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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66호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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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편집위원회 Feb 24. 2024

모자이크

편집위원 포슬

모자이크: 우크라이나와 한국, 장애와 난민에 대한 소고(들)


※ 기사나 보고서 등을 인용할 때, 원문의 인명은 통일성을 위해 이니셜로 치환하였습니다.


※ 글쓴이의 변: 한 소설의 문장을 들고 와 보았습니다 (아마 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말을 주고받음으로써 서로를 진정으로 알게 되고, 서로를 매우 상세히 관찰하게 된다.” [1]이 짧은 인용구는 결코 닿을 수 없었던 존재들이 맞닿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 만남에는 전제가 있습니다이 이야기에서, ‘이곳은 포로수용소모두가 벌거벗은 생명으로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 이전에는 언제나 말이 이루어지는 ‘장소 ‘위치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를 뒤덮는 외피 없이서로가 서로를 단지 생명으로 마주하는 순간에서야 말은 연결과 공감을 가능케 합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말을 전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올해 들어 부쩍, 한국 바깥에서 누군가가 죽거나 다쳤다는 소식,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였다는 소식,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학살하고 있다는 소식이 더 빈번하게 들려옵니다(이러한 일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한국 바깥에서만 일어나는 일 또한 아니지만 말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소식을 전해주는 것은 언제나 뉴스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뉴스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국제기사는 직접 취재 대신 외신 기사를 번역하여 작성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기자의 사명에 대한 비판입니다. 겹겹의 가공을 거친 텍스트는 항상 ‘있는 그대로’를 마름질하여 제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여럿의 펜을 거친 기사는 언제나 부분적인 진실만을 담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의 질문 또한 던질 수 있습니다. 같은 별 위에서도 ‘그들’과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너무나 먼 거리를 둔 채 살아가는 ‘우리’는, 결국은 활자와 이미지를 통해 ‘그들’을 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그들’이 만나기 위한 일종의 전제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매개의 유무가 아닌, 매개의 종류에 관한 것이 됩니다. 바다 너머의 삶을 영위하는 우리는 ‘어떤’ 렌즈를 통해 ‘그들’을 만나야 할까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 곳의 이야기를 해 보았다면, 가장 가까운 곳의 이야기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너’와 ‘내’가 어디까지 ‘우리’로 묶일 수 있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대부분, 제가 걷는 길과 같은 길을 걷고, 제가 보는 풍경들을 똑같이 보고 살리라 생각합니다(적어도 같은 학교에 있는 동안은 말이지요). 하지만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감염병의 세가 약화하여 우리가 대면할 수 있게 된다 해도, ‘내’가 ‘너’를 온전히 만나고,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체성의 언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내’가 ‘너’의 삶의 이야기를 모두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상, 그 어떤 이야기를 듣든, 그 이야기를 진짜로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면대면으로 만나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의 말은 일종의 ‘렌즈’를 투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고민 위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변명을 들고 와 봤습니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은 각각의 맥락이 켜켜이 쌓여 있어, 지구 건너편에서 쓰이고 있는 하나의 글 속에서 온전히 풀어내기 어렵습니다. 직접 만나지도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지어 다른 언어로, 대리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가장 가까운 곳의 이야기 중에서도 ‘내’가 말할 수 없는, 혹은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너’의 이야기에 ‘내’가 불가분으로 연루되어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이야기는)내가 경험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며, 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또한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글은 여러 타인의 입을 빌린 일인칭으로 쓰였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삼인칭의 글,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존재’를 전달하는(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선언하는) 글, 그럼으로써 완결되고 깔끔하게 봉합될 수 있는 글, 그리고 그러한 글을 쓰는 행위는 자칫 제가 사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단언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누구’로부터 왔고, ‘왜’ 이러한 모습을 띠게 되었는지를 최대한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가능하다면, 이 글을 종착 지점이 아닌 경유지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독자분들께서 직접 이 글이 참고하고 있는 글과 영상들을 살펴보고, 이 글이 미처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직접 찾아오셔서 덧붙여 주셨으면 합니다. 어쩌면 제가 남의 글을 빌려 쓴 하나의 기사보다, 여러 사람이 대면하는 가운데 주고받는 발화에서 그나마 조금은 ‘있는 그대로’와 가까운 말이 가능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체념 증후군(Resignation Syndrome)’은 스웨덴의 난민 가정 아이들에게서 처음 관찰되었으며, 근래에는 호주의 난민 수용소에서 종종 발견되는 희소병입니다[2]저는 〈체념 증후군의 기록(Life Overtakes Me)

