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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28. 2019

바다판 창씨개명 일본해(Sea of Japan)


 한국과 북한 및 러시아 연해주, 사할린 섬과 일본에 둘러싸여 있는 바다. 이 바다를 두고 한국은 '동해 (East Sea)'라 부르고 일본은 '일본해(Sea of Japan)'라 부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처럼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바다 동해. 동해는 어쩌다 일본해가 된 것일까.      


 '동해'를 뒷받침하는 사료는 엄청나게 많다. 한국의 사료에 동해가 등장한 것은 광개토대왕릉비(414)에서 부터다. 이외 성덕대왕 신종(771), 삼국사기(1145)에도 동해라는 해명이 등장하는 등 동해가 한반도 지역에서 유서 깊은 명칭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의 서양 지도들도 동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간혹 ‘한국해(Mer de Coree)’라는 표현도 등장할 정도로 일본해는 설자리가 없었다.   


 본디 일본은 동해를 북해(North Sea)라 불렀으며 ‘일본해’라는 명칭은 일본에서 태평양 쪽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쓰였다. 1890년에 일본인이 만든 ‘일본변계약도’에는 아예 동해를 ‘조선해’라고 불렀다.     

  

 그러나 동해는 19세기 들어 바다판 창씨개명을 당했다. 일제강점기이던 1923년 동해는 일본인들에 의해 국제사회에 일본해로 소개됐다. 일본해 표기 빈도는 19세기 이전에는 거의 없다가 19세기 들어 일본이 IHO에 바다 명칭을 일본해로 등록한 후 급증한다. 1937년 IHO가 해양과 바다의 경계 2판을 출간할 때에도 한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실 한국이 IHO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한 것도 한참 뒤인 1957년의 일이다.      


 뒤늦게 일본해의 만연을 확인한 우리 정부는 동해 단독 표기를 최종 목표로 하되 일본과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IHO가 2개국 이상이 공유하는 지형물에 단일 명칭 합의가 이뤄지기 어려울 시 각자 사용하는 명칭을 병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에서도 같이 적용된다.      


 한국 정부는 1997년부터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해야 한다’는 문제를 IHO에 제기하기 시작해 2002년, 2007년, 2012년, 2017년 등 5년마다 열리는 IHO 총회에서 동해 병기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1965년 한일어업협정 체결 당시에도 한국과 일본은 한·일 양국의 해역의 명칭에 대한 합의점을 못 찾으려 했으나 일본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지난 2월 IHO는 일본 정부에게 ‘일본해’를 단독으로 표기하고 있는 지도 제작 지침의 개정에 대해 한국과 협의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일본은 IHO의 압력과 국제사회의 눈치 때문에 협의에 참여하기는 하나 일본해 표기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IHO의 권고에 대해 “일본해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호칭이라며 변경할 필요성도, 근거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같은 달 국회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해 “일본해 명칭 표기 유지를 국제기관과 국제사회에 계속 주장해 올바른 이해와 일본에 대한 지지를 요구하겠다”고 공표했다.     


 일본의 끝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와 민간의 노력으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은 점차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동해·일본해 명칭의 병기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동해와 일본해가 병기된 세계 지도가 2000년대 초반까지는 2% 정도였으나 지금은 세계 「100대 지도」에서는 51%까지 증가했다.     

 지난 4월에는 방탄소년단(BTS)의 인기를 소개하며 일본해를 방송에 버젓이 내보낸 미국 방송 CBS가 방탄소년단 팬들의 항의에 일본해를 삭제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이름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굳이 이름을 바꾸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라이너 도르멜스 오스트리아 빈대학 한국학과 교수는 2009년 한국을 방문하여 일본이 한국을 식민 지배할 당시 동해의 이름을 ‘일본 내륙해’로 만들어 동해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확고히 하려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도르멜스 교수는 또 “현재 한국인이 일본해를 거부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적인 반발이 아니라 논리적인 근거가 있다”며 “이런 측면이 국제사회에는 제대로 홍보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에 잘못 알려진 독도 문제, 역사 왜곡 문제 등을 시정하는데 항상 최전방에 서온 민간 외교 사절단 ‘반크(VANK)’는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는 일은 일본 제국주의 잔재를 청산하는 일이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라고 동해 표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923년 동해의 이름을 일본해로 바꿔치기한 일본 정부는 1939년에는 내선일체 사상을 내세우며 식민지하 조선인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을 실시했다. 개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몰아 감시했으며 사회적 불이익을 주는 등 다분히 강제성을 띈 개명 조치였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거센 반발로 일본의 계획이던 식민지하 완전 내선일체 계획은 무산됐다.      

 사람은 반발할 수 있었으나 바다는 할 수 없었다. 사람이 나서서 동해의 창씨개명을 막아야 했으나 힘이 없었다. ‘일본해’라는 이름은 청산해야 할 일본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동해는 오랫동안 한국인의 삶의 터전이었다. 동해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생활 필수 요소들과 먹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또 여름마다 동해에서 즐기는 해수욕은 또 얼마나 재미난 일인가.      

 1945년 광복을 맞은 후 한국은 세계인이 KPOP에 열광하고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를 달성할 만큼 성장했다. 이제는 우리가 무한한 삶의 터전을 제공해주는 동해를 위해 나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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