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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68호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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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편집위원회 Feb 24. 2024

해체될 가족

수습편집위원 데어

  지난 초여름,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 학교 가는 길에 버스를 탔다. 버스는 반포대교를 건너, 종로구를 가로질러 학교로 향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기 위한 연등 아래로 지난 몇 년간 늘 그랬듯이 현수막이 여럿 걸려 있었다.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현수막이 대부분 그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 현수막들에서 생활동반자법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양성 기초 혼인 제도 파괴”

“대한민국 헌법과 민법 등을 파괴하는”

“혼인율 급감, 사생아 급증 초래하며 헌법과 민법, 건강가정기본법 등에 반하는”

가족구성권 3법의 발의 이후 혐오 세력 단체는 본문과 같은 문구의 플랜카드를 걸었다.

이 혐오 세력의 입장에서 생활동반자법은 현재 유지되고 있는 가족 체계를 바꾸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매우 문제적이며 가족을, 나아가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이다. 


하지만 왜? 가족의 해체는 왜 위기이지?      



가족구성권 3법과 정상가족


  생활동반자법은 정의당 용혜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가족구성권 3법 중 하나로, 격렬한 찬성과 반대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생활동반자법이 동성 파트너를 명시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단체의 관심을 유독 많이 받고 있기는 하지만, 가족구성권 3법 모두 기존 ‘정상가족’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국가의 제도 내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첫 번째로 혼인평등법은 민법을 일부 개정하는 법안이다. 민법 제4편 친족 중 제3장은 혼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민법상 혼인은 ‘~하면 혼인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면 혼인하지 못한다’의 형식으로 다뤄지는데, 대표적으로는 근친혼과 중혼의 금지 등이 있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고, 당사자 쌍방과 성년자인 증인 두 명이 연서한 혼인신고서가 접수되면 수리되어야 한다. 즉, 민법상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명시적 조항은 없다. 그러나 혼인신고 과정에서의 관습적인 차별로 인해 동성 부부가 혼인신고서를 제출할 경우 수리되지 않거나, 혹은 담당 공무원이 접수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에서 동성 부부는 법적으로 혼인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며, 서로의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이 관습적 차별 뒤에서 동성혼 합법화 반대 측은 헌법 제36조 제1항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에서 '양성'이라는 단어가 남녀를 뜻한다고 주장하며, 동성 부부의 혼인신고서 불수리는 민법의 상위법인 헌법에 합치되는 조치라고 말한다(이에 대한 법학자들의 견해는 차이를 보인다). 용 의원을 비롯한 12명 의원이 공동 발의한 혼인평등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혼인의 성립을 이성 또는 동성의 당사자 쌍방의 신고에 따라 성립하는 것으로 규정하여 동성 부부의 권리를 명시한다.


  두 번째로, 비혼출산지원법은 현행 모자보건법의 일부 개정안으로, 체외수정과 인공수정 등 보조생식술 시술 시 정부 지원 대상을 난임 부부로만 한정하고 있는 것을 개정하는 법안이다. 모자보건법 제2조(정의)에서 “난임”이란 사실혼 관계를 포함하여 부부가 “피임을 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부부간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아니하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보조생식술 시술 시 정부의 지원을 받길 원한다면, 여성은 혼인 관계에 있거나 사실혼이라 인정되는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비혼출산지원법은 법률안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파트너가 없는 비혼 여성이더라도 그가 임신을 원한다면 보조생식술 등의 출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올해 초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 사유리 씨의 경우 비혼인 상태로 아들을 출산한 후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 시술이 가능하다는 말에 일본에서 해외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 시술로 임신했다고 말했다.[1] 한 기사에 따르면, 산부인과에서는 '현행법상 법적 혹은 사실혼 부부만 가능하다'라는 이유로 비혼자의 시험관 시술을 거부한다고 한다. 비혼자의 출산이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면 '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 때문에 안된다'라고 답한다고 한다.[2] 비혼출산지원법은 혼인평등법 공동발의 의원 전원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 김홍걸 무소속 의원 등 총 14명이 발의에 이름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룰 생활동반자법은 기존의 혼인, 혈연, 입양이라는 가족을 구성하는 세 가지 방법 이외에 생활동반자관계라는 새로운 법적 관계를 만들어, 혼인 중이 아닌 성인 두 명이 서로를 생활동반자 관계로 등록할 경우 혼인과 비등한 법적 권리를 보장받고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명시한 제정법이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팍스)’과 비슷한 형태를 갖는 생활동반자법은 동거 및 부양ㆍ협조의 의무, 일상가사대리권,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책임 등 혼인에 준하는 의무와 권리를 부여한다. 생활동반자법에는 비혼출산지원법에 이름을 올린 의원 모두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총 15명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위 세 법안은 전통적인 가족관과 도덕 즉, 정상가족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들이 부정하고자 하는 ‘정상가족’이란 무엇일까?