〉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이 질병을 처음 접했습니다이 작품에는 체념 증후군을 겪고 있는 세 명의 아동이 등장합니다이 세 아이들이 보이는 증상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존재합니다이들은 점차 자극에 무감해지며심한 경우 길게는 몇 년까지 이어지는 혼수상태에 빠집니다전문가들은 본국을 떠나며 얻은 정신적 외상과 언제 강제 송환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러한 증상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합니다성인 유병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이 질환을 겪는 존재는 대부분 아동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긴 혼수상태에 빠진 아이들의 상태를 ‘백설 공주’ 혹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의 동화적인 비유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유는 이들이 짊어져야 했던 끔찍한 상황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습니다. 다만, 똑같은 상황을 겪고도, 가족 중 아이에게서 유독 체념증후군이 자주 발생한다는 점은 주목해 볼 만 합니다(이는 질병에 동화적 비유가 동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쩌면, 이는 같은 사건들을 헤쳐 나갔다고 여겨지는 이들 가족이, 실제로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각자가 경험한 사건이 각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다가갔고, 이들 중 유독 충격에 취약하게 반응한 존재가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지요. 질환의 발생이 곧바로 더 많은 고통, 더 강한 피해자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난과 박해에 있어 가장 취약한 계층 중 하나인 어린이들에게 이 특징적인 질환이 종종 발견된다는 점은 이들의 상황, 그리고 그에 따른 필요가 어른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체념 증후군의 기록〉에서 살펴본 ‘가족’이라는 범주를 ‘난민’ 전체로 넓혀보겠습니다. 뉴스나 저널에 종종 등장하는 ‘난민 문제’, 혹은 ‘난민 이슈’와 같은 말들은 ‘난민’이라는 집단의 테두리가 배타적이라는, 다른 의제들과 분리되는 ‘난민’만의 고유한 문제 지점들이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물론, ‘난민’, 그리고 이들이 경험한 박탈은 분명 난민이 아닌 이들과는 구별됩니다. 그러나 소위 ‘난민 집단’으로 통칭하는 인구 안에도 하나하나 호명하기 벅찬 수많은 개인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일차적으로는 난민들이 국가의 경계 바깥으로 밀려나는 이유가 매우 다양한 까닭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난민의 형상은 아프가니스탄 혹은 우크라이나의 사례와 같이, 전쟁이나 내전으로 인해 거주지를 잃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여성, 성소수자, 장애, 소수민족 혹은 종교 등 정체성에 따른 박해 또한 난민화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차적으로, 같은 이유로 ‘무국적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본국을 탈출하고, 수용국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다양한 필요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난민’이라는 집단은 수많은 정체성과의 교차지점에서만 온전하게 파악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몇몇의 사례와 글들을 훑어가며 소수자 난민, 특히 장애를 지닌 난민의 이야기를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소수자 난민은 매우 다양한 정체성을 가로지르는 분류이지만, 그중에서도 장애를 지닌 난민에게 집중하는 이유는 아마도 많은 경우 이들의 이야기가 난민 정체성의 핵심에 놓여있는 (말 그대로의, 그리고 은유적인)‘이동 불/가능성’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먼저, ‘장애를 지닌 난민’의 지위를 이야기하기 위해 다양한 국가의 사례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이 중 두 국가에 집중하여 난민과 장애인의 교차지점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논의해 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난민을 이야기함에 있어, ‘소수자 난민’의 논의가 왜 필연적인지에 관해 이야기 해 볼 것입니다. 