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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Feb 12. 2022

수동형 여행자

'여행을 하다'가 아니라 '여행을 당하다'

혼자서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다부지게 마음먹고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을 계획한 순간부터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더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어울리는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에서도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주로 혼자 책 읽기를 즐겼다. 그러다 우연히 흥미로운 주제나 솔깃한 정보들이 오고 가는가 싶으면 슬며시 그들 사이에 끼어들긴 했지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면 다시 슬며시 빠져나왔다. 버스나 기차에서도 같은 배낭 여행객들과 눈이 마주치면 재빠르게 피하곤 했다. 이유는, ‘홀로 해낸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한 번 사는 인생에 자랑스러운 업적 하나 남기고 싶은 욕망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욕망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에 도착하면 배낭을 풀기가 무섭게 동행이 생겼다. 같은 숙소에 묵는 여행자들과 거리를 걷다 혹은 식사를 하다 마주치고, 그렇게 함께 숙소로 돌아오는 일이 우연이 아닌 듯 자주 일어났다. 다음 여행지로 떠나려 배낭을 싸면, 나와 같은 목적지로 떠나는 또 다른 여행자가 배낭을 싸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함께 떠나게 되었다.

특히 인도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렇게 네팔에서 인도까지 함께 온 크리스와는 아그라에서 헤어졌다. 만일 우리가 깊은 우정이나 사랑을 나눈 사이였다면 해 질 녘 타지마할 앞에서의 이별은 어떤 영화의 한 장면보다도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러나 한 방을 나눠 쓴 지난 며칠이 무색해질 정도로 둘의 사이는 첫 만남 때와 같이 어색했고, 서로에게 자동반사적인 미소와 함께 주고받은 마지막 ‘안녕’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작별인사 중 가장 짧았다. 크리스는 그곳에 남았고, 나는 홀로 기차에 올랐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다.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타즈마할 뒷 편.


그 이전까지는 크리스와 나눠서 대답하곤 했던 인도인들의 지겨운 질문들을 감당하는 것이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Where are you from?",


"What is your good name?",


"You have brothers and sisters?"


앞 뒤 안 가리고 던져대는 인도식 영어 질문이 처음엔 피식 웃음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지만 점점 귀찮아지던 차였다. 그런데 혼자가 되고 나니, 그래도 누군가가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아 든든함이 느껴졌다. 덜컹거리는 소리를 연신내며 달리는 기차 안에 앉아 머리를 창가에 기대고 있으니, 마치 독립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환상에 빠졌다.


뉴델리 기차역에 도착하자, 그 이전에서도 그랬듯 수많은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이 나 같은 외국인 여행자들을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200 루삐"

"300 루삐"


배낭을 둘러 맨 나를 향해 방값을 외쳐대다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흥정을 유도하기도 했다


"How much do you want?"


나는 호객꾼들의 꾐에 쉽게 넘어가는 초짜 여행자가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기차역을 빠져나왔다. 여행자들의 숙소가 밀집한 '빠하르간지' 거리는 기차역에서 대로 하나만 건너면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날카로운 크렉션을 울리며 무질서하게 달리는 차들, 오토바이, 릭샤, 자전거 그리고 소들로 뒤엉킨 길을 아슬아슬하게 건너며 '그냥 호객꾼을 따라갈걸 그랬나' 후회하기도 했지만, 곧 나를 칭찬할 순간이 올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온몸을 휘감는 더위에 식은땀까지 흘리며 길을 건너니, 목발을 짚거나 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서양 여행객들이 몇몇 보였다. 자칫 한 눈을 팔았다간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치고는 너무 적나라했다.


