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렁에 빠지면 건져주는 참 고마운 언니로부터
20대는 너무 힘들다.
과거 젊은이들에겐 돈이 없는 대신 시간과 청춘이 있었지만 작금의 젊은이들에겐 시간도 없다. 돈이 없으면 살아가기 위해 생활을 태워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겨우 졸업하고 자리를 잡아 자신의 커리어를 가지게 되면, 실패하고 넘어진 뒤의 일이 두려워 섣불리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한다. 나 역시 조용히 튀지 않는 삶을 살았고 그렇게 30대의 한 자락에 들어와 있다.
내가 여느를 만난 건 대학시절 어느 교양 수업에서였다. 그녀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가볍게 ‘저 캐나다 가서 살려구요.’ ‘캐나다에서 어학연수할 때 아예 살고 안 돌아오려고 했었어요.’ 이런 말들을 하곤 했다. 다른 이들처럼 실없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녀는 몇 년 후 정말로 저질러서 캐나다 편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더랬다. 그렇다고 그녀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 지방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20대 중반의 여성이었고, 자신이 모은 돈으로 정말 ‘저지른’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 캐나다에서 살다가 안 풀려서 돌아오고, 한국에서도 다시 취직해서 살아가던 그녀가 못 참겠다며 모은 돈으로 난데없이 유럽여행을 간다고 선포했다. 유럽 여행?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실 대학생이 아니면 유럽을 돌고 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한 달은 잡아야 하니까. 그리고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코스가 비슷하다. 영국에서는 타워 브릿지, 세인트 제임스 파크, 대영 박물관, 파리에서는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사원. 뻔하지만 너무나도 볼 것이 많고,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갔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찍고 돌아오려고 한다. 못 보고 오면 왠지 손해일 것 같으니까! 그건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제한된 시간과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생각하면 모험을 할 수는 없는 우리네 삶. 새로운 것을 선택하면 잃을 것이 많을 것 같은 삶.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비슷비슷한 관광을 하고, 그렇게 지구 반대편에서도 한국인의 삶 그대로 살다가 온다. 하지만 우리가 일탈을 꿈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할까? 세상에 사람들이 70억이라는데 다들 나처럼 힘들진 않을 텐데. 우리는 진심으로 ‘다른 삶’이 궁금하지만 그들과 대화할 시간도 기회도 없다.
여기 우리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소시민이지만 노빠꾸 인생을 살고 있는 홀홀단신의 젊은 여성이 있다. 그녀는 본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원어민 수준의 영어실력을 갖추었고, 그걸 베이스로 삼아 남들 다 간다는 관광지를 가는 대신 사방팔방을 다니며 온갖 사람들과 놀다가 왔다. 그렇다고 그녀가 이후의 인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치열하게 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고 한다. 다른 삶들을 잠시나마 훔쳐보는 기분이 드는 그녀의 여행기를 읽고 있노라면, 나도 잠깐은 아무도 안 해본 것을 좀 저질러도 괜찮을 것 같은 용기가 든다.
그러니까, 가끔은 저지르고 사는 것도 괜찮다. 여기 얘도 이러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