거창하게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 글 자체가 장애를 지닌 난민을 이미지이자 활자로 취급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이 글은 미결된 상태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국가의 소수자 난민들, 난민과 장애라는 지위, 저와 당신의 위치 등등 여러 가지의 무언가를 연결하고자 하지만 결국은 연결 불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이 적절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혹은 보강해야 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는 독자분들께서 읽고, 나누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난민이라는 인구에는 언제나 소수자 난민이 존재하며, 다양한 소수자 난민 중에서도 ‘장애 난민’이 존재합니다. 당연하게도, 이동 중과 정착 과정에서 장애 난민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소위 ‘정상적인 몸’과는 다소 다른 것들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이들이 지닌 필요는 늘 생존이라는 최저선에 밀려납니다. 이는 많은 경우, 난민을 지원하는 측에서 한정된 자원을 극한상황에 처한 개인에게 분배할 때 생존에 대한 요구를 최전방에 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욕구의 재배열, 혹은 욕구의 ‘정치’는 상상을 제한합니다. 여기서 소수자 난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난민화된 삶에 대한 이미지가, 가장 ‘정상적인’ 몸에 대한 상상으로 기울어 있다는 점입니다. 상상의 편중은 곧 인식의 편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정상 신체’의 생계 유지가 곧 난민 지원의 핵심인 것으로 말이지요. (몸의) 정상성에 대한 각본이 난민의 각본과 포개어지는 이 현장에서, 소수자 난민의 상황은 절대로 그가 놓인 사회의 맥락과 분리하여 파악될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각자의 난민이 겪는 어려움은 수용국뿐 아니라 본국의 사회적인, 제도적인, 문화적인 맥락에 따라 판이하고 나아가 소수자 난민의 경우, 해당 사회가 어떻게 소수자성을 배제하는지에 따라 그 곤경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예로서, 그리스 소재의 난민들을 다룬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해당 보고서에서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의 연구자인 C는 “유감스럽게도, 장애는 누구에게도 우선순위가 되고 있지 않았습니다(Unfortunately, disability was not prioritized by anyone).”라고 이야기합니다. C를 포함한 휴먼 라이츠 워치 연구원들에 따르면, “특히 숨길 수 있는 장애를 가진 경우, 이들은 접수와 신원확인 단계에서 간과되(people with disabilities have been overlooked by the Registration and Identification Service, particularly those who have hidden disabilities)”며, 이는 곧 장애 난민의 집계와 지원의 어려움으로 이어집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의 코디네이터인 B는 그 원인을 당국의 난민 심사 절차 속에서 파악합니다. “접수 시스템은 심사 과정에서 신체, 혹은 시각장애와 같이 ‘명백한’ 장애를 이르는, 장애에 대한 상당히 좁은 정의를 채택합니다. 정신장애는 따로 범주화되어 있으며 충분히 파악되지 못하고 있지요. 지적장애는 파악되지조차 못합니다(the reception system takes a very narrow definition of disability in their screening – typically very overt disability such as physical or visual impairment. Mental disability is categorized separately and under-identified. Intellectual disability isn’t even screened)”[3].

