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곰젤리
며칠째 이어지는 열대야 탓에 오늘도 땀에 흠뻑 젖은 채 일어났다. 침대 아래로 손을 뻗어 핸드폰부터 확인해 보니 방송작가 유니온에서 보낸 이달의 뉴스레터가 눈에 들어왔다. 뉴스레터에는 방송작가 유니온 출범 8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안내, 그리고 10월부터 갱신될 방송작가용 표준근로계약서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7년 전 방송인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의무화가 시행된 이후 계약서는 매년 새롭게 갱신되고 있으며 계약서에 명기된 최저임금도 물가변동에 따라 매년 달라진다. 구체적인 변경 내용을 다 읽고 있을 여유가 없어서 부랴부랴 씻은 뒤 시리얼을 말아먹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SNS를 하던 중 막내작가를 상습적으로 성희롱한 PD가 징계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인터뷰에서는 피해자가 처음 몇 달간 혼자서 울분을 삭이다가 방송작가유니온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공론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아는 사람의 소개를 통해 일을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계 내에서의 평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까딱 잘못해서 ‘찍히는’ 날에는 그날로 밥줄이 끊기는 것이다. 특히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막내작가가 PD를 신고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방송작가 유니온이라는 노조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묻혀버렸을 수도 있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열차가 도착해서 콩나물시루 같은 차내에 몸을 끼워 넣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해서 여유롭게 사원증을 찍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처음 이 사원증을 받았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방송국 로고 밑에 당당하게 나의 사진과 직함, 이름 세 글자가 인쇄되어 있다. 나는 지금 이 방송국의 전속 작가로 일하고 있다. 신입 방송작가는 2년간의 전속 생활을 끝내면 프리랜서가 되어 내가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아직 업계 내 인맥이 없는 신입이 안정적으로 일하며 수입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과거에는 막내 때부터 바로 프리랜서로 일했기 때문에 회사를 위해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회사가 제공하는 복지는 하나도 누릴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계속 프리가 아닌 전속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현행법으로는 2년까지가 한계인 것이 조금 아쉽다.
사무실에 도착한 직후 바로 오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막내의 일은 주로 회의 내용을 받아 적는 것이지만 이따금 선배들이 내 의견을 물어볼 때도 있다. 예전에 본 신문기사에 의하면 방송작가유니온이 출범하기 전에는 막내작가들이 회의에서 의견을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때의 막내작가들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부당대우를 받으며 일했다. 막내는 선배들의 점심 식사를 메뉴가 안 겹치게 준비해야 했고, 믿기 힘들지만 선배네 집 청소를 하거나 아기를 돌보기도 했다고 한다. 작가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조연출의 일이나 촬영보조까지 해야 했다. 한마디로 막내라는 이름의 하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노조 덕분에 막내작가들도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업계 내 인식도 바뀌어서 제작진들은 이제 막내를 어엿한 동료로 인정하고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인 J선배가 특히 나를 많이 가르쳐주시고 계신다. 올해로 15년째 방송작가 일을 이어가고 있는 J선배는 입사했을 때부터 나를 챙겨주신 고마운 선배이자 내가 가장 존경하는 방송작가이다. 오늘도 선배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였다.
긴 회의가 끝난 후 J선배가 오랜만에 밥을 사주신다고 하여 근처의 냉면집으로 갔다. 벽에 걸린 TV를 보니 패널들이 무슨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특수고용직’라는 말이 여러 번 나왔다. 그걸 보던 J선배가 특수고용직이 뭔지 아냐고 물었다. 나는 들어본 적은 있는데 자세히는 모른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선배는 묘한 미소를 짓더니 옛날 같았으면 선배도 나도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말했다. 선배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방송작가는 특수고용직이라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회사원들처럼 방송국에 출퇴근하며 PD가 지시하는 일을 하면서도 프리랜서라는 신분 때문에 노동자가 아닌 창작자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노동자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혜택을 누리지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었다. 노동을 하는데 노동자가 아니라니,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의 방송제작자들은 법적으로 당당히 노동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노동자로서의 권익 역시 보호받고 있다. 방송작가 유니온 같은 노조들이 방송업계 각층에서 노력한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더니 선배가 아부 떠는 거냐며 웃었다. J선배는 방송작가 유니온의 창립멤버이다. 선배는 작가 일을 시작할 때 구두계약은커녕 노동조건에 대한 안내조차 받지 못했다. 모두들 그렇게 계약서 없이 일하고 있어서 이상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 첫 월급은 60만 원이었다. 3개월 동안 임금을 못 받아서 주말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며 지내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이 계약서에 명시된 지금과 달리, 선배가 막내일 때는 한 달 내내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새벽 3시에 퇴근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작가의 경력기간에 따른 임금 인상이 당연하게 자리 잡았지만 그때는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월급은 똑같았다고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하면서 정작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못 받는 아이러니를 선배는 참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던 중 친하게 지내던 동료 작가가 방송국 건물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선배는 방송작가유니온 출범에 앞장서게 되었다.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지금의 환경이, 선배는 아직도 꿈같이만 느껴진다고 했다.
