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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Oct 21. 2019

구닥다리 여행자 톰할아버지, 그가 여행하는 이유



프랑크푸르트에서 내가 묵었던 숙소에는 이런 공간이 있었다.



여기서 무료로 제공하는 조식도 먹을 수 있고, 바람도 쐴수 있었다. 나는 톰할아버지를 여기서 만났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잔 하며 여행기를 끄적거리고 있던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온 건 톰이었다. 톰은 요전날 밤 나와 아이리쉬 조쉬의 대화를 들었었다고 했다. 그 역시 이런 인터넷 시대에 '편지'를 쓰고 있다는 나의 말에 신기하면서도 반가웠다고 했다. 커피 한잔을 들고 밝은 웃음을 띈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백발의 할아버지. 나는 아무 거리낌없이 톰의 합석을 승낙했다.



호주로 간 16세 청년


원래 그리스 태생인 톰은 16세 쯤 호주로 일하러 갔다고 했다. 혈혈단신 혼자. 호주로 가는 배삯은 배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파티를 하며 매우 즐거웠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호주로 데려다주는 그 배에서 처음으로 첫키스도 해봤다고. 수줍게 첫키스에 대해 말하는 톰은 그 순간만큼은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톰은 호주에서 정비기술을 배워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했다. 나중에는 중고차 판매원으로도 일했는데 유대인들의 협상능력 하나는 끝내준다며 혀를 내둘렀다.


"여느, 들어봐. 기본적으로 장사에는 에누리가 들어가니까 중고차를 한대 판다고 쳐. 원래 팔 금액은 1200달러야. 그러면 한 2000달러를 부르지. 그리고 협상을 하는거야. 그러다가 슬쩍 한 1400달러에 팔아주는거지. 그런데 유대인이 오잖아? 그럼 회사 전체가 비상이 걸려. 그렇다고 안팔수는 없어. 그럼 유대인들 전체가 다 거래를 끊어버리거든. 걔들은 어떻게 알고 1200달러에 꼭 차를 가져가. 정말 똑똑한 민족들이야. 물론, 아시안들도 유대인만큼 똑똑하다는걸 나도 읽어본적 있어. 너도 그렇지?"


"나? 내가 똑똑하냐구? 글쎄 그건 잘 모르겠어. 물론 IQ테스트 평균 같은걸 내보면 항상 동양인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긴 하지. 그래도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한것 같아. 아무튼, 호주 얘기를 더해줘. 재밌다. 다른 손님들 재밌는건 없었어?"


"흠... 나는 사실 사업에 있어서는 말을 많이 하는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나는 이 말을 믿어. Money comes, Bullshit goes(돈이 오면 쓸데없는 말은 떠난다) 나는 지금도 미국에서 조그맣게 부품 무역 사업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사업에 있어서 쓸데없는 말은 줄이려고해. 결국 돈이 오면, 쓸데없는 말은 떠나니까. 하하하."


"Money comes, Bullshit goes? 재밌는 말이네. 나도 기억해둬야겠다. 이건 어때? Money talks, Bullshit goes. 쓸데없는 말 말고 돈이 말한다."


"하하하. 그거 재밌는 말이네. 아 참, 넌 어디서 왔니? 나는 지금 미국 네바다에 살아. 너도 미국에서 왔어?"


"나? 아니 나는 한국인이야. 근데 대학교를 영어만 쓰는 학과를 나왔고, 캐나다에서 공부도 했었어."


"아, 그래서 네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구나. 어제밤에 너랑 다른 친구랑 대화하는걸 들으면서도 네가 한마디 한마디 정확하게 말을 해서 좋았어. 요즘 젊은 친구들 보면 이상한 슬랭도 많이 쓰고 들을때 좀 이상하게 느껴지거든."


나는 웃었다.


"슬랭? 아마 나는 슬랭은 몰라서 못쓰는걸거야."


우리는 둘다 웃었다.


"아무튼, 넌 정말 영어를 잘해. 내가 물어보지 않았다면 나는 끝까지 네가 미국에서 왔다고 생각했을거야. (나는 여기서 '땡큐') Money comes, Bullshit goes가 나온김에 하나 더 알려줄게. POME. 폼"


"폼?"


"응. Prisoners Of Mother England"


"Whattt? 왜?"


우리는 또 둘다 킬킬댔다.


"옛날에 영국에서 범죄자들을 호주로 귀양많이 보냈잖아. 지금은 덜해졌겠지만 내가 호주에 갔을때만 해도 내 직장동료 호주인들은 일끝나면 밤새 술마시는게 유일한 인생의 낙이었어. 그리고 술에 취해 다음날 출근 못하거나 싸움을 하거나 늘 그랬지. 그래서 우리는 걔들을 엄마의 나라 영국에서 온 범죄자들(Prisoners Of Mother England:POME 폼)이라고 몰래 놀려대곤 했어. 히히히"


"POME. 이건 적어둬야겠다. 여행기에 쓸래"


"그래그래"



구닥다리 여행자


톰이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이 숙소는 어떻게 알게됐니?"