  가장 최근에 대중의 이목을 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장애 난민의 사례가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영국으로 향한 우크라이나 난민의 경우, 영국의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인 생체 인증 절차가 지원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BBC의 한 기사는 삼 주가 넘는 시간 동안 동생의 영국행 비자를 기다려야 했던 영국 소재 우크라이나인 F의 사례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F의 동생은 뇌성마비로 인한 전신 마비 증상이 있습니다. 기사는 이 점 때문에 생체인증여권[4]의 발급이 지연된 것이 늦은 비자 발급의 원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5]또 하나의 사례에서영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K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필요한 장애가 있는 조카가 복잡한 생체인증시스템으로 인해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중간 지점인 프랑스에 불안정하게 거류해야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K의 조카에게 이러한 불안정성이 더욱 가혹했던 까닭은 충분한 신분증명 서류가 구비되지 못한 탓에 프랑스에서도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6][7].

  한편, 장애 난민들은 지위를 인정받은 후에도 다양한 어려움과 맞닥뜨립니다.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장애 난민 캠프 현황을 취재한 한 보고서에서는 난민 심사 자체의 문제와 더불어, 수용 이후 지원의 주체가 맞닥뜨리는 문제를 짚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캠프가 의존하고 있는 비영리단체의 재정 부족, 인력 부족으로 인해 주거지가 안정적으로 공금 및 관리되지 못하고 있으며, 의료지원 또한 미진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비추어, “장애를 지닌 사람들, 그리고 노인들의 필요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고 있 (the need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and older persons are not sufficiently being taken into account in the response)”으며, “장애와 포괄성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minimum standards of disability and inclusion criteria were not being met in Rohingya displacement camps)”는 것이 보고서의 주장입니다. 캠프의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취약 계층 난민의 필요는 한없이 뒤로 밀리고 있는 것입니다[8].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2015년, 파키스탄 출신 난민 아동 M의 사례가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M은 중증뇌병변장애가 있어, 등하교를 비롯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활동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은 난민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2017년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재외동포 및 외국인 중 장애인 등록이 가능한 자를 명시하는 법안 제32조의 2 에 ‘난민’이 추가되었고 M은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법안과는 별개의 복지부 지침에 따라 M을 비롯한 ‘비국민’은 여전히 ‘사업 제외 대상’으로 분류됩니다[9]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캠프의 경우와는 다소 다르지만, M 또한 제도적인 차원에서 자국민’ 위주로 설정된 한국 복지 우선순위에서 미끄러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수많은 사례 중, 두 국가의 경우에 집중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크라이나의 경우입니다. 우크라이나 내 장애 난민(여기서는 ‘난민’을 국가 경계를 넘는 데 ‘성공’한 사람들뿐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살 곳을 잃은, 혹은 삶의 조건이 더욱 악화된 사람들을 통칭하기 위해 사용하겠습니다)의 사례는 피란을 시도한 경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난 5월, 디서빌리티 라이츠 인터내셔널(Disability Rights International)은 우크라이나의 4개 보육시설과 장애 시설을 방문하여 그 실태를 점검하였습니다. DRI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의 참상이 가장 큰 동부 아동 시설의 어린이들은 대부분 피난을 갈 수 있었지만, 장애의 정도가 덜하거나 장애가 없는 아동만이 폴란드, 이탈리아, 독일 등의 인근 국가로 이동할 수 있었고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한 아동은 국내, 그중에서도 서부 시설로 이동하였습니다. 이에 더해, 장애 정도가 심한 아동은 동부에 남기도 했습니다. 해당 시설에 방문한 DRI는 시설 내 인력부족으로 인해 이들 아동을 위한 적절한 지원이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발견하였습니다[10][11].

