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의 최대 공포는 언더그라운드였다.
내가 처음 폐소 공포증을 느낀 것은 15살 때 비행기 안에서였다. 야간 비행 중 불 꺼진 컴컴한 비행기 안에서 나는 갑자기 가슴이 콱 막히고 불안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21살 때 뉴욕으로 가는 중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암흑 속의 야간 버스에서 비슷한 증상을 느꼈다.
지금도 정체된 터널이나 거울 없는 엘리베이터는 견디기가 힘들다. 그래서 유독 거울 없는 엘리베이터가 많은 캐나다 생활 중에도 왕왕 폐소 공포증을 느껴야 했다.
어릴 적에 책상 밑이나 침대 장에 들어가는 건 좋아했는데 도무지 왜 이러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종종 불안증 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에 있다.
영국 여행 중의 최대 복병은 마약도 아니었고 부랑자도 아니었고 영국의 지하철 '언더그라운드'였다.
런던의 언더그라운드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첫 개통 때가 조선시대 김정호 대동여지도 만들 때였다니 말 다했지. 그러나 오래됐다는 것은 그만큼 혁신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엄청 시끄럽고 낡았고 이런 수많은 계단과 생겨먹은 게 이렇게, 지하 터널에 상당히 좁다. 이 길들을 걸어가며 내 가슴이 얼마나 턱턱 막혔던지.
런던의 지하철 '언더그라운드 Underground'는 정말 단어 그대로 '지하'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런던에 있을 때는 나의 두 다리와 버스를 애용했다. 한국의 쾌적한 지하철과 지상철을 매우 그리워하며.
세상은 불만 가진 사람과 불편함 가진 사람이 바꿔나가는 것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런던 사람들은 폐소 공포증을 겪는 이들이 정말 극소수라는 이야기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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