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청년에게

수습편집위원 겨울새벽

by 문우편집위원회

당신의 ‘소확행’은 무엇입니까?


행복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주말에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짧은 여행, 직장 점심시간에 주변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 캔과 같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해외여행, 고급 레스토랑, 좋은 집과 비싼 차가 행복, 성공의 척도였던 과거 세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1986년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처음 쓰였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가지런히 정리된 속옷들이 잔뜩 쌓여있을 때 느끼는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그는 소확행이라 일렀다.


이 ‘소확행’의 마음가짐은 2018년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트렌드코리아가 올해의 소비트렌드로 선정할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만기와 가입 금액을 획기적으로 줄인 카카오뱅크의 ‘26주 적금’, 전혀 화려하지 않은, 소박하고 고요한 매일매일을 담은 윤식당, 효리네 민박과 같은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 역시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워라밸(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과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가치관 역시 멀리서 보았을 때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단어들의 등장은 성장, 성장, 또 성장만을 강조했던 과거 세대와 달리, 삶의 질과 여가에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오늘날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자신을 즐기고 사랑하자, 내일을 위해 오늘을 지나치게 희생하지는 말자는 마음가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소확행의 이면에, ‘욕망이 거세된 젊은이들’


나는 사서고생을 좋아한다. 이게 무슨 전근대적인 발상인가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과로로 코피 한 번쯤은 쏟아보고 싶고, 정말 진지하게 내 인생 최종 목표는 세계 평화다. 그런데 내 또래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참으로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다. 너는 아직 현실을 모른다고, 지금 세상을 보고도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대단하다며 웃음을 터뜨릴 뿐이다.


초등학교 때는 저마다 대통령, 국가대표 운동선수, 과학자를 꿈꾸었던, 이제 겨우 스물, 스물 하나의 젊은이들이,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정년 보장된 직장이면 어디든 좋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몇 년을 넘게 본 친구의 꿈이 외교관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다시 ‘취업’ 그 자체로 점점 쪼그라드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애처로웠다. 소확행의 이면에, 지나치게 욕심을 잃어버린 듯 보이는 청년들이 걱정스럽다. ‘꽃길만 걷자’며 입버릇처럼 말하던 젊은이들의 꽃길은 화려한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레드카펫이 아니라 소담한 풀꽃이 늘어선 뒷골목길인가 보다.


‘출세’는 옛말이 되었다. 일본생산성본부는 2018년, 전국 신입사원 1644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회사 내 목표를 물었다. ‘장차 사장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답변이 10.3%로 1969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저치였다. 이제 갓 입사한 그들이 사장까지 승진하고 싶다는 비율은 임원, 부장(각 14.2, 16.3%)을 꿈꾸는 비율은 물론 주임이나 팀장(10.4%)을 목표로 하는 비율보다 낮았다. 힘겹게 취업의 바늘구멍을 뚫고 입사했지만 팀장 정도면 충분하고, 더 이상의 욕심은 없다는 얘기다. ‘젊어서 고생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느냐’는 질문에서 역시 ‘사서 고생할 것까진 없다’는 비율이 34.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 신문은 이 소식을 전하며 그들을 ‘욕망이 거세된 젊은이들’이라 표현했다.


청소년들은 어떨까. 고등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1위는 공무원(22.6%), 2위는 건물주(!)(16.1%)로 희망 이유는 ‘안정적이어서’였다. 초등학생 선망 직업 1위는 과거와 동일하게 교사였으나, 희망 이유는 사뭇 달랐다. ‘연봉이 적은 것도 아닌데 잘릴 위험이 없고 오래 일할 수 있어서’. 과거의 청소년이 적성과 흥미 사이에서 진로를 갈등했다면 이젠 안정성이 진로 선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가 된 셈이다.