  이 지면에서 DRI의 조사관들이 목격한 장면을 일일이 묘사하는 것은 글의 맥락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문제의 요지를 비끼는 서술일 터입니다. 오히려, 제가 쓰고 있는 이 글과 보고서가 지니는 두 가지의 접점, 그리고 난민과 장애의 교차성을 사유할 수 있는 두 가지 단초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DRI의 보고서는 난민이 될 수 있음과 없음,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난민화를 야기하는 사건으로부터 피할 수 있음과 없음을 판가름하는 기준으로서 장애와 나이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그려냅니다. 보고서가 이야기하듯, 장애가 있느냐, 없느냐, 얼마나 많은 지원을 요하는 장애를 지니느냐 등의 요소는 위험지역으로부터 대피할 수 있음/없음을 나누는 강력한 기준으로 작동하였습니다. 둘째로, DRI 조사관들의 기술은 ‘시설화’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난민과 장애의 위치가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합니다[12]시설화란 지배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보호/관리의 대상으로 규정하고사회와 분리하여 권리와 자원을 차단함으로써 불능화/무력화된 존재로 만들며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제한하여 주체성을 상실시키는 것으로 정의됩니다[13]. DRI가 기록하는 장애인들은 시설에 수용되어 있다는 이유 외에도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를 박탈당했다는 점[14]그럼으로써 불능화/무력화된 존재로서의 삶을 강요받는다는 점에서 명백히 시설화된 존재들입니다이 이야기에서 침공의 흔적이 그리 자주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그러나 바로 이 시설화되어 있다는 점에서장애와 난민이 만날 수 있는 두 번째 접점이 드러납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두 번째 국가는 바로 한국입니다. 작년 11월, 일명 ‘새우꺾기’라 불리는 가혹행위를 포함하여, 외국인 수용시설 내에서 자행되어왔던 수많은 인권침해 사건들이 대중의 공분을 산 적이 있습니다[15]해당 사건에서보호소 내 HIV 감염인이 외부와 전혀 소통할 수 없는 상태로 감금된 점각종 질병을 앓는 입소자들이 적절한 의료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점 등이 문제로 부상한 바 있습니다그러나문제는 비단 사안의 핵심에 놓여 있던 화성외국인보호소의 조치에 국한되지 않습니다오히려해당 사안에는 한국의 난민이 맞닥뜨리는 구금과 감시의 체제그리고 더 거시적인 시설화의 논리와 맞닿는 지점이 존재합니다

  2019년, 장애여성공감은 ‘IL과 젠더 포럼’을 개최하여 탈시설 운동의 확장적 가능성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이 포럼의 일환으로 연재된 한 글에서는 ‘난민의 시설화’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고은지 활동가는 2010년, 인천 영종도 일대에 출입국외국인센터를 설립하겠다는 법무부의 판단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대를 살펴보고 있습다. 마치 장애의 탈시설이 말 그대로의 시설에서 벗어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 사회에서 살아갈 기반을 가꾸는 것을 의미하듯, 난민의 시설화 또한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출입국외국인센터라는 ‘시설’이 입소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제도를 통해 그들의 “삶에 대한 통제”를 박탈한다면, 퇴소 후에는 다른 종류의 ‘시설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예멘 난민에 대해 한국의 정부와 사회가 보인 태도가 이를 방증합니다. ‘진짜 난민’과 ‘가짜 난민’을 가려내겠다는 시민사회의 결의 하에, 예멘 난민들은 일상적인 감시 하에 놓였고, 심지어는 “가급적 집 밖을 나서지 않”아야 한다는 훈계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고은지 활동가에 따르면, 난민은 이렇듯 “정치 공간이 구성되기 위해 필수적인 외부, 즉 내부에 존재하는 외부”로서 국민국가 정체성을 획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됩니다[16]마찬가지로김연주 활동가는 자유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외국인보호소의 시설로서의 면모와 함께출입국 동향조사라는 명목으로 외국인들의 일상을 낱낱이 감시하는 제도의 폭력성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17]이 두 글 모두종래 장애 운동의 의제로 여겨져 왔던 탈시설과 난민 인권 운동의 교차지점에 대한 고민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일라이 클레어는 『망명과 자긍심』 2판 서문에서 장애 활동가와 교도소 인권 활동가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러 공동체와 쟁점을 가로지르며 이어지는 대화 – 폭력, 격리, 강제 불임 시술, 생체 실험, 시설의 잔인함과 무관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고통스럽겠지만 지극히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대화는 장애를 야기하는 동시에 장애인을 가두는 서로 맞물린 권력 구조를 폭로할 것이다”[18]이 책에서 특히나 흥미로운 것은 클레어가 이라는 은유를 활용하는 방식입니다이 책의 한 장에서클레어는 퀴어 몸을 지닌 자신이 정치적 퀴어 공동체를 찾았을 때의 감정을 집을 다시 찾은 것[19]에 비견합니다그리고 그 후그는 몸이 진정 으로서 감각되기 위한 조건들을 고찰합니다.

