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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19. 2019

예의 없는 세상, 예의 없는 초등학교 선생님 1

사실 이 분은 잔인했지


사건의 발단은 늘 이랬다.


OOO 나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를 유독 아껴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에 대한 좋은 기억밖에 없었다. 하지만 머리가 크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하나의 기억 왜곡이었다. 우리 반에 한글을 못쓰는 여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선생님은 늘 그 아이를 괴롭혔다. 선생님이 아이를 괴롭히니 우리도 그 아이를 따돌렸다. 그래도 나는 부모님이 어려운 아이들은 도와주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하려 노력했었다.


그 아이는 늘 꾀죄죄했다. 부모님이 어떤 사정으로 바빠서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탓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아이의 구겨신은 운동화. 나는 "너는 왜 운동화를 구겨 신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작아서 그래."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럼 새로 사달라고 해."라고 했는데 아이의 대답이 아직도 서글프다.


엄마가 내년에 사준대.


발육이 한참 빨라 커가는 자식 새 신발 한 켤레 못 사줄 만큼 빈곤한 집안의 아이. 그런 아이를 선생님은 왜 그렇게 창피를 줘야 했을까.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의 방법은 이랬다. 한글을 수업시간에 그녀는 우렁차게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OOO, 앞으로 나와!


그러면 아이는 주눅이 들어서 쭈뼛쭈뼛 앞으로 나왔다.


네 이름 적어봐.


선생님은 아이에게 분필을 주며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아이는 적지 못했다. 어쩌다 자기 이름을 적는 데 성공하면 그다음부터는 우리 반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적게 했다. 어려운 이름들로. 그 이름 중 내 이름도 있었다. 아이는 당연히 쓰지 못했다. 그러면 그다음부터 아이는 맞았다. 선생님은 손에 쥔 막대기로 아이의 볼을 때렸다.


왜 못써! 왜 못써!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강도가 셌는지 약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른 급우들이 슬랩스틱 코미디 라도 보는 듯 깔깔 웃을 때 나는 문득 무서움을 느꼈다. 아이는 울었다. 어렸어도 얼마나 창피하고 아팠을까. 한 반에 족히 50여 명은 됐던 그 교실에서 모두 자기를 비웃고 있다. 게다가 선생님의 막대기 따귀는 멈추질 않는다. 엄마에게 말이라도 해봤을까. 아니면 공연히 얘기했다가 엄마한테까지 혼날까 봐 한마디도 못해봤을까. 그때는 그랬으니까. 학교에서 혼이 났다고 하면 부모님이 "자알 혼나고 왔다. 더 혼나고 오너라." 혹은 "그러게 왜 잘못을 해! 똑바로 학교 안다녀!" 하던 시절이니까.


나는 후에 전학을 가며 그 학교를 떠났다. 그래서 학급이 갈라진 뒤에도 종종 인사하곤 하던 그 아이와는 영영 이별했다. 이름은 가물가물한데 그 꾀죄죄한 모습과 발뒤꿈치가 다 튀어나오던 운동화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그때 운동화 한 켤레를 아이에게 줬을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어리고 소심했던 나는 서로의 발 사이즈가 맞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다. 그리고 그때는 우리 집도 바자회에서 운동화를 사서 신던 그런 집이었어서 엄마에게 말할 용기가 안 났다.


잘 지내고 있겠지. 부디 초등학생 때의 기억은 그녀가 잊었기를 바란다. 혹시나 남아서 그녀 인생을 괴롭게 하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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