오후에는 스튜디오에서 촬영이 있었다.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출연진들에게 대본을 브리핑해 줬고, 촬영 중에도 계속 현장에 남아 심부름을 하거나 메인작가님의 지시에 따라 대본을 수정하여 프롬프트로 보냈다.
쉬는 시간에 스태프들에게 생수를 돌리던 중 우연찮게 카메라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우리 프로그램은 외주제작사와 함께 만들고 있기 때문에 카메라 감독님은 외주사의 감독님이다. 촬영이 너무 힘들지는 않으시냐는 의례적인 물음에 감독님은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옛날에 비해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며 사뭇 진지하게 대답하셨다. 10년 전, 감독님은 외주 일을 하면서 자기가 사람이 아닌 기계의 부속품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당시에는 외주제작사가 본사로부터 무통보 계약해지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심지어는 선불로 받았던 계약금 이천만 원을 다시 내놓으라며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니 법적으로 대응할 방도도 없고 업계 내의 평판도 중요하기 때문에 외주제작사들은 본사의 갑질에 묵묵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본사에게 외주 제작사는 함께 일하는 협력자가 아니라 값싸게 굴려도 되는 을일 뿐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외주제작사들의 권익을 보호해 줄 다양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외주제작사들은 본사와 일할 때 법적으로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어있으며 중간에 계약을 해지할 경우 본사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고 배상을 해주어야 한다. 외주업체의 제작단가 역시 직능노조인 방송외주제작사연합의 노력 덕에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으며 그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던 본사의 자료실과 장비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외주제작사연합은 외주제작사와 본사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재하며 두 집단이 동등한 눈높이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여전히 비정규직이라는 벽은 존재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남아있지만 그래도 감독님은 요즘 신입들이 웃으며 일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고 하셨다.
촬영이 일단락된 후 스튜디오를 돌며 출연진들에게 오늘도 수고 많으셨다고 인사를 하러 다녔다. 우리 프로그램의 메인 MC를 맡고 계신 베테랑 예능인 분이 나를 보더니 자기는 신인 때 ‘수고 많으셨습니다’는 말 한마디를 듣는 게 꿈이었다고 하셨다. 그분이 처음으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는 야외 촬영을 할 때도 물 한 병 얻어 마시지 못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일해서 손에 쥔 돈은 3만 원이었고 촬영장을 떠날 때 누구의 인사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수고했다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기분이 좋다고 하신다. 오늘날에도 신인은 스타들에 비해 여러모로 차별대우를 받는 건 사실이지만, 신인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그들의 노력을 존중해 주려는 분위기가 스태프들 사이에 만연하다. 그리고 예능인들 역시 방송제작인들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램마다 계약서를 작성해서 편당 임금을 확실하게 지급받고 있다. 만약 임금 지급이 밀리면 신인이라도 언제든지 노조에 청원할 수 있다. MC님의 말을 들으며 옛날의 방송국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곳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저녁 시간까지 이어진 긴 촬영을 마치고 방송국으로 돌아왔다. 오늘 촬영장에서 기록한 것들을 간단히 정리한 후 퇴근하기로 했다. 1층에 내려 게이트를 통과하려고 사원증을 꺼내던 중 나와 반대 방향으로 들어오는 야간 스태프들과 마주쳤다. 예능국이나 드라마국 사람들인 것 같았다. J선배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야간팀이 따로 없어서 아침에 출근한 스태프들이 새벽까지 일했다고 한다. 저녁때 퇴근했다가 야밤에 회사로 호출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물론 야간수당이나 초과근무수당 같은 것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방송제작인 표준근로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에 따라 야간 근로자는 야간수당을 지급받는다. 아무리 야간 수당을 더 받는다고는 하지만 저녁에 출근해서 아침에 퇴근하는 그들의 삶은 여전히 고되다. 고갯짓으로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정문을 나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찬물로 샤워를 한 후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을 먹었다. 노트북을 꺼내 내일 촬영 스케줄을 확인하고 보도 자료를 작성하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오늘은 여느 때보다 유독 길게 느껴졌다. 금방 지쳐 잠들 줄 알았는데 어째 점점 더 정신이 말짱해진다. 오늘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지금까지 내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들이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오늘날의 방송업계 노동환경을 이뤄내기 위해 J선배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들은 그때 무슨 심정이었을까.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홀로 남은 사람들끼리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힘들면 그만둬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그들은 계속 버티는 쪽을 택했다.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의 반 타의 반의 믿음이 그들 안에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무수한 불빛이 되어 나에게까지 이어졌다. 2027년인 지금도 누군가는 새벽에 남아 일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언제 직장을 잃어버릴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오늘도 혼자서 눈물을 흘리며 일했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불을 밝히고 싶다. J선배가 그랬듯, 나도 먼 훗날 내 후배들을 보며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머잖아 올 그날을 꿈꾸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방송작가유니온,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2016.03.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영상 제작스태프의 근로환경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2011.11.
남지은, “자네 방송작가로 일해 볼 텐가 ‘헐. 값. 에’. 2015.04.05.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5489.html
차현아, “어느 방송국 화장실에나 울고 있는 작가 한 명 꼭 있다”. 2015.11.18.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6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