"나? 나는 그냥 도착하기전에 호텔스닷컴으로 가격보고 미리 예약해서 왔어. 별로 기대안하고 싼곳으로 왔는데 의외로 훌륭한것 같아"


"나도 동의해. 가격대비 훌륭해."


"그나저나 왜 물어봐? 할배는 어떻게 찾아왔는데?"


"나는 그냥 독일이 내 유럽 일정 첫 국가여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내린다음에 여기 암마인역으로 왔어. 그다음에 여행안내센터에 가서 물어봤지. 숙소를 찾고있는데 호스텔은 안되고 조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욕조가 있는곳을 추천해달라고. 그랬더니 두곳을 추천해줬는데 한곳은 너무 비싸더라. 그래도 그날은 날이 늦고 피곤해서 하루 숙박하고, 다음날 여기와서 물어보니까 가격이 여기가 더 낫더라구. 지금 대만족이야."


"와 미리 예약 안하고 와서 안내소에 물어봤다구? 신기하다. 진짜 옛날방식으로 여행하네!"


"나도 스마트폰이야 있어. 하지만 쓸줄을 잘 몰라. 그리고 이렇게 여행하는 것도 재밌어."


우리는 웃었다. 하긴 그렇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여행자들은 그렇게 여행했을테니까. 구닥다리 여행의 산 증인을 여기서 만나다니. 



톰이 여행하는 이유 


"근데 그러면, 독일이 첫 국가면 앞으로는 어디를 갈건데?"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음 이탈리아랑, 나는 동쪽으로 갈 생각이야. 어쨌든 마지막 목적지는 그리스. 나의 고향. 아직 누나가 거기 있어. 내가 막내인데 형들은 다 일찍 죽었고 살아있는 아들이라고는 나 하나야."


"아... Sorry to hear that..."


"아니야 괜찮아. 우리집안 남자들중에 나만 유일하게 장수를 하고 있어.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어. 내 머리가 이렇게 하얗게 된거, 이게 내가 40살밖에 안됐을때였거든, 그래서 나는 나도 일찍 죽을 줄 알았어. 근데 너 지금 내가 몇살인지 혹시 맞춰보겠니?"


"음... 글쎄 어렵네? 60?"


"하하하 아니야 난 지금 72세야."


나는 정말로 놀랐다. 그는 정말 정정해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72세의 노인이 혼자 유럽을 여행중이라니. 당신은 오베씨 인가요?

 

물론 오베씨는 작중 59세. 츤데레인 오베씨와는 다르게 톰할아버지는 늘상 웃는 얼굴의 소유자였다.


"너는 유럽에 온지 좀 됐다고 했지? 혹시 인터네셔널 버스를 이용해봤니?"


"아니 보통 나는 비행기랑 인터네셔널 기차를 탔어."


"흠... 그렇구나."


"왜?"


"지금 고민중이거든. 여기(독일)서부터 차를 렌트해서 운전해서 갈지, 버스를 타고갈지, 아니면 기차를 탈지."


"흠... 다른 교통수단들은 내가 잘 모르지만 기차는 아마 꽤 비쌀거야. 나는 유레일패스 유스(Youth)권을 끊어서 그나마 저렴하게 타고있거든. 그런데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기차는 비싸긴 하더라."


"응 나도 그렇게 들었어. 오늘 렌트카 회사를 찾아가보려고. 버스랑 가격을 비교해보고 좀 더 저렴한 쪽을 선택하게 되겠지."


"그나저나 재미난 계획이다. 이탈리아와 동유럽을 거쳐서 고향 그리스까지 갈거라니. 몇년만의 방문이야?"


"글쎄 거의 한 5년만인것 같아. 원래는 주니어(아들)랑 가려고 했었는데... 작년에 죽었어."


아버지와 형들의 죽음을 이야기할때는 내내 담담하던 톰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 역시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헉. 미안해. 작년에 힘들었겠네..."


"내가 말했지? 우리집안 남자들이 일찍 죽는다고. 내 주니어도 42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죽었어. 그래서 작년이 좀 힘들기는 했지. 그래서 여행도 아예 안오려다가, 오히려 더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도 오니까 참 좋네. 이런 곳에서 한국에서 온 예쁜 아가씨와 재밌는 얘기도 하고 말이야.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나이든 사람들과 대화 잘 안하려하던데."


나는 웃었다.


"그건 나이가 들고 안들고의 문제가 아니야. 나도 느껴.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 보느라 바쁘거든."


이건 나도 정말 느꼈던 거다. 톰도 웃었다.


"맞아, 예전에는 여행하면 모르는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그래도 그건 아직 있어. 일단 벌써 날 만났잖아? 앞으로도 계속 만날거야."


이 대화를 끝으로 톰은 렌트카를 알아보러,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쉬운건 톰의 사진 한장 남기지 않았다는 것. 그가 그리스까지의 여행을 잘 마치고 지금은 미국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기도해본다.




실제로 유럽여행중에 남겼던, 여행객간 세대차에 기인한 커뮤니케이션 온도차에 대한 개인적 감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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