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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Apr 20. 2022

핀란드에서 한국까지 비행기로 왕복 9만 8천 원.

광고 아님.

한국의 해외 입국자들에 대한 자가격리가 없어진 요즘,

한국에서는 해외여행을 가려고 난리라는데, 반대로 해외에 사는 사람들도 한국에 가려고 난리다. K-pop과 영화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더 높아지며, 내 주변에는 한국어를 배우거나 한국에 관심이 높은 외국인들이 부쩍 많아졌다.


이따금씩 한국에 방문한 지인들이 인스타에 올리는 사진들을 볼 때면 부러움이 들었다.  그런데, 이달 들어 외국인들까지도 그 대열에 합세하여 경복궁 사진들을 올려대니 배가 아플 지경이다. (부러움과 질투는 인간의 뇌에서 생산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란다.)


해외여행을 못 가는 만큼이나, 한국에 못 가는 사람들의 갑갑함도 매한가지. 나는 승무원이라는 직업 때문에 해외를 많이 다닌다는 점에서 근래 들어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 코로나로 큰 타격을 입은 항공업계의 일원으로서 1년 반 정도 정직을 당했었고 한국에 사시는 부모님도 못 뵙는 이중고에 시달렸었다. (안 그래도 연로하신데, 함께 인생을 공유할 시간이 끝도 없이 줄어들까 봐 조마조마했다).


여하튼, 자가격리 해제 이후로 한국에 갈 기회를 노리던 중 조만간에 일을 좀 길게 쉬게 되어 본격적으로 방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가는 것과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비슷한 것 같다. 명소(한국에 못가본 곳이 많음)맛집(외국의 한식집엔 엔 잘 없는 짜장면, 감자탕, 떡볶이 정도), 쇼핑리스트(주로 다이소의 생활 꿀템들), 그 위에 가족과의 시간과 지인들과의 약속 스케줄이 추가되니 조금 더 복잡하다고 해야 할까. 정해진 시간에 비해 일정이 보통 여행보다 더 빡빡하다.


단, 내게는 황금카드가 하나 있는데, 주머니 부담을 아주 많이 줄여 <<비행기 직원 할인 티켓>. 

인터넷을 뒤지며 티켓 검색이나 가격비교를 하지 않아도 되니 시간 부담도 제로. 특히나 여행 수요의 급격한 증가로 비행기 푯 값이 많이 올랐다는 요즘, 아주 든든한 지원군이다.


항공비는 무료, 세금만 내고 타는 거라 비행시간이나 거리에 상관없이 그 값이 비슷비슷하다. 예를 들면, 헬싱키에서 파리에 가나 인천에 가나 그 값이 같다.


왕복 75유로,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약 9만 8천 원.

단, 비행기 좌석을 확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 당일에 잔여 석이 있을 경우에만 이 값을 내고 탈 수 있다. 내부 시스템으로 잔여좌석을 미리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에 문제는 없다. 우리 회사 외에 타 항공사도 이용 가능하며, 이코노미석뿐 아니라 비즈니스 석 티켓도 할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승무원이 꿈꾸던 직업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이 직업을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 때가 바로 비행기 티켓을 구입할 때다.

값이 워낙 저렴하니, 쉬는 날이면 시도 때도 없이 여행을 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쉬는 날엔 집에서 쉬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렇게 많이 사용하는 편은 아니다. 나뿐 아니라 가족들도 사용 가능한데, 우리 가족들 또한 다들 각자의 사정으로 여행을 거의 하지 않는 편 (나의 황금카드는 나와 함께 푹 쉬는 중).


쓰면 쓸수록 더 이득인 것 같은 이 혜택을 잘 누리질 않으니 가끔 '내가 왜 굳이 승무원 일을 하나' 허망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가 비행기 티켓을 사는 날이 오면 그땐 다시, '그래, 이 일을 하길 잘했어'로 생각이 바뀐다. 오랜만에 인천행 티켓을 사며 그 허망함과 함께 일로 인한 무기력함을 바로 잡는 기회를 가졌다 (앞으로 더 자주 티켓을 사야 하나...).


이 티켓의 또 다른 장점은, 갑자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잔여 좌석' 이 있는 아무 도시나 골라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리 예약을 할 필요도 없고, 취소도 수수료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리고 요즘처럼 비행기 값이 폭등하는 때에도 가격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웬만한 플래티넘 멤버십 카드가 부럽지 않다.


어쨌든, 황금카드 덕에 비행기 티켓은 해결. 문제는 비행시간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이 두나라의 항공길이 막히면서 우회해서 가느라 비행시간이 길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핀란드에서 한국까지 러시아 상공을 통해 8시간 30분 정도였는데, 요즘엔 11시간 30분. 한국에서 핀란드로 돌아오는 길은 13시간 30분이다.


유럽에 살면서, 한국이 좀 더 가까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나마 북극권인 핀란드에 오면서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는데, 전쟁이 나면서 세상 멀어졌다. (21세기에 그것도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세상은 요지경'이라던 아주 옛날 노래가 떠오르고, 머릿속에 잡념이 더 늘어나며, '한국이 터키쯤 되는 위치로 이사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이상한 생각마저 하게 되는 요즘이다.



* 제목 사진: 북유럽에서 자주 나타나는 핑크빛 하늘을 비행기에서 포착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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