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행 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도 채 안되게 남았을 때였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승객들이 이미 탑승 게이트 앞에 모여 안내 스크린을 주시하며 탑승 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나는 이날도 헬싱키에서 스톡홀름으로 회사가 끊어주는 비행기를 타고 출근하는 길이었다. 공항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보통처럼 탑승 시간에 가까울 때쯤 도착하여 체크 인을 하면서야 내 이름이 탑승 대기자 명단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혹시 잘못 아신 것 아니에요?"
체크인 데스크 직원에게 물었다. 나는 해당 항공사의 직원이었고, 내가 스톡홀름에 가는 이유는 다음 날 스톡홀름을 출발해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에 승무원으로 탑승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버부킹이라 좌석이 다 찼어요. 우선 게이트에 가서 대기하면 직원이 안내해줄 거예요"
승무원 수가 모자라면 비행기가 뜨지를 못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게이트로 향하며 나는 회사에 연락을 했고, 걱정 말라는 답변을 받았다.
게이트 앞에 도착하니, 다음 날 함께 비행할 팀원들이 먼저 와 있었다. 한 명 씩 인사를 나누다가 나 말고도 두 명이, 즉 우리 팀 중 총 세 명이 탑승 대기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개는 마지막 순간에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거나, 아니면 교통체증, 기타 여러 가지 문제로 공항에 나타나지 않는 승객(노 쇼우 No-Show) 들이 있기 마련이라 항공사에서는 실제 좌석 수 보다 더 많은 승객의 예약, 즉 오버부킹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 날은 대부분의 승객들이 예정대로 공항에 나타난 것이다.
승객들 중 공항에 가장 늦게 도착하여 대기자 명단에 들어간 나와 동료 두 명이 이 비행기를 못 타게 된다면, 다음 날 자사 비행기 한 대가 못 뜨는 것은 명확한 사실. 결국, 탑승을 앞두고 승객들 중에서 좌석을 포기할 세 사람을 찾아야 했다.
이곳에 모인 승객들은,
이 날 혹은 전날부터 짐을 싸서, 버스나 기차, 택시 아니면 누군가의 배웅을 받아 차를 타고 공항에 왔을 것이고, 줄을 서서 체크 인을 하며 짐을 부치고, 번거로운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하여 수속을 마친 사람들. 이 중에는 일찍 와서 공항에서 몇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다른 나라에서 출발하여 환승하는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10분 후에 당연히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알았던 사람들 중에서 좌석을 포기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좌석을 포기하시는 승객께는 현금 300유로와 함께 공항 바로 옆 호텔의 무료 숙박과 조식권을 제공해드립니다.
그리고 내일 가장 빠른 오전 7시 45분 비행기에 탑승하시게 됩니다.
안내방송이 끝나자마자,
'아, 좌석 포기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상황.
내가 일반 승객인 비행기에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걸까.
원래 비행기가 출발하는 시간은 어차피 저녁 8시 30분이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거나, 스톡홀름에서 환승하여 연결 편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혹할만한 조건 아닌가.
(헬싱키-스톡홀름은 비행시간이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아 비즈니스 클래스의 의미가 별로 없지만, 만일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항공사가 당장 제시하는 조건 외에 좌석 업그레이드도 기대해 볼 만하다.)
그런데 의외로 포기를 자원하는 사람이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하긴, 공항에 오기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모를까, 공항에 오기까지의 시간과 수고, 그리고 또 이 과정을 다음 날 다시 반복하기에 300유로가 파격적인 금액이 아닌 건 확실했다.
그렇게 안내 방송은 여러 번이 흘렀다.
기존의 탑승 시간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자원자가 나타나지 않자, 나도 모르게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예전의 미국의 한 항공사에서는 승객이 모두 탑승을 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겨 추첨을 통해 비행기에서 내릴 승객을 선출했고, 선출된 승객이 거부하자 경찰을 동원해 그 승객을 질질 끌고 가는 사건이 뉴스에 뜬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승객은 부상을 당했고, 거기에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종차별 문제까지 제기되었었다.
안내 방송이 몇 번 더 반복된 후, 다행히 좌석을 포기하는 승객 세 명이 모두 나타났다.
탑승이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다행히 항공사에 불명예를 안겨줄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포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추첨을 해서 선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행위 자체가 이미 항공사에게는 불명예이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마도 보상 금액을 늘려 결국에는 포기를 자원하는 사람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