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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Jan 02. 2020

난생 처음으로 해고를 당했다.


 사원수가 50명쯤 되는 기업. 중소기업청으로부터 탄탄한 기업인지 뭔지로 인증까지 받았다는 그 기업. 그 기업이 나의 12월 일할 곳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근로계약서 작성을 자꾸만 미뤘다. 나는 불안했고, 석연치 않았다.


 해고는 도둑처럼 왔다. 여느 날과 다름 없이 나는 책상에 앉아 업무를 하고 있었다. 본부장이 우리팀 부장과 내 사수를 불러가더니 직원휴게실도 됐다가 회의실도 됐다가 하는 그 방에서 셋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나는 업무만 하고 있었다. 얼마 뒤에 본부장이 나를 불렀다.


 본부장은 회사의 '정식'회의실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업무지시라도 있는 줄 알고 수첩에 볼펜까지 챙겨 들어갔다. 들어가니 본부장이 앉아있고 경영지원팀의 한 직원이 앉아있었다. 경영지원팀 직원은 나와 눈도 마주치질 않고 있었다.


 본부장이 입을 열어 뱉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현재 업무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내 화합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무어라 반론이나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나에게 해고 의사를 통보했다.

 아뿔싸, 어제 사수랑 싸웠는데. 그 여자가 독을 품었구나.




 내 사수는 굉장히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신경질만 내면 되는데 "니가 보면 뭘 알아?", "전에 직장에서 이런거 안해봤어?", "영어 점수가 높다고 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네" 등 사람을 모욕하는 언사를 예사로 했다. 그래도 어쩌랴, 그녀가 내 사수인 것을. 나는 그저 '예, 예'했다.


 그 전주까지만 해도 사수는 내게 짜증을 내긴 했지만 호의적이었다. 다른 사람들 다 있는 앞에서 "OO씨가 업무를 잘해~"라며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주 들어 개인적인 나쁜일이라도 있었는지 사람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나를 가만두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참을성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특히 거래처에까지 가서 나를 무시하는 말투로 대할때는 보는 이들 앞에서 창피했다. 그래서 결국 나도 사수에게 한마디 하고 말았다. 좋게 좋게 말했다. 납득을 할 수 있도록. 그런 언행은 좋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러자 사수도 그렇다고 느꼈는지 사과했다. 나는 이 일이 그냥 이렇게 끝난 줄 알았다. 사수가 최소한 사과는 할 줄 아는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러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같은 날, 사수는 내게 업무를 남겨두고 쌩-하니 가버렸다. 문제는 내가 잘못알고 있어서 해당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나는 고객사 직원께 죄송하다고 몇번이나 사과를 했다. 고객사 직원께서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너무 어려워하지 말라고, 그리고 사수같은 성격의 사람에게 그렇게 자꾸 져주지 말라고, 저런 성격들은 져줄수록 더욱 심하게 군다는 걱정의 말씀을 건내주셨다. 나는 그분께 '그래도 그분이 사수니까, 저보다 직급이 높으시니까 제가 그냥 받아주는 겁니다, 괜찮습니다'하고 안심시켜드리고 그 날 하루를 마쳤다.




 그리고 다음날이었다. 아무래도 사수는 내게 못내 '미안하다'고 말한게 속이 뒤틀렸던 모양이다. 본부장이 먼저 시작했는지,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드디어 근로계약서를 쓰기 전에 나를 체크하려던 모양이었다. (고로 나는 한달가까이를 근로계약서 없이 근무만 했다.)


 직원 휴게실 겸 회의실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본부장님 듣기에 정말 거슬리는 말들을 사수가 늘어놓았으리라 생각이 된다. 그러니 내가 해고당했지.




 직원 해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처음에 정규직을 약속받고 입사했다. 그러나 근로계약서 없는 직원의 해고는 별것 아닌 일이다. 본부장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남은 월급과 인센은 다 주겠다고 했다. 나도 사수의 만행을 고발해보았지만 "그건 둘이서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다, 어쨌든 너의 사수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바로 자리를 빼라길래 자리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사수가 내게 줬던 용품들을 돌려주려고 하자 "그냥 거기둬!"라는 신경질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회사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근로 계약서도 없었지만 명함은 나와 있었다. 나는 명함을 통째로 휴지통에 버려버렸다. 짐 정리를 마치고 그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왔다. 무엇하러 인사를 하겠는가. 내 등에 칼을 던진 사람들인데.


 업무 때문에 회식에 참여하지 못했던 팀장님, 업무 때문에 주말에 출근하는 부장님께 전화를 드리며 잘다녀오시라고 응원했던 나였다. 그런데 내가 조직간 화합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업무? 그 전주까지만해도 업무를 잘한다고 칭찬받던 나였다. 오히려 놓치는 업무 없이 꼼꼼하게 해냈었다. 그 신경질과 모욕을 다 받아가면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직원을 부리는 것은 명백한 범법행위다. 회사는 벌금을 내게 되어있다. 내가 신고하면. 신고를 할까 말까 고민중이다. 다만, 통장에 월급과 인센이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오자 나보다 인생 선배인 HR팀에 있던 지인이 신고하지 말라고 해서 신고의 뜻은 거두었다.


 내 인생 최초로 당해보는 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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