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uh Oooh Ju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느Yonu Oct 14. 2019

흉터야 안녕  


나에게는 어릴적 생긴 흉터가 하나 있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시절에 난 흉터인데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토끼가 할퀴어 난 흉터라고 한다.


그때 피도 좀 났지만 나도 그냥 조금 울다 말길래 병원도 가지 않고 그냥 두었다고. 그렇게 흉이 지게 되었다.



자라면서 포청천이라는 중국 드라마가 유행했다. 이마에 초승달모양 흉터를 가진 포청천. 나는 내심 내 흉터가 자랑스러웠다. 그때는 나도 포청천처럼 이마에 흉터가 있다며 으스데곤 했던 기억이 난다. 거울을 보며 이왕 이리 된 것 나도 싸인펜으로 흉터를 보완해서 초승달모양으로 하고 다닐까 고심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 흉터는 빗금형이라서 곡선인 포청천의 흉터를 따라잡기가 쉽지않아 시도조차 안하고 포기했다.




그러더니 10대때는 해리포터가 혜성같이 등장했다. 해리 역시 이마에 흉터가 있었다. 이번에는 번개 모양. 빗금으로 세개! 


게다가 해리는 나이들고 무시무시한 포청천에 비해 나이도 나와 비슷하고 동그란 안경을 낀 10대 소년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묘하게 해리에게 더 동질감을 느꼈다. 또 싸인펜으로 흉터를 보완해 번개모양으로 그리고 다닐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나는 엑스맨과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물에 빠져들어가며 포청천도 해리도 잊어갔다. 자연히 이마의 흉터에 대한 인지도 잊어갔다. 내가 스스로 흉터를 언급하지 않으면 이제 사람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원래는 할머니가 스무살이 되면 꼭 흉터를 지우자고 했었는데 스무살이 되고도 굳이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해가 여러번 바뀌는 동안에도 그냥 이 빗금모양 흉터는 내 이마 위에 있었다. 사실 한편으론 정이 들어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난 달, 드디어 작정하고 이마의 흉터와 작별하기로 했다. 피부과에 가서 견적을 뽑아보니 일단 주사와 레이저치료 병행 5회 치료면 괜찮을것 같단다.


치료는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다. 5회 치료가지고는 쉽게 나을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돈이 더 들것이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소리다. 이렇게되다보니 애초에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지도 못하던 것, 굳이 왜 치료를 시작했나 싶다. 게다가 상처에 은근한 애착도 있었는데...


하지만 이미 애매하게 건드려버린 나의 이 흉터는 전보다 더 흉하게 내 이마에 남아있다. 며칠 뒤면 일단 마지막 치료가 예정돼있다. 과연 이번 마지막 치료로 너를 떠나보낼 수 있을까. 흉터야 미안하다.


아마 얘가 완전히 사라지면 내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도 완전히 사라지는 기분일 것 같다. 어쩌면 변화의 상징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영웅이 포청천에서 해리포터로, 그리고 울버린과 아이언맨으로 바뀌었듯이. 그다음은 누가될까. 조커는 확실히 아닌데.

매거진의 이전글 밴쿠버가 끝까지 나를 괴롭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