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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20. 2019

예의 없는 세상, 예의 없는 직장 동료

X추 떼라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저 못생긴 X


내게 앙심을 품은 다른 팀 직원이 내게 뱉은 말. 나는 들었지만 모른 척했다. 마감이 급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속으로 저 사람 참 나잇값도 못하고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 코앞에서 말 못 하고 뒤에서 말하는 꼬락서니가 안쓰러웠다.


그는 나보다 입사 년수가 높았지만 우리는 팀이 다르고 업무가 달랐기 때문에 업계 특성상 굳이 그가 나의 선배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늘 내게 반말을 썼다. 나는 이미 여기서부터 기분이 나빠있었다. 회사는 회사고 밖에서 보면 생판 모르는 사람인데 내가 어린것은 맞다고 치더라도 굉장히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예의 없음은 협업을 할 때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이거 해줘. 저거 해줘.


말이 좋아 해줘지 사실상 명령이었다. 게다가 꼭 마감 직전에 작업 파일을 넘겨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업무 스타일이 느림보였다. 한 번은 나도 도저히 시간상 그의 요구사항을 맞춰줄 수가 없었고 그 날 나는 그에게 따로 메시지까지 해서 사과했었다. 그때 그의 대답은 세 글자. '오케이'


PD들은 생방송 시간이 다가오면 가장 긴장을 하고 날카로워진다. 이때마다 나를 건든 것은 건들거리는 그의 말투와 반말 그리고 마감 직전의 수많은 요구사항.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냥 그를 들이받아버렸다. 또 반말로 내게 '지시사항'을 내리는 그에게


반말하지 마시죠.


하고 응수한 것이다. 그러자 그는 당황했는지 어버버 하더니 그래도 자존심을 세우려고


그럼 일을 똑바로 해요~ 맨날 그렇게 짜증만 내지 말고


라고 화제를 돌렸다. 나는


그건 그쪽 부서에서 상관하실 일 아니고요, 말씀 끝나셨으면 가주세요.


했다. 그는


하, 어이가 없네. 일 좀 똑바로 해요.


했다. 사무실에서는 그가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조금 싸가지가 없어도 참고 넘어가라는 기류가 있었다. 나는 그것도 우스웠다. 나는 외국 생활 안 했나? 그리고 그 직원 외에도 많은 직원들이 해외 학위를 소지하고 있었다.

또 하나 내가 그를 더 우습게 생각한 이유는, 그렇게 외국에 오래 살았으면 그냥 거기서 평생 살지 왜 굳이 한국에 기어들어와 "나는 외국에 오래 살아서 한국에서 좀 이렇게 망나니로 밖에 못살아~"하며 사회 부적응자 코스프레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외국에선 별 볼 일 없는 삶밖에 못 사니까 한국 돌아온 주제에 여기서는 자기가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허세를 떨며 사는 거지. 나는 그에게 영어로 대답해줬다.


유 투~


그러자 그는 굉장히 흥분한 한 마리 고릴라가 되었다.


뭐? 유투? 미쳤네.


여기서부터 충분히 싸움이 나도 될만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키보드를 집어던지고 편집 작업을 때려치우기에는 생방송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PD니까. 나는 아마추어가 아니니까. 내 할 일이나 하자. 내가 그의 도발에 별 반응 없이 일에만 집중하자 그는 뒤에서 엄청나게 궁시렁댔다. 그러다가 결국 뱉은 말이 글 제일 위에 적은 내 외모 비하였다.




아직도 응어리가 많이 남은 일이라 길게는 쓰질 못하겠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회사 상급자들은 그를 징벌위원회에 회부해 확실하게 벌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다 흐지부지 끝났다. 징벌위원회를 마치고도 그는 내게 여전히 건들건들, 반말을 쓰며


반말을 쓴 게, 나는 친근감의 표현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빴나?


했다.


나는 이 회사는 더 이상 일할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스케줄이 잡혀있었던 지방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그날 밤, 나는 사직서를 썼다. 출근하자마자 사직서를 제출했고 면담 전까지 근처 카페에 짱박혀서 모든 업무를 거부했다. 그렇게 그 회사와 작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직원의 아버지가 내가 다녔던 회사에 굉장히 연관이 많은 분이라고 했다. 결국 숟가락 차이로 인한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그만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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