  정상가족이란 이성異性 부모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전형적인 핵가족을 지칭한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가족 형태를 ‘올바른’ 가족 형태라고 규정하고 이외의 가족 형태를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인식은 ‘결손가정’, ‘편모, 편부가정’이라는 단어에서도 나타난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정은 “어느 부분이 없거나 잘못되어서 불완전”한 가정이며, 부모 중 한쪽이 없는 가정은 “치우친” 가정이다.


  한국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민법 제779조와 건강가정기본법에도 드러난다. 민법 제4장 친족 중 제779조(가족의 범위)와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정의)에서는 ‘가족’과 ‘가정’을 각각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 제1항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


제3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개정 2018. 1. 16.>

1. “가족”이라 함은 혼인ㆍ혈연ㆍ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

2. “가정”이라 함은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ㆍ양육ㆍ보호ㆍ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단위를 말한다.

2의2. “1인가구”라 함은 1명이 단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생활단위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가족을 이러한 법적 정의에 따라 생각한다. 가족은 언제나 혼인과 혈연, 입양을 통해 이루어지며 구성원 간의 감정은 그보다 덜 중요하다. 왜냐하면 피는 물보다 진하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니까. 하지만 나는 가족을 이루는 데에 가장 중요한 건 친밀감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가족인 이유는 우리가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르기로, 다시 말해 서로를 아끼고 돌보고 책임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빌려, 앞으로 현행법률상 가족관계를 인정하는 혼인, 혈연, 입양으로 구성된 가족, 즉 건강가정기본법상 가정이라고 칭하는 가족을 ‘그 가족’, 법률상 가족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돌보고 같은 공간을 나누겠다고 결정한 이들을 ‘가족’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그 가족'이 하는 것


  '그 가족'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게 무조건 나쁘다거나 해악의 근원이라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살아가며 보호와 애정을 필요로 하고, 그건 단지 어린 시절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취약하고, 우리는 서로의 취약함을 보완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이는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나 민간의 보험, 사회복지법인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쉽게 상상하는 개인적인 지지는 아마도 '그 가족'일 것이다. 


  농업 사회에서 여러 세대의 가족 구성원이 모여 사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농업이라는 것은 한두 사람의 노동력으로 돌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족의 모든 사람들은 같이 일을 하고 서로를 부양하는 상호 협력 체계 속에서 살아갔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며 임금노동자가 늘어나고, 한두 사람의 임금으로 한 가족이 먹고사는 것이 가능해졌다. 아들은 결혼 후 독립하여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아버지, 가정 내 재생산 활동을 전담하는 어머니, 그들의 미혼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 체제가 발달했다. 핵가족은 이러한 분업 구조를 통해 효율적으로 사회를 유지·발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때 '그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집단으로서 크게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첫 번째는 개인에게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정서적인 안정을 제공한다. 두 번째로 사회에게 새로운 구성원을 공급하고 인구를 재생산하는 경제적 기본 단위의 기능을 한다. 


