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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Jan 13. 2022

웰컴 투 인디아

웰컴 투 호기심 천국

네팔의 작은 마을인 나울리(Sonauli)에서 몇 발자국 걸으니 어느 지점에서부터 그곳이 인도란다.


국경이라 하면 삼엄한 경비나 철조망이라도 쳐 있을 줄 알았는데, 석조 대문 사이로 짐을 가득 실은 트럭과 보따리상들이 뒤섞여 바쁘게 오고 가며 그 분위기를 자아낼 뿐이었다.

그렇게 인도 땅을 밟자마자 보이는 자그마한 입국심사 소 앞으로는 먼저 온 외국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푹푹 찌는 날씨 때문에 문을 훤히 열어놓은 건지, 그 안으로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인도 남자 한 명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차례가 되어 여권에 한국에서 미리 받아온 인도 비자를 보여주니 아무 표정 없이 그는, 마치 입국 절차 중 하나인양, 내 전 사람, 전 전 사람에게도 했던 것과 똑같이 웰컴 투 인디아’라고 말하며 입국 도장을 찍어 주었다.



바라나시 (Varanasi)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간 만났던 여행자들의 인도 여행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것이 기차였다. 기차는 그만큼 인도 여행에서 불가피한 교통수단이었다. 좌석 클래스는 기억을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는데 그중 배낭 여행자들이 '일반적으로' 타는 것은  매트리스 형태의 의자를 침대처럼 사용할 수 있는 슬리퍼 칸 (Sleeper class)이라고 했다.  

그런데 인도 땅을 밟은 그날, 첫 기차 티켓을 구입하려던 그 순간 좌석 명칭이 생각나지 않아 '일반석 (General class)'을 구매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했던 고행길이 시작되었다.


일반석은 바라나시에 갈 때까지 꼬박 직각으로 앉아서 가야 하는 좌석이었다. 쿠션도 없는 긴 벤치 형태여서 엉덩이가 작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식이었다. 바라나시까지 네다섯 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는 매표소 직원의 말과는 달리, 기차는 달렸다 멈췄다셀 수 없이 반복하며 결국 열 시간을 달렸다.


기차 안의 창문이 다 열렸던 건지, 아예 유리가 없었던 건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뻥 뚫린 창으로는 계속해서 뜨거운 바람이 들어왔다. 빠른 속도로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갈 때면 엉덩이가 좌우로 미끄러져 양 옆 사람과 엉덩이를 번갈아가며 비벼대야 했다

내 한쪽 옆으로는 소나울리의 한 사원에서 이틀 밤을 지내며 알게 된 캐나다인 크리스가 앉아 있었다. 다인실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 인사만 나누다가 어쩌다 한 번 나눈 대화에서 같은 날 같은 곳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는 어색하게 시작한 동행이었는데, 그 첫날부터 엉덩이를 비비는 사이가 될 줄은.


일반석 티켓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2열로 배치된 벤치 자 사이 통로에는 서서 가야 하는 사람들로 끊임없이 메워졌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서있느라 눈조차 감을 수 없는 사람들의 시선이 주로 향한 곳은 나와 크리스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눈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남자들이 가득 찬 기차 칸 안에 내가 몇 안 되는 여자라서 인지, 크리스의 오렌지 색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한 나 또한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남자가 드디어 우리 둘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주변의 수많은 눈들이 별처럼 반짝거리며 더 가까이 다가와 나와 크리스를 더 환하게 비추었다.


두 사람은 남매인가요?”


질문이 조금 엉뚱하긴 했지만, 어색했던 크리스와의 사이가 왠지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런 내 속내와 달리 우리 둘은 앞다퉈 아니라고 부정하며 두서없이 아닌 이유를 설명했다. 도대체 얼마나 안 친해 보였길래 연인이나 부부도 아니고, 인종이 확실히 구별되는 우리가 남매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카스트(인도의 계급제도)가 어떻게 되죠?”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 인도에 가면 카스트를 묻는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어디선가 봤는데, 반대로 그들이 먼저 물어왔다. 카스트에 대해 읽은 것들을 떠올리며 가장 상층 계급인 ‘브라만’이라고 대답해 보았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자신이 브라만이라는 자들이 ‘나도’, ‘나도’ 하며 "브라만 밍 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반갑다며 악수를 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차푯값이 거의 공짜와도 같았던  열악한 일반석에 브라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학력이 어떻게 되나요?”


인도인들의 질문은 하나같이 신선했다. 그전까지는 만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은 비슷비슷했다. 이름이 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자신의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행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같은  질문들을 하도 반복적으로 받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하는 일들이 생겼다.

학력은 대졸이라고 대답을 하자, 여기저기서 대졸자들이 악수를 청해왔다. 그중에는 뜬금없이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도 내가 자신들의 친구나 여자 친구가 될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했나 보다.


중국, 티벳, 네팔을 지나 인도로 향하던 길, 나와 반대방향에서 오는 여행자들은 마치 고자질이라도 하듯 인도의 악명 높은 것들에 대해 내 귀에 읊어주었다. 기차, 버스, 지저분한 거리, 비위생적인 음식, 시간 개념, 바가지, 날씨, 사람들. 그중에는 ‘인도’라는 말만 나와도 치를 떠는 사람들, 아예 가지 말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괴짜스러운 사람들이 있는 나라라니, 인도 여행은 지루할 틈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피곤함으로 굳어 있던 얼굴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인도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인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하는 일이 생겨났. 첫마디만 듣고 대답하거나, 아예 대답을 안 해버린 일도.


천민계급인 ‘수드라’라고도 했고,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다고도 대답했다. 결국 그들에게 내 대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계급, 학력이 무엇이건  늘 브라만이라는 자들과 대졸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큰 소리로 드러내며 그 명목으로 내 손을 한 번 잡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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