 보고 취업지도부는 여성스럽지 못해 면접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며 머리를 기르라고 말한다”라며 개인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어 자신이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부모라고 밝힌 성소수자부모모임의 라라는 “트랜스젠더도 자기 정체성대로, 나대로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 자기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트랜스젠더의 자살률은 50%가 넘고, 80% 이상이 우울증을 겪는다”라고 말하며 △수술 없는 성별 정정 △성 구분 없는 주민등록번호 법 △포괄적 성교육 △외과 수술과 호르몬 치료 비용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요구했습니다.
성소수자만이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성소수자들 역시 성소수자로서만이 아니라 복합적 정체성으로부터 오는 복수의 소수자성을 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수자일수록 소수자가 되기도 하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루카는 “나는 시스젠더 게이 유성애자이고,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활동가이고, 국가인권위원회 비정규직 노동자이면서, 청년이고, 한국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러나 어떤 이름의 나도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입을 뗐습니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가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인 이유는 부당한 질문을 계속해서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여성들에게 남성의 36%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고 일하겠냐고 묻는다. 동성애자 군인들에게 합의된 군인 간의 성관계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 묻는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차별을 감내하고서라도 박봉을 받고서라도 이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살해당하고 린치를 당해도 견디고 숨은 채 살아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 삶일지라도 나중을 기다리며 살 수 있겠냐고 묻는다. 대한민국과 정부는 지금까지 그렇게 우리에게 물어왔다”라며 국가를 규탄했습니다.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이유정은 “흔히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는 사회적으로 늘어나면 안 되는 존재들로 억압되고, 대중들에게 쉽게 희화화되기도 한다”라며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번 정부는 통합, 개혁, 소통 이 세 가지를 키워드로 야심차게 출발했다. 우리가 바라는 건 단 세 가지다. 소수자 배제 없는 사회 통합을, 소수자를 위한 사회 개혁을, 소수자와의 소통을. 새 정부는 응답해 주시기를 바란다”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 나영도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나영은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영부인은 아주 아름답고 상식적인 이성애 가부장 가족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문재인 시대는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제외시킬 수 있는 어떤 상식과 질서, 정상성을 기준으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분리하고 이제 아예 그 차별조차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또 그 상식과 질서에 어긋나는 누군가는 권리를 말한 자격조차 없이 배제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대하는 그런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그리고 감히 ‘우리 이니’ 앞에서 무지개 깃발을 들고 섰던 성소수자들이 벌써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 결혼과 출산하지 않는 여성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자유롭게 드러내고 떠드는 여성들은 계속 혐오의 대상이 된다. 강남역 사건 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수많은 이런 여성들이 이런 혐오 속에서 린치를 당하고 살해를 당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어지는 나영의 말은 이 글을 마무리 짓기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정상적인 존재여야만 권리를 획득할 자격이 주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로 인해서 세상은 이상해질 것이다. 지금의 정상성이 흔들리는 세상이 될 것이다. 혐오와 맞서는 과정은 감히 이 이상한 세상을 만드는 용기로 완성될 것이다.”
[1] 결과적으로 A대위는 징역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유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2] 이 대화를 들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아래와 같이 지적했습니다.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개인의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이지만 성 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됐던 차별금지법..계속 공약으로 냈었는데 이제는 후퇴한 문재인 후보에게 매우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 1분짜리 발언으로 인해 정의당은 다음날까지 350여 통의 응원전화와 1.5억 원의 후원금, 240여 명의 입당 문의를 받았습니다. 누가 성소수자를 ‘소수’라고 하였습니까? 누가 이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라고 말합니까? 누가 이들에게 힘이 없다고 말하나요?
[3] 차별금지법은 '성별, 연령, 인종, 장애, 종교, 성적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 처벌하는 조항이 포함된 법이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의회법 규정만으로는 실질적인 차별 방지에 미흡하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한기총을 비롯한 보수 기독교계에선 '성적 지향'이란 문구를 문제 삼아 이를 반대하고 있다.
[4] 뉴스앤조이 “문재인 대통령은 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했나”(2017.05.31.) 기사 중 엄기호 발언 발췌
[5] “문재인 대통령이 한기총 목사들과의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반 대 의사를 밝힌 이후,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는 대한민국바로세우 기제7차포럼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에 참가 한 문재인에게 항의하기 위하여 갔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청중들은 “나중에!”를 외쳤다. 이후 이 사건은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슬로건에 활용되었다.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사진은 2017 퀴어문화축제 의 슬로건이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