  일라이 클레어의 글에서, 우리는 다양한 억압이 교차할 수 있는 ‘다중 쟁점 정치’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억압, 퀴어에 대한 억압, 난민에 대한 억압이 긴밀히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우리는 조금 더 복잡하고, 조금 더 모호하며, 어쩌면 조금 더 정확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정치의 장 안에서 오고 가는 말의 내용뿐 아니라, 말이 어떤 매개를 통과하여 오고 가는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공감의 통화(通貨)”[20]로서의 이야기(내러티브)를 말하고자 한다면그것이 어떤’ 이야기인지와 더불어 '누가', '어떻게’ 그 이야기를 말하는가가 중요할 터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미리 설정해 놓은 궤도에 따라 여러 이야기를 짜맞추는 형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말하기가 예측가능함을 벗어나지 않고 안정적인 마무리를 얻었다는 사실 자체가, 당초 시도했던 연결의 불가능성을 방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의 교환, 그리고 그를 통한 공감은 안정성이 아닌 불안정성 속에서, 예측가능성이 아닌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만 정말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맥락에서, 이 글이 한편으로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으로 읽힌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 여러 텍스트를 경유하여 –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읽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1] 에르펜베크, 예니. 『모든 저녁이 저물 때』. 배수아 옮김, 한길사, 2018, 105.

[2] Pressly, Linda. “Resignation Syndrome: Sweden’s Mystery Illness.” BBC News, 26 Oct. 2017, https://www.bbc.com/news/magazine-41748485.

[3] Morgan, Jules. “Disability – a Neglected Issue in Greece’s Refugee Camps.” The Lancet, vol.389, 2017, p.896.

[4] 개인 생체정보가 담긴 칩이 내장된 여권. 개인정보 도용과 테러 방지를 위해 말레이시아에서 1998년 최초로 도입되어 2019년 중반에는 150개국에서 도입하였다. 영국의 경우, 빠른 입국을 위해 생체인증여권의 사3용을 권고하고 있다.

“What are Biometric Passports?” PostOffice, https://www.postoffice.co.uk/identity/biometric-passports.

“Over 60+ Countries Now Issuing ePassports – FindBiometrics.” FindBiometrics. 30 December 2008, https://web.archive.org/web/20170406111611/http://findbiometrics.com/over-60-countries-now-issuing-epassports-2/.

[5] Miskin, Stephanie. “Disabled People ‘Forgotten Victims in Ukraine’.” BBC News, 9 May 2022, https://www.bbc.com/news/uk-england-stoke-staffordshire-61174854.

[6] Manning, Lucy and Sarah Bell. “Ukraine: My Disabled Nephew has a Home in UK – but is Stuck in Paris.” BBC News, 25 Apr. 2022, https://www.bbc.com/news/uk-61178099.

[7] 위에서 언급된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장애를 지닌 난민은 이동과 난민 심사의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이동을 하는 데 불편을 겪는 장애인은 타국으로의 피란은 물론이거니와 자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공격으로부터 대피할 경우에도 다양한 곤란을 겪고 있다. 나아가, 다양한 난민 심사의 사례는 심사관들의 장애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짐을 방증하고 있다. 예컨대, 장애인은 이동, 노동, 적절한 교육 등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로부터 탈출하여 망명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난민심사장에서 장애인의 이러한 삶의 불가능성은 박해(persecution)가 아닌 단순 차별(discrimination)으로 간주되기 일쑤이다. 나아가, 정신장애 및 지적장애를 지닌 난민의 경우,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증명 (본국을 탈출한 이유가 되는, ‘공포’의 피력)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보호자가 당사자의 이해를 대리하기도 한다. Crock, Mary et al. “Where Disability and Displacement Intersect: Asylum Seekers and Refugees with Disabilities.” International Journal of Refugee Law, vol. 24, no. 4, 2013, 743-750.

[8] Landry, Michel D. "Disability and the Rohingya Displacement Crisis: A Humanitarian Priority." Archives of Physical Medicine and Rehabilitation, vol. 99, 2018, p.2122

[9] 최한별, 「장애인 등록 가능해진 '난민' 아동 미르가 활동지원 못 받는 이유」, 비마이너, 2018.01.05.,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50.

