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건 면접비입니다.
집에 와서 찍은 사진이라 봉투가 꾀죄죄해 보이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빳빳한 새 봉투였던지 정말.
면접을 마치고 면접관님께서 내게 건넨 봉투 한 장.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면접비는 마치 네스호의 괴물과 같아서 있다고는 하는데 봤다는 사람은 극히 드문, 그런 존재다. 그런데 내가 네스호의 괴물을 본 것이다!
게다가 내가 면접을 본 회사는 서울에 위치한 회사였다. 지방까지 가지 않는 한 면접비를 주는 서울의 회사는 극히 드물다. 나도 주변에서 '프로 면접러'라고 불릴 만큼 면접을 많이 보고 다니지만 서울에서 면접비를 받아본 적은 처음이라 적지 않이 놀랐다.
내가 아는 후배는 본가가 전라도인데 전라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면접을 봐도 면접비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분명 이력서에 현주소가 적혀 있으므로 회사 면접을 위해 차비며 기타 여비를 쓰고 올라온 것을 회사가 모를 리 없을 텐데 나는 그 후배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 회사들이 참 얄미웠다.
저, 저는 서울에서 왔는데요?
나는 봉투를 건넨 면접관님께 되물었다. 혹시 지방에서 온 면접자들에게만 주는 것인데 착각을 하신 것인가 하고. 실제로 나는 지방 출신이긴 하나 현재 서울에 살고 있고 면접 장소까지 오는데 내가 지불한 비용은 지하철비 1,250원이 다였다.
아, 저희는 오시면 다 드립니다.
그리고 그 옆에 계시던 다른 면접관님께서 익살스럽게 한마디 거드셨다.
네, 서울에서 오셨으니까 얼마 안 돼요~
얼마 되건 안 되건 그래도 일단 회사에서 베푸는 호의인데, 나는 넙죽 구십도 각도로 인사하고 받았다. 회사 건물에서 나와 지하철 화장실에서 몰래 봉투를 확인했다. 처음에 집힌 건 만 원짜리 한 장. 머릿속을 스쳐가는 익살스러운 면접관님의 말씀 한마디 '네, 서울에서 오셨으니까 얼마 안 돼요~' 그래서 만원이구나. 약간 김샜다. 인간의 욕심이란. 그런데 다시 보니 만 원이 아니었다. 새 돈으로 준비하셔서 총 이만 원인데 돈이 빳빳해서 내가 만 원인 줄로 오해한 것이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면접관님. 이게 웬 호사냐.
면접 보러 온 면접자들을 위해 회사에서 준비한 새 봉투와 명절 때 어르신들이나 주시는 빳빳한 새 돈으로 면접비를 챙겨주신 회사 관계자분들. 새 지폐 마련을 위해 은행까지 다녀오셨을 것 아니야. 물론 당신들께서 직접 다녀오신 건 아니겠지만.
이런 회사는 정말 나라에서 상이라도 줘야 한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서 타다 타고 집에 가려했으나 서울의 교통 체증이 더 심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이만 원은 고이 지갑 속에 보관했고 대신 다음 날 순댓국 사 먹었다.
감사합니다. 어흑흑.
다음 메인에 이 글이 올라갔고 슬슬 댓글이 뜨거워져서 몇 자 더 적습니다.
특히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경우 각각 60%와 52.6%로 절반 이상의 기업들이 면접비를 지급한다고 밝혔으나 중소기업은 22.5%에 그쳐 큰 차이를 보였다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
2019년 기사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면접비를 받는 구직자보다 못 받는 구직자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여기까지 오셔서 '니가 노오력이 부족해서 대기업을 못 갔지'라는 교양 없는 말들은 주고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서로 상처 주고 싸우기에는 브런치라는 공간이 아깝잖아요?
저도 대기업 면접 본 적 있지만 면접비 못 받아봤습니다. 3~4년 전의 일입니다. 저의 경우는 40%에 속하겠네요. 기업명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면접비는 기업의 의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면접비를 지급하는 것에 대해 저는 감사를 표현하고자 글을 쓴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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