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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Apr 06. 2020

역사의 이면 그리고 아이리쉬맨

갱스오브뉴욕(Gangs Of New York)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흑인 노예 해방을 공식 천명 함으로써 미국에 진정한 자유주의를 뿌리내렸다. 그러나 노예 해방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노예 해방을 찬성하는 북부와 반대하는 남부로 나뉘어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북부의 백인이라고 모두 노예 해방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갑자기 흑인들을 위해 전쟁에 나가라니. 사회 불만은 가속화 됐다. 물론 진정 노예 해방에 뜻을 가지고 북군에 자원 입대한 군인들도 많았지만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일 수는 없다. 


 그러던 와중에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새로운 징집법에 사인을 해버리며 문제가 커져버린다. 이 징집법이 '300달러 면제' 조건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소위 있는집 남자들이 돈 300달러에 병역을 면제받는 것을 보며 대중의 분노는 치솟는다. 결국 7월 13일, 뉴욕에서 징집 거부 폭동 일어난다. 군대가 와서 진압해야 했을 정도의 정말 '폭동'이었단다. 오늘날 월스트리트, 타임스퀘어 등 인텔리한 분위기로 다가오는 뉴욕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말이다. 그리고 그 폭동의 주축에는 아이리쉬맨 (Irish Men)이 있었다.

 



아이리쉬 맨1 - 영국의 식민 지배와 떠돌이의 삶 


 본래 켈트족인 아일랜드인들은 앵글로 색슨 족인 영국인들에게 쫓겨 아일랜드에 터를 잡게 되었다. 그 뒤로 영국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영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모국어는 겔릭어. 영국의 수탈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이 많았다.



아이리쉬 맨 2 - 대기근에 밀려온 가장 가난한 백인

켈트족의 특징중 하나인 적발


 아일랜드인들의 미국 이민은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또 한번 급물쌀을 탄다. 수많은 아일랜드인들이 굶어 죽는 동안 지배국 영국이 식량을 고의로 풀지 않았던 점은 현재까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당장 배고픔을 피해 미국으로 온 아일랜드인들은 가진 것이 없었고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 북군은 군인이 없었다. 아일랜드 남자들은 가족을 위해 군대에 자기를 팔았다. 결국 '나라를 위한 전쟁'이 미국에 이민 온 지 몇 달, 몇 년 안된 풋내기 이민자들의 피로 치뤄지고 있던 셈. 




 영화는 가장 클라이막스라고 볼 수 있는 암스테르담(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과 빌 더 부쳐(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대결 플롯과 폭동 플롯을 섞으면서 '복잡하다', '불필요하게 욕심을 냈다'는 혹평을 들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앞의 혹평이 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아이리쉬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인들의 애잔한 삶을 피튀기며 보여준 그런 영화, 갱스오브더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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