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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67호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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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편집위원회 Feb 24. 2024

자보 수난시대

정리정돈 검은

자보 수난시대 - SPC 불매 운동 자보 작성



1. 왜 우리는 자보를 작성했는가


  2022년, SPC 삼립 제품의 불매 운동이 크게 이슈가 되었다. SPC 삼립은 파리바게뜨, 쉐이크쉑,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파스쿠찌 등 우리에게 친숙한 프랜차이즈들을 경영하는 SPC 그룹의 계열사들 중 하나이다. SPC 그룹은 직장 내 열악한 노동환경과 불법 파견 문제, 민주노조 탄압 문제 등의 수많은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러왔다. 사실 SPC 그룹의 부당노동행위는 2017년 파리바게뜨의 제빵기사 불법 파견을 시작으로 계속 고발되었지만, 2022년 3월 화섬식품노동조합 파리바게뜨 지회장 임종린 씨가 단식 투쟁에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 결과, 트위터를 비롯한 SNS를 중심으로 일어난 SPC 삼립 제품의 불매운동은 시민운동의 차원에서 언론에서도 주목할 수준이 되었다.[1]

  시간이 지나면서 불매 운동 및 SPC 계열사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잦아지는 듯 했다. 하지만 2022년 10월 15일 평택 SPC 그룹의 계열사 SPL 제빵공장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소스 배합 기계에 몸이 끼어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다.[2] 얼마 지나지 않아 10 23, SPC 계열 샤니 제빵공장에서도 손 끼임 사고가 발생하면서[3] SPC 계열사에 대한 불매 운동의 화력은 다시금 강해졌다.

  한편 문우편집위원회(이하 문우)는 4월 '뉴스클리핑'으로 SPC 부당노동행위 투쟁을 다루는 등 해당 계열사의 행보 및 노조와 시민들의 연대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던 중 10월에 위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문우는 SPC 계열사 불매 운동에 관한 자보를 작성하였다.



2. 자보 전문


  지난 15일, SPC 계열사 SPL 제빵공장에서 한 20대 여성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어 질식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23일에는 SPC 계열사 샤니 제빵공장에서 40대 남성노동자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안전수칙, 2인 1조 근무 등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상식적인 것들이 지켜졌다면 이 죽음과 부상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SPC그룹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같이 근무하시는 노동자에게 시신을 수습하게 하고, 바로 다음날 사고 현장에서 작업을 재개하며 노동자들을 인간 이하로 보는 태도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사고 현장을 온전히 수습하지도 않고 다만 흰 천으로 덮어두면 그만입니까?

  SPC그룹의 반인권적 행보는 과거부터 반복되어 왔습니다. SPC그룹은 2017년 파리바게트 불법 파견 적발 이후에도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노동자들을 심각하게 착취하며 탄압해왔고, 이들의 안전을 무시해왔습니다. 결국 SPC그룹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지속적으로 은폐, 왜곡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정말로 소박하고 상식적인 것들입니다.

  '휴게 시간과 휴일을 보장해줄 것.'

  현재 노동자들은 아무리 아파도 쉴 수 없습니다.

  '임신한 노동자에게 시간 외 근무를 시키지 말 것.'

  SPC 그룹의 파리바게트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의 50%가 자연 유산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노동자의 피가 묻은 빵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띠부띠부씰보다 인권이 앞서야 합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고, 정당한 근로 조건과 노동 환경 개선의 요구를 무시해 온 회사에서 생산하는 식품을 먹을 수 없습니다. 아니, 소비하지 않겠습니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하고 마땅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이뤄지도록 SPC그룹의 만행과 이에 대한 노동자와 시민들의 저항 및 연대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SPC 불매행동에 동참해주세요.


 

3. 자보가 겪은 수난


  2022년 11월 7일 문우는 자보를 작성하여 신촌캠퍼스 중앙도서관 앞 기둥에 부착하였지만, 불과 하루 만에 떼어져 찾을 수 없었고, 얼마 후 꽤 떨어진 곳의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는 자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11월 10일 문우는 자보를 다시 작성하여 동일한 장소에 붙였다. 이전 자보가 강풍으로 인해 떨어졌을 것을 우려하여 해당 자보는 접착력이 강한 청테이프로 부착하였으나, 이 역시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떼어져 길가에 버려진 채로 발견되었다.

  두 번의 자보 훼손을 겪은 문우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자보를 훼손한 것으로 짐작하였다. 이에 상대적으로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된 첫 번째 자보를 외솔관 지하 1층 계단 입구에 붙였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다행히 이곳에선 아직까지 자보가 안전하게 자리잡고 있다.)



4. 자보만이 겪는 수난일까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편집위원들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중앙도서관에는 다른 자보들도 붙어져 있었지만 떼이고 버려지는 것을 반복한 자보는 문우의 자보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하필 SPC 불매운동 자보만 떼어졌을까? 보다시피 자보의 내용은 학생으로서 해당 계열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 대한 연대를 표하고 있었다. 자보를 누군가가 (아마 의도적으로) 뗀 행동의 기저에는 사회에서 낮게 바라보기 일쑤거나 어느 때는 신경 쓰지도 않는 노동자의 인권, 그리고 그를 지지하고 연대함에 대한 반발심리―어쩌면 혐오감이 자리잡아 있고, 그 노동자들을 향한 혐오와 폭력이 '자보 떼기'라는 물리적 행동으로 표출되었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또한 문우는 무엇인가 미묘하게 바뀌고, 날이 선 학생사회의 분위기를 체감하였다. SPC 불매 운동을 촉구하는 문우의 자보가 두 차례나 떼어져 버려지기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들은 있었다. 예시로 10.29 참사와 관련한 자보를 작성하여 중앙 도서관 앞에 붙인 한 학우가 익명 대학생 커뮤니티 이용자들로부터 사이버불링을 당하기도 하였다.

  익히 알려진 자보 문화는 캠퍼스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학우들이 널리 향유하던 대학교 문화이자 대학 내의 다양한 목소리가 동등한 층위에서 표출될 수 있는 또다른 정치의 장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거쳐 학생사회의 탈정치성이 더욱 명백해진 지금, 자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다 한 번 게시된 자보는 특정 사건이나 민감한 사안에 대한 내용을 담았을 경우 금세 힐난의 대상이 되며, 이에 그치지 않고 자보의 작성자는 신상 규명의 대상이 된다. 문우가 '자보 수난기'를 통해 깨달은 것은, 현재의 학생사회는 특정한 종류의 정치적 발언에 매우 적대적이며, 특히 학생 사회 내에서 다수의 익명들이 암묵적으로 특정한 발언을 검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캠퍼스는 특정한 지향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학생사회에서 우리의 의견을 펼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의견을 안전하게 펼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보 수난기를 마친다.


 


[1] 고병찬, “#동네빵집_챌린지…SPC 불매도 하고제빵기사 노조 연대도 하고”, 한겨레, 2022.05.12.,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42626.html 

권효중, “”사람이 굶는데 어떻게 빵을...” '파바' 불매 나선 시민들”, 이데일리, 2022.05.18.,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076646632330232&mediaCodeNo=257&OutLnkChk=Y 

[2] 조효정, “평택 제빵공장서 20대 여성 소스 배합 기계에 껴 숨져”, MBC 뉴스, 2022.10.15., https://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6417247_35673.html 

[3] 류수현, “SPC 계열 '샤니제빵공장서 손 끼임 사고... 경찰 조사”, 연합뉴스, 2022.10.23., https://www.yna.co.kr/view/AKR20221023021100061?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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