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OO 하는 이웃 사절합니다
깐깐한 승무원의 이웃 조건
헬싱키에서 유럽 도시를 왕복하는 짧은 비행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소복하게 쌓인 눈 위로 추위가 내려앉아 바닥이 꽁꽁 언 겨울이었다.
친구는 하루빨리 이사할 집을 구해야 했다.
친구와 나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같은 날 핀란드로 이사를 와 같은 회사에 입사하고,
우연하게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같은 동네에 살며 아무 때나 서로 부르면 뛰어나가는 사이였다.
친구가 살 던 집은 핀란드에 오기 전 운좋게 페이스북을 통해 구한집이었는데, 집주인이 잠시 해외로 나간 몇 달 동안만 살기로 되어 있었다.
계약이 만료되는 날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비행을 하느라 집 보러 다니는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헬싱키에서 작은 스튜디오 사이즈의 집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치열했다.
친구가 미리 연락해 놓은 세 군데의 집을 차례차례 방문하기로 했다.
비싼 월세를 아끼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한 아파트를 공유하며 방은 따로 쓰는 셰어 하우스로만 찾았다고 했다.
첫 번 째 집은 당시 우리가 살던 곳에서 가까웠다.
우리가 사는 곳은 공항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도보 2분 거리였고, 이 집은 8분 정도 거리였다.
가격도 괜찮고, 넓은 방은 깔끔하기까지 해서 살짝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딱 하나 걸리는 게 있었으니,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오르막 길이었던 것. 겨울 내내 바닥에 두툼한 얼음 이 깔려 있을 것이 뻔하고, 오후 두 시면 어두 컴컴해지기에 '가파른 길'은 보통 걸리는 조건이 아니었다.
"캐리어 없이도 이렇게 힘든데, 매 번 비행 다녀 올 때마다 괜찮겠어? 재수 없으면 캐리어랑 같이 구르겠는데?"
결국, 첫 번 째 집은 패스.
두 번째 집은 동네는 달랐지만 공항 가는 버스 정류장과 가까웠다.
셰어 메이트는 남자 두 명, 친구와 쓰는 언어도 같고 둘 다 헬싱키에 베이스를 둔 타 항공사 승무원이라 불규칙한 승무원의 일상을 공유하기에도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아, 딱 이 집이네"
이번엔 내가 친구를 거들었다.
한 명은 비행을 갔고, 집 구경을 시켜주는 남자는 승무원의 본분을 발휘하듯 미소를 가득 띠며 말하는 내내 밝은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런데 집 구경을 마치고 사담을 나누던 중, 그는 누가 진짜 손님인지를 잊은 듯 줄곧 내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본분을 완전히 잃었는지, 내 친구의 존재조차 완전히 무시한 채 내게 은밀한 멘트를 건넸다.
"언제 한 번 저희 집에 와서 함께 저녁 먹고 사우나 같이 할래요?"
(핀란드는 보통 집집마다 사우나가 있고, 사우나 모임으로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그곳은 흔한 남자 두 명이 사는 곳이었고,
내 친구는 게이다.
두 번째 집도 패스.
세 번째 집은 버스, 트램, 기차 모든 역이 가까운 그야말로 역세권이었다.
총 다섯 명이 셰어 하는 아파트라 굉장히 넓은데 반해, 가격이 저렴했고 인테리어 또한 고급졌다.
'와, 정말 이 가격에 이렇게 좋은 집에 살 수 있다고?'
이번에도 내가 부추겼다.
함께 셰어 할 사람들의 직업이 다양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더욱이 그중 세 명은 해외 출장이 잦아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다고 했다.
집을 구경하고, 셰어 메이트의 설명을 듣는 내내 친구와 나는 몇 번 눈을 마주치며 긍정의 사인을 주고받았다.
우리 둘은 확신에 가득 차, 그날 저녁 확답을 주겠다고 하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복도를 내려가는데,
'어, 이게 무슨 냄새지....?'
이번엔 친구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불길한 예감을 주고받았다.
아파트에 들어와 계단을 오를 때까지만 해도 못 느꼈는데, 집에서 나오자마자 강하게 콧 속을 찌르는 그 냄새의 정체는,
대마초였다.
