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물 위로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희미한 그 속에서는 뱃사공이 자그마한 목조 배 끄트머리에 앉아 양 팔로 노를 저으며 물결소리를 만들어냈다. 배 안으로는 분홍색 셔츠 교복을 입은 어린아이들 네다섯 명이 조용히 앉아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나무 냄새가 짙게 베인 <하우스 보트>에서의 생활은 여행을 하는 동안 한 번도 머릿속에 등장한 적 없던 ‘낙원’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쉬어 터져 빽빽거리던 자동차 클락션 소리와 낡아빠진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지니 인도가 아닌 딴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히말라야 산맥의 밑자락에 위치하는 스리나가르에 도착하던 날,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긴소매 옷을 꺼내 입었다. 밤새 달렸던 기나긴 버스 여행을 마치고 달 호수 (Dal Lake)에 닿으니, 호숫가에 정박해 있는 유일한 배 안의 뱃사공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어서 목적지를 말했으면 하고 기다리는 눈치였다. 뱃사공들이 잔뜩 나와 여행객들을 서로 데려가려고 치열한 다툼을 벌일 줄 알았던 예상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었다. 뱃사공도 한 명, 손님도 한 명. 지금까지 봐왔던 인도인들과 달리 피부가 하얗고 얼굴이 갸름한 사공에게 별로 비싸지 않은 하우스보트 (호수 위에 보트 형태의 게스트하우스) 로 가달라고 했다.
<시카라>라고 불리는 나무 보트를 타고 뱃사공과 마주 보며 배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멀찍이 앉아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배의 폭이 하도 좁아 혹시나 배낭이 물에 빠질까 무릎 위에 올려놓고 꼭 껴안고 있으니 옛날 영화 속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것 기분이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은 그전까지 경험해본 것들과 너무 달라서 계속해서 내가 영화 속의 등장인물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호수를 일부러 몇 바퀴 돌면서 바가지요금을 씌울까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뱃사공은 허름해 보이는 몇 개의 하우스보트를 지나치더니 그중 제일 나아 보이는 하우스보트 앞에서 멈췄다. 그가 다 왔다는 눈짓을 보냈지만, 외관만 봐서는 방 값이 꽤나 비싸 보여 그대로 앉은 채로 망설이는데 뱃사공과 비슷하게 바지통이 넓은 이슬람 복장을 한 주인이 나타났다. 예약을 했냐는 그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하니, 비수기라 싸게 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배에서 내려도 된다는 손짓을 했다.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해져 나도 모르게 그의 손짓에 복종하듯 배에서 내렸다. 그가 말한 방 값은 하우스보트의 고급스러움에 비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렴했고, 그제야 뱃사공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헤어졌다.
시카라와 뱃사공
커다란 하우스보트에 손님은 나 한 명이었다. 주인은 나무다리로 연결된 바로 옆 하우스보트에서 지낸다고 했지만, 그나 그의 가족을 우연히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하루 종일을 배 안에서 혼자 지냈다. 주로 넓은 방 안에서 화려한 문양의 목조 책상 앞에 앉아 카메라의 사진들을 노트북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거나 밀린 일기를 썼다. 그러다가 가끔씩 갑판대로 나와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드문드문 시카라가 지나갔다. 사공이 노를 저을 때 나는 물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또 듣기 좋았던 소리는, 호수 위 어딘가에 있는 듯한 모스크에서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뜻을 알 수 없는 남성 목소리의 톤과 가락에서는 짙은 호소력이 느껴졌다. 마치 노래처럼 리듬이 있는 그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이곳저곳에서 시카라들이 분주하게 노를 저으며 모스크 쪽으로 향했다.
하루는 돈을 내고 주인집 아들이 노를 젓는 시카라를 타고 바로 그 호수 마을을 구경했다. 호수 위의 하우스보트들 중에는 게스트하우스로 쓰이는 곳도 있었지만 옷 가게, 슈퍼마켓, 케밥을 파는 식당인 곳도 있었다. 호수 한가운데 벤치가 몇 개 놓여 있는 섬은 마을의 공원이라고 했다. 이 모두는 시카라가 없이는 갈 수 없는 곳들이었다. 다시 하우스 보트로 돌아오는 길, 덩치가 큰 한 아주머니가 폭이 좁은 시카라에 앉아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듯 뒤뚱뒤뚱 균형을 잡으며 물 위의 정원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지만, 주변의 평온한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훗날 인도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나타나는 장면이 되기를 바랐다.
방 값에는 세끼 식사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주인집에서 직접 요리해서 가져다줬는데, 아침마다 홍차의 향이 깊은 밀크티가 나오는 것 빼고는 메뉴가 항상 바뀌었다. 가끔 다 먹은 점심식사 그릇을 수거해 갈 때 저녁에 케밥을 할 건데, 양고기와 닭고기 중 어느 것을 원하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음식 맛도 좋았지만, 이슬람 스타일의 문양이 화려한 은색 식기에서 고급스러움이 묻어나 식사를 하는 내내 행복했다.
