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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Mar 14. 2022

북유럽 승무원의 가방엔 뭐가 들었을까

* 이 글은 북유럽 승무원들이 쓰는 화장품, 예를 들면 저렴하면서 효과가 뛰어난 가성비 템이나 북유럽 여행 시 쇼핑 목록에 넣을 만한 꿀템 등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니 제목에 낚였다 싶으신 분은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1박 이상 체류해야 하는 비행에 전기포트를 들고 다니는 동료가 있다.

보통 호텔에 가면 각 방마다 기본적으로 전기포트는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꼭 그렇지도 않다. 보통 승무원들이 묵는 호텔은 최소 4성급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특히, 공항 호텔의 경우 시설이 간소한 경우가 많은데, 전기 포트가 없는 대신 '승무원 전용 휴게실'이라는 게 있다. 그곳에는 커피와 차, 그리고 간단한 스낵 등이 항시 마련되어 있고 심지어는 전자레인지도 있다.

미국에서 쓰는 일부 호텔 중엔 전기포트가 아닌 특정 커피 캡슐만 들어가는 커피머신만 있는 곳도 있다.


"티백도 함께 가져왔어. 방 안에서 나가지 않아도 돼"


동료는 양손을 교차해 자신의 몸을 감싸는 제스처를 취하며 아주 아늑한 휴식을 상상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 티백뿐이랴, 컵라면, 그리고 북유럽인들이 간편하게 허기를 채울 때 많이 먹는 포리지(Porridge; 오트밀에 뜨거운 물이나 우유를 부어 죽처럼 먹는 음식)까지 해 먹을 수 있는 아이템이 전기포트다. 값 비싼 호텔 룸서비스를 시키지 않아도 되고, 피곤한 몸으로 주변의 카페나 식당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설사 호텔 룸에 전기포트가 있다고 해도 누가 어떻게 사용했을지 모를, 얼마나 깨끗이 씻어 소독했을지 모를 공용 전기포트에 의심을 품을 필요조차 없다.


여하튼, 동료의 말을 들은 후로 작고 가벼운 전기포트를 발견하면 즉시 구매할 생각을 하고 있다.




승무원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세 가지 사이즈가 있다.

- 핸드백, 혹은 노트북 사이즈 가방.

- 기내용 캐리어.

- 짐 칸에 싣는 대형 캐리어 (1박 이상 체류하는 긴 비행 시에만 사용)


예전에 일하던 항공사에서는 짧은 비행 시에는 <핸드백+기내용 캐리어>, 긴 비행 시에는 <핸드백+기내용 캐리어+대형 캐리어>를 무조건 갖추는 것이 회사 룰이었다. 기껏 해봤자 24시간 체류가 대부분이라 거의 텅 비다시피 한 대형 캐리어를 어쩔 수 없이 끌고 가는 날도 있었다. 또 캐리어에 자리가 많다 보니 불필요한 쇼핑을 하는 일도 많았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에서 사 온 나무 조각품들 같은.

하지만 현재 회사는 그러한 룰이 없고, '내 맘대로' 다.


그래서 짧은 비행을 할 때는 핸드백만 달랑 들고 가는 날이 많다. 말이 핸드백이지 여행용 쌤소나이트 가방이라 꽤 많은 것들이 들어간다. 보통 여성들이 들고 다니는 화장품 파우치, 핸드폰, 지갑, 칫솔통 외에도 비행 시 필요한 각종 서류, 기내용 신발주머니, 서비스할 때 입는 앞치마, 주로 오븐 다룰 때 쓰는 열차단 장갑 등 이 모든 게 다 들어간다. 가끔 기내식이 먹기 싫어 도시락을 넣어갈 때도 있다.


승무원 룩의 완성은 기내용 캐리어라고 누가 그랬나, 나는 1박 이상 체류하는 긴 비행이 아니면 잘 안 쓰는 편이다.  평소 보부상처럼 큰 가방을 메고 다니는 편이라, 웬만큼 무거워도 캐리어 바퀴의 돌돌대는 소리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느니 어깨에 짊어지는 걸 좋아한다.


