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는 적이 아닌데
얼마 전 지하철에서 겪은 일이다. 그다지 붐비지는 않았지만 서서 가는 사람은 있어야 했던, 딱 그만큼의 시간대였다. 나는 열차 의자의 두 번째 자리쯤에 앉아 있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문득 열차 문 옆 손잡이를 잡고 서계시는 여자분의 배가 볼록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마 방금 정차한 역에서 타신 분 같았다. 나는 자리를 양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짓으로 그분의 눈길을 끌었고, 엉거주춤 일어나며
저, 여기 앉으세요
했다. 그러자 동그란 인상의 그분은 활짝 웃음을 띄며
아니에요, 저 다음 역에서 내려요
하셨다.
감사합니다~
를 덧붙이시며. 나도 목인사를 꾸벅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분은 다음 역 신도림에서 내렸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지하철을 타겠지만 우리는 보통 지하철에서 피곤하다. 특히 출퇴근 길이라면 더더욱. 혹자는 임신한 몸으로 뭐하러 출퇴근을 하냐고 힐난할지 모르겠지만 임산부는 회사도 다니면 안 되냐. 오히려 아기 가졌어도 끝까지 자기 일하는 책임감 강한 여자라고 칭찬을 해줘야지. 당신들 시각이라면.
내 한 몸뚱이만 갖고도 피곤한데 뱃속에 생명을 하나 더 품고 두 사람 몫을 감당하는 임산부는 얼마나 피곤하고 고될까. 임신은 안 해봤지만 상상만 해도 솔직히 무섭다.
내가 놀란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임산부를 마치 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 지하철 자리를 빼앗는 적. 우스운 일이다. 그깟 지하철 자리 하나 뺏긴다고, 양보한다고 자기 다리가 부러지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잃는 것도 아닌데 왜 임산부는 적이 되어야 하는 걸까. 게다가 임산부들이 못된 마음을 품고 "자리 내놔!"하고 당신을 자리를 탐내는 것도 아닌데.
저출산이 문제네, 문제네 하면서 막상 아이를 품는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병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책임은 오롯이 사회에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