  그래서 국가는 '그 가족'의 정의를 규정하고 그 역할을 법률에 명시함으로써 혈연, 혼인, 입양으로 연결된 관계에 권위를 부여한다. 가족구성권연구소는 한국 현행법 조항 중 '가족'을 언급하는 240개 조항은 민법 제779조의 영향을 받으며, 이 조항에 따라 "주거, 의료, 돌봄, 연금, 상속, 재난 시 보호 등 삶의 전 영역의 보호 여부가 결정"된다고 밝혔다. '그 가족'은 중요한 관계이고, 연결되어야 하는 관계이자 연결할 수 있는 관계, 행정적으로 보장받는 관계로서 존재해 왔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러니 기성 세대가, 기독교 단체가, 혐오 세력이 가족의 해체가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부르짖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가족'이 주는 사적 복지는 개인의 취약함을 비가시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누구나 취약함을 경험한다. 그러나 취약함이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그 가족' 내에 있지 않을 때이다. 그러므로 가족 내의 인간은 '이상적인 시민'이 되며 '그 가족' 바깥의 인간은 결함이 강조된다. 한국에서는 특히 그런 면이 강조된다. 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지난 몇십 년간, 한국 정부는 잘 정비된 사회보장제도보다 '그 가족'에게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을 떠맡겼다. 사람을 낳고 길러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것, 그가 경제적· 사회적 좌절을 맞닥뜨렸을 때 그를 돌보는 것은 '그 가족'의 몫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책임질 영역을 대신해서 책임지는 사적 복지 제도로서의 가족은 현재까지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까지 유지된 '생계급여 부양의무자'는 조부모나 부모 또는 자녀, 배우자 등이 일정 재산과 소득이 있다면 실제 왕래가 없어도 생계급여, 기초생활보장제도 등과 같은 정부의 복지제도를 신청할 수 없는 제도였다. 행정상으로만 가족이고 실제로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더라도 '그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양의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위해 국가는 무엇도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가족'이 오랜 기간 그러한 역할을 담당해 온 역사가 사적인 지지를 제공하는 '그 가족'의 독점적인 위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서적인 안정을 '그 가족'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족 외의 다른 공동체를 상상할 수는 없을까?   


  

돌봄의 관계


  2021년 여성가족부가 진행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 다시 말해 '법적 혼인, 혈연으로 연결되어야만 가족'이라는 인식 비율은 64.6%인 반면 '함께 주거와 생계를 공유하는 관계'라는 인식 비율은 68.5%였다. 인식뿐만 아니라 실제 현실도 그러하다. 2020년 실시된 제4차 가족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가구 중 핵가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비율은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62.1%이다.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확연히 증가 추세에 있으며, 혼인신고 없이 동거하는 경우, 혹은 친구끼리 동거하는 경우 역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삶의 많은 영역에서 끊임없이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부딪힌다. 예를 들어 현행 의료법 제24조의2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 등 중대한 의료행위 전에 환자 본인, 혹은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을 경우 그의 법정대리인에게 진단명, 수술 등의 필요성에 대하여 설명하고 서면으로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환자의 법정대리인은 민법에 따라 그의 직계 존·비속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족의 정의를 포괄하지 못한다. 


  가족이 아니라면 애도할 권리도 없다. 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은 사망자의 장례의식을 주관할 수 있는 연고자를 배우자, 자녀, 부모 등 '그 가족' 상 가까운 순서대로 명시하고 있어 사실상 가족이 아니면 장례를 주관하기 어렵다. 지난 3월 신설된 조항에서는 "사망하기 전에 장기적ㆍ지속적인 친분관계를 맺은 사람 또는 종교활동 및 사회적 연대활동 등을 함께 한 사람, 사망한 사람이 사망하기 전에 본인이 서명한 문서 또는 「민법」의 유언에 관한 규정에 따른 유언의 방식으로 지정한 사람이 희망하는 경우에는 장례의식을 주관하게 할 수 있다"라고 하지만 무연고 사망자에 한정되어 있다. 


  두 사람이 동거를 선택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두 사람이 함께 살 '집'을 구할 때, 한 가구로 묶일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공동명의로 대출받을 수 없다. 주택과 관련한 신혼부부 대출의 대상도 될 수 없다. 가산점도 특별공급도 받을 수 없고 공공임대·공공분양주택의 순위에서 밀린다. 한국의 주택정책이 법적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법, 산업재해보상보헙법 등에 따른 연금, 보상금, 보험금의 수령도 불가하고, 가족돌봄휴가, 출산휴가, 육아휴직도 마찬가지이다. 온 사방에서 '너희는 가족이 아니'라고 소리치는 상황에서 그들 자신이 가족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미약하기만 하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엮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상호 경제적·감정적 연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행 가족의 정의와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그것 역시 사회적으로 중요한 관계라는 것을 국가가 인정하겠다는 의미이다. 


