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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Sep 11. 2019

10대 여느에겐 해리포터가 있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

셧업 말포이를 스페인 언니에게 전파하다


대망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는 날. 스튜디오는 오직 예약제다. 그리고 예약은 보통 한 달 전에 해둬야 원하는 날짜에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내가 한 달 전에 스튜디오를 예약해뒀을리는 없다. 다행히 미리 벌크로 스튜디오 입장권을 사둔 듯한 여행사들을 통해 스튜디오 예약이 가능했고, 가격은 비쌌지만 그들이 제공하는 교통 서비스를 덤으로 이용하며 내가 원하던 날에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마침 가는 길에 멋진 스페인 언니도 만났다. 가이드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혼자 왔지?" 하자 내게 다가와 "나도 혼자 왔어" 했던 그녀. 그 길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스페인 출신이나 프랑스 파리에서 10년째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휴가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사이좋게 해리포터 스튜디오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둘 다 해리포터 덕후답게 틈틈이 해리포터의 한 장면이나 대사들을 읊어대기까지 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굉장히 운영을 잘하고 있었다. 한 번에 관람할 수 있는 관람객의 수를 정해두어서,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관람객이 몰려 발생할 혼잡을 미연에 방지했다. 게다가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스태프들 마저도 해리포터 덕후들인지, 척하면 척, 이걸 물어보면 이것도 대답해주고 저것도 대답해주고, 척척박사들이자 직업만족도 최상인 성공한 덕후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들 굉장히 친절했다.


입구의 한 영국인 할아버지 스태프는 나의 영어 발음을 듣고 나를 미국인으로 오해해 "너 미국인이야?" 했다. 해리포터를 보러 간다는 흥분감과 할아버지의 기대를 깨기 미안했던 나는 그냥 "캐네디언인데?!" 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 친척도 캐나다에 산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미안 사실 난 한국인임 호호호 캐나다에선 공부만 했어!" 하고 얼른 도망쳤다. 거짓말하고는 못 사는 성격. 



스튜디오 안에는 전 세계에서 개봉된 해리포터 포스터들도 전시돼있었는데, 하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해리포터 비밀의 방 한국 개봉판 포스터가 걸려있는게 아닌가! 전율에 소름이 돋았다. 


10대 여느를 키운 것은 8할이 해리포터였다. 처음 해리포터 책을 손에 쥔 10살 초등학생 때부터 해리포터는 내 인생 최고의 가상 인물들이 담긴 책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마법사가 아님에 분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내 나이 11살 때 내가 최초로 친구들과 영화관에서 본 영화다. 그때는 심지어 더빙판으로 개봉했었는데, 성우의 '프리벳가'라는 내레이션이 아직도 귀에 선명히 들린다.



스튜디오의 내부는 해리포터의 팬이라면 충분히 전율을 느낄만한 영화 소품들이 전시돼있었다. 물론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호그와트를 표방해 만들어진 곳이 아닌, 해리포터 영화를 촬영한 뒤 영화를 제작한 과정과 소품들을 함께 보여주는 곳이다. 완전한 호그와트, 마법세계 만을 기대하고 간다면 약간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제작에 관심이 많거나,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즐기는 즐거움은 배가 되리라 생각한다.


해리포터 스튜디오에는 직접 호그와트 유니폼을 입고 그린 스크린 앞에서 빗자루를 타고 날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CGI로 합성된 사진은 당연히, 유료다. 유료로 판매할 사진 촬영용이기 때문에 폰카 등의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에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빗자루에서 일어서서 날으는 퍼포먼스를 해보려 했으나 안전상의 이유로 제지당했다. 저... 바이킹에서도 일어서는 여잔데요... 흥.


관람객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할머니도 있었고, 나와 같은 성인도 있었고 어린 해리포터 팬들도 있었다. 스튜디오에는 어린 해리포터 팬들을 위한 이벤트도 꼼꼼히 준비되어 있었다.



스페인 언니는 아이가 둘 있는데 가장 큰 아이가 아직 5살 정도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두 딸이 자라면 엄마와 함께 해리포터를 읽게 될 텐데, 그럼 참 멋진 가족이 될 거야"라고 말했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킥킥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한국의 10대들이 얼마나 해리포터에 미쳤었던지, 얼마나 해리포터 책을 돌려가며 읽었으며 책은 안 읽어도 영화는 보고 "셧업 말포이"라는 말을 얼마나 소리치고 다녔는지에 대해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슬퍼했다. 나보다 나이가 7살 정도 위인 그녀는 20대에 접어든 뒤 해리포터를 접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 주변에 해리포터를 읽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자기도 "셧업 말포이" 같은 친구들과의 추억이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정말 아쉬워했다. 그녀의 아쉬움이 내게 전해져 나는 "꼭 잊지 말고 다음에 써먹으라"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도 내가 뭔가 아쉬워 나한테 지금 써먹어보라고 했는데, 그녀가 그건 거절했다. 매너를 지켜야 한다며.



나의 오랜 염원중 하나였던 해리포터 스튜디오 방문. 그녀가 함께여서 더욱 즐거웠다. 그녀는 내친김에, 런던에 있는 자기 친구들과의 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동양인이라곤 나 하나뿐인 런던 로컬 펍에서 로컬들과 어울리며 자정까지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고 함께 런던 밤거리를 걸었다. 수중에 파운드화가 다 떨어져 에라 모르겠다, 카드를 긁어버렸지만 행복했다.



런던 로컬들과 떠돌다가 로컬들이 좋아한다는 호수도 보았다. 이탈리아 피렌체처럼 배를 띄우고 밤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관광객이 없는 공간을 관광하는 것. 허세 좀 보태서 내가 참 좋아하는 일이다.


즐거운 장소에서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날이었다.


이 모든 건 해리 덕분이다. 아니 조앤 K 롤링 덕분인가. 아무튼 감사합니다.


내 사진 투척. 화장도 안 하고 갔다. 컨셉은 날기가 귀찮아진 말 안 듣는 슬리데린 학생. "이제 그만 내려줘"


아! 그리고 얼마 뒤 카티아는 내게 I DID IT! 이라며 자랑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카티아의 "셧업 말포이" 대성공!


유럽 유랑하다 매거진의 많은 글들은 현재 브런치북 '안녕, 낯선 사람: 유럽편'으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더 많은 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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