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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Jul 24. 2022

외국 회사에서 한글 이름 사용하면 생기는 일

북유럽 항공사 승무원입니다.

한국에 있는 외국계 회사가 아니라 외국에 있는 현지 회사,

즉, 한국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외국 회사’에 다니고 있다. 핀란드인들이 95% 이상이고, 나머지는 기타 외국인들인 핀란드 회사다.


그 안에서 나는 거의 모든 직원들의 혀에 익숙하지 않은, 그래서 발음하기 힘든 내 한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성을 제외하고 이름 두 자에 모두 받침이 들어가 있으니 난이도는 글쎄, 중상 정도.


이름이 외자이거나, ‘수지’나 ‘미나’처럼 발음이 쉬운 이름이 아니라면,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영어 이름을 만들어 쓰는 일이 흔하다. 제니퍼, 에밀리, 데이빗, 스티브 같은.


외국 이름이 싫으면, 성을 이름 대신 사용하기도 한다. 김 씨는 킴(KIM)으로, 박 씨는 팍(Park)으로.


혹은, 이름 중 한 글자를 닉네임으로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선, 혜선 등의 이름은 선(Sun), 혹은 써니(Sunny)로, ‘진’ 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진(Jin)’혹은 ‘지니(Jinny)’와 같은 식으로.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그랬듯, 외국에서도 내 이름 두 자로 불리고 있다. 내가 그러길 ‘강력하게’ 원하기 때문이다.


너무 욕심인가.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한글 이름을 사용할 때 경험했던 불편한 점과 우려하는 부분을 나 또한 겪었고, 겪고 있어 잘 알고 있다.


첫 번 째는, 직장 동료가 이름 대신, 짧고 쉬운 내 성을 부르는 경우다. 그럴 때면 나는 바로 정정을 해준다.


“잠깐만. Lee는 성이고, 내 이름은 XX이야”


그러면 상대방은 머쓱해하거나 미안해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그다음에 나오는 질문을 나는 거의 알고 있다.


<아, 미안. 닉네임은 없고?>


낯 선 내 이름을 발음해보려 노력조차 않는 상대방에게 나는 친절하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어, 없어”


불쾌한 것은 아니다. 아시아인들이 성을 이름 대신 쓰는 경우가 많기에 나 또한 그럴 거라 여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정정해 주는 것일 뿐이다.


두 번 째는, 상대방이 내 이름을 물었을 때, 두 번, 세 번, 그 이상을 반복해서 대답해줘야 하는 일이다. 아예 사원증에 적혀 있는 내 이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 말로 하는 것보다 더 쉽게 익힌다. 엄청 귀찮다. 하지만 내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라면, 나는 얼마든지 반복해서 말해줄 의향이 있다.


 “세 번만 반복해봐, 금방 입에 익을 거야”

반드시 내 이름 두 자로 나를 부를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내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다.


그러면 정말 순수하게 내 앞에서 내 이름을 세 번 반복하는 동료들도 있고, 내 이름을 다시 봐 가며 머릿속에 저장한다. 그렇게 나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데 거뜬하게 성공한다.


세 번 째는, 내 이름을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는 상대방의 어이없는 반응이다.


몇 번을 반복해서 대답하게 해 놓고 그 끝엔, <, 뭐, 뭐라고?>  하고 되묻는 사람은 솔직히 대꾸도 하기 싫다. 누군가의 이름이 인상을 찌푸리게 할 일 인가. 이런 사람들의 입에까지 굳이 내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지만, 함께 일해야 하는 회사 동료이기에 응답을 해줄 수밖에 없다. 나는 옹졸하게도 내가 받았던 기분을 되돌려 줄 만한 말투로 답한다.


레포트에 쓰여있잖아, 함께 비행하는 크루 이름도 안 읽었나 봐?”

뭐 이런 식으로. 아, 옹졸해.


*각 비행마다, 비행정보, 안전과 서비스 관련 사항, 승객, 조종사와 승무원의 이름이 적힌 레포트가 있는데, 비행 전에 숙지해야 함.