하우스 보트를 떠나기 바로 전 날, 혼자 묵고 있던 보트에 새로운 여행자들이 도착했다. 8-10세쯤 돼 보이는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둔 인도 부부였다. 얇은 천 옷이 아닌 고급스러운 울 니트 옷차림을 한 인도인들의 모습이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그들이 들고 온 여행가방은 나와 같은 숙소에 묵는 손님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비싸 보였다. 이 하우스보트가 익숙한 듯, 가족들은 말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아내는 바깥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고, 남편은 시카라를 빌려 직접 노를 저으며 호수 위를 왔다 갔다 했고, 아이들은 방에서 노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달 호수, 물 위의 학교
다음날, 마지막 아침 식사를 건네러 온 주인아저씨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호기심 많은 다른 인도인들과 달리 그동안 주인과 그 가족은 나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말을 아끼는 듯 보였다. 식사를 가져다줄 때에도 어떠한 불필요한 질문도 한 적이 없었다. 작별을 고하며, 아저씨에게 그동안 대접받은 식사가 모두 맛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비수라지만 숙소비를 깎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인자한 말투로 대답했다.
"식사가 맛있었다니, 기분이 좋네요. 우리 가족이 먹는 것과 똑같은 음식을 대접했을 뿐이에요.
숙소비는 보통 외국인 여행자들과 비슷하게 받은 거예요. 어제 도착한 인도인 가족에게는 그 보다 다섯 배는 넘게 받았죠."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내가 알기로는,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워 더 받는 곳이 인도였다. 타지마할 입장료는 외국인 가격이 현지인의 가격보다 30배나 더 비쌌다.
‘외국인들은 인도에 오면 모든 것이 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가격이 얼마이든 무조건 깎으려고 하죠.
인도 여행객들은 반대예요. 여행이 비싸다는 것을 인정하고, 부르는 값을 그대로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인도의 휴가기간이 아니라 현지인 여행객들이 많지 않아요. 휴가철에 왔다면 이 가격에 못 줬을 거예요.’
내게 수치심을 주려고 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이 말을 듣고 있는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는 돈을 조금 더 내려는 내게 오히려 손사래를 치며 그런 뜻이 아니라고 했다.
그의 뜻이 어쨌건, 그의 말이 옳았다. 인도에서는 무엇이든 가격을 후려치는 것이 여행 고수들의 기술인것처럼 여겨졌다. 인도로 여행 온 이유가 물가가 싸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들도 버릇처럼 흥정을 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런 상황들이 흔하다 보니, 외국인 여행자들이 물건을 사려고 하면 그 값을 대답하는 대신 가게 주인은,
‘하우 머치? how much?’ (얼마면 살 거요?)
라고 묻기도 했다.
손님이 묻고 주인이 답해야 할 말이 그 순서가 뒤바뀐 황당한 상황이다. 그러면 손님은 가격을 힘껏 후려쳐 얼토당토않는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 그러고 나서 주인의 표정이 떨떠름해진 것을 눈치채고는 되묻는다.
‘하우 머치? how much?’ (얼마를 주면 팔 건데요?)
그러면 주인은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테니 원하는 가격을 말하라는 의미로 다시 한번 ‘하우 머치?’ 하고 되묻는다.
그렇게 주인과 외국인 손님이 돌아가며 ‘하우 머치’만 외쳐대고 있는 꽁트같은 상황이 자주 목격되었다.
달 호수, 물 위의 까페
아침식사를 마치고 주인의 아들이 노를 젓는 시카라를 타고 호수 밖으로 나왔다. 하우스보트를 떠났지만, 밀려온 부끄러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스리나가르를 떠나는 내내 책을 읽는 대신 생각에 잠겼다. 주로 지난날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생각은 곧 내가 한 잘못과 후회로 이어졌다.
염치없게 릭샤왈라(인력거꾼) 들의 수고비를 두고 가격을 깎으려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땀에 몇 번을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한 옷 안으로 뼈가 앙상하게 남은 인력거꾼들 또한 누구의 아빠이고, 할아버지 일거라는 생각, 집에는 그들이 돈을 많이 벌어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다.
인도에 오기 전에 내가 알았던 오직 한 명의 인력거꾼이 생각났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봤던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노동의 가치를 하대하는 진상이 아니라, 운수 좋은 날을 만들어주는 손님이 되었어야 했다. 오늘만은 좋은 손님을 만나 설렁탕을 사 들고 일찍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줬어야 했다.