그들은 수저 계급론으로 스스로의 실패와 포기를 정당화했다. 어차피 해도 안 된다, 넘치는 인생은 태생부터 글러먹었다는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해버렸다. ‘청년의 성공요인에 대한 인식조사’와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학생의 절반(50.5%), 직장인의 40%가 ‘부모의 재력’을 성공요인의 1순위로 꼽았다. 본인이 흙수저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평균 60%가 넘었다. 본인이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이나 성취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흙수저라는 경제적 배경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수저 계급론으로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부정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재단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청년들은 급기야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올 5월 기준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478만 9000명 가운데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쉬었음’이라 답한 인구는 176만명에 달했다. 2003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비경제활동인구는 일할 능력이 없거나, 일할 능력은 있으나 의사가 없어 노동 공급에 기여하지 않는 인구를 뜻한다. 그 사유는 육아, 가사, 입대 대기, 심신장애, 쉬었음 등으로 분류하는데, 176만 명의 청년들이 공부도 구직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쉬었다는 것이다.



포기한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일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의 욕심이 행방불명된 것을 온전히 그들의 탓이라 할 수 있을까? 청년들은 그들의 열정과 의지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로부터 말이다.


청년(15-29세) 실업률은 올 3월 11.6%까지 치솟았다. 작년인 2017년 평균 9.8%였던 청년실업률이 해가 바뀌고 결국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이다. 체감 실업률은 20%를 훌쩍 넘었다. 고용시장에 불어 닥친 한파가 낳은 비극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18년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신규 취업자는 작년 동월 대비 5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이후 8년 만에 찾아온 ‘고용쇼크’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드는데 실업률이 떨어질 리 만무하다.


어렵사리 취업의 문턱을 넘어도,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고 살기엔 그들의 월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2017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청년 취업자 둘 중 한 명은 첫 월급으로 150만원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심지어 2016년(54.2%)에 비해 5%이상 감소한 수치다. 300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는 청년인구는 고작 2.3%였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과연 태산이 될 수 있을까 싶으리만큼 적은 월급이다. 그러나 이 티끌이라도 모으려는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다. 빚이다. 29세 이하 인구의 평균 부채는 2,385만원으로 2010년과 비교했을 때 154% 늘었다. 같은 기간 평균 부채증가율의 3배에 이른다. 개인 파산을 신청하는 20대도 늘고 있다. 안정적인 소득이 없어 제 1금융권인 은행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대출을 받았다가, 불어나는 이자에 결국 개인 파산을 신청한 것이다. 2013년 484건이던 20대 개인파산은 2017년 780건으로 5년 새 60% 넘게 증가했다. 한편 동일 기간 다른 세대들은 15% 감소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했으나 직장을 그만두고 단순 노무에 뛰어드는 청년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5월 기준 단순 노무(전문성이 다소 요구되지 않는 건설현장 보조인력, 배달원, 택배기사 등)에 종사하는 청년은 25만 3000명에 달하며, 이는 해당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4년 이후 최고치로 전체 단순노무 종사자의 7.7%에 달한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의 영향으로 신규 채용이 감소하고, 그나마 있는 사무직의 박봉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지자 전공을 포기하고 보수가 조금이라도 높은 단순노무직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젊은이들의 취업 전쟁이 벼랑 끝까지 치달았음을 잘 보여준다.


어렵사리 취업의 문턱을 넘어도, 남들처럼 결혼하고 집을 마련하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상 최고의 취업난에 혼인율, 출산율 역시 추락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17년 혼인, 이혼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총 혼인 건수는 26만 4500건으로, 작년대비 6% 이상 감소했다. 40년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합계출산율 역시 1.05명으로 역대 최저치이며, 현 인구유지를 위해 필요한 출산율인 2.01명의 고작 절반 수준이다. 서울과 부산의 합계출산율은 이미 1.0아래로 떨어졌다. 실업, 혼인률, 주택가격 관련 통계가 연일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지금, ‘n포 세대’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그들의 움직임은 조금이라도 행복에 가까워지기 위한 그들의 발버둥이었나 보다. 오늘의 희생과 노력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기에, 그렇다면 지금의 나에게 소박한 행복이라도 선물하기로 마음먹는다는 것, 지금 충실하게 행복하자는 것이다.