[10] Rosenthal, Eric et al (Disability Rights International). “Left Behind in the War: Dangers Facing Children with Disabilities In Ukraine’s Orphanages.” 5 May 2022, p.1.

[11] 위의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해당 시설의 현황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언어이다. 그러나 반대로, 해당 시설들의 실태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을 가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글에서는 DRI의 보고서에서 조사 결과를 요약하는 방식을 인용하고자 한다. “DRI 조사관들은 묶여있는 아이들, 전혀 움직이지 않는 채로 침대에 놓여있는 아이들, 어두컴컴하고 환기가 되지 않는 방에 배정된 아이들을 발견하였다. 인력이 너무나 부족하기에, 이 방들은 똥오줌 냄새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감정적 방치의 결과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자해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곳의 직원들은 (물리적) 제제 외에는 이러한 행동에 대응할 자원과 지식이 전무하다(DRI investigators observed children tied down, left in beds in near total inactivity, and held in dark, poorly ventilated rooms that are so understaffed that they are enveloped in smells of urine and feces. Children rock back and forth or self-abuse as a result of years of emotional neglect. Staff have no resources or knowledge about how to respond to this behavior other than to restrain them for much of the day)”. Rosenthal, Eric et al. 위의 글.

[12] 우크라이나의 시설화 실태는 역사적인, 그리고 제도적인 맥락 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 내에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수의 아동이 시설에 위탁되어 있었다. 구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의 위탁 시스템은 국가에 아동을 맡기는 것을 최대한 용이하게 하였는데(러시아 제국은 18세기부터 아동에 대한 시설 돌봄을 시작하였으나,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의 기획은 훨씬 포괄적이었다 – 보육원은 새로운 개인의 산실이자,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인민의 보육장치로 여겨졌다(However, the Russian project, inspired by the ideas of the Enlightenment, was more far-reaching: the foundling homes were envisioned as incubators of an entirely new type of individual and as the breeding ground for people who would be especially useful to their nation)”. 이렇듯, 러시아 제국 내에서 아동의 시설화는 사회 주변부의 아동들(소수민족, 빈곤층 등)을 ‘국민’으로 변모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볼셰비키 혁명을 거쳐 세워진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시설화를 더욱 정려하였는데, 대표적으로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볼셰비키 파는 모든 아동은 “국가의 아이(state children)”로서, 통합된 양육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때부터 1926년에 이르기까지 입양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아동 시설을 고도화하려는 전략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끝을 맺게 된다. 1991년에 이르러서야 실질적으로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우크라이나 또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기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위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Dobrova-Krol, Nataliya A. and Marinus H. van IJzendoorn. “Institutional Care in Ukraine: Historical Underpinnings and Developmental Consequences.” Child Maltreatment in Residential Care, edited by Adrian V. Rus et al., Springer Cham, 2017, pp. 219-224.), 이렇듯 유럽에서 가장 많은 수의 아이들이 시설화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제도적 기억이 일조했으리라 여겨진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내에는 특히 장애를 지닌 아동의 경우 가족이나 지역사회보다 시설에서 더 전문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만연해 있었다(Clegg, Ruth. “Ukraine Orphanages: Children Tied Up and Men in Cots.” BBC News, 27 Jul. 2022, https://www.bbc.com/news/disability-62226636.).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2021년 변화의 조짐을 보이게 된다. 우크라이나의 아동 및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의혹이 불거짐에 따라, 유엔에서 우크라이나로 특별 조사위원과 전문가로 구성된 통신망을 구축 및 파견한 것이다. 이들은 시설의 인권 침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장애를 지닌 아동과 성인을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우크라이나의 시설화 정책을 비판하였다(Rosenthal, Eric et al. 위의 글). 유엔의 권고는 이후 2017년부터 진행되고 있던 우크라이나의 시설 개선 정책(National Strategy for Reforming the System of Institutional Care and Upbringing of Children for 2017-2026)과 합쳐져, 2026년까지 아동돌봄시설을 전면 개편하는 동시에 최대한의 아동 탈시설을 추진하는 기획으로 이어졌다(Kryvachuk, Liudmyla. “Transformation of Social Services in Ukraine: the Deinstitutionalization and Reform of the Institutional Care System for Children.” Labor et Educatio, 2018, 144.). 그러나 여기서도 장애를 지닌 아동은 배제되었다. 2022년까지 수천 명의 아동이 가족형 시설(family-style group home)로 이관되는 와중에도 장애를 지닌 아동은 계속해서 이전 시설에 머물렀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였다(Clegg, Ruth. 위의 기사.). 러시아 침공 후 정책의 중단과 함께 장애를 지닌 아동은 DRI 보고서에서 드러나듯 이전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전쟁 이전 우크라이나의 아동 시설화 실태에 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 보고서를 참고. The Illusion of Protection: An Analytical Report Based on the Findings of a Comprehensive Study of the Child Protection System in Ukraine. Hope and Homes for Children, 2017, https://gdc.unicef.org/resource/analysis-child-protection-system-ukraine,  Pamphlet.