인도의 자전거 릭샤(인력거)는 낡은 삼륜 자전거다. 인력거꾼이 앉는 안장은 딱딱하고, 그 뒤로 무거운 고철로 만들어진 손님 자리에만 쿠션을 깔아 햇빛 가리개를 달아 놓았다. 조금이라도 오르막 길을 올라야 할 때면 릭샤왈라는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다리에 힘을 줘 가까스로 바퀴를 돌린다. 중간중간 땀이 눈 안으로 들어가 시야를 가리기 전에 목에 건 수건으로 재빨리 이마를 훑어낸다. 힘을 주기 위해 몇 번을 멎었던 숨을 골라내며 목적지에 도착하면 손님에게 손을 내밀어 꼬깃꼬깃한 돈을 받아내야 한 건의 임무가 끝난다.
10루피를 깎을 것이 아니라, 20루피를 더 줬어야 했다. 자전거 안장 밑으로 다리가 열심히 페달을 돌리는 동안 안장 위의 얇은 옷 표면으로 가느다란 척추와 양쪽 어깨뼈가 번갈아 드러나던 그들의 등, 그 뒤로 들려오는 힘없이 거친 숨소리가 떠오르며 코 끝이 찡해졌다.
자전거가 달리지 않은 인력거
스리나가르를 떠나 우다이푸르까지 가는 데는 몇 날 며칠이 걸렸다. 인도 여행 계획을 짤 때 지도 위에 가고 싶은 도시를 점으로 찍을 때만 해도 이동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혼자 야간 기차나 버스를 타지 않으려면 점과 점 사이에 새로운 점을 찍어 쉬어 가야 한다는 것을 여행하면서야 알았다.
우다이푸르 기차역에 도착하니, 릭샤왈라들과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낸 사람들이 무수히 마중 나와 있었다. 릭샤는 여행 초반에 몇 번 타보고, 몸은 편한데 뒷 자석에 왕처럼 앉아 있자니 마음이 영 불편해서 한참 동안 피했었다. 하지만 며칠간 마음속을 괴롭혔던 김첨지를 생각하며 가장 먼저 보이는 릭샤를 탔다. 시티 팰리스가 있는 호수까지 가달라고 했다. 그 주변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큰 눈망울의 김첨지는 300 루삐를 달라고 했고, 나는 바로 알겠다고 했다.
가격을 깍지 않고 그가 원하는 만큼 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편안한 손님석에 앉아 앙상한 등을 바라보는데도 그 전과 달리 마음이 훨씬 덜 불편했다. 얼마 가지 않아 인력거꾼은 시티 팰리스에 다 왔다며 안장에서 먼저 내렸다. 그냥 걸어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어쨌든 그에게 약속한 대로 300 루삐를 주는데, 기분이 이상하게 후련하지가 않았다.
호숫가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첫 며칠은 여독을 풀기 위해 방안에 박혀 책을 읽으며 지냈다. 그러다가 주인이 중계 커미션을 벌기 위해 나를 볼 때마다 열심히 설명했던 투어상품을 하나도 고르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려, 하루는 60 루삐를 내고 그의 고물 자전거를 빌렸다. 그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과는 달리 도시 주변에 볼거리는 별로 없었지만,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기분은 좋았다.
우다이푸르의 거리는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촘촘해서 이국적인 느낌이 났고, 화려한 호수와 그 호수를 둘러싼 낡은 건물들이 대조를 이루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마지막 날, 아침을 먹으러 나가는 내게 주인이 또 투어 상품을 팔려고 하는 것 같아 이번에는 그의 말을 끊고 식사 후 떠날 거라며 그동안의 방 값을 냈다. 그러자 그는 내게 마지막 상품을 소개했다.
“떠날 때 릭샤 탈 거면 말해요, 내가 불러 줄게요. 바가지 써서 ‘외국인 가격’ 내지 말고. 100 루삐면 돼요.”
인도에서 물건을 살 때, 외국인들에게만 존재하는 가격이 있다.
바로 ‘라스트 프라이스(Last price)’ 다. 주인과 손님 사이에 계산기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각자가 원하는 가격을 치고 치다가 주인이 마지막으로 건네는 가격.
계산기에 적힌 가격은 이미 물건에 적힌 값에서 많이 멀어졌다. 가격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손님의 기분이 더 좋아져야 하는데, 애초에 바가지를 씌우려 했던 주인의 속내가 보여 더 사기 싫어진다.
그렇게 손님이 우물쭈물할 때, 주인이 비장의 카드처럼 '라스트 프라이스' 를 외친다. 그 전 보다 더 힘차게 계산기를 두드린 후, 그 값이 단 번에 보이도록 절도 있게 손을 뻗어 손님의 눈앞에 갖다 댄다. 그리고는 더 이상 깎아 줄 수 없다는, 이 가격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포기하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긴 강렬한 눈 빛으로 손님을 쏘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