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일정을 8월에 끼워 넣은 건 내가 세운 여행 계획들을 통틀어 가장 큰 실수였다. 만일 나 같은 트레킹 초짜가 히말라야에 간다고 하면 반드시 8월은 피하라는 것을 나의 첫 번째조언으로 삼기로 했다. 6월부터 9월까지 네팔 지역은 몬순, 즉 우기라는 것은 진작에 알았다. 그렇다면 우비 하나 더 챙기면 되지 하는 생각이 다였다. 나는 비로 인한 탈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머리숱이 많았고, 비가 내린다면 더 운치가 있을 것 같아 설레기까지 했다. 히말라야니까.
포카라에 도착한 첫날, 예상은 빗나가지 않고 땅의 뺨이라도 후려치듯 철썩철썩 소리를 내며 비가 내렸다. 한적한 거리는 가차 없이 쏟아지는빗소리로 가득 찼다. 일부 거리는 빗 물이 종아리까지 차 올라 옷이 젖지 않으려면 바지를 허벅지까지 올려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이 날 만큼은 게스트하우스를 고르는데 까탈을 부리지 않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으로 들어갔다. 허기진 배를 달래며 비가 그치기만 기다렸지만 결국엔 저녁도 못 먹고 잠에 들었다. 비와는 상관없이 다음 날 무조건 산에 오르기로 다짐하면서.
포카라는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히말라야에 오르기 위한 출발 지점이기도 하다. 일생의 버킷 리스트를 달성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은 장담컨데, 나 혼자 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카트만두에서 출발한 버스 안의 여행객들에게서는 비장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도 이어지는 비 탓인지, 등산로 입구에 다 달아 입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려 보니 딱 두 명의 이름만이 적혀 있었다. 머릿속에 또렷이 기억나는 그 비장한 얼굴들은 어디선가 발를 동동거리며 비가 그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세 번째 칸에 내 이름을 적고 산에 올랐다.
비를 맞으며,
꿈에 그리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해 첫걸음을 디뎠다.
비는 잠시도 쉬지 않고 내렸다. 하지만 히말라야를 오른다는 감격에 복받쳐 이때까지만 해도 비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빗 물에 젖어 촉촉해진 돌계단을 밟는다는 것이 감개무량하기까지 했다. 눈앞을 계속해서 적시는 비를 맞으며 산에 오른 지 네 시간 반 만에 도착한 티케둥가 (Tikedunga)라는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산장, 히말라야에서는 롯지(Lodge)라고 부르는 곳에 처음으로 배낭을 풀었을 땐 나 또한 산악인 대열에 오른 것 같아 속으로 우쭐했다.
땀과 비로 뒤 범벅이 되었던 몸을 씻고 나오니, 드디어 비가 멈춰 있었다. 히말라야에서의 첫 햇살을 받으니 묘한 '감동'같은 것이 느껴졌다. 추억을 만들고 싶어 창가에 앉아 책을 읽기로 했다. 햇 빛이 책을 읽는 나의 몸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젖은 머리는 금세 말라 두피까지 뽀송뽀송 해졌고, 비에 젖은 풀 냄새가 콧 속을 촉촉하게 적셨다. 밖으로는 하얀 보자기로 꽁꽁 싼 짐을 등 양 쪽으로 균형에 맡게 실은 조랑말들이 종종 지나갔고, 그 뒤로는 짐 몇 개를 나누어 맨 노인이 따라갔다. 그리고 나면 고요함이 다시 맑은 공기 밑으로 내려앉았다. 가끔 자그마한 새소리가 그 안에 멜로디를 넣고는 사라져 버렸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좋은 무언가가 몸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것 같았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내 안의 이런 감정을 끄집어내려고 내가 이곳에 왔구나,
히말라야에 온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둘째 날, 전 날과 달리 온몸이 바위 덩어리처럼 무거웠다. 어깨부터, 등, 엉덩이, 다리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런 나를 보채는 하리만 아니었다면, 나는 여기서 하룻밤, 아니 이틀 밤 더 묵으며 감격에 푹 젖어 지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예 일주일을 눌러앉아 지내고 이 정도면 소원성취했다며 하산했을지도 모르겠다.
하리는 카트만두에서 나와 함께 온 포터(짐꾼)였다. 카트만두에서 일주일을 지내는 동안 틈틈이 히말라야 트레킹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고 다니다가 가장 저렴한 포터 비용을 제시한 여행사에서 소개받은 사람이 하리였다. 비용을 더 낸 다면 가이드 한 명과 포터 한 명, 아니면 영어를 할 줄 아는 포터를 고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애초부터 혼자 등반할 계획이었기에 포터를 고용한 것 자체가 내겐 이미 예산초과였다.