인도의 여느 여행지처럼 빠하르간지에도 게스트하우스 간판이 무수했다. 그중 ‘에어컨 있음’이 아닌 ‘선풍기 있음’이라고 적힌 게스트하우스만 골라 들어갔는데도  400-500 루삐는 기본이었다. 좀 전 기차역에서는 200, 300 루삐를 들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호객꾼을 따라갈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랬다면 위험한 도로를 혼자 건너는 일도 없었을 거고, 지금쯤 침대에 벌러덩 누워 쉬고 있을 텐데. 땀으로 끈적해진 몸에 모래먼지가 잔뜩 엉겨 붙은 채로 간신히 350루피 하는 쾌쾌한 숙소를 찾아내 짐을 풀고 꽤 오랫동안 후회했다.


인도에서 즐겨먹던 커리밥, 탈리


그리고 며칠 후 델리를 떠나 스리나가르로 갈 때에도 나는 똑같은 실수를 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도 여행사 직원의 말이 맞다며 '여행사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다. 에어컨 유무, 좌석 조건에 따라 800-1500 루삐면 22시간 직행으로 갈 수 있는 버스였다. 그런데 나는, 외국인들만 가득한 버스를 타고 가는 건 독립영화 같은 나의 여행 컨셉에 맞지 않고, 나의 자랑스러운 업적을 세우는 데 있어서도 누가 된다고 생각해 이를 마다했다. 그리고는 기차를 타고 릭샤를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총 24시간이 넘게 걸려 스리나라가르에 갔다.


그 여행길은 지옥 같았다.

기차에서 하필이면 장염에 걸려 화장실 여러 칸을 전세 내다시피 이용했고,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탈수 증세로 20킬로가 넘는 배낭과 함께 길바닥에 너부러지듯 쓰러졌다. 이 날따라 외국인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게스트하우스 호객꾼은 한 명도 없었다. 온몸의 땀구멍에서 식은땀이 화산처럼 분출하고 눈앞이 캄캄해져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널브러진 내 몸 위로 지겨운 그 질문들이 평소처럼 쏟아졌다.


"Where are you from?"


"What is your good name?"


또렷하게 들리는 그 목소리들, 보이지 않는 모습들까지도  머릿속에 또렷하게 그려졌다. 커다란 눈을 하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얼굴들.

내가 답이 없자 가던 길을 계속 갔는지 목소리들이 사라졌다.


‘Are you ok?' ,

'Do you need help?'


하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질문은 나를 향한 관심이 아니라 호기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주인공인 독립영화는 서서히 새드 엔딩, 아니 코미디로 흘러가는 듯했다.


땅 바닥에 한참을 괴로워하다 스스로 일어나 릭샤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가면서 엄청나게 후회를 했다. 그냥 여행자 버스 탈걸.

버스터미널의 티켓 창구 직원은 내게 티켓을 건네며 뼈 마디마디가 선명하게 보이는 손가락으로 멀찍이 서있는 버스를 가리켰다. 곧 출발할 거니 놓치지 않으려면 뛰어야 한다며. 나는 이곳에서는 단 하룻밤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는 버스에 올라 빈자석에 앉자마자 온 몸에 힘이 빠져 반 기절 상태가 되었던 것 같다. 창 밖에서 나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Where are you from?


"What is your name?


곧 출발한다던 버스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움직였다. 조금도 자랑스럽지 않은 최악의 추억이었다.


온갖 외국어로 무장한 인도 식당.


한 마디로 쓰잘데기 없는 고생이었다.

나보다 먼저 인도를 다녀간 여행자들의  말과 달리 직접 와서 본 인도는 여행자들의 천국이었다.


관광객들에게 인기 많은 대부분의 도시는 기차로 편리하게 갈 수 있었고, 기차 연결이 안 된 곳은 에어컨이 빵빵한 여행자 버스가 항시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기차역에서 가격을 외쳐대는 게스트하우스 주인 혹은 호객꾼을 따라가면 생각보다 말끔한 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사 시설이 낙후되었을지라도, 몇 백 번은 빨았을 침대 시트에는 향긋한 비누향이 남아 있었고 그 위에는 하도 빨아 끝이 닳은 수건이 말끔하게 접혀 있었다.


