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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Oct 25. 2021

안녕하씹쎄요.

외국항공사에서 일하는 승무원의 웃픈 일화.


비행기에서 한국인 승객들을 만나면 반갑다.

승무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매 비행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다른 음식을 먹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다채로운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이 점을 승무원직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본다.) 게다가 내가 태어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며 그 국적의 비행기를 타고 그 국적의 동료들과 일을 하는 것은 하루하루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적응해 가다가 가끔 한국인 승객들을 만나게 되면, 그 상황이 또 새롭게 느껴져 낯 설고 설레기도 한다. 내가 한국말을 하고 있는 것이 어색해 괜히 쑥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서 그 쑥스러움을 감추려고 하다가 오히려 실수를 연발하고 만다.

그럴 때면 한국인 승객들에게 자주 듣는 소리가 있다.


“한국말을 아주 잘하시네요.”



닭고기와 물고기

지금 일하는 핀란드 항공사에서는 “인천”이 굵직한 취항지 중 하나라 종종 비행이 나오지만 예전에 일하던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에서는 조금 달랐다. 지금 일하는 곳 보다 승무원 수가 열 배는 더 많았고, 취항지 또한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남미 아르헨티나까지 지구 구석구석 안 가는 데가 없었다. 비행기 종도 다양했다. 그중 ‘하늘 위의 호텔’이라고 불리는 A380은 수요가 많은 일부 대도시에만 운영했는데, “인천”이 이에 속했다. 당시에는 이 비행기종만 타는 승무원들을 따로 분류했었고, A380 담당이 아니었던 나는 그래서, 인천 비행을 할 일이 아예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 승객들을 마주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의 베이스인 두바이를 경유해서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한국인 승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대표적인 곳이 두바이-이스탄불, 두바이-몰디브 노선이었다. 그런데 앞 서 말했듯 이 회사의 취항지가 워낙 많다 보니, 저 두 노선을 타는 일조차 드물어 한국 승객을 볼 일은 가뭄에 콩 나듯 정도였다.


이런 사정으로, 나를 비롯해서 한국 노선을 전혀 타지 않는 한국계 승무원들은 어쩌다 한국 승객을 대할 때면, 혀가 꼬이거나 말이 헛 나오기 일쑤였다.

그중 전설처럼 내려오는 예가 ‘안녕하씹쎄요’ 다.

매일 ‘헬로’와 ‘웰컴’만 하다가, 줄지어 탑승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녹색의 한국 여권을 들고 타는 승객들을 발견하고, “안녕하십니까’와 ‘안녕하세요’가 머릿속에 동시에 등장하던 찰나에 의욕이 앞서서 혀까지 꼬여가며 된 소리로 뱉어 버린 말이 이 둘의 합성어인 ‘안녕하씹쎄요’.

이 뿐이 아니었다. 승객들에게 서비스를 하며 수없이 반복해서 입에 붙어버린 영어 용어들을 한국어로 바꿔 말하려니 머릿속 번역기에서 자꾸 오류가 일어났다.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까지 죄다 번역해서 홍포도주, 백포도주라고 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인 승무원들의 이런 웃지못할 이야기중 유명한 일화로 전해내려 오는 것이 있다


식사로 나온 Chicken과 Fish를 번역하다 생긴 오류,


“손님, 식사는 닭고기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물고기로 하시겠습니까?



인천-헬싱키 기내식. 외국항공사라도 한국을 오가는 노선은 한식을 제공한다. 제육볶음과 김치.



한국인이세요?

요즘에는 한국에 '꼰대',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들이 등장하며 남에게 해도 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나 소위 오지랖에 대한 구분선이 예전보다 조금 명확해져 가는 느낌이 든다.

첫 승무원 생활을 하던 아랍 에미레이트에 있던 시기는 이런 말이 생겨나기 전이었고,  TV에서도 차별 발언이 난무하고, 누군가약점이 쉽게 웃음의 소재거리가 되기도 했던 시기였다.


