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의 근무 태만이 쏘아 올린 작은 '폭탄'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야, 이거 기한이 지나서 승인이 안된다는데?
X발.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와 제주도 여행 중이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은 대망의 수강신청 날이었다. 나는 당시 부전공을 준비 중이었기에 수강신청이 매우 중요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친해진 다른 여행자 분들도 나의 수강신청을 응원해주셨다. 나는 내 휴대전화 수강신청 어플을 켜 두고 대기를, 내 친구는 게스트하우스 컴퓨터를 켜 두고 오롯이 나의 수강신청을 위해 20분 전부터 대기를 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며 게스트하우스의 여행객들은 "와, 우리 대학 때 생각난다.", "파이팅!" 하며 우리를, 나를 응원해주셨다.
09시 30분 00초 정각. 나는 수강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내 화면에 출력된 것은 수강신청 화면이 아니라 안내문구였다.
담당 교수 상담 불참으로 수강신청이 불가능합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멘탈이 붕괴되었다. 내가 교수님과 상담을 안 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분명 나의 담당 교수님과 심지어 면대면 상담을 했었다. 보통 많은 학생들이 간편한 온라인 상담으로 끝마칠 때 굳이 시간까지 잡아가며 교수님 연구실에서 비타 500 한 박스를 들고 기다렸었단 말이다.
나는 당장 교수님 연구실로 전화를 걸었다. 방학중이라 역시 응답하는 이는 없었다. 교수님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미 시간은 3분이나 지체되어 있었다. 나 대학 다닐 당시 우리 학교 학생들의 수강신청 마감까지 걸리는 시간은 1분 몇 초였다. 나는 입술까지 떨고 있었다. 교수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나는 과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과사무실은 언제나처럼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OOO 교수님과 이미 상담을 했는데 상담 불참 학생이라고 수강 신청이 막혔습니다."
"OOO 교수님과 통화해서 상담 참가로 바꿔달라고 하세요."
"전화를 받지 않으십니다."
"저희도 방법이 없어요. 교수님이 직접 하셔야 해요."
시간은 이미 9시 35분. 내가 소중히 담아두었던 내 희망과목들이 쓰레기통에 처박히기 딱 알맞은 시간이었다. 일단 OOO 교수님의 휴대전화에 내 상황을 설명하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그제야 게스트하우스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은 나 때문에 초토화였다. 아무도 아무 말하지 못했다. 원래 나와 친구의 마지막 여행날이어서 마지막 날 SNS 연락처라도 교환하기로 했었는데 내 정신이 나가서 아무것도 못했고 다른 여행자분들은 내게 "어떻게 해요... 힘내요"라는 위로를 남기고 하나 둘 떠나갔다. 내 친구는 내 눈치를 보느라 여행의 마지막 날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낭비했다.
혹 수강신청의 중요성을 모르는 분들이 계실까 봐 설명을 드리자면, 대학생들은 전공과목과 교양과목을 들어야 한다. 이수 학점을 모두 수강해야 졸업이 가능한데, 특히 전공필수 과목은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그래서 더 사람이 몰린다. 학교 측에서는 넉넉하게 자리를 열어둔다고 해도 늘 미끄러지는 학생들은 등장한다. 그러면 다음 학기로 수강을 미룰 수밖에 없다. 아니면 교수님께 찾아가 사정사정하던가.
여기에 나는 부전공을 계획 중이었기에 다른 학과의 전공과목도 들어야 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이 수강신청 시 같은 과 학생들과 전공과목을 두고 경쟁할 때 나는 우리 과는 물론 타과 학생들과도 경쟁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전국 순위권에 꼽히는 넓은 캠퍼스상, 시간표가 꼬이면 강의동을 옮겨 다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실제로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
교양과목도 함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대학은 지식의 장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우리 학교는 진즉 학점 퍼센트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올 B+를 뿌려주는 꿀 교양 같은 건 없었다. 취업을 하려면 좋은 학점이 필요하고 가뜩이나 많은 전공 과제에 쫓기는 학생들은 그나마 시간적 여유를 주고 본인이 하기 편한 교양과목을 찾기 위해 바쁘다. 나는 부전공을 위해 이 점은 포기했었다. 그냥 금요일에 몰아서 들을 수 있는 교양 두 과목을 다 밀어두었었다.
본전 공 필수 이수 전공과목, 부전공 필수 이수 전공과목, 강의동 간 이동 시간, 교양 학점 이수 시간 등 많은 것 점들을 고려해 며칠을 고민하며 시간표를 짜뒀었는데, 내 수강신청은 시도도 못해보고 마감돼버린 것이다. 나는 휴학까지 생각했다.
교수님과 나는 한참 후 극적으로 통화가 되었다. 내가 김포공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거의 직전이었다. 교수님은 이제라도 상담 확인을 해두겠다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휴대폰을 끄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기 직전까지 나는 최대한 수강신청을 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여전히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래, 서울 도착해서 하자.
그렇게 김포공항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당연히 수강신청 앱키기였다. 다시 떨리는 로그인의 순간. 그. 런. 데
담당 교수 상담 불참으로 수강신청이 불가능합니다.
X발. 나는 다시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수강 신청이 여전히 되지 않습니다."
어, 야, 그거 지금 하려니까 늦었다고 안되던데?
천하태평한 그의 말투. 그럼 문자라도 한통 넣어두던가. 본인 잘못인데 본인이 과사무실에 전화해서 바로잡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비행기 타느라 휴대폰도 못썼는데.
결국 내가 다시 과사무실에 전화해 OOO 교수님이 상담 확인으로 수정하려고 하는데 안돼서 못하고 있다고 전했고 과사무실에서 문제를 해결해준 다음에야 나는 수강신청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원했던 과목들은 다 닫혀있었고 본 전공과목들 남은 것들을 주워 담느라 그 학기, 나는 결국
부전공을 포기했다. 사라진, 한국어교원자격증의 꿈이여.
교수님이 근무태만으로 쏘아 올린 작은 '폭탄'은
1.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 초토화 2. 나의 절친한 친구와 제주도 여행 마지막 날 박살내기 3. 내 부전공 꿈 죽이기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덤으로 내가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 김포공항에서 배를 움켜쥐고 거의 쓰러질 뻔했던 것도 있다.
그다음부터 나는 내 담당교수가 누구 건간에 무조건 온라인 상담만 했다. 그리고 나에게 폭탄을 던져준 저 교수의 수업은 한 번도 듣지 않고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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