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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18. 2019

예의 없는 세상, 예의 없는 면접관

당신 같은 사람 밑에서 내가 일하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이런 일은 해본 적 있나? 저런 일은 해본 적 있나?


대학 졸업이 한 학기 정도 남았을 때였다. 나는 빨리 사회생활이 하고 싶었다. 어차피 나는 대학생활 중에도 대학생이면서 사회인인 중간자의 삶을 살아왔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고 빨리 돈을 벌어 우리 집 가계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일단 취업을 먼저 하고, 취업계를 내고, 돈을 벌자. 이게 겨울 방학 내 목표였다. 


다행히 아는 분의 소개로 여의도의 모 컨설팅사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이력서가 통과되었다. 남은 것은 대표님과의 면접뿐이었다. 처음에는 회사로 오라고 해서 시간을 맞춰 회사로 갔는데 갑자기 장소가 근처 카페로 바뀌었다. 나는 군말 않고 카페로 갔다. 대표는 앞의 일정이 많았다며 면접에 늦었다. 역시 군말하지 않았다. 


문제는 면접관인 대표가 내 이력서를 안 읽은 티가 너무 났었다는 것이다. 그는 분명 이력서에 이미 기재되어 있는 내 경력에 대해서 되묻고 또 되물었다. 처음에는 기재된 경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라거나 진짜 내 경력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질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도 바보는 아니어서 슬슬 눈치를 챘다.

서류 합격이야 밑의 사람들이 읽고 시켰을 테니 그렇다 치지만 어쨌든 최종 이력서가 올라왔으니 면접 보기 전에 대충 훑어라도 볼 수 있는 것 아니었을까. 채용할 의사가 없는데 소개한 사람의 체면이 있으니 대충 면접이라도 보겠다는 건가? 나는 금세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나는 면접을 위해 준비해서 갔는데, 그는 들을 생각도 준비도 안돼있어 보였다. 당황한 스물 넷, 다섯 나의 볼 근육에 살짝 경련이 일어났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 근데 여자한테 이런 말 하면 성희롱인가? 그거 입꼬리 올라가는 거 굉장히 보기 안 좋아 보이네요.


나는 황당했다. 그리고 내가 말을 이을 새도 없이 그는 술은 얼마나 마시냐 는 등 쓸데없는 질문을 해댔다. 내가 술은 전혀 하지 못한다고 하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당장 자리를 엎고 나오고 싶었지만 소개해준 분의 얼굴이 있어 그러지는 못했다.


면접인지 뭔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집에 돌아와 멍하니 있었다. 다음날 소개해준 분이 전화가 와 "너 합격이랜다."라고 했다. 나는 그분께 그 회사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분은 화를 내며 "그럼 소개해준 나는 뭐가 되느냐"고 했다. 나는 어제 면접 때 겪은 일을 모두 다 말씀드렸다. 그분은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나는 학교로 돌아갔다. 한참 개강하고 학교 굴다리를 지날 때 그때 그 회사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하고 받으니 그가 말했다. 그는 굉장히 주눅 든 목소리였다. 내게 "술은 얼마나 마시나?"라고 물을 때의 당당함은 없었다. 


저 혹시 OOO 씨, 그때 우리 회사랑 일 안 하다고 했잖아요,
다시 생각해볼 마음 없어요? 


나는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가 훑어보지도 않은 이력서를 쓰는데 나는 3시간을 공을 들였었다. 그가 대~충 나를 앉혀놓고 아무소리나 지껄일 면접을 위해 나는 3일을 준비했었다. 당신 같은 사람 밑에서 내가 일하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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