아마도 가까운 이웃 중 누군가가 집에서 피우고 있는 것 같은데, 그 향이 복도까지 강하게 새어 나왔다. 가령 그 이웃과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다가 회사 유니폼에 그 향이 배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니 위협감이 몰아쳐 왔다.
그 몹쓸 이웃 때문에,
결국은, 세 번째 집도 어쩔 수 없이 패스.
친구는 그 후로, 셰어 하우스는 열외로 두고 혼자 살 수 있는 성냥갑 만한 작은 아파트를 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코로나가 터지며 당분간 회사 월급이 아닌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당시 머물던 아파트형 호텔은 정부의 주택 지원금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 월세를 구해야 했다.
핀란드의 다른 지역에 비해 젊은 싱글 가구가 많은 헬싱키에서 작은 아파트를 구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더욱이 자국인들끼리의 신뢰가 두터운 이곳에서 이방인인 내가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택을 받는 일은 집주인이 술에 취해야만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집을 본 후, 간단한 프로필을 적어 제출하는 내 지원서는 매 번 쓰레기통으로 가는지 연락은 오지 않는 일이 몇 번을 반복되었다.
하루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심정으로, 집을 본 후 초면인 부동산 중개인의 손을 꼭 잡고 은행 잔고와 핀란드 회사의 계약직이 아닌 정직원인 점 등을 강조하며 거의 빌다시피 부탁을 했다. 그렇게 그날 오후 나는 그 집의 세입자로 선발(?)되었다.
옆 집은 빈집,
옆 옆 집은 눈이 무릎까지 쌓인 겨울에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저씨,
앞 집은 금, 토요일 밤이면 친구들 열댓 명을 불러 파티를 여는 젊은 청년이었다.
개인의 공간을 중시하여 평소 거리 두기를 생활화하는 핀란드인들은 집을 나오기 전 문구멍을 확인하며 어떻게 든 이웃과 마주치는 일을 피하는 극도의 배려심을 발휘한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나는 이웃과 종종 마주치는 일이 많았고 그 상황을 반가운 인사로 무마하곤 했다.
얼마 후, 옆 집이 이사를 왔다.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얼굴 전체에 타투를 하고 있긴 했지만 눈빛이나 인사하는 목소리에서는 선함이 풍겨 나왔다. 주말이면 다섯 살쯤 되는 아들을 데려와 돌보는 다정한 아버지의 면모 또한 보였다.
그런데 며칠 후,
퇴근하고 돌아오는데 복도에서 풍기는 위협적인 냄새.
집으로 갈수록 더 강하게 나는 향, 나는 킁킁 대며 이웃집 문틈에 돌아가며 코를 들이밀었다.
옆 집인 듯했다.
피하고자 애썼던 그 몹쓸 이웃이 하필이면 새로 이사 온 옆 집 남자라니.
무력함이 느껴졌다.
그 이후로 대마초 향은 이따금씩 복도를 매웠다. 기분 탓인가 할 정도로 약할 때가 있는가 하면, 아파트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강할 때도 있었다.
그 사이,
회사에서 하는 정기 건강검진 날이 다가왔다.
앞으로 비행을 계속 할 수 있는 <승무원 건강 증명서>를 갱신하기 위한 검진이었다. 그 안에는 소변을 제출하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는데, 마약 복용 여부가 측정된다.
소변을 보는 동안 간호사가 스크린을 통해 그 장면을 지켜보는게 규정인 그런 철두철미한 검사였다.
2년 을 넘게 대마초 피우는 남자와 이웃하며, 혹시라도 간접흡연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 그리고 바지 내리고 소변을 받는 장면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불편함에 소변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끝까지 소변은 나오지 않았고,
다음 날 다시 출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날 이미 죄인이 된 마음으로 소변을 건넸다.
얼마 후,
다행히, 마약 음성.
더 이상 그 선한 옆 집 남자를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 후로, 다시 예전처럼 그를 보면 밝게 인사를 했다.
그 고약한 향에 극도로 예민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2년 동안 찝찝했던 속이 다 후련해졌다.
그래도,
마약 하는 이웃은 앞으로도 사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