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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Jul 07. 2022

소심한 개인주의자, 핀란드인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말 수가 적고, 표정이 한결같아 무뚝뚝하다고 평가되는 핀란드인들의 성향은 유명하다. 여느 유럽인들처럼 이웃이나 단골가게 점원과 자연스럽게 '날씨'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입구에서 마주쳐도 '헤이(Hei ; 안녕)' 하고 짧은 인사말만 툭 내뱉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How are you? 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가는 '투 머치 토커 (Too much talker)'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필요한 말만 명료하게, 상대방의 사생활에 관한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최대한 피하는 것은 핀란드인들이 타인을 배려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핀란드인들의 특성을 몰랐을 때에는 평소의 나대로, 어색함을 하기 위해 나름 머리를 써 말을 길게 하곤 했다.


행정처리를 위해 우편을 보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우표를 사면서,

-우표에도 무민이 있네요. 너무 귀여워요


차 전문점에서 홍차를 구입하면서,

-헬싱키에서 차 전문점을 발견하다니, 앞으로 자주 뵙겠는데요.


기차역에서 길을 알려 준 청년에게,

"한참을 헤맬 뻔했어요, 그쪽이 아니었으면"


보통 이런 말을 하면, 그전에 살던 프랑스에서는 '뭐, 그럴 수도 있죠', '맞아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 같은 대답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원치 않는 범위까지 대화가 길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핀란드에서의 반응은 많이 달랐다.


그들은 모두,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지?>

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거나 마치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척하며 하던 일을, 가던 길을 이어갔다.


외국인을 대하는 것이 불편한지, 내가 말 실 수를 한 것인지, 아니면 바쁜 일이 있었으려니, 내 나름대로 이유를 추측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낯 선 반응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불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후, 핀란드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어 교육을 받던 중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핀란드인들의 '독특한 성향'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그 성향은 너무나도 또렷해서, 한 핀란드인 동료가 말을 하면 다른 동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곤 했다.


"우리는 낯 선 사람들과는 말을 잘 섞지 않아"


이 낯 선 사람에는 자주 마주치는 이웃도 포함된다. 서양인들의 주특기로 알려진 '스몰토크'는 핀란드인들에게는 가장 큰 최약점 중 하나다.


*스몰토크-낯선 사람과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가볍게 하는 대화


핀란드인들에게서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소소한 작은 대화가 오고 가는 일은 기대하기 힘들다.


<We are quite shy people>

-우린 수줍음을 많이 타는 편이라.


나의 핀란드 동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 인색한 이유는 수줍음 때문이라고. 서양인들과 수줍음은 매칭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들을 경험해 본 나에게는 이 말에 약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약간'이라고 한 이유는 그들의 사우나 문화 때문이다.


처음 핀란드에 왔을 때 내가 살던 곳에는 헬싱키의 많은 아파트가 그렇듯 이웃끼리만 사용하는 공용 사우나가 있었다. 대부분은 예약제로 운영되어 한 타임에 한 집만 사용할 수 있도록 프라이빗하게 운영이 되지만, 우리 아파트는 여성 사우나와 남성 사우나가 나뉘어 있고 예약 없이 아무 때나 공용으로 사용이 가능했다.

운 좋게 내 또래의 수다스러운 핀란드 여성 이웃과 친해져 처음으로 함께 사우나를 간 날이었다. 그녀는 사우나에 가자마자 속옷 한 장 남기지 않고 홀라당 벗은 채 샤워를 하고는, 사우나 안으로 들어가며 내게 말했다.


"난 사우나를 할  옷을 안 입는데, 어색하면 넌 입어도 돼"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핀란드에서 처음으로 갔던 한 유명한 사우나에서의 룰을 생각하며 비키니를 입은 채로 안에 들어갔다.

두 평 남짓한 사우나 안에 들어가자 안면도 없는 이웃 두 명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우리 둘을 맞이했다. 말그대로 벌거벗은 세 여성들이 너무 떳떳해서, 오히려 비키니를 입은 내가 민망해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이웃과 함께 갔을 때에는 나 또한 완전히 옷을 벗었다. (한국의 대중목욕탕과 찜질방 경험조차 거의 전무한 나에게는 엄청난 용기였다.)

그렇게 신생아의 몸으로 함께 사우나를 즐기고 나니, 이제 막 알게 된 나의 이웃과 마치 배꼽친구라도 된 느낌이었다.


말을 트는 것보다 알몸을 트는 것이 더 쉬운 사람들. 도대체 핀란드인들이 말하는 수줍음이란 어떤 장르의 것을 말하는 것인지 참 애매하다.