한국 비행을 전혀 하지 않는 나와 내 동료들은, 한국인 승객들을 만나게 되면 유독 친절하게 신경을 더 써주는 경향이 있었다. 카트에 보이지 않는 음료나 미니어처 술들을 인심 좋게 퍼준다던가, 승객들이 요구할 경우에만 슬쩍 꺼내 주는 안대나, 볼펜, 칫솔세트 등을 챙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분위기를 봐서 "비행기를 자주 타시나 봐요", "가족 여행 가시는 거예요?" 등 관심을 보여주면, 외국인 승객들로 빼곡한 자리에 껴 앉아 영 불편해 보였던 한국인 승객들은, '아이고 반가워요, 한국인이신가 보네'하며 금방 얼굴이 밝아졌다.


우리가 말을 걸기도 전에 먼저 말을 걸어오는 승객도 있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아니면, 이미 한국인임을 눈치채고 식사시간이 끝나고 비행기 뒷 쪽 갤리(승무원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로 와서 반가운만큼 수다를 떨고 가는 분들도 있었다. 보통 그런 분들은 호기심이 넘쳐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내 조카도 외국 항공사에서 일을 하는데 월급 꽤 쎄다 던데, 월급 얼마 받아요?"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전 세계 이런저런 사람들을 다 만나는 자리다 보니, 이 정도면 당황할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회사마다 다르죠, 그리고 매달 비행 스케줄에 따라 들쑥날쑥해요."

이렇게 넘어가려고 하니, 답답하다는 듯 몇 번을 되물었다.

"그래서 얼마요? 세금 떼고 한 오백 벌어요?"

물론 그분은 끝까지 내 월급을 알아낼 수 없었고, 더 이상의 친절도 받지 못했다.


두바이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는 아주머니 단체 승객들이 많기로 유명했다. 한 아주머니 승객 분께 한국어로 맥주를 권해 드리니 외국인 승무원이 담당했던 좌석에서도 너도나도 맥주를 달라고 요구하며, 하하 호호 소리가 끊이질 않는 여행길이었다.

'어머, 한국분이신가 보네'

'어찌 좀 예쁘시더라, 한국 여자가 예뻐'

'몇 살이에요, 결혼은 했어요?'

손까지 잡으며 잔뜩 반가워하던 아주머니는 마지막에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뉘앙스가 담긴 말을 했다.

'아이고, 결혼도 안 하고 외국에서 이러고 살고 있는 거야?

그 후, 나는 기분이 오랫동안 찝찝했던 것 같다.


"외국항공사는 승무원들 얼굴이랑 몸매는 안 본다면서요?"

직업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듯, 이것 저것 질문하던 한 남자 승객이 한 말이다.

뭔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승무원은 얼굴과 몸매로 하는 직업이 아니다.)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다. 그 말을 하기 전 얼굴부터 발 끝까지 나를 한 번 훑어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 의 외모에 대한 지적이나 코멘트가 상당히 무례한 것으로 여겨지는 곳에 살며 상상조차 해 본적 없는 질문이었기에 말 문이 막혔다. 

나중에라도 적절한 답변이 생각이 나면, '저기요, 아까 하신 질문...' 하며 짚고 넘어가는 성격의 나이지만, 이 질문그렇게 붙잡아 제대로 방향을 잡기엔  의도조차 알 수 없어 씹고 삼켜버렸다.


코로나 시국의 방콕 비행. 이곳에 머무르는 1박 2일 동안 승무원들은 각자의 방에서 자가격리를 해야했다.


물론, 몇 년 전 이야기들이고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승무원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 직에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비슷한 일화들이 있을 것이다. 웃픈 일들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일을 겪게 되다면 이런 사람들과 헤어질 때 딱 어울리는 인사말이 있다.


손님, 안녕히가씹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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