하지만 어쨌건 결론부터 말하자면, 포터를 고용한 것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 한 일로 자리매김했다. 둘째 날부터 정상에 오를 때까지 하루 평균 일곱 시간 반 동안 산을 오르는 나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하게 해 준 ‘분’이 바로 하리 포터님이시다.
하리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전문 포터라면 분명 외국인들을 여럿 만나봤을 테니 단어 몇 개쯤은 하겠지 했는데, 내가 하는 말을 눈치로 대충 알아듣는 듯했다. 트레킹이 끝날 때까지 내가 하리에 대해 알아낸 거라고는 그가 나보다 한 살이 많다는 것과 카트만두에서 나이차가 꽤 나는 남동생과 둘이 산다는 것 이 두가지가 전부였다. 하리가 내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을 때에는 네팔어로 했고, 그땐 내가 눈치로 대충 알아들었다. 처음엔 혹시 모라도 알아들을까 싶어 영어로 하리에게 쉴 새 없이 말을 걸곤 했다.
‘하리 여자 친구 있어? 걸 프렌드, 걸프렌드 말이야.‘
그러면 하리는 못 알아듣는 것이 민망한지 늘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앞서 가다가 뒤돌아보는 하리
트레킹을 시작하기로 한 첫날, 머리에 두건을 질끈 동여매고 트레킹화를 신은 나와는 달리, 카라가 있는 말쑥한 셔츠에 쪼리를 신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아차, 사기당했구나'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짐이나 덜자 생각하며 나의 큰 배낭을 그에게 넘겼고, 나는 작은 보조 배낭을 멘 채 함께 빗 길을 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리의 걸음이 몇 배로 빨라진 건지, 아니면 내가 느려진 건지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뒤에서 바라보는데,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음에도 하리의 발걸음은 쪼리만큼 가벼워 보였다. 안갯속으로 사라지는가 싶어 속력을 내서 걸으면 앞의 먼발치에서 내가 오는지 지켜보고 있는 그가 보였다.
하리의 진가가 발휘된 건 셋째 날이었다. 그날도 비가 왔는데, 해발 3193 미터 푼힐(Poon hill)을 지나 내리막길을 걸을 때였다. 길가에 핀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팔려서 하리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도 몰랐다. 그러다 점점 가는 길이 정글과 흡사 해지더니 야생 원숭이가 나무에 앉아 나를 쳐다보는 게 보였는데, 그 눈빛이 불길했던 것 같다. 안개가 가득 낀 그 길은 바닥이 미끌미끌했고, 군데군데 바위 위와 그 주변으로 하얀 쌀 같은 것들이 가득 깔려 있었다. 뭔가 하고 고개를 숙여 자세히 보니 쌀이 아니라 꿈틀꿈틀 구더기들. 그야말로 풍년이 난 구더기 밭이었다.
징그럽고 소름이 끼쳐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구더기의 꿈틀거림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신발을 타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빠르게.
‘넘어져서도 안돼.’
한참을 뛰니 안갯속에서 멀리 앞서갔던 하리가 내 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 또한 하리를 향해 달리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거머리가 떨어져 내 목에 찰싹 달라붙었다. 손으로 내 목을 더듬더듬하는 사이 하리가 재빠르게 떼어내 손톱으로 튕겨 버렸다. 그리고나서 하리는 자신의 목에 붙은 거머리들도 떼어냈다. 이번엔 종아리가 따가워 바지를 걷어보니 이미 피를 잔뜩 빨아먹어 손가락만 하게 부풀어 오른 거머리가 강한 흡입력을 자랑하며 당최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하리가 전 날 가르쳐 준 대로 나뭇잎으로 거머리 몸통을 잡고 힘껏 떼어냈다. 따끔하고 쓰라린 그 자리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를 닦을 틈도 없이 그다음엔 등이 간질거려 상의를 걷어 하리에게 등을 보여주니 하리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고개를 뒤로 돌려 바라본 하리의 얼굴에도 좁쌀만 한 거머리가 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거머리 소굴에 계속 서 있을 수도 없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중간에 심한 고통이 느껴질 때면 잠시 멈춰 서로의 몸에서 거머리를 떼어 주었다. 계속 뛰었다. 안갯속에서 벗어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