이유야 어쨌건 간에, 스몰토크는 극구 아니라고 부인한다면, 그들이 내세우는 주특기는 뭘까?

바로 '거리두기'다. 코로나 팬데믹과 연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핀란드의 한 버스 정류장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위 사진은 개인의 공간을 중요시하는 핀란드인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유명한 사진이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모습이다.

핀란드에 가기 전 인터넷에서 보긴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기까지는 믿기지가 않았다.

'저렇게까지?'


핀란드에서 처음 출근을 하던 날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위 사진과 아주 흡사했다. 버스 정류장에 가니 눈이 쌓여 있었고, 딱 저 정도 길이의 줄과 간격으로 사람들이 서 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선 것인 줄 알고, 나는 정류장에서 가장 먼 쪽의  줄 끝에 가서 섰다. 버스 한 대가 오자, 해당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군데 군데서 나와 무질서하게 이동하는 걸 보고 '아하' 하며 이 사진이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정작 버스를 탈 때에는 무질서하게 줄을 서지만, 서로에게 양보하는 모양새였다. (커다란 땅에 나라 전체 인구가 고작 5백만, 실상엔 양보하고 말 일도 사실은 별로 없다.)


한국의 인구밀도는 1 제곱 킬로미터 당 약 514명, 임야와 논, 밭, 하천 등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4,771명 정도라 한다. (나무 위키).

반면에 핀란드의 인구밀도는 19명.


<거리두기>에 큰 의도가 담겨있지 않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수치다. 버스정류장이 아니라면 평소에는 저보다 훨씬 먼 거리가 유지되는 것이 당연하다.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2미터 거리두기'가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질 때에도, 평소 '200미터 거리'일상의 간격인 핀란드에서는 '야외에서 마스크 쓰기'가 필수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입사 교육을 받는 동안, 핀란드인 동료들은 핀란드인들의 독특한 특성들을 우스갯소리로 자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동료가 그룹채팅 창에 본인들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러스트 몇 개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바로 핀란드 국민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Finnish nightmares>.

한국에서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한 핀란드인 '페트리'가 번역하여 <소심한 개인주의자를 위한 소셜 가이드-핀란드에서 온 마티>로 출간되었다.



일러스트에는 제목처럼 핀란드인들의 '소심함'과 '개인주의적' 성향들이 드러나있다.


여기서 '소심함'을 '옹졸함'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소심하다: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다.

옹졸하다: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고 생각이 좁다.

-위키 낱말 사전


'왜 그렇게 소심해?'라는 식으로 우리는 종종 소심함을 그 사람의 단점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대담함'과 '소심함'은 서로 다른 특성일 뿐, 둘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전의 양면 같은 이 두 가지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소심함'은 대담하지 '못함'을 뜻하기에 왠지 숨기고만 싶다.

하지만 핀란드인들은 그들만의 두드러지는 또 다른 특성 중 하나인 '솔직함'때문에 이를 숨기는데 곧잘 실패하는 것 같다.


'개인주의' 또한 '이기주의'와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개인주의: 개인의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도덕적 입장.

이기주의: 자신의 이익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이념.

-위키 낱말 사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핀란드를 수식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형용구다.

행복은 어느 몇 가지 요인에서 오는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그 비결을 나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문화심리학자들은 행복 수준이 높은 국가들의 사회적 특징 중 하나로 '개인주의'를 꼽았다. 내 개인의 욕구를 중요시하면서 타인 또한 나와 같은 인격체임을 인정하는 것, '우리'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

개인의 삶이 인정되는 사회에서 '온전히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기분이지 않나.


다시, <핀란드에서 온 마티> 일러스트를 보면, 마티의 행동은 독특하지만 왠지 낯설지가 않다. 마치 내 안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마티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의 평화 또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느껴져 별로 불편하지도 않다.


스몰토크를 하지 않고도 평소의 사이를 유지할 수 있다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도 않는 대화를 애써 할 필요가 있을까.

좁은 사우나 안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발가벗을 수 있다는 건 상대방의 시선 따위에 상관없이 나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을 해도 안전하다는 사회적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대방이 어떤 모습이든 나 또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심함>이 인간이 갖고 있는 원초적 특성 중 하나라면, <개인주의>는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핀란드가 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인지 이유를 묻기보다는 왜 는 행복하지 못할까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


대놓고 소심해도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나 자신의 고유함과 도덕적 관념을 두고 다수가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 말이다.







<Daum> 과 <브런치> 메인에 소개되어 10만 뷰 이상 조회되었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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