청년이 청년에게


‘소확행’이라는 단어의 유행은 내게 맥주 한 캔에 즐거워하는 청년의 모습보다는 그 그림자 속에 감추어진 불안, 현실에의 안주, 포기, 내려놓음의 감정을 보여주었다. 나는 방금 막 이십대에 발을 담근 청년이고,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당신 역시 이십대의 청년일 것이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며,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세상을 보고 비슷한 사회를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해한다.


때로 노-오오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기에 무작정 노력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를 이해한다.


나는 당신의 ‘어쩔 수 없었음’에 공감한다. 세상은 천차만별의 출발선을 주었고, 그 중 나의 출발선은 까마득하게 뒤쪽에 있는 것만 같은 그 느낌에 공감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힘들게 들어간 대학을 힘들게 졸업했더니 나처럼 대학 졸업한 이들이 지천에 가득한 것은, 자꾸 오르는 최저임금과 더뎌지는 경제 성장에 고용주가 채용을 꺼리는 것은, 빚이 늘어나는 속도,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월급 오르는 속도를 훨씬 앞지르는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우리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나 세상에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는 법이다.


나 역시 청년이다. 많은 어른들이 그러하듯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이 부족하다, 힘을 내라, 포기하지 마라, 이런 이야기는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다. 무조건 1등이 되어야 한다, 위대해져야한다, 큰 꿈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당신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방해하거나 꾸짖을 생각이 전혀 없다.


아직 도전하고 싶은 것이 많은 청년으로서, 어느 것도 내려놓고 싶지 않은 청년으로서, 난 그저 삶에 있어 조금 더 욕심을 내도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조금 덜 기죽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우리가 목표를 세움에 있어 조금 더 사치스러워지기를 바란다.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포기하더라도, 조금 더 늦게 포기했으면 한다.


나는 우리가 스스로의 실패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그것을 당연하다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좌절과 실패가 한 번이든, 여러 번이든, 그것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끝에 분명 꽤 괜찮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으면 한다.


조금은 억지스럽고 이기적이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한 명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니 나와 약속해주었으면 좋겠다. 불행해지지 않을 만큼만, 조금만 더 바라며 살겠다고. 한 번은 더 도전하고, 욕심 내 보겠다고.


오늘의 청년에게, 현재의 우리에게 전한다. 으쌰으쌰.



덧붙이는 글


오늘,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려는 청년들을 응원하는 정책 중 몇 가지를 간단히 소개해보려고 한다. 정책브리핑 홈페이지-정책포커스-청년정책, 네이버 블로그 ‘청년정책사용설명서’ 등에서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청년 내일채움공제

중소, 중견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청년들의 장기근속을 위해 운영하는 사업으로, 청년, 기업, 정부가 공동으로 공제금을 적립하여 2년 혹은 3년간 근속한 청년에게 성과보상금형태로 만기 공제금을 지급해준다. 지원 대상은 만 15세 이상 34세 이하의 정규직으로, 워크넷-청년공제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문의처는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

사회초년생들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한 국토교통부의 금융지원정책이다. 지원대상은 만 19세~만 29세 연소득 3000만원 이하의 무주택 근로소득자이다. 기존의 주택청약통장과 동일하게 소득공제, 비과세 혜택을 유지하며 금리는 연 최대 3.3%로 일반 청약통장보다 훨씬 높다. 이미 주택청약저축통장에 가입한 사람도 청년우대형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청년 내일배움카드

구직자 및 자영업자에게 훈련비를 지원하여 직업능력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 1인당 연 최대 200만원의 훈련비, 11만 6천원의 훈련 장려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재직자를 위한 내일배움카드제도도 있으며, 인근의 고용센터를 방문하여 신청할 수 있다.

이전 12화커다란 냄비에 담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