[13] 조미경. 「장애인 탈시설 운동에서 이뤄질 ‘불구의 정치’ 간 연대를 기대하며」. 『시설사회』, eBook, 장애여성공감 엮음, 와온, 2021, 109.

[14] DRI의 한 위원은 다음의 사례를 기록한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A입니다. 반가워요.” 영어를 어디서 배웠는지 묻자, A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TV를 보면서 배웁니다. 미국으로 오고 싶어요.” 우크라이나어 몇 줄을 배우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던 본 조사위원은 당혹스럽다. 이 젊은 여성, ‘어린이 시설’에서 자랐으며 직업 훈련 외의 고등교육은 받지 못한 이 여성은 영어 문구들을 독학했고 그것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A가 십대 시절 약간의 직업훈련을 받았다 한들, 그는 그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가 속한 시설의 다른 아동과 성인들을 위해 채소를 재배하는 일만을 해야 한다. 그 자신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그 자신만의 집에 살고, 그 스스로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고 싶어함에도 불구하고(“Hello! My name is A. Welcome.” When asked how she learned English she reports, “I learn English from watching TV. I want to come to America.” This reviewer is perplexed because she has been struggling to learn a few phrases of the Ukrainian language (without success). And yet this young woman, who was raised in a “baby home” and received no higher than a vocational education, is teaching herself English phrases and knows how to use them correctly. In fact, while A. has received some vocational education training when in her teen years, she is now made to work in the fields raising vegetables for herself and the other children and adults who live in her institution, even though she would like to pursue a different career and live in her own home and be able to make her own decisions)” (Rosenthal, Eric at al. 위의 글. 7-8.).

[15] 외국인보호소는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마땅히 거주할 장소가 없거나, 거주할 수 없는 외국인들이 향하는 곳이다. 해당 사안에서 특히나 문제가 된 지점은,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 독방에 가두는 조치인 ‘특별계호’가(조치 자체도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지만) 기준 없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었던 점, 게다가 ‘특별계호’ 조치를 받은 사람에게 포승줄, 수갑, 머리보호장비 등을 무단으로 씌워 고문과 다름 없는 폭력을 가한 점이었다. 허민지, 「구금자 고문한 화성외국인보호소 … “차라리 교도소가 낫다”」, 비마이너, 2021.09.29., http://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26

[16] 고은지, 「난민의 피로 자신의 피난처를 찾는 대한민국」, 비마이너, 2019.05.29.,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73

[17] 김연주, 「난민은 어떻게 시설에 갇히는가」, 비마이너, 2019.09.18., http://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33.

[18] 클레어, 일라이. 『망명과 자긍심』. 전혜은, 제이 옮김, 현실문화, 2020, 30-31.

[19] 클레어, 일라이. 위의 책. 56.

[20] 임옥희. 『팬데믹 패닉 시대, 페미-스토리노믹스.』 도서출판 여이연, 2021., pp.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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