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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19. 2019

예의 없는 세상, 예의 없는 사이비 포교 활동

그만 좀 잡아. 나 못된 사람이야.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아, 거 참 차 한잔 사주고 가지.


나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1등 환영체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복이 많으시네요~", "관상이 좋으시네요~"멘트의 단골손님이다. 그냥 호구같이 생겼단 거겠지. 뭣도 모르던 때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그들을 떼어내려 했으나 지금은 영어로 응수하고 가버린다던지 아예 무시하고 지나친다. 이 사건은 뭣도 모르던 때 발생한 사건이다.


학교를 마치고 자취방에 쓸 물품 장을 보고 나오던 길이었다. 어떤 여자가 나를 붙잡고 "영풍문고가 어디예요?"하고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어서 "모르겠네요."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가려던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붙잡았다.


저기요, 그런데 복이 많으시네요. 차 한잔 해요.


걸렸구나. 나는 최대한 정중히 그녀를 떼어내고자 노력했다.


"저 교회 다녀요"

"교회랑은 다른 복이에요."

"아까 저 복 많다고 하셨잖아요. 전 괜찮아요."

"많아도 묶인 데가 있어요. 풀어야 해요."

"제 인생에 만족해요. 기복은 필요 없어요."

"아니에요, 차 한잔 해요."

"그러고 싶어도 돈이 없네요."

"차 한잔에 몇천 원이잖아요."(끝까지 자기가 사준다는 말은 안 한다.)

    


한참의 실랑이 후, 그녀는 결국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나를 표독스럽게 쳐다보며 마지막 한마디를 날렸다.


하 거 참, 차 한잔 사주지. 그게 얼마나 한다고.


잠깐, 지금 누가 걸인이 된 거야.


사실 그녀 멘트는 둘째치고 그 눈빛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씐듯한 기분 나쁜 눈빛. 그런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는 게 소름 끼쳤다. 그녀와의 대화 이후로 나는 무조건 사이비의 포교활동이라면 속된 말로 '쌩까는' 방법을 택한다.


예의 바르게 거절해줘도 고마운 줄 모르니 못되게 거절해드려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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