  '그 가족'은 완벽하게 이상적인 기본 단위가 아니다. 또한 당연하지도 않다. 누군가는 '그 가족'이 없거나 같이 살지 않는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할수록 가족의 형태 역시 그럴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법이 어떻든 실재한다. 한국은 법률에서 가족을 정의하는 만큼, 가족 제도 내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쉽게 지워지고 부정될 따름이다.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보호와 함께 감정적인 지지를 기대한다. 나에 대한 애정. 서로에 대한 책임. 소속감, 연결감. 사랑. 그런 감정을 바란다. 그리고 그건 혈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감정들은 아니다. 아니, 우리는 이미 그런 감정을 가족 바깥에서 얻고 있다. 친한 친구. 어쩌면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동기들. 또는 같이 살기까지 하는 나와 마음이 잘 맞는 룸메이트. 생활동반자법은 그런 관계를, 우리의 시민적 유대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인간에게 당연한 관계는 없다. 모든 관계는 노력을 전제로 한다. '그 가족'이라는 관계가 통상 좀 더 쉬워 보이는 까닭은 그것이 제도적으로 정립되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 개인이 원가족에서 원가족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한다. 자녀는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다 충분히 크고 나면 결혼함으로써 자신만의 원가족을 만든다. 그사이에 만들어지는 관계들, 기숙사나 하숙집이나 자취방이나 셰어하우스에서 그가 형성한 관계들은 가족이 아니고, 그 시간은 일종의 공백으로 남는다. 관계는 일시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자연스럽게 그 관계는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하지만 대학에서, 처음으로 본가를 나오고 '그 가족'을 떠나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지금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만드는 바로 그 관계가 가족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1] 신지수, "'자발적 비혼모'된 방송인 사유리…인터뷰 공개." KBS뉴스, 2020.11.17,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049639. (2023.08.26)

[2]  장수경, "'비혼 임신' 불법 아닌데..."시험관 하려면 결혼하고 오세요." 한겨레, 2023.11.26,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8988.html. (2023.08.27)


참고문헌

김희경.『이상한 정상가족』, 동아시아, 2017

이숙진. 「한국 개신교의 정상가족 만들기-타자화와 주체화 전략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82권, 1호, 2022, pp.87-112.

이재희. 「헌법 제36조 제1항을 중심으로 한 혼인의 헌법적 보장에 대한 검토」. 『헌법학연구』, 24권, 4호, 2018), pp.69-108.

소현숙. 「가족 근대화의 모델 찾기에서 가족 ‘정상성’에 대한 성찰로 : 한국 현대 가족사 연구 동향과 과제」. 『역사문제연구』, 25권, 2호, 2021, pp.351-388.

여성가족부, 「제4차 가족실태조사」, 2021

여성가족부, 「2021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2021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 의안 원문 - 장혜영의원 등 14인, 제2122404호(2023. 5. 31.). 제406회 국회(임시회)

신지수, "'자발적 비혼모'된 방송인 사유리…인터뷰 공개." KBS뉴스, 2020.11.17,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049639. (2023.08.27)

송다영, "[인터뷰 용혜인 "'생활동반자법' 최초 발의한 이유는요..."." THE FACT, 2023.04.27, https://news.tf.co.kr/read/ptoday/2014417.htm. (2023.08.23)

이병국, "정상가족은 없다!." Le Monde diplatique, 2021.06.30,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55. (2023.08.15) 

신주영, "정의당, '가족구성권 3법' 추진…"가족 선택할 자유는 보편적 권리"." 경향신문, 2023.05.31, https://m.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305311631001#c2b. (2023.08.25)

정희완, ""무슨 관계시죠?" 물음에 머뭇거리는 '가족'." 경향신문, 2023.04.16,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4160830031?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23.08.26)

송경호, ""동성혼 합법화하는 '가족구성권 3법' 철회해야".", 크리스천투데이, 2023.06.17,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4870. (2023.08.24)

노형구, ""생활동반자법안, 동성결합까지 부부관계 확장 목적"." 기독일보, 2023.05.04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24857. (2023.08.24)

임보혁, "사실상 동성혼 인정하려는 것, 생활동반자법 반대"."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2023.05.12, https://m.kmib.co.kr/view.asp?arcid=0018254991&code=61221111&sid1=all. (2023.08.24)

"결손", 표준국어대사전

"치우칠 편", 디지털 한자사전

"민법." https://www.law.go.kr/법령/민법

"모자보건법" https://www.law.go.kr/법령/모자보건법 

"건강가정기본법" https://www.law.go.kr/법령/민법 

"장사 등에 관한 법률" https://www.law.go.kr/법령/장사등에관한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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