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느Yonu Nov 04. 2019

나는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대화하지만 순진하지는 않다.

오늘도 나는 사기꾼을 포착했다.  


나의 유럽 여행 수기를 묶은 브런치 북 '여느와 여느유럽사람들'은 거의 유럽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 나눈 대화와 소통, 그에 대한 나의 단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분명 그 낯선 이들의 정체를 의심하는 독자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걱정 마시라. 나도 의심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고 배경지식도 의외로 많이 갖추고 있어서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가려내거나 후에 더블체크하는 정도의 정신머리는 가지고 있다.


이것은 '여느와 여느유럽사람들'에 수록된 글에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아래 글에 보면 크리스토퍼가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나는 호텔에 돌아와 독일의 징병제 역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의 역사까지 더블 체크했다. 혹시라도 그가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봐. 

크리스토퍼는 18살에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다녀왔다고 했다. 독일도 한때는 징병 국가였고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했으니 크리스토퍼의 나이와 맞춰보면 거짓말은 아닌듯하다.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은 크리스토퍼에게 밥을 달라거나, 사탕을 달라는 것 대신 늘 ‘펜’을 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펜을 주면 그걸로 벽에 그림을 그렸다고. 항상 마음이 짠했단다. 그 모습을 보면서. 파병을 다녀온 뒤 크리스토퍼도 힘이 들었고 거리로 흘러들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이 글에서는 스스로 아이리쉬라고 밝힌 여자의 악센트가 너무 평범하다는 점을 들어 나보다 오랜 경력의 호텔 매니저 피터에게 감히 '저 여자 의심스러웠다'라고 나중에 나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자신을 아일랜드 출신이라고 밝힌 그녀는 술에 하도 취해 길도 모르겠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는 피터에게 호스텔에 잠깐 앉아있다가 가도 되겠냐고 했다. 피터는 들어오라고 했고 나도 피터를 따라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의심스러웠다. 그녀의 영어 발음이 아일랜드 발음이 전혀 아닌 것 같았거니와 그저 길거리 부랑자가 술이나 약에 돈을 다 써서 호스텔에서 대충 하룻밤 때우고 아침에 나가려는 의도로 들이닥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피터를 따라 들어가 내 나름대로 피터를 지켰다.




오늘은 서울에서 혼자 순댓국을 먹다가 합석을 하게 됐다. 순댓국집이 워낙 바빴고 나는 혼자 삼 인 테이블을 차지하고 먹고 있었으니 사장님이 내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혼자 온 손님을 내 테이블에 같이 앉힌 것이다. 기왕 같이 앉게 된 거 묵묵히 밥만 먹기는 심심해서 내가 먼저 말을 붙였다. 


내가 파악한 그는 1. 전라도 사투리를 서울말로 이상하게 고쳐서 쓰고 (나는 지역감정이 없음을 미리 밝힌다. 고향은 충청도다.) 2. 호주에서 30년간 살아온 교포라는데 인생 행적이 수상했다. 3. 고향을 물었는데 'OO시'라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OO시는 내 고향이다. 


보통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대화가 더욱 길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내가 그와 동향 사람이라고 하자 오히려 말수가 적어졌다. 내가 오히려 고향 이야기로 더 파고들자 그는 아예 입을 닫았다. 나는 직감했다. 그는 고향도 속이고 있구나. 


결정적으로 그는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특 순댓국을 먹고 보통 순댓국을 먹었다고 했다. 음식점이 시끄러웠기에 처음에는 잘못 들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 뒤에 내가 먹은 것을 계산하려다가 카운터의 사장님께 아까 나가신 신사분 얼마 계산하고 갔냐 물었더니 보통 순댓국 값을 치르고 갔다고 했다. 내가 들었던 게 맞은 것이다. 나는 사장님께 그분은 분명 특 순댓국을 먹었으며 보통 순댓국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전했다. 사장님은 돈 천 원에 저렇게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혀를 차셨다. 나는 혹시라도 저 사람이 돌아오면 꼭 천 원을 다시 받으시라고 했다. 사장님은 "그냥 불쌍한 사람한테 적선했다치죠 뭐"하셨다. 


오늘 아는 오빠에게 이 황당한 사기꾼의 이야기를 카톡 한 내용 일부 발췌




내가 굳이 오늘의 에피소드를 '여느와 여느유럽사람들'과 엮어서 쓰는 이유는 하나의 노파심 때문이다. 누가 읽을지도 모르고, 도서 창구에 처박혀 먼지만 쌓일지도 모를 책이지만 어쨌든 나는 내년 초에 출판을 고려하고 있고 모험적인 책의 내용을 누군가는 따라 하다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곳에서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할 때는 매정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주위도 잘 살펴야 하고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눈치껏 잘 파악해서 말을 걸어야 한다. 적당히 대화하다가 이 사람이 이상하다 싶으면 확실하게 끊어내 버리는 냉정함도 필요하다. 나도 런던에서 이런 경험이 있다. 이 에피소드는 차차 풀도록 하겠다. 


우리 독자님들은 안전 여행하시기를 바라며 적어봤다. 


그리고 아저씨, 돈 천 원이 그렇게 아까우셨나요. 그 천 원은 당신의 양심 값입니다.



브런치북 '여느와 여느유럽사람들' 읽으러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런던 사람들은 폐소 공포증이 없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