1박 이상 해외에 체류하는 비행을 갈 때야 비로소 최대한 짐을 눌러 담은 기내용 캐리어를 끌어준다. 겨울 코트를 넣어야 할 것이 아니라면 속옷 한 벌, 겉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화장품 가방이 기내용 캐리어에 다 들어간다.


내가 대형 쌤소나이트 캐리어를 쓰는 경우는 두꺼운 겨울 옷과 장화를 갖고 갈 때, 그리고 해외에서 쇼핑을 할 계획이 있을 때 말고는 없다. 작은 아파트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 필요할 때 보다 버리고 싶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이런 나와 달리 아주 요긴하게 캐리어를 활용하는 동료들이 있다.




웬만한 여자 동료보다 더 큰 미용 가방을 갖고 다니는 남자 동료를 봤다.

그는 게이인데, 무척이나 자기 관리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의 얼굴에선 광이 흘렀고, 뾰루지, 모공관리에 좋은 화장품까지 잘 알고 있어 받아 적으려다가 듣자 하니 비싼 것들이 대부분이라 관뒀다. 그의 미용 가방이 거대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탈모방지 기구들 때문이었다. 이미 탈모가 시작되어 늦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관리한다며 나는 처음 보는 기구들을 여러 파우치에 분산시켜 담아 갖고 다녔다. 나는 탈모 걱정은 없고 주름관리 미용기구라도 갖고 다녀야 하나 괜한 경쟁심이 샘솟았다.



비행 30년 차 핀란드인 여자 사무장과 함께 인천 비행을 갈 때였다. 고작 24시간 체류인데 혼자 유일하게 대형 캐리어를 가지고 왔다.


"인천 비행에 큰 캐리어는 필수지"


캐리어에 택을 붙이며, 동시에 호호호호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이니스프리에 가서 페이셜 팩도 사야 하고, ××××에 가서 ×××크림도 사고 (나는 잘 모르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와 제품), 그리고 내가 김치를 정말 좋아해."


한국 화장품, 그 중에서도 저렴하면서 포장도 예쁜 마스크 팩은 오래전부터 승무원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그리고 인천행 비행기에는 기내식으로 김치 팩이 실리는데, 핀란드인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참 강하다. 나도 매워서 입으로 들숨을 거듭 거리며 먹는 김치를 반찬이 아닌 밥 인양 뭉텅이로 한 입에 넣어 먹는 동료들이 있다. 배추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동료도 봤다. 내 눈 앞에 김치 담궈 먹는 핀란드인이 있다니.


인천 비행에서 돌아오는 길, 30년 차 핀란드인 사무장은 이마트에 가서 김치를 종류별로 쓸어 담아왔다고 자랑했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 김치를 뭐랑 먹는지 물어보질 않았다.



한 겨울 일본, 삿포로 2박 3일 비행을 갈 때였다. 겨울옷을 챙기느라 드디어 먼지 쌓인 대형 캐리어를 들고 출근했다.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스노우보딩 강사였어"


기내 서비스를 마치고 쉬는데, 젊은 여자 사무장이 말했다.

우리 회사에는 참 다양한 재능을 가진 동료들이 많다. 재능이 많아 투잡, 쓰리잡을 하는 동료들도 적지않다. 회사의 모든 비행기에서  흘러나오는 자동 기내방송도 과거에 라디오 방송인이었던 동료의 목소리로 녹음된 거다.


"삿포로에서 스노우보딩 가려고 장비 챙겨 왔지, 삿포로에서는 처음이야"


그러자 똑같이 스노우보딩복을 혹시나 해서 챙겨 왔다는 동료와, 렌털을 해서라도 함께 가겠다는 동료들이 목소리를 냈다. 겨울 스포츠의 장인, 핀란드인들에게 이 삿포로 비행은 얼마나 꿈나라 같을까. 삿포로 비행뿐 아니라 전 세계를 다니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건, 웬만한 아웃도어 취미인들의 꿈 아닐까. 그들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온 데엔 나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일본 가서 다코야끼랑 돈카츠나 맘껏 먹고 오겠다고 작정하고 온 나와는 참 비교가 되었다.


가끔 동료들의 가방을 보며 생각한다.

저 안엔 뭐가 들었을까.


기내용 캐리어(왼쪽)와 대형 캐리어(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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