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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Nov 06. 2022

당신이 좋아하는 금발의 백인이 가득한 이곳

백옥 같은 피부,

백인보다 하얀 얼굴,

금발의 미인,

매력적인 파란 눈,

북미 출신의 백인 영어강사 선호,


내가 한국을 접하는 주요 수단인 인터넷에서 종종 발견되는 몇몇 문구다.


예나 지금이나 금발의 외국 여성에게는 자동으로 '미인'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금발' 혹은 '파란 눈'이라는 말 자체가 이목을 끄는 것도 여전하다.


영어강사를 구하는 데 있어 능력보다는 하얀 피부색이 우선시된다는 사실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영어를 원어민만큼 하는 변호사 출신의 우즈벡 친구가 한국에서 영어 강사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말에 '그게 현실이야',  '게다가 넌 남자라 더 힘들 거야'라는 말로 한국사회의 냉철함을 일깨워 줬다.


'백인보다 하얀 얼굴'이라는 표현은 주로 아이돌 배우나 가수들의 하얀 피부를 강조할 때 쓰이는데, 이 표현은 작은 얼굴을 칭찬(?)하는 '소두 인증' 만큼이나 기괴하게 들린다.


같은 동양인이라고 해도 다양한 톤의 피부색을 타고나고, 이는 노력에 의해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백인을 닮은 하얀 피부가 칭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참 씁쓸하다.

보통의 한국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금발 머리에 환상을 갖는 것이 이에 비하면 그나마 이해가 간다.



인터넷 속의 당신이 좋아하는 금발의 백인이 가득한 곳.

바로 내가 사는 이곳이다.


금발머리를 가진 사람은 전 세계에 고작 2%, 내가 사는 곳은 인구의 80%가 금발머리다.

파란 눈을 가진 사람 또한 전 세계에 겨우 8% 인데 반해, 내가 사는 곳은 인구의 무려 89%가 파란 눈.


이곳은 핀란드다.


금발 중에서도 바비인형이 가진 옅은 금발 머리,

그리고 그들의 옅은 파란 눈은 시베리안 허스키를 연상시킨다.

 

런던 비행을 가서 며칠 밤을 보내던 중, 동료들과 만나기로 하고는 시간을 착각해서 조금 늦게 나온 적이 있었다. 호텔 리셉션에 내 동료들을 보았는지 물어보니, 한 직원이 "금발머리 그룹 말이죠?" 하고 되물었다. 나 빼고는 모두 금발머리였던 게 맞지만, 영국인의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생소했다. 보통 아시안들을 보고 어느 곳에서도 '검은 머리 그룹'이라고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어 더 그랬던 것 같다.


핀란드의 백인 비율 또한 금발머리의 수치에 맞먹는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사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웬만한 서방국가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렇게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백인이 제일 흔한 곳이다 보니, 핀란드에서는 '금발'이 미인이라거나 '파란 눈'이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여겨지는 것 같지는 않다.


나보다 더 검은 머리를 갖고 있는 에스토니아 계 핀란드인 동료는 어려서부터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았다며, 지금도 검은 긴 머리를 길게 늘어 뜨리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검은 머리를 가진 그녀의 엄마는, 머리 색상 때문에 주변에서 스페인 사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주 좋아한다고.


핀란드어 수업 시간, 신체에 관련된 단어를 배우던 중 자원봉사자였던 두 할머니 선생님은 마치 자신의 눈 색상을 자세히 본 적이 없는 듯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당신은 파란 눈이네요', '당신도 파란 눈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다음으로 여러 국적으로 구성된 학생들은 나를 포함하여 자신의 눈을 일제히 '갈색 눈'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두 선생님은 '오~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갈색 눈일 수가 있지?'하고 놀랐고 그 모습이 너무 순수해 보였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전 세계에 갈색 눈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70-79%라고 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환상과 욕심은 핀란드인들에게도 있었다.

또 다른 검은 머리의 핀란드인 동료는 어릴 적 자신의 머리가 검은 것이 싫어 금발로 염색을 해봤었단다. 옅은 금발이다 못해 은발에 가까운 스물 다섯살 동료는  금발이 하도 흔해 염색한 것이라 했다. 너무 자연스러워 자연산 은발인 줄 알았다.

웨이브가 강한 곱슬머리의 동료는 학창 시절 스트레이트 파마를 여러 번 했지만, 결국엔 얼마 안 가서 다시 곱슬 거렸다는 이야기. 반면에 직모인 나와 또 다른 동료는 강렬한 파마를 했던 일화를 늘어놨다.

화이트닝에 집착하는 동양인들에 반해 여느 유럽인들 처럼 핀란드인들 또한 태닝에 집착한다.


어찌 보면 핀란드도 특정한 외모를 선망하는 것이 마치 한국과 비슷한 것 같지만, 오로지 자신의 취향일 뿐 그 어느 것도 미를 규정하는 잣대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특정 피부톤, 눈이나 머리의 색상이 다수에 의해 선호되지도, 과한 칭찬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

더군다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예의에 빗겨나는 행위인 사회에서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고자 할 때 외형적인 특성을 형용사로 갖다 붙이는 일은 잘 없다는 점이 다르다.



이렇게 금발의 백인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검은 머리에 유색인종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떻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간혹 SNS에서 한국인들의 여행기록들을 읽다 보면,

'그 장소에 동양인은 우리뿐', '검은 머리는 우리뿐'이라는 표현을 쓰며 특별한 존재감을 느꼈거나, 이국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즐겼음을 의미하는 경우를 보곤 하는데,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주로 해외에서 생활을 해온 나는 가끔 나의 모습을 망각할 때가 많다. 내가 내 주변 사람과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하지도 않고, 나만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동안 어느 집단에서 혹은 거리에서, 식당 안에서 나만 동양인이었던 순간들이 수 천 번이 있었고, 그 순간들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중 어릴 적 그 순간들은 안 좋았던 경험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놀림을 받거나 불편한 시선을 받았던 적.


이런 불편한 시선들이 이미 무뎌진 상태로 핀란드에 왔고,

처음에 핀란드에 왔을 때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 것, 신경 조쓰지 않는다는  되려 낯설고 이상할 정도였다.

금발의 백인이 무려 90%나 되니, 나의 모습은 분명 눈에 띄게 다를지언데 말이다.


한국, 그리고 그 밖의 유색인종이 가득한 나라들이 금발의 백인을 선호하듯,

핀란드인들이 역으로 검은 머리에 유색인종인 나를 설사 차별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할지라도, 미의 잣대를 들이댈지라도,

그 티를 내지 않고 나를 대해주는 것이 아무 생각이 없을 만큼 나는 그저 편할 뿐이다.


어찌 남의 나라인데 내 나라보다 더 편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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