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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20. 2019

예의 없는 세상, 예의 없는 장학사

학생 체벌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되기 전이던 시절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신고하는 학생 이름이 뭐라고요? 


나는 자고 있었다. 그러다 교실이 소란스러워 깼다. 그리고 눈 앞에 벌어진 광경을 목도하고 나는 내가 아직 자고 있나 의심을 했다. 유난히 키가 큰 남자 선생님이 키만큼 큰 손으로 우리 반에서 유독 키가 작고 얼굴도 작은 여학생의 뺨을 무차별적으로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남자 선생님은 서있었고 여학생은 앉은 상태였다. 위에서 내려 꽂히는 따귀. 얼마나 아팠을까. 온통 여중생으로 이뤄진 학급에서 어느 하나 이 남성의 폭력을 말릴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나는 차라리 꿈이길 바랬다. 


선생님은 나갔고 아이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얼마나 상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심각하리란 것은 자명했다. 그 아이의 친한 친구들이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갔고 남은 친구들이 모여 "이 건은 신고해야 한다."라고 뜻을 모았다.


그 선생을 학교로 신고하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분명 학교에서 대충 덮일 것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교육부로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폰 모드로 우리 반 전체가 들을 수 있게 해 두었다. 장학사였나, 아무튼 굉장히 나이 든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는데 '체벌 폭력사건'이라고 해도 귀찮다는 투였다. 오히려 그는 꼬치꼬치 캐물으며 "그러니까 애초에 수업시간에 낮잠을 잔 그 학생이 잘못한 것 아니냐"라고 따졌다. 


나는 아이와 그리 친하지 않았기에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으나 앞의 두 학생들이 장학사의 억지 논리에 밀려나가는 모습이 안타깝고, 장학사에게 약이 올랐다. 내가 3번 타자로 나섰다. 


선생님, 물론 그 학생이 수업 시간에 낮잠을 잔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낮잠을 잤다고 학생의 뺨을 무차별적으로 때리는 교육자의 행동은 옳은 것입니까? 


장학사는 아무 말하지 못했다. 


아니, 그러면 신고하는 학생 이름은 뭐예요? 


그는 갑자기 내 이름을 물었다.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누가 신고했는지를 알면 학교에서 내가 무슨 일을 당할지 어떻게 아나. 


선생님, 그것은 저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니 내가 이름을 모르는데 어떻게 도와줘. 학생 이름이 뭐냐고.


선생님, 제가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요.


아무튼 나는 학생 이름 모르면 접수 못 시켜. 


가해 선생님 이름이랑 피해 학생이 확실하잖아요. 이런데도 접수가 안됩니까?


네 안돼요


벽이랑 대화하는 기분. 어쩌면 진짜 매뉴얼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신고자로 내 이름이 적히는 순간 지금 이 장학사의 태도도 그렇고 내가 2차 피해자가 될 것은 자명해 보였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되물었다. 


그럼 지금 통화하시는 분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그건 난 말 못 해요.


제 이름은 물으시면서 왜 저는 못 물어봅니까? 


아니 난 말 못 한다고. 


이쯤 되면 매뉴얼대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결국 우리는 교육청에 신고 접수도 못하고 전화를 끊어야 했다. 전화를 끊을 때 그가 "아!!!!"하고 소리를 꽥 지르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학생인권에 아무도 관심 없던 시절, 선생님의 과도한 체벌이 인정되던 시절, 그래서 분풀이용으로 학생들을 두들겨 패도 문제가 없던 시절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내가 7차 교육과정 세대니 그리 먼 과거의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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