한 번은 회사 교육원에서 비행관련 교육을 받던 중, 강사 한 명이 내 이름을 물어 대답하니, <뭐, 뭐라고?> 하고 되묻는 것도 모자라, <핀란드의 요한나랑 이름이 비슷하네, 요한나라고 부를게>라고 한 적이 있다.

이건 무슨 무례함인지, 술자리에서 ‘이름 짓기’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회사 교육 중에.


그때에도 무례하지 않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그건 내 이름이 아니야. 나는 XX야”




내가 매번 이렇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는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회사에서 대리님, 과장님 등의 호칭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서양 사회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친근함'을 뜻하기도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도, 상대방의 나이 대신 이름을 먼저 묻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름'은 나와 평생을 함께 해 온 <나 자신>이다.


그렇다고 <닉네임 사용>을 반대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이름이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불리기를 본인이 희망한다면 기꺼이 그러라고 하고 싶다. 부르기 쉬운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결국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내가 아닌 상대방이기에 쉽게 부르고 쉽게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이름도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애착이 가는 닉네임을 만들어 이름을 두 개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짧게 다니던 직장에서는 외국 사람들과 업무 소통이 많다는 이유로 부서 사람들이 모두 닉네임을 썼었다. 그렇기에 본명을 고집해오던 내가 급조해서 만든 이름이, 좋아하는 아티스트 Frida Kahlo의 이름을 따 Frida.

해외에서 온 이메일에도, 업무차 만나는 외국인도, 해외 지사에서 일했을 때에도 나는 Frida라고 불리었다. 그럴 때마다 어찌나 오글거렸던지. 나름 애착이 있는 아티스트였음에도, 몇 년을 그렇게 불리는 동안 그 이름과 나를 동일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닌 상대방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인것 같다. 외국인이 기억하기 쉽도록 배려하기 위해, 회사 내부의 흐름에 따라.


그렇다. 한국인들이 닉네임을 짓는 이유는 상대방 외국인을 배려하기 위함도 분명 있다. 외국이라 할지라도 한국인끼리 만나면 보통 본명을 주고받지 닉네임을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김영희 님, 제 이름은 프리다(Frida)에요"


어학원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면, 잘 이러지 않는다.


결국 고작 외국인들 편하자고, 평생 써온 내 이름 대신 얼렁뚱땅 지은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


집에서도, 친구들도 나를 'Frida'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는데, 외국인을 위해 억지로 'Frida'가 되어주는 것. 이런 이유의 닉네임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의 한글 이름은 어려워봤자 두 글자, 한글을 모른다고 해도 결국엔 두 음절. 이 정도도 못 불러주는 사람에게 배려는 무슨 배려. 이런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돼서 좋을 것도 하나 없다. 내 이름을 정성껏 불러주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자.



내가 한글 이름으로 불리기를 '강력하게' 원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내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한국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절반 정도를 외국인으로 살았다. 입맛도, 취향도, 습관도 내가 현재를 살아가는 곳에 맞게 형성되어가다 보니, 어쩌다 가는 한국은 어느덧 맞춰야 할 것이 많은 불편한 곳이 되었다. 반대로 어쩌다 마주치는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불편하다 하는 것들은 내겐 너무나도 익숙해져 공감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얻은 것이 있고, 잃은 것도 다.


내가 만일 내 한글 이름 대신 Frida와 같은 닉네임을 계속 사용했다면, 현재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나를 Frida로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소중한 이름은 은행업무나 병원을 갈 때만 사용하는 행정용 도구 정도로 전락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외국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내가 사는 곳의 문화에 맞는 사람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그래도 내가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고, 무덤까지 갖고 가고 싶은 게 있다면 바로 내 이름 하나.


이게 욕심인가.





내가 가끔 닉네임을 쓰는 일이 있다.

해외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다. 내 이름이 단순히 주문번호 대신 불려져야 할 때.


알아듣기 쉽게,

반복하지 않아도 되고,

스펠링을 불러줄 필요도 없는

글로벌한 이름으로 말이다.


마리아 Maria, 줄리아 Julia, 미미 Mimi 같은.

일회용 커피 컵에 한 번 쓰였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지면 사라지는 나의 닉네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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