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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19. 2019

예의 없는 세상, 예의 없는 정치인

당신 공천 떨어져서 내가 얼마나 신이 나던지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야, 너희 어디 소속이야. 쓰레기 주워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정치적 논란 때문에 자세한 상황설명은 일부러 피한 글입니다. 그 분의 소속이 하필 민주당 이거든요.)


당시 나는 한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관과 시민단체 간 마찰이 생겼고 기관 앞으로 수십 명의 시위자들이 몰려왔다. 당연히 업무는 올스탑. 


윗분들은 그래도 먼길 오신 시위대분들을 위해 김밥과 생수를 준비했다. 누구 주머니에서 어떻게 나온 돈인지는 모른다. 그렇게 김밥 수십 줄과 500ml 생수 수십 통이 준비됐다. 문제는 이걸 누가 가져다주느냐였다. 딱 두명만 차출됐는데 신입이던 나와 다른 남자 직원이 선택됐다. 


우리는 식사를 전하러 가기 전에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전달받았다. 1. 반드시 소속을 숨길 것 2. 굳이 물어보면 '아르바이트생이라서 잘 모릅니다'라고 답할 것 3. 시위대와 눈을 마주치는 등 혹시라도 이들을 자극할만한 행동을 반드시 삼갈 것 동. 솔직히 가슴이 쿵쾅거리고 무서웠으나 의연한 척했다. 


나와 남직원 오빠(사석에서는 오빠라고 불렀다.)는 김밥과 생수병이 올려진 수레를 질질 끌고 시위대 현장 속으로 향했다. 처음에 정부기관에 합격했다고 기뻐하시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이런 이야기는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말아야지, 했다. 


역시나 시위대분들은 우리에게 매서웠다. 온갖 질문을 쏟아냈고 당장이라도 우리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주의 사항대로 했다. 최대한 그분들이 기분 나쁘지 않을 웃음을 지어 보이며 우리는 아르바이트생이라서 모르며, 그저 식사를 전해드리러 왔을 뿐이라고. 


그렇게 수레를 끌고 다니는데 내게도 익숙한 모 정치인이 시위대와 그늘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가서 인사를 드리고 식사를 가져왔다고 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날카롭게 물었다. 


야, 니네 어디 소속이야. 


우리는 그저 "아, 저희는 아르바이트생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래? 그럼 니네 여기 쓰레기 좀 주워가 


그녀가 가르킨곳을 보니 그녀가 피운 건지 시위대가 피운 건지 금연 구역인데 담배꽁초가 너저분히 널려있었다. 쓰레기봉투도 없었는데 나는 또 그걸 열심히 손으로 주웠다. 마지막엔 인사도 꾸벅 드리고 왔다.


무사히 기관으로 돌아오자 기관 어른들이 "수고했다", "고생했다" 하셨다. 나는 인사를 드리고 화장실부터 갔다. 손에서 담배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손을 벅벅 씻고 나서야 긴장이 풀려 '하아~'하고 깊은 한숨이 났다. 그리고 그녀의 당당함이 떠올라 헛웃음이 났다.


그녀는 다음 공천에 탈락했다. 기분이 존X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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