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느Yonu Nov 16. 2019

그림이라곤 모르는 내가 고흐를 만났던 순간

30초간의 의식 혼란. 스탕달 증후군.


2011년 뉴욕에 갔을 때의 일이다.


모던아트 뮤지엄. 모마 MOMA에 간 이유는 단 하나였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려고. 그 외의 그림엔 아무런 관심도, 지식도 없었다. 당시 내 나이는 스물 하나. 중고교 시절 미술시간엔 내내 잠만 잤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공학 인증 교양과목을 수강하느라 미술 관련 교양과목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나는 미술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저 고매하고 돈 많은 사람들의 비싼 취미라고나 생각했지. 여기에 고상한 척하는 평론가들의 말장난까지 추가된.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러 간 이유도, 그녀의 삶을 그린 영화에 감명을 받아서 보러 간 것이었지 그림적 영감을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물론 고흐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아마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기말고사 하루 전 날에 고갱의 인생을 소재로 한 '달과 6펜스' 소설책을 완파한 경력이 있다. 그래서 나는 고흐를 '고갱의 이상한 친구 화가'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남들이 그가 얼마나 대단한 화가이며 그의 작품이 얼마나 뛰어나다고 말을 하건 말건 간에.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모마를 둘러보며 이 쟁쟁한 작품들 속 더욱 더 명망 있는 작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 그림들 앞에는 늘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인의 장막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 많은 건 질색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을수록 나는 더욱 힐끗 보고 피하는 편을 택했다.


그렇다고 전시를 대충 본 것은 아니다. 특히나 그림이 유화라면 나는 전시관이 허락하는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내 눈을 그림에 들이대고 붓터치 하나하나를 관찰했다. 화가의 머리에서 구상되어 눈으로 장소가 정해지고 어깨와 팔꿈치, 손, 손가락 끝의 붓에 의해 그려졌을 유화 물감의 흔적. 그 흔적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화가와 함께 있는 것 같고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유화가 좋다.


그렇게 눈을 들이대가며 그림을 구경하다가, 나는 또 사람들이 잔뜩 모인 한 그림을 발견했다. 대충 지나가려고 했는데 내 눈은 이미 그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30초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아 사진도 못 찍었는데 전시관 닫을 때쯤 돌아와 보니 사람이 없길래 이때다 싶어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이 짧은 순간 동안 나의 온몸에는 소름이 돋아올랐고 머릿속은 텅 비었다. 원래 조용한 모마지만 소곤대는 관광객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30초간 그림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스탕달 증후군'이라는 게있다. 뛰어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의식 혼란이나 어지럼증, 다리 풀림, 심박수 증가 등을 경험하는 것. 심하면 환각까지 경험하게 된다고.


아무래도 내가 이날 태어나 처음으로 스탕달 증후군을 경험했던 것 같다. 그림의 그자도 모르는 문외한이 이런 경험을 해보다니. 그리고 그 첫 경험의 그림이 반 고흐의 The Starry Night 라니. 이 정도면 반 고흐한테 절이라도 해야 한다. 명작을 남겨줘서 고맙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