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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Jun 20. 2022

인스타그램만큼 환상적인 삶은 아니지만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결국엔 모두 내 삶의 일부다.

<북유럽 승무원> 매거진에 올린 지금까지의 포스팅을 보면서 본의 아니게 내 직업과 삶에 대한 찬양 아닌 찬양들만 늘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점보다는 장점들이 더 많이 부각되어 있고, 주변에서 일어난 좋은 일들과 좋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로 적었다. 물론 이곳에 남긴 글들은 모두 진실이다. 단지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고, 좋아하지 않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뒷담화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도 그 결이 같다. 비행을 가서 찍은 해외 사진과 주로 즐거운 일상 사진들 (팔로워들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해외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이다 보니 평소에 핸드폰 외에 카메라를 종종 들고 다니는 편이다. 그렇게 찍은 수많은 사진들에 비하면 인스타에 올려진 사진들은 그 백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호텔, 해외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사진들을 일일이 다 올리지 않는다. 그보다 내 눈에 더 특별한 사진들이 많다. 그 어느 것도 꾸며지거나 임의의 설정샷이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들. 특히, 내 기준에 구도나 색감이 잘 나왔다 싶은 사진들과 좋은 기억들이 담긴 사진들을 올리는 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사람들의 사진보다는 주로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곤 하기에, 안 좋은 추억이 떠오르는 사진은 몇 달이 지나 지우는 경우도 있다.




"아주 행복해 보이네"


다른 나라에 살아 얼굴 볼일은 극히 드물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나마 안부를 확인하는 지인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 이전에도 인스타그램 덕분에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이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나는 블로그를 했었고, 다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하게 되면서 공교롭게 인스타그램으로 갈아탔다. 교류 없이 혼자 하던 블로그와 달리 인스타그램에서 서로의 일상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자, 얼굴도 보기 힘든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철면피를 깔고 자랑이 섞인 말들을 구구절절했어야 들을 수 있었던 말을.

무뚝뚝한 얼굴에, 다소 비관적이고, 자기 비하적인 말도 서슴없이 하던, 그가 알던 나의 모습은 인스타그램에서 전혀 찾아볼 수가 없으니 내가 요즘 들어 부쩍 행복해지기라도 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멋진 인생을 살고 계시네요"


한 팔로워가 내 인스타그램 사진에 댓글을 달았다.

팔로워들 중에 지인은 별로 없다. 정말 친한 사람들 중에는 인스타그램의 계정조차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이고 공유하는 것이 낙이다 보니 계정을 공개로 해놓았는데, 내 사진들을 본 불특정 다수 중에 한 사람이 한 말이다. 사진 몇 장으로 이 분이 진지하게 내 인생을 평가해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해외를 자주 다니거나 많은 경험을 하는 듯한 부분이 그분 입장에서 멋져 보였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문득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에 올린 찬란한 사진들과 찬양과 긍정의 메시지가 가득한 글들 때문에, 내 삶이 너무 판타스틱하게 비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문득'이라기보다는 글이나 사진을 올리면서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들이 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물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게다가 그들은 나를 가상에서만 접할 뿐이고, 실제로 만난다고 하더라도 나를 알아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자주 만나지 않는 지인들이 오해하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내게도 고되고 짜증 나고, 그지 같은 현실 (실제로 '어우, 그지 같아'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수많은 순간들)이 있다.

여행지 (주로 비행간 곳)에서의 사진들이 가득하지만, 내 일상의 대부분은 일을 하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다.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보니, 쉬는 날 몸만 피곤한 것이 아니라 머리 자체를 쓰기가 싫어 멍하니 있는 날도 꽤 많다. 게다가 해외에 자주 나가니까, 집에 빨랫감과 청소 거리가 남들보다 더 오랫동안 쌓여 있는 편이다.

그리고 승무원이라고 하면, 승객을 대하는 서비스직의 고충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직원과 손님의 상하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유럽에서는 그런 건 없다. 하지만 매 비행마다 바뀌는, 거의 안면이 없는 동료들과 합을 맞춰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 소비가 많이 되는 편이다. 한 비행에 수 백명의 승객들을 상대하고 동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직업의 특성 때문에, 쉬는 날이면 혼자 있고 싶다는 승무원들이 꽤 많다.


쌓여있는 빨랫감, 오랜만의 대청소, 멍하니 보낸 하루, 켈로그에 우유를 말아먹은 저녁 식사 같은 사진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는다. 두고두고 보며 미소 짓고 싶은 사진들도 아니고, 찍었다 한들 구도와 색감이 잘 나오기도 쉽지 않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도 마찬가지다. 쉬는 날 굳이 그지 같았던 순간들을 머릿속에 곱씹어가며 글로 남기고 싶지 않다. 무언가를 비관하거나 비판하는 것도 내 취미는 아니다. 물론, 누군가의 험담을 하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즐겁기 때문이라서도 아니고 나중에 그 글을 보면 결국 후회하고 삭제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쁜 일과 중 짬 내서 글을 쓰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바라보는 내 인생은 그리 멋지지도 않고, 나는 전반적으로 되게 행복하지도 않다. 내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10점을 최고치로 봤을 때, 5-6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보여주는 것들만 보고 사람들은 나를, 그리고 내 인생을 내가 쏟아낸 긍정의 메시지만큼 좋게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그거 다 보여주기 식이지"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 생각나서 내 사진들도 '보여주기 식'인가 나도 모르게 착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 안엔 설정샷도 있겠지만, 어쨌든 어딘가엘 가고, 무엇을 먹고, 파티를 즐기고, 명품을 걸치고 한 것은 사실이다. 그 순간이 어찌 즐겁고 행복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의 삶이 다 비슷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착각이다. 사진과 글만으로 남의 행복과 인생의 척도까지 가늠하는 것이 착각이다.


인스타그램도, 브런치도,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그 어느 것도 일기장이 아니다. 내게 일어난 일을 모두 쓸 필요도 없고, 후회와 반성을 올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나를 아는 프랑스인 친구는 "여행 자주 다니면 피곤하지 않아?"라고 물으며 안쓰러움을 드러냈다.

부러움과 안쓰러움은 보는 사람들의 몫이고, 내 인생의 얼마만큼을, 어느 부분을 보여줄 것이냐를 정하는 것이 내 몫이다.

남의 몫까지 걱정하면서 피곤하게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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