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밝히며 들어가지만 본 글은 특정 병원이나 어플을 홍보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내가 요즘 다니고 있는 병원이 있다.
의사선생님께서 굉장히 환자에게 공감해주시고 실력도 좋으셔서, 솔직히 나만알고 싶은 병원이다. 아무튼 그렇다보니 늘 진료를 원하는 환자들이 많아 기본 3~5시간씩 대기하는 환자로 병원은 북새통을 이뤘다. 이를 해결코자 병원측에서는 어플을 이용한 '진료예약제'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예약제 시행전부터 꾸준히 병원측에서 공지사항을 병원 곳곳에 비치하고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환자들에게 설명했으나 10월이 된 지금도 예약 어플이 낯선 윗세대 어른들의 불만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보통 예약을 잡아놓고도 20분 정도씩 병원에 일찍가있는 편이다. 그냥 그게 내 습관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환자들의 불만사항을 온 귀로 듣게되는데, 어른들은 늘 언성을 높인다. "왜 어플이 안되느냐" "왜 어플이 안열리느냐" "왜 예약이 안되느냐" 등등. 그러면 간호사 선생님들이 해결해주는데 열에 아홉은 다 본인들의 잘못이다. 예약제라고 그렇게 공지했음에도 첫내원이 아닌 환자는 무작정 찾아와서 "여기까지 왔는데 왜 진료를 못봐준다는 것이냐"며 따지기까지 한다.
한분은 이미 예약자가 다 차서 예약이 안되는걸 가지고 어플이 안된다며 매섭게 간호사 선생님에게 따졌다. 간호사 선생님이 연유를 차근차근 설명하자 "아, 미안합니다"라는 말도 없이 쌩하고 다른 시간을 예약했는지 그냥 자기자리로 가버렸다.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다른 환자분은 보험공단과의 통화가 문제였다. 언제어디서든 전화통화가 가능한 시대. 그분은 조용한 대기실에서 언성을 높였다. 재외국민으로 등록이 되어계신것 같은 그분은 올해 법이 바뀌면서 구로구의 병원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아야했고 언성을 높이며 "제가 외국인 노동자도 아닌데 구로구까지 가서 검진을 받아야합니까?"라고 따지듯 전화통화를 했다. 그분이 내뱉는 불쾌한 말투에 나를 포함 대기실을 가득 채운 다른 환자들의 기분마저 나빠질 정도였다. 결국 한 아주머니 환자분이 그분에게 "저기, 통화는 좀 나가서..."라고 그분에게 제지를 가하셨고 덕분에 대기실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진료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에서 무심코 내 앞에 앉은 아저씨를 내려다 본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거대한 글씨체로 지하철에서 성인 소설을 읽고 계시던 어느 아저씨. 내가 시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닌데도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사람이 많이 없는 한산한 지하철도 아니고 아저씨의 양옆 자리도 가득, 아저씨 앞에 서있는 사람들도 가득, 남성들만 탄것도 아니고 여성들도 잔뜩, 성인들만 탄것도 아니고 어린 중고생들도 함께 타있는 지하철에서 당당하게 성인 소설을 읽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라니.
여성과 남성의 성기에 대한 표현이 너무 적나라해서 모자이크를 하는 내내 내가 더 낯뜨거웠다.
얼마전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이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해 버스나 기차표를 끊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조금은 슬픈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실 나도 가끔은 햄버거 가게에서 키오스크를 사용할때 헷갈릴때가 있다. 아무래도 나도 자동화 기계 문명에 완전히 익숙한 세대는 아니기에. 하지만 우리 다음 세대들은 이미 이 발전과 진보에 익숙한채 자라나고 있다. 우리가 이 변화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고 분명 기술발전은 우리에게 편리를 가져다주고 있음이 맞다. (문제점도 있지만)
이제 남은것은 우리가 이 기술발전에 어떻게 적응하고 이 새로운 기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인데, 하루만에 잘못된 적응 사례와 사용 사례를 다 보고나니 앞으로도 품위있게 어른이 되는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요건 사족. 어른의 영역에 빨리 가까워지는 시대, 착한 어린이 되기.
그래 얘들아, 엄마 아빠도 책은 읽고싶어. 그리고 이모 삼촌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