이뿐이랴, 짐을 풀고 있으면 말 많은 주인장이 다가와 자신들이 약간의 커미션을 챙기는 각종 투어를 귓가에 읊어 주었다. 그 안에는 투어를 신청하지 않더라도 쓸만한 정보들이 꽤나 있었다.


게다가 숙소 근처에는 식당과 여행사들이 넘쳐났다. 식당의 메뉴는 열 가지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음식을 추천해 주는 종업원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입맞에 맞춰 배를 채우고 무념무상으로 거리를 방황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다가와 가이드북에도 업데이트되지 않은 솔깃한 투어상품을 제안해 오기도 했다.


이 모든 혜택이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다. 현지인들의 호객행위에 대한 적대감을 반쯤 덜어 놓고, 나같이 스스로 해내겠다는 부질없는 자신감을 잠시 접어 두기만 하면 됐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자신들의 인도 여행담 앞에 멋스럽게 자동 수식어처럼 붙이는 ‘방랑’, ‘순례’, ‘모험’ 이런 단어들은 내 생각엔 잘 어울리지 않았다. ‘반패키지 인도 여행’ 이라는 표현적절해 보였다.



나도 '반패키지 인도 여행'에 가담하기로 했다.

사막의 모랫빛을 빗대어 ‘황금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자이살메르에 도착했을 때였다. 자이살메르는 낙타 사파리 투어가 유명해서 관광객들을 향한 현지인들의 호객행위가 치열한 곳으로도 유명했다. 기차 문이 열리자 짝 마른 현지인들이 몰려들어 외쳐 댔다.


"200 루삐!",

"100 루삐!",

"80 루삐!.


그리고 누군가가 60루피를 불렀을 때 그에게 눈길을 보내며 승낙을 의미하는 손을 들어 보였다. 그는 기쁘지도, 나쁘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따라오라고 했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혼자였다면 길을 백 번도 잃었을 미로 같은 골목길을 그를 따라 걸으니, 한 눈 파는 여유도 부릴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나처럼 호객꾼을 따라가는 다른 배낭 여행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모습은 마치 거울을 보는 듯 했고, 우리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잽싸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울 속의 나는 오랜 꿈이 담긴 커다란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당하고’ 있었다. 바늘로 그 배낭을 찌르면 마치 풍선처럼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미로 속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는 동화 속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모래성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다웠다. 반짝이는 장식이 달린 베일의 커튼이 쳐 있었고, 어느새 어둠이 깔린 창 밖으로 불빛이 모래알에 숨겨졌던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사막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이런 곳이 하룻밤에 겨우 60 루삐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방을 보여주고 나가는가 싶었던 주인장은 문고리를 잡은 채 '모래사막 투어'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좋은 소식이 하나 있는데, 우리 숙소에 묵고 있는 덴마크 여자 여행객 두 명이 내일 럭셔리하게 사막 투어를 떠날 예정이에요. 맥주도 잔뜩 사놓았고, 일출을 보며 먹을 화려한 아침식사도 준비했어요. 2000루피만 내면 내가 잘 얘기해서 당신도 끼워 달라고 해볼게요”

‘   




인도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여행자들이 놓고 간 헌 책을 팔기도 했다. 다 읽은 책을 갖다 주면 책 값을 조금 깎아 주기도 했다.

자이살메르의 책방은 아주 작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책을 고를까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이를 보다 못한 책방 주인은 자신이 책을 추천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까짓 거, 여행당한 김에, 책 추천도 당하지 뭐.


주인이 자신 있게 건네 준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The Alchemist]. 다 읽은 책 [향수 El Parfume]를 주니, 적혀 있는 가격보다 조금 깎아주었다.


숙소로 돌아와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여행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주인공 '산티아고'의 여행에 푹 빠져 이곳이 인도가 아닌 이집트 사막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책 방에 가서 고민할 필요가 사라졌다. 파울로 코엘료의 또 다른 책을 빌리면 그만이었다.


책방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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