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uh Oooh Ju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느Yonu Nov 11. 2019

서울의 세입자

내 집 없는 내 인생.



새 방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방의 계약 만료까지는 한 달 이상 남았지만 입사 전에 여유롭게 방을 둘러보고 싶어서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다. 중개사들도 여기서부터 차이가 난다. 어떤 중개사들은 입주시기를 맞춰 어떻게든 방을 찾아주고, 어떤 중개사들은 시기가 이르다고 다음에 다시 연락 주겠다고 한다. 어떤 중개사들은 시도 조차 안 한다. 


지난번엔 급히 방을 찾느라고 솔직히 눈탱이를 심하게 맞았다. 한국 입국하고 삼 일도 안돼 서울에 집 얻고 또 일주일도 안돼 강남으로 출근했다.본가가 지방인데 그 추운 연말에 부모님까지 대동해 서울에 올라왔으니, 계약을 안하고 갈 수 없었고 눈탱이를 피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방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내가 원하는 방을 찾기란. 


다행히 조부님의 은혜로 보증금이라는 총알은 넉넉한 편이지만 여전히 넓은 방은 연식이 오래됐고 비교적 새집은 어찌나 촘촘히 들 지어놨는지 대단하다. 땅값 탓이지. 3~4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이유는 엘리베이터 하나 들어갈 자리에 방 한 칸이 더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중개사분이 신축 5층짜리 건물에 이만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 좋은 거라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집주인님 아량이 넓으시군요. 

 

보증금이 넉넉해도 집주인이 싫다면 어차피 다 필요 없다. 내가 더 드리겠다 하여도 은행이자가 더 이상 높지 않은 데다 마땅한 투자처도 없는 요즘, 집주인들은 보증금 천만 원 더 주는 건 됐으니 월세를 5만 원이라도 더 받고 싶어 한다. 


여자라는 점은 실골목에 사는 것도 망설이게 한다. 방은 대로변에 있을수록 값이 더 나간다. 


게다가 그놈의 관리비. 관리비는 진짜 집주인 마음이다. 어디는 수도, 인터넷, TV 포함해서 7만 원, 어디는 8만 원, 어디는 인터넷이랑 TV만 6만 원, 어디는 전기, 수도, 가스, 인터넷, TV 싹 다 포함해서 12만 원, 어디는 아무것도 안 포함해서 5만 원... 애초에 TV 안 보고 사는 나는 굳이 TV세 안 나가는데, 나 올 6월 전기세 2,260원 나왔는데, 아무것도 안 포함해서 5만 원짜리 관리비는 또 뭐람. 뭘 갖다 붙이든 관리비도 일종의 월세 더 받기 정도로 밖에 안 보인다. 차라리 관리비 12만 원짜리 방에 들어가서 여름엔 에어컨 팡팡 틀고 겨울엔 히터 펑펑 틀고 살까 생각해봤지만 환경을 생각하자 여느야. 환경을. 그리고 어차피 낭비야, 낭비. 우리는 자원 빈국이다. 아아, 조국에게 얻어터져도 끝까지 나라 생각하는 밀레니얼의 이중성이여... 


수많은 어플들이 나 같은 세입자들을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허위매물은 존재한다. 

"아, 문의하신 그 방은 방금 나가서, 대신 다른 더 좋은 방들 보여드릴게요, 일단 오세요!" - 일주일 뒤에도 그 방은 어플에 그대로 존재한다.

"아, 그 방이요, 오늘 아침에 나갔어요. 비슷한 방들이 있는데 가격은 좀 쎄요, 그래도 쭉 보여드릴게요!" - 오래서 갔더니 이런 소리 한다.

"지금부터 x방, x방에서 보신 매물들 다 허위라고 생각하시고 현실 직시하시고 보세요" - '아저씨도 그런 매물들 x방에 올려놨잖아요' 한 마디 하려다가 옆에 아버지가 계셔서 삼켰다. 


지난번에 허위 매물에 여러 번 맞아봐서 이제는 나도 눈이 생겼다. '주작도 적당히 좀 하지' 넘기고, 넘기고. '이 부동산은 안되겠구만.' 수첩에 적어둔다. xx부동산:양아치 


나 방 찾는 것 도와주겠다고 아는 동생이 나섰는데 죄다 허위 매물만 들고 온다. "니 보여준 거 허위매물이다. 전화는 해봤나?" 물어보니 "아, 어쩐지 무조건 믿고 오라고만하더라." 이것도 꼭 그런 중개사 단골 멘트. '믿고 오세요' 믿긴 뭘 믿어. 그래도 아는 동생 강군 마음은 곱다.


x방이 도와줘도 결국 중개사 끼고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 어쩌다 정말 친절한 분이라도 만나면 괜히 내가 다 미안해진다. 그가 보여준 방들이 마음에 안 들면 더더욱. 계약도 안 할 건데 그의 시간만 뺏들고 나오는 것 같아서. 그럴 땐 웬만하면 근처 편의점에라도 들러 뭐라도 들려주고 온다. 




그래도 캐나다에 비하면 한국에서 방 찾기는 애교 수준이다. 캐나다는 방 한 칸 빌리는 수준의 렌트는 중개인도 없이 한다. 그래서 집주인도 예민하고 세입자도 예민하다. 우리처럼 원룸에서 독립된 생활을 하는 문화가 아니라 단독 주택에 살며 주방도 같이 쓰고 거실도 같이 써야 하는 문화라서 서로 생활이 맞지 않으면 서로 스트레스다. 주로 집주인이 갑이니 거의 면접을 본다. 하는 일은 무엇이며, 이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을 묻는다. 이전 룸메이트나 현 직장 동료 혹은 보스의 레퍼런스 체크를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다 이렇다는 것은 아니고. 언젠가 한 번은 캐나다에 이렇게 노숙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사회보장제도로 돈이 있을지언정 방 한 칸 구하기가 어려워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전문 중개인이나 정해진 법적 서류 없이 집주인이 만든 서류에 서명하고 현금으로 월세를 주고받기 때문에 사기도 발생한다. 이를 피하려고 한인 커뮤니티에서 거래도 많이 하는데 내가 있던 해에도 한국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월세 사기를 거하게 치고 도망쳤다.  


집없는 서울의 미생들이여. 화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승리 아버지가 주신 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