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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Dec 21. 2019

지하철에서 깡패 할아버지를 만났다


 2호선을 타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신도림 역이었나, 사람들이 분주히 오고 가는데 굉장히 나이 든 할아버지가 아주 당당하게 내 맞은편 할머니에게 비키라고 손짓을 했다. 할머니는 자신도 억울하다는 듯 울상을 지으며 "저도 다리가 안 좋아서 앉아서 가야 하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무가내였다. 할머니는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머니의 바로 옆 좌석에는 건장한 청년이 앉아있었지만 그는 할머니를 돕거나 최소한 자리를 양보하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가 일어섰다. 할머니도 다리가 아프다는데 서서 가시게 가게 할 수는 없잖아. 


여기로 앉으세요.


 할머니는 내게 연신 고맙다고 하시며 내 자리로 와 앉으셨다. 여전히 겁을 먹은 표정이라 내가 할머니와 그 깡패 할아버지의 사이에 서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하는 것을 막았다. 몰래 할머니에게 내 머리 옆에 검지 손가락만 편 채 손을 올려 빙글빙글 돌려보였다. 할머니도 인정한다는 듯 끄덕끄덕했지만 여전히 불쾌하고, 겁먹은 표정이었다. 


 깡패 할아버지는 어쩌면 치매노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주름살과 하얀 머리카락, 다듬지 않아 길게 늘어진 수염처럼 굴곡진 인생을 살아와서 배려를 배우지 못했거나 잊었는지도 모른다.


 괜히